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文정부·청와대

[기념사] 文대통령, 대구 2.28 민주운동 기념식 18년만에 참석

잠용(潛蓉) 2018. 2. 28. 18:26


▲ 文대통령, 오늘 대구 2.28 민주운동 정부기념식에서 첫 기념사


[전문] 文대통령, 대구 2.28 민주운동 기념사
뉴스토피아ㅣ2018.02.28  15:14:19


“촛불혁명의 시작은 2.28민주운동... 대구시민께 존경 바친다”    

[뉴스토피아 = 남희영 기자] 문재인 대통령이 28일 대구 중구 콘서트하우스에서 열린 2.28 민주운동 기념식에서 “우리는 지난 촛불혁명을 통해 국민이 권력을 이길 수 있다는 것을 증명했다. 돌이켜 보면 그 까마득한 시작이 2.28 민주운동이었다. 대구 2.28 민주운동유공자와 대구시민 여러분, 위대한 국민 여러분께 다시 한 번 존경을 바친다”며 “정의와 자유를 향한 대구의 기개와 지조가 잠자는 정신적 자산에서 깨어나 정의로운 대한민국을 만드는 현실의 힘이 되기를 기원한다”고 말했다. 다음은 문재인 대통령 기념사 전문이다.


문재인 대통령이 28일 대구 중구 콘서트하우스에서 열린 2.28 민주운동 기념식에 기념사를 하고 있다.

/ⓒ 뉴시스


 문재인 대통령이 28일 대구 중구 콘서트하우스에서 열린 2.28 민주운동 기념식을 마친 후 참석자들을 향해 손을 흔들어 인사하고 있다. /ⓒ 뉴시스

 


<문재인 대통령 기념사>


존경하는 국민 여러분, 대구시민 여러분,

대구의 자랑스러운 2.28 민주운동이 국가기념일로 지정되고

처음 치러지는 기념식입니다. 축하드립니다.

그 첫 기념식에 제가 대통령으로 기념사를 하게 됐으니

제 개인적으로도 더 없는 영광입니다.


정치권력이 국민 위에 군림하면서

행세했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민주주의가 억압되고 국민의 삶이 짓눌렸지만,

부패한 독재 권력은 마치 거대한 절벽 같아서 도저히 넘을 수 없을 것 같았습니다.

58년 전의 오늘도 그런 시절 중의 하루였습니다.


그러나 바로 이곳 대구에서 용기 있는 외침이 시작되었습니다.

그 외침이 오랫 동안 온 나라를 가두었던 체념과 침묵을 깼습니다.

“우리는 정당하다. 정의는 살아있다. 횃불을 밝혀라. 동방의 빛들아.”

대구의 고등학생들이었습니다.


엄혹했던 시절, 바위에 계란치기 같았을 최초의 저항,

하지만 학생들은 두려움을 떨치고 거리로 나섰습니다.

그 용기와 정의감이 한국 현대사의 물줄기를 바꾸어 놓았습니다.

당시 한 신문은, “천당에서 만나자” 이렇게 결연한 악수를 나누고 헤어진

학생 대표들의 모습을 전하기도 했습니다.

그것이 광복 이후 최초의 학생민주화운동, 2.28 민주운동입니다.


대구 학생들의 외침이 숨죽여 있던 민주주의를 깨웠습니다.

전국 곳곳에서 학생들의 항거가 잇따랐습니다.

2.28 민주운동은 마치 들불처럼 국민들의 마음 속으로 번져 갔습니다.

그리하여 마침내 3.15 의거와 4.19 혁명의 기폭제가 되었습니다.

대한민국이 국민의 힘으로 독재를 무너뜨린

첫 번째 역사를 쓰는 순간이었습니다.


국민 여러분,

우리는 지난 촛불혁명을 통해

국민이 권력을 이길 수 있다는 것을

다시 증명했습니다.

돌이켜 보면 그 까마득한 시작이 2.28 민주운동이었습니다.

그로부터 우리는 민주주의를 향한 숭고한 여정을 시작했고,

6월 민주항쟁으로 거대한 흐름을 만들어 냈으며,

촛불혁명으로 마침내 더 큰 민주주의에 도달했습니다.


오늘 우리는 대구 학생들에 의해 처음으로 타오른 민주화의 횃불이

얼마나 위대한 시작이었는지 되새기고 있습니다.

2.28 민주운동이 대구만이 아니라 우리 국민 모두의 역사임을 확인하고 있습니다.

국가기념일이 돼야 한다는 대구 시민들의 염원이 이제야 이렇게 실현되었습니다.


국민 여러분,

저는 오늘 이 뜻깊은 자리에 참석하면서 2.28 민주운동이

오늘의 우리에게 주는 또 하나의 의미를 생각했습니다.

그것은 연대와 협력의 힘입니다.

2.28 민주운동은 대한민국 최초의 민주화운동이었지만,

오랜 기간 걸맞은 평가를 받지 못했습니다.

민주화운동으로서 법적 정통성을 확보한 것도 50년만인 2010년에 이르러서였습니다.


