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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기념일

[2018 구정 풍속도] "제사를 파업하라"

잠용(潛蓉) 2018. 2. 14. 11:57


"제사를 파업하라"
한겨레21ㅣ2018.02.14. 08:38 댓글 2804개


저녁만 먹거나 여행 가는 등 제사 없는 명절 보내는 가족들
회의 열어 장보기·음식 만들기 등 각자 역할 나누기부터

[한겨레21] 서민(52) 단국대 의학대학 기생충학과 교수는 올해 설에도 ‘제사 없는 명절’을 보낸다. 지난해 추석 명절에는 “어머니 집에 가서 동생 가족과 함께 밥 한 끼만 먹고 수다 떨다 집에 왔다”고 했다. 서 교수는 어머니와 ‘끈질긴 투쟁’ 끝에 5년 전 제사를 없애는 데 성공했다.


가사 떠넘겨온 행동 연장선

 서민 교수는 5년 전 제사를 없애고 힘겨운 ‘명절 노동’이 사라졌다고 말한다. /류우종 기자

서 교수는 제사를 없앤 뒤, 제사 음식을 준비하던 5년 전과 달리 명절 풍경이 한결 평화로워졌다고 자평했다. 물론 그가 ‘끈질긴 투쟁’이라는 말로 표하듯, 지금의 평화를 얻어내는 과정이 쉬웠던 것은 아니다. “2001년 아버지가 돌아가신 뒤 제사를 우리 집에서 지내게 됐어요. 그때 (제가 결혼을 안 해서) 제수씨가 거의 혼자 명절 음식을 준비했죠. 많이 미안했습니다. 그래서 며느리 혼자 독박 쓰는 한국의 명절 문화를 바꿔야겠다고 생각했어요.”


그가 처음 도달한 결론은 ‘제사 음식을 모두 인터넷으로 주문하자’는 것이었다. 이 의견에 어머니는 강력히 반대했다. “사는 음식은 정성이 없다”는 이유 때문이었다. 그러나 10년에 걸친 끈질긴 설득에 어머니는 결국 ‘제사를 지내지 말자’는 아들의 고집에 손을 들어주고 만다. 서 교수는 가부장적인 집안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그는 여러 언론 기고에서 자신에게 폭력을 휘두르던 아버지의 모습을 묘사했다. 그에 대한 반발이었을까?


그는 결혼 전부터 명절과 제사 등 여성에게 독박을 씌우는 가부장적 문화를 바꾸려 노력해왔다. 페미니즘을 공부하면서 그의 이런 생각은 ‘확신’이 되어갔다. “명절 문화에 깔린 정서가 이른바 ‘대리 효도’(남편이 본인 대신 부인을 시켜 효도하는 것)잖아요. 며느리들이 얼굴도 본 적 없는 남편 조상들의 제사상을 차리고 남자들은 절만 합니다. 이런 풍습은 남자들이 가사를 부인에게 떠넘겨온 평소 행동의 연장선상에 있습니다. 한국 남자들의 가부장적 자세가 명절 때 가장 극단적으로 나타나죠.”


최근 들어 서 교수처럼 성차별적 명절 문화에 도전하는 남편이 하나둘 늘어나고 있다. 자신의 평범한 일상을 담은 웹툰 <서늘한여름밤의 내가 느낀 심리학 썰>의 작가 서늘한여름밤의 남편(32)도 그중 한 명이다. 그는 결혼 후 처음 맞는 지난해 설에 혼자 친가에 내려갔고, 올해도 그럴 생각이다. 설에는 혼자 부모님과 시간을 보낸 뒤, 연휴가 끝나면 아내와 함께 부모님을 찾을 예정이다. 부부가 선택한 가부장제 문화에 대한 저항이다. “명절이라는 부당한 가부장제 문화에 노출되고 싶지 않다는 아내의 말에 나도 동의했어요. 며느리에 대한 기대가 있었겠지만 부모님도 이를 받아들였고요.”


