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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민속·역사

[고구려유적] 중국이 유네스코에 등재한 고구려 태왕릉과 장군총

잠용(潛蓉) 2017. 7. 10. 19:57

만주벌판은 화려하고 위태롭게 '공사중'
한겨레ㅣ입력 2017.07.10. 17:06 댓글 325개


동북아역사재단과 방문한 고구려 발상지

고구려 고분군 유네스코 등재 이후 중국, 돈·인력 대거 투입해 단장 진행
유럽 예쁜 도시처럼 꾸며지지만 고분 뒤쪽은 무너질 듯 불안해보여
중국 공안의 답사단 경계도 심해 "사드 이후 동북아 정세 악화 영향"
[한겨레]  지난 3~6일 동북아역사재단 답사단과 함께 찾은 고구려 발상지는 온통 ‘공사중’이었다. 주몽이 첫 도성을 정한 오녀산성(랴오닝성 환런시 소재)은 가파르게 솟아 있는 산길을 따라 비계가 설치돼 끊임없이 건축자재를 산 정상으로 실어나르고 있었다. 두번째 도읍지인 국내성(지린성 지안시 소재) 일대에 흩뿌려져 있는 태왕릉, 장군총 등 옛 무덤들은 나무와 꽃밭으로 한창 치장중이었다. 보도블록은 막 깔리기라도 한 듯 아직 덜 마른 콘크리트 냄새가 풀풀 났고, 고분으로 들어가는 금속제 출입문은 비닐포장도 뜯기지 않은 상태였다. 태왕릉에서 200m쯤 떨어져 서 있는 광개토대왕비는 두꺼운 유리집을 지어 안전하게 보호하고 있었다.


고광의 동북아역사재단 연구위원은 “원래 태왕릉 주변은 게딱지 같은 집들이 다닥다닥 붙어 있었는데, 2004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등재를 앞두고 인민군이 마을 출입을 막고 순식간에 모두 철거했다”며 “이 일대를 자주 들르는데 올 때마다 모습이 달라져 있다”고 말했다. 국내성 성벽을 보전하려고 지안(집안)시는 시청사를 포함해 아예 도심을 외곽으로 이전하기까지 했다. 압록강을 따라 새로 형성된 시가지는 유럽의 어느 예쁜 도시에 와 있는 게 아닌가 착각할 정도로 세련되고 깨끗했다. 중국 정부가 고구려 유적의 발굴과 정비를 위해 어마어마한 돈과 인력을 투입하고 있음을 여실히 보여주는 현장이다.


장수왕 무덤으로 추정되는 ‘동방의 피라미드’ 장군총.


광개토대왕의 주검이 안치돼 있었던 무덤 꼭대기의 널방 입구. 철제문을 달고 시멘트로 마무리하였다.


광개토대왕의 무덤인 태왕릉의 전경.


광개토대왕의 주검이 안치돼 있었던 널방 내부 모습.


 하지만 유적을 대하는 마음가짐에서는 어쩔 수 없는 차이가 느껴졌다. 장수왕 무덤으로 추정되는 ‘동방의 피라미드’ 장군총은 사진으로 보던 것보다 훨씬 정교했다. 켜켜이 쌓아놓은 장대석들은 윗면 가장자리에 턱을 세워서 위에 놓인 돌이 밀려나가는 것을 방지했다. 1600년가량이 흘렀는데도 돌 모서리는 손이 베일 듯 여전히 날이 서 있었다. 고구려의 ‘구려’가 성(城)을 뜻하는 고구려의 옛말일 정도로 고구려 사람들은 돌로 성을 쌓는 데 도통했던 모양이다. 하지만 장군총 뒤쪽으로 돌아서자 허물어져 가는 모습이 역력했다. 재단 관계자는 “우리가 중국 정부에 무너지는 걸 함께 막아보자고 여러 차례 제안을 했는데도 중국 쪽이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는다”고 말했다.


광개토대왕의 무덤인 태왕릉은 장군총처럼 피라미드 형식의 돌무덤이었다는데 겉을 감쌌던 돌계단이 모두 무너져내려 남루해 보이기까지 했다. 대왕의 주검이 안치돼 있었던 무덤 꼭대기의 널방은 아무나 들어갈 수 있도록 개방돼 있다. 널방 입구에 철제문을 달고 시멘트로 마무리한 흔적은 옛 영광을 떠올려보는 것조차 방해했다. 우리 민족으로서는 가장 광대한 영토를 개척했던 대왕인데, 그 웅혼한 기상은 여기저기 흩어져 있는 돌조각들처럼 방치돼 있는 느낌이다. 귀족들의 무덤 가운데 하나인 오회분 5호묘의 벽화는 그 필치와 화법이 우수해 최고 걸작으로 꼽힌다는데 훼손 정도가 심해 보였다. 관광객들이 내뿜는 입김으로 천장에서는 이슬방울들이 뚝뚝 떨어졌고 벽면은 석회 성분이 하얗게 끼는 백화현상까지 곳곳에 나타났다.


이런 안타까움은 중국 당국이 보이는 경계심 앞에서는 긴장감으로 변한다. 답사단이 국내성과 짝을 이루는 환도산성을 방문했을 때 갑자기 공안요원들이 들이닥치더니 인솔자에게 신분증과 허가증을 요구하며 방문 목적 등을 꼬치꼬치 캐물었다. 환도산성 아래 무덤떼 쪽으로 걸어가며 사진을 찍자 감시원이 다짜고짜 카메라를 달라더니 사진을 지우고서야 돌려줬다. 허름한 복장이어서 동네 주민으로 알았는데 답사단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고 있었던 것이다. 고구려 유물이 많이 전시돼 있는 집안박물관에서는 동북아역사재단 관계자의 설명을 금지했다. 중국인 안내원의 해설을 답사단 일원이 통역하는 방식으로만 박물관을 둘러볼 수 있었다. 관람객들끼리 이야기를 주고받는 것조차 눈치를 살펴야 했다.


중국인 안내원의 유물 해설은 철저하게 중국 중심이었다. 예를 들어 고구려의 토기나 화폐, 수레 등을 설명하면서 “고구려 자체적으로 제작한 것이 아니라 중원 지역에서 유래한 것”이라는 식이다. 오랫동안 고구려 유적 안내를 해온 조선족 가이드 김만송씨는 “지난해까지만 해도 이런 일이 없었는데 올해 들어 갑자기 지침이 새로 내려온 모양”이라며 “사드 문제 등으로 한-중 관계가 악화된 영향일 것”이라고 말했다. 미국과 중국 사이의 긴장이 높아지고 그 여파로 한반도를 둘러싼 동북아 정세가 불안해지면서 만주 벌판의 고구려 유적지마저 함께 흔들리고 있는 것이다. [환런·지안/글·사진 김의겸 선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