그러나 드디어 우리 국민은 연대와 협력의 힘으로 2.28 정신을 온전히 살려냈습니다.

그 연대와 협력의 바탕에는 2.28 민주운동과 5.18 민주화운동의 상호교류가 있었습니다.

달빛동맹이라는 이름으로 대구와 광주가 2.28 민주운동을 함께 기념했습니다.

대구시민과 대구시, 지역 정치권이 추진해 온 국가기념일 지정이

드디어 국민적 공감과 지지를 넓혀 나갈 수 있었습니다.


2.28 정신은 대구를 한 마음으로 묶었고, 멀게 느껴졌던 대구와 광주를 굳게 연결했습니다.

오늘 이 자리는 그렇게 해서 만들어질 수 있었습니다.

우리 앞에는 함께 헤쳐 나가야 할 많은 도전들이 있습니다.

오늘 이 자리를 통해 저는, 2.28 기념운동이 보여준 연대와 협력의 정신이

그 도전들을 이겨나가는 데 나침반이 될 수 있기를 기대합니다.


특별히 대구시민들께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국채보상운동의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등재와 신암 선열공원 국립묘지 지정에 이어서

2.28 민주운동이 국가기념일이 되었습니다.

온 국민과 함께 축하합니다.

참으로 많은 시간이 걸렸습니다.


이제야 그 날의 의로운 몸짓을 국가 기념일로 기리게 되었지만,

대구의 정신은 대한민국의 역사 속에서 늘 빛나고 있었습니다.

대구 경북은 대한민국에서 독립유공자가 제일 많은 곳입니다.

대구 경북은 민족 항쟁의 본거지였습니다.

혁신 유림과 항일의병운동, 독립운동으로 면면히 이어진 역사는

대한민국의 뿌리이자 우리 국민 모두의 자부심입니다.


지금도 대구 경북은 선비정신의 본거지입니다.

하지만 대구 경북의 선비정신은 고루한 것이 아닙니다.

새로움과 정의로움을 추구하는 정신입니다.

그 정신이 2.28 반독재 민주운동을 낳았습니다.


이곳 대구에서 시작된 국채보상운동은 90년이라는 세월을 뛰어넘어

IMF 외환위기 때 금모으기 운동으로 이어졌습니다.

낙동강 방어전선으로 대한민국을 지킨 보루가 되었던 곳도,

경제발전을 이끈 산업화의 본거지가 되었던 곳도 바로 이곳 대구입니다.

대구는 이렇듯 자긍심 높은 도시입니다.


저는 오늘 이 기념식을 통해 나라가 어려울 때마다 의롭고도 거대한 변화를 이끌어 온

대구시민들의 자긍심이 더 높이 빛나게 되기를 기대합니다.

정의와 자유를 향한 대구의 기개와 지조가 잠자는 정신적 자산에서 깨어나

정의로운 대한민국을 만드는 현실의 힘이 되기를 기원합니다.


존경하는 국민 여러분, 대구시민 여러분,

우리가 함께 가는 길, 국민이 함께 걷는 길이 민주주의입니다.

우리가 가야 할, ‘더 넓고, 더 깊고, 더 단단한 민주주의’,

그 길을 오늘 다시 다짐합시다.

2.28 민주운동 유공자와 대구시민 여러분,

위대한 국민 여러분께 다시 한 번 존경을 바칩니다.

감사합니다.


2018년 2월 28일 대한민국 대통령 문재인


[뉴스토피아 = 남희영 기자 / nhy@newstopia.co.kr


문대통령, 2.28 민주운동기념식 18년만에 참석
내외뉴스ㅣ2018-02-28 12:30:54


 문재인대통령(사진=비디오머그)


[내외뉴스통신=서울] 강원순 기자 = 문 대통령은 28일 오전 10시 30분 대구 두류공원에서 거행된 2.28 민주운동기념식에 참석했다. 문 대통령은 기념사에서 광복 이후 최초의 학생민주화 운동인 2. 28 민주운동의 역사적 의미를 높이 평가하고 ‘대구가 민주주의 뿌리’라고 강조했다. 이번 기념식은 과거 선배들의 민주운동과 미래세대의 민주주의 정신을 연결해 과거와 현재, 미래를 잇는 상징적 행사로 진행됐다.
 
2.28 민주운동의 국가기념일 지정은 범시민위원회를 중심으로 한 124만명의 서명과 5.18 광주민주화운동 관련 단체 등의 전국적인 참여로 그 의미를 살려 이번 기념탑 참배와 기념식에 2. 28 운동 참가자는 물론, 3.15의거, 4.19혁명, 5.18운동 관계자가 함께 했다. 대구지역 학생들은 1960년 독재와 부정선거에 맞섰던 역사적 의미를 계승하기 위해 지난 2월 6일 국가기념일로 지정된 ‘2.28 민주운동’은 3.15의거, 4.19혁명의 기폭제가 된 의미있는 민주화 운동이었다.