그 역시 어린 시절 보수적이고 가부장적인 가정에서 자랐다. 아버지는 밖에서 돈을 벌어오고 어머니는 집안일을 하는 전통적인 성역할 분담이 당연한 줄 알았다. 명절 때 음식 준비 역시 여자의 일로 생각했다. “아버지가 둘째거든요. 그런데 어머니가 맏며느리 역할을 다 하셨어요. 지금도 집에 가면 여자들만 모여서 명절 음식을 준비해요. 함께 음식을 만드는 남자는 나 혼자예요. 한번은 큰아버지가 오셔서 내가 일하는 모습을 보고 ‘남자가 그런 일 하지 마라’며 역정을 내더라고요.”



서늘한여름밤 작가의 웹툰에는 남편이 종종 등장한다. 그는 지난해 부부가 각자 명절을 지내는 모습을 그렸다. /웹툰 <서늘한 여름밤의 내가 느낀 심리학 썰> 갈무리


무게 중심은 항상 아내여야

그가 부모님 사이에 갈등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은 대학 졸업 무렵이었다. 그는 “여동생은 중학교 때부터 엄마가 겪은 아버지와의 갈등, 고부 갈등을 알고 있었다. 어머니는 나에게는 그런 얘기를 하지 않았다. 문제를 일으키지 않기 위해 참아온 것”이라고 말했다. 그때 처음 결혼한 여성들의 힘겨운 삶에 대해 눈뜨게 됐다. 어머니가 가부장적 집안의 며느리로서 견뎌야 했던 고통을 직접 털어놓은 것은 그가 결혼한 뒤였다. “한번은 어머니가 ‘네가 아내 편드는 것을 이해한다. 그런데 나는 내 편이 없었다’고 하더라고요. 젊을 때는 아버지가 바람막이가 안 되니, 무방비 상태에서 며느리로 30년을 살아오신 거죠.” 자신은 전통적 성역할에 충실한 며느리 노릇을 완수했지만, 아래로 개인의 정체성을 강조하는 젊은 며느리를 맞은 50대 ‘낀 세대’의 고백이었다. 이 과정에서 그는 결혼 뒤 여성들이 겪는 세대 간의 차이와 고통을 알게 됐다.


그는 어머니에게 “나도 어머니를 이해하고 잘할 거지만, 난 어머니 편일 순 없다. 항상 아내 편에 설 것이다”라고 했다. “고부 갈등의 핵심은 남편이 우선순위를 어디에 두느냐인 것 같아요. 무게중심은 항상 아내에게 두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내 가정이 최우선이죠. 어머니는 서운하겠지만 그래야 고부 갈등의 악순환을 끊을 수 있다고 생각해요.” 그가 명절이 되면 혼자 친가를 찾는 이유다. 결혼 3년차인 김민수(37)씨는 지난해 추석을 앞두고 가족회의를 했다. 집에서는 설거지와 청소 등 가사노동을 잘 분담하면서도 명절에는 ‘손 하나 까딱 안 하려는’ 김씨에게 아내의 불만이 폭발했다.


김씨는 남동생 부부도 비슷한 이유로 명절이 끝나고 싸움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회의 주제는 ‘어떻게 하면 모두가 웃는 명절을 보낼 수 있을까’였다. 가족들이 각자 의견을 내놨다. ‘제사 없애기’ ‘남자만 제사 음식 준비하기’ ‘명절날 가족여행 가기’ 등 여러 의견이 나왔다. 가족 모두가 합의할 수 있었던 ‘교집합’은 각자 집에서 제사상에 올릴 명절 음식을 준비해오는 것이었다. “전에는 남자가 무슨 부엌에 들어가냐는 작은아버지들 등쌀에 음식 준비를 한다는 엄두를 못 냈어요. 하지만 이제는 남동생이 나물류를 준비하고, 우리는 우리가 할 수 있는 음식을 각자 준비해와요.” 김씨는 지난해 명절엔 아내와 아이와 함께 음식을 만들었고, 올 추석에는 가족여행을 준비 중이다.


평등한 명절, 가족이 함께

부부 모두가 행복한 명절을 위해 남편들이 해야 할 일은 뭘까? 한국여성민우회가 구체적인 방법을 알려준다. ‘가족회의를 열어 각자 어떤 역할을 맡을지 정하기’ ‘장보기, 음식 만들기, 상 차리기, 설거지 등을 온 가족이 함께하기’ 등이다. 결국 평등한 명절은 가족이 함께 만드는 것이다. 남성들이 자신에게만 주어진 권력을 기꺼이 내려놓을 때 평등한 명절이 되고 가족 모두 행복해진다. <허윤희 기자 yhher@hani.co.kr>


"얼른 올라가렴, 진심이란다" 어르신들이 달라졌어요
한국일보ㅣ김형준 입력 2018.02.15. 04:46 댓글 67개



▲ 새로운 설 풍속도 - 명절에 아이를 데리고 고향을 찾는 자녀에게 이른 귀경을 권하는 노부모가 늘고 있다. /신동준 기자


노부모, 명절 손주 돌보기 부담에 자녀들 귀경 권하는 경우 늘어
스스로 여가 중요성 깨달으며 자녀 세대들 여가 역시 배려

충남 당진에 사는 이호석(75)씨는 명절 귀성 자녀에게 “웬만하면 빨리 집이나 처가로 가라”고 수년째 권한다. 이씨는 14일 “평소 아내와 단둘이 사는 터라 슬하의 3남2녀가 자녀들까지 데리고 오면 북적북적 정을 나누는 즐거움이 크지만, 오래 잡아둬 봐야 서로 짐이 된다는 생각에 예전처럼 한시라도 더 붙잡고 싶진 않다”고 했다. 부산 해운대구 박영숙(59)씨는 “처음엔 빈말로 ‘빨리 가라’ 재촉하고 아들 딸 가족도 마지못해 갔는데, 막상 정착이 되니 명절 심신의 피로도 적고 친구들도 만나는 등 장점이 더 많다”고 귀띔했다.


명절 아이를 데리고 고향을 찾는 자녀에게 이른 귀경을 권하는 노부모가 늘고 있다. 1년에 잘해야 한두 번 얼굴 맞대는 자손들을 하룻밤 더 재우거나 한끼라도 더 먹여 보내고 싶은 부모 마음은 한결같다. 다만, 함께하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서로 피로가 쌓이니 아쉽더라도 일찍 보내주는 게 ‘누이(부모) 좋고 매부(자식) 좋다’는 식으로 바뀌는 분위기다. 일부 노부모는 자녀를 빨리 돌려보내려는 이유로 ‘명절 손주 돌봄’ 고충을 꼽는다. 아이 식사 놀이 취침 기준을 까다롭게 요구하고 외출한 뒤 하나라도 어긋나면 서슴없이 잔소리하는 자녀에게 “빨리 가라”고 한다는 것이다. 강모(67)씨는 “육아 스트레스에서 잠시 벗어나 명절 고향 친구들을 만나고픈 자녀들 마음은 이해하지만, (손주 돌봄에) 최선을 다했음에도 타박하면 기운이 빠지고 섭섭함이 몰려오는 게 사실”이라고 했다.


▲ 설연휴가 시작된 14일 한복을 입은 아이들과 부모가 KTX부산행을 타기위해 플랫폼을 걸어가고 있다.

/배우한 기자  


심지어 ▦음식물 오물오물 씹어 먹이기 ▦주방용 행주로 얼굴과 입 닦아주기 ▦욕설 받아쓰기 시키기 등 ‘명절 손주 안 보기 3가지 방법’이 설을 앞둔 경로당이나 찻집에서 농담처럼 구전된다고 한다. 손주 돌보는 조부모 절반 이상(59.4%)이 “체력적으로 힘들다”고 답할 만큼(한국여성정책연구원 설문), ‘오면 반갑고, 가면 더 고마운 게 손주’란 말이 점차 현실이 되는 모습이다. 일하는 노인들이 늘면서 명절만이라도 자신만의 휴식을 누리고 싶다는 욕구도 할아버지, 할머니들을 달라지게 하고 있다. 이삼식 한양대 고령사회연구원장은 “과거 노년층은 자녀의 행복을 최우선으로 뒀지만, 이젠 본인의 여가나 사회생활을 충분히 누리는 추세”라면서 “스스로 여가 존중의 필요성을 깨달아가면서, 자녀 세대의 여가 역시 배려하는 모습을 보이는 것”이라고 풀이했다.


설령 일찍 보냈더라도 가족을 볼 기회가 적었던 과거와 달리 통신 발달로 사진이나 동영상, 영상통화 등을 통해 매일같이 자녀와 손주들 안부를 확인할 수 있는 시대다. 이호선 노인정책연구센터장은 “맞벌이 생활로 가사에 서툰 젊은 부부들이 부모에게 제사음식 마련, 아이 돌봄 등 명절 가사 노동을 의존하는 경우도 늘고 있다”며 “노인들에게도 ‘명절 스트레스’가 분명 존재하는 만큼 자녀들의 배려도 꼭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김형준 기자 mediaboy@hankookilbo.com>


'만인이 만인과 싸운다' 각자도생의 한국 사회
주간경향ㅣ2018.02.14. 10:27 댓글 133개


남편과 아내, 부모세대와 자식세대,
큰집과 작은집 등 명절 갈등 분출

명절은 갈등을 분출시키는 시기다. 온 가족이 모여 피우는 화기애애한 웃음꽃은 금방 시들고 만다. 남편과 아내 사이, 부모세대와 자식세대 사이, 큰집과 작은집 사이 등 전선이 생길 만한 곳마다 분쟁은 그치지 않는다. 하지만 전선은 이동한다. 직장인 남기훈씨(31)가 지난해 명절에 느낀 것도 묘하게 달라진 갈등의 구도였다. 같은 또래 사촌형제들의 자식 자랑으로 십수 년간 이어졌던 큰집과 작은집 사이의 경쟁이 어느새 부모세대와 자식세대의 대결로 바뀌었던 것이다.



고향에서 설 명절을 보낸 귀경객들이 서울역에서 내려 각자 발길을 옮기고 있다/ 김기남 기자


한국인의 분쟁 비율

OECD 중 가장 높아

“발단은 신혼인 사촌동생이 (아내인) 제수씨한테 제사음식 만들지 말고 방에서 애만 보라고 한 것 때문이었죠. 근데 그 전부터 조짐이 보였죠. 어른들 말씀을 들을 때마다 단순한 세대 차이 수준을 넘어서 답답하다고 느끼게 되면서부터였으니까.” 명절마다 큰집인 남씨의 집으로 작은아버지 일가가 제사를 지내러 올 때마다 자식이 귀한 집안에서 한 살 터울인 남씨와 사촌동생은 어릴 때부터 곧잘 비교대상이 됐다. 반에서 몇 등을 했느니, 대학을 어디 갔느니 하는 자식 대결이 이어져 오면서 남씨와 사촌동생은 서로를 은연중에 경쟁상대로 인식해 왔다. 대학 학벌로 따지면 경쟁에서 앞섰던 남씨였지만 취직이 늦어지는 동안 명절마다 작은아버지의 반격을 받고 판정패를 당해 왔다. 사촌은 일찌감치 공무원시험에 합격해 자리를 잡았던 것이다.


그러나 취직 못하는 죄인 입장에서 별다른 항변을 못하던 남씨에게 점차 우군이 되어준 것은 사촌동생이었다. 작은아버지에게 요즘 청년세대의 취업난을 모른다며 남씨의 편을 들었던 사촌동생에 맞서 의외로 남씨의 부모님이 남씨를 공격하는 양상까지 벌어졌다. “아버지와 작은아버지 모두 ‘마냥 놀지 말고 눈높이를 낮춰라’고 하시니 ‘그럼 최저임금만 받는 일자리도 괜찮냐’고 답했는데, 오히려 ‘부모님 등골 휘는 걸 생각해서 그거라도 벌면서 취직 준비하라’고 하시니 할 말이 없었다”고 남씨는 말했다.


부모세대에게서 받은 게 있으니 자식세대는 할 말이 없었다. 그러나 다음 명절에 본격적으로 불거진 제사 준비를 둘러싼 갈등에서는 상황이 달랐다. 사촌동생 제수는 따지고 보면 남씨 집안 사람도 아니고, 젖을 먹여야 할 갓난아기가 있었다. 남씨는 “어른들께서 대놓고 뭐라고 하지는 않으시면서도 ‘제사는 조상님들께 드리는 정성’이라며 투덜거리시니까 내가 ‘이 집에서 조상 덕 본 사람 누가 있느냐’고 했다”며 “엄마랑 작은어머니도 남씨 아니잖냐고 하니 대꾸가 없으셨다”고 말했다. 딱히 받은 것도 없는데 적잖은 품이 들어가는 제사가 번거로울 뿐인 자녀세대의 생각이 부모세대와 충돌했던 것이다.


남씨 집안의 경우를 보면 갈등의 주된 구도가 세대를 중심으로 새롭게 재편된 것처럼 보인다. 한국 사회 전반에서 나타나는 세대 간 정치·사회 여론의 격차가 한 집안에서도 그대로 반영된 셈이다. 서로 다른 시대를 겪으며 살아온 세대들이기 때문에 서로를 이해하기가 쉽지 않아 보인다. 게다가 남씨 집안을 넘어 한국 사회 전제로 보면 평균수명은 늘어나고 노인인구가 늘어나는 고령화가 심해지면서 이러한 세대 간 갈등 역시 더욱 깊어질 여지도 엿보인다.


가족 구성원끼리도

경쟁과 견제의 대상

그러나 이렇게 ‘세대갈등’ 또는 ‘세대전쟁’으로 한국 사회의 주된 갈등구도를 파악하는 것은 무리라고 보는 입장도 있다. 세대라는 변수는 주변에서 쉽게 찾을 수 있고 자신의 상황을 대입시키기도 좋기 때문에 자주 쓰이는 설명도구지만, 막상 세대갈등이 가리고 있는 다양한 현실의 갈등요인들을 보지 못하게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입장을 펴는 대표적인 연구자가 전상진 서강대 교수(사회학)다. 최근 펴낸 〈세대 게임〉이라는 책에서 전 교수는 “한국에서 벌어지는 세대전쟁의 해법 찾기가 어려운 까닭은 그것이 세대전쟁이 아니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전 교수의 분석에 따르면 남씨 집안에서 최근 벌어진 부모세대와 자식세대 간의 갈등 이면에는 오랫동안 자리잡고 있는 여러 뿌리 깊은 갈등요인이 있다. 제사 준비를 포함해 명절 일거리를 여성 위주로 맡게 되는 젠더 문제나 취직을 위해 시간과 비용을 들여 교육을 받고 장기간의 구직활동을 벌여야 하는 일자리 문제 같은 것들이다. 여러 다른 사회문제를 보는 시각이 세대별로 차이를 보일 수는 있지만 문제의 본질을 해결하지 않고 세대 간 갈등에만 초점을 맞추다 보면 앞뒤가 바뀌고 마는 것이다.


그럼에도 세대라는 용어를 써서 갈등에 이름을 붙이면 주목을 끈다. 전 교수는 그 이유로 간편하게 쓸 수 있고 여기저기 쉽게 적용할 수 있다는 점을 꼽으면서도, 무엇보다 세대가 당사자의 정체성을 만들어내기 좋은 개념이라는 점을 언급한다. 세대를 구분 기준으로 삼으면 그 세대 구성원 전부를 손쉽게 하나의 정체성으로 묶을 수 있고, 다른 세대와의 차이를 부각시키기도 쉽다는 얘기다. 전 교수는 “그 덕에 세대는 일상에 깊이 뿌리 박은 최적의 정치언어 그리고 정치적 게임의 도구가 된다”며 “쉽고 빠르게 우리 편과 상대편을 갈라내어 지지자를 만들거나 책임을 전가할 대상을 내세울 수 있다”고 지적했다. 결국 실제 세대 간 갈등의 현장에 있는 당사자 대신 이들이 다투는 ‘세대 게임’을 통해 누군가가 정치적 이득을 얻는 것이다.


문제는 명절마다 불거지는 갈등이 이미 일상의 곳곳에서 겪고 있는 다양한 불협화음으로 압축되어 재발한다는 점에 있다. 법원까지 가는 소송이 아니더라도 사회생활을 하면서 다양한 분쟁을 겪는 비율은 한국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서 가장 높은 것으로 나왔다. 올해 1월 발표된 OECD의 ‘2017 삶의 질(How’s life)’ 보고서를 보면 한국은 지난 1년간 사회생활 중 각종 분쟁을 경험한 적이 있다고 응답한 비율이 34%로 조사대상 회원국 중 가장 높게 나타났다. 범죄에 따른 분쟁을 경험한 비율은 1%로 다른 회원국들보다 낮은 편이었지만, 특히 ‘사업과 고용’ 문제와 ‘이웃 및 주거환경’ 문제로 분쟁을 겪은 비율이 각각 10%, 6%로 다른 나라들보다 높아 한국 사회의 가장 주된 일상적 갈등요인으로 나타났다.


반면 위기에 처했을 때 지원 받을 수 있는 인간관계가 있는지를 묻는 응답에서는 전체의 75.9%만이 그렇다고 응답해 전체 회원국 가운데 꼴찌를 차지했다. 4명 중 1명은 어려운 일을 당했을 때 도움이 되는 가족이나 친척, 친구 등이 전혀 없다고 답한 셈이다. 이러한 결과를 반영한 듯 한국인의 삶의 만족도는 10점 만점 중 5.9점으로 역시 OECD에서 꼴찌였다. 일을 하는 직장에서나 일을 마치고 돌아가 생활하는 생활공간에서나 크고 작은 갈등과 다툼으로 스트레스를 받을 일은 많지만 이를 위한 사회적 지원은 받기 어려운 사회라는 점이 단적으로 드러난 것이다.


간호사 이모씨(41)가 명절마다 겪는 갈등도 이러한 사회적 분위기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업무 특성상 명절 연휴에도 교대근무를 위해 출근할 수밖에 없기 때문에 이씨는 결혼 후 꾸준히 시댁과의 갈등을 경험해야 했다. 자영업자인 남편도 일 때문에 가게를 비우기가 어려워 명절마다 시댁을 찾아뵙기가 어렵다. 이씨는 설이나 추석 당일에 시간만 맞으면 시댁을 찾기 때문에 오히려 남편보다 더 자주 시부모님을 찾아뵙지만 핀잔을 듣는 것은 오로지 이씨의 몫이다. 이씨는 “더 서러운 건 해외여행 간다고 명절에 보지도 못한 적이 많은 시누이한테는 아무 말도 안하는 것”이라며 “일해서 번 돈으로 용돈을 드려야 잠깐 웃는 낯을 하시는데, 돈이 많아 여행 가는 사람은 아무 꾸중도 안 듣고 쉬지도 못하고 일하는 사람은 돈 갖다 바쳐야 넘어가는 게 납득이 안 간다”고 말했다.


이씨의 집안 내에서도 세대 간 갈등의 이면에 권력관계와 경쟁구도가 자리잡고 있는 셈이다. 시집 온 며느리라서 약자일 수밖에 없는 위치이기 때문에 이씨는 살아남기 위해 용돈을 드릴 수 있을 정도의 경제력이 있어야 했다. 개인이 경쟁력을 갖춰야 살아남고 그렇지 않으면 패배할 뿐인 각자도생의 삶의 모습이다. 이씨는 “남편이 사업을 하려고 시댁에서 도움을 받았다가 말아먹은 적이 있어서 괜히 남편이나 나뿐만 아니라 아이들도 시부모님 앞에서 주눅들 때가 있다”고 말했다.


무한경쟁이 일상화된

능력위주 사회

가까운 가족 구성원들끼리도 경쟁 또는 견제의 대상이 될 정도로 ‘만인의 만인에 대한’ 갈등이 만연해 있는 한국 사회의 특성이 만들어진 이유로 전문가들은 어릴 때부터 경쟁을 학습한 사회적 특성을 꼽는다. 세대갈등으로 가려진 뒷면에는 자본과 노동 간의 권력관계나 기득권층이 공고하게 쥐고 있는 정치권력 등 거시적인 문제가 자리잡고 있다. 그것이 일반 구성원들의 현실적 삶 속에서는 결국 각자도생의 경쟁사회라는 측면으로 드러났다는 분석이다. 전상진 교수는 “갈등은 모든 사회에 존재하게 마련이므로 여러 사회적 갈등들이 겹쳐 보이게 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고 역설한다. 그 자체로는 큰 의미가 없는 세대갈등에다 문제의 근본적 원인이 되는 다른 경쟁사회와 같은 주요한 갈등이 겹쳐 보이게 되면 엉뚱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애쓰고 말뿐이라는 것이다.


때문에 세대갈등으로 사회적 갈등의 여러 다양한 면들을 퉁치는 것은 불합리하지만, 반대로 감춰진 갈등의 진면목을 잘 드러내는 부분에서 세대라는 도구를 활용할 수 있는 가능성은 열려 있다. 특히 최근 정부의 비정규직 정규직화 움직임 등에 대해 청년세대를 중심으로 ‘능력주의’에 반하는 결과라며 반발 여론이 높았던 것은 눈에 띈다. 김호기 연세대 교수(사회학)가 “세대투표와 세대갈등 등이 보여주듯 세대는 분명 사회 변화를 이끄는 동인이지만 같은 세대라 하더라도 그 안에는 이념 또는 계층에 따른 차이가 존재한다”며 세대의 유용성을 인정하면서도 “세대는 동시에 애매한 변수”라는 점을 언급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능력주의에 따른 결과를 강하게 요구하는 청년세대의 모습은 세대 간 갈등의 논리나 그 자체로는 명확하지 않은 청년세대의 정체성을 바탕으로 분석하는 대신 문제의 핵심인 능력주의와 각자도생의 차원에서 접근해야 더욱 명료하게 파악할 수 있다는 것이다.


청년세대를 한 묶음으로 동일하게 다룰 수는 없지만 그럼에도 사회에 막 진출하는 가장 젊은 세대가 반영하는 가치는 그동안 한국 사회가 만들어온 사회적 여건을 반영할 수밖에 없다. 그런 의미에서 각자도생이라는 가장 중요한 갈등 원인의 하나를 청년세대가 앞선 세대보다도 더욱 적극적인 현실로 받아들인 것이 바로 능력주의라는 것이다. 김 교수는 “무한경쟁이 일상화된 능력주의 사회에서 공정한 규칙을 훼손하는 사건에 대해 가장 분노한 이들도 바로 이 청년세대”라며 “문제는 능력주의에 있다. 입시경쟁, 취업경쟁, 퇴출의 공포에 따른 생존경쟁은 능력주의의 살벌한 전쟁터를 이뤄 각자도생이라는 능력주의의 가장 어두운 그늘을 만든다”고 지적했다. <김태훈 기자 anarq@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