당시 2.28 민주운동에 참여했던 학교와 인원은 경북고, 대구고, 경북사대부고, 대구상고(현 대구상원고), 대구농고(현 대구농업마이스터고), 대구공고, 경북여고, 대구여고 등 8개 학교 총 1720여명이다. 이번 행사에 참석한 문대통령은 현직 대통령으로는 처음으로 지난 2000년 제40주년 기념식에 참석했던 김대중 대통령 이후 18년 만의 참석이다. [dnjstns1010@nbnnews.co.kr]


문대통령, 2.28 민주운동기념식 18년만에 참석
아이뉴스24ㅣ2018년 02월 28일 오전 11:05 


"광복 이후 최초의 학생민주화 운동…

대구가 민주주의 뿌리"
[아이뉴스24 김상도 기자] 문 대통령은 28일 오전 10시30분 대구 두류공원에서 거행된 2. 28 민주운동 기념식에 참석했다. 현직 대통령으로는 처음으로 2000년 제40주년 기념식에 참석했던 김대중 대통령 이후 18년 만에 문 대통령이 참석한 것이다. 문 대통령은 이날 기념사에서 광복 이후 최초의 학생민주화 운동인 2. 28 민주운동의 역사적 의미를 높이 평가하고 ‘대구가 민주주의 뿌리’ 라는 점을 강조했다.


이번 기념식은 과거 선배들의 민주운동과 미래세대의 민주주의 정신을 연결해 과거와 현재, 미래를 잇는 상징적 행사로 진행됐다.  2. 28 민주운동의 국가기념일 지정은 범시민위원회를 중심으로 한 124만명의 서명과 5.18 광주민주화운동 관련 단체 등의 전국적인 참여가 큰 힘이 된 바 있는데, 그 의미를 살려 이번 기념탑 참배와 기념식에 2. 28 운동 참가자는 물론, 3.15의거, 4.19혁명, 5.18운동 관계자가 함께 했다. 


1960년 대구지역 학생들이 독재와 부정선거에 맞섰던 역사적 의미를 계승하기 위해 2018년 2월 6일 국가기념일로 지정된 ‘2. 28 민주운동’은 3.15의거, 4.19혁명의 기폭제가 된 의미있는 민주화 운동이었다. 당시 2.28 민주운동에 참여했던 학교와 인원은 경북고, 대구고, 경북사대부고, 대구상고(현 대구상원고), 대구농고(현 대구농업마이스터고), 대구공고, 경북여고, 대구여고 등 8개 학교 총 1,720여명이었다.  [김상도기자 kimsangdo@inews24.com]



[풀영상] "대구시민께 존경 바친다"... 대구 2.28 민주운동 기념식 참석한 文대통령


[대구 MBC뉴스] 2.28 민주화 운동의 의미




2·28 대구학생의거 [2.28 민주운동]



2·28 대구 학생의거(大邱學生義擧)는 이승만 정권 시절인 1960년 2월 28일 3.15 대선을 앞두고 이승만 정부와 자유당의 독재에 항거하여 대구시에서 일어난 학생의거로, 2·28 의거는 이후 3·15 마산 의거과 4·19 혁명으로 이어졌다.


◇ 발 단-  민주당 정.부통령 후보인 장면 박사의 유세일은 일요일이었으나 학생들이 민주당 유세장에 못가도록 당국이 강제로 등교 지시를 내린 것이 2·28 대구 학생운동의 발단이 되었다.

◇ 사건개요 - 경북고등학교는 일요일인 이날 등교 지시를 내린다. 사유는 3월에 있을 중간고사를 앞당겨 친다는 사유였다. 대구 시내에 있던 다른 국공립 고등학교 7개 역시 일요등교를 지시한다. 사유는 토끼 사냥, 영화 관람과 같은 황당한 이유도 있었다. 1960년 2월 27일 오후 대구 동인동 이대우 경북고등학교 학생부 위원장 집에 경북고등학교, 대구고등학교, 경북대학교 사범대학 부설고등학교 학생 8명은 부당한 일요등교 지시에 항의를 하기 위해 시위를 조직했고, '백만 학도여 피가 있거든 우리의 신성한 권리를 위해 서슴지 말고 일어서라'는 결의문도 작성했다. 2월 28일 오후 1시 학생 800여 명이 대구 반월당을 거쳐 경상북도청으로 가는 과정에서 다른 학교 학생들이 합류하며 시위대는 커졌고 도중에 유세장으로 가던 장면 박사를 만났을 땐 '만세'를 부르기도 했다. 당시 경상북도지사는 학생들에게 "이놈들은 전부 공산당"이라고 말한 반면, 시민들은 구타당하는 학생을 경찰에게 달려들어 말리고 박수를 쳤고, 치맛자락에 모자를 감춰 학생을 숨겨주는 부인이 대부분이었다. 1,200여명의 학생이 시위에 참여를 했고 그 중 120여명이 경찰에 체포된다. 하지만 경찰은 시위가 번질 것을 우려해 주동자 일부를 제외하고 대부분 학생을 석방하게 된다.

◇ 결의문- "백만 학도여, 피가 있거든 우리의 신성한 권리를 위하여 서슴지 말고 일어서라. 학도들의 붉은 피가 지금 이 순간에도 뛰놀고 있으며, 정의에 배반되는 불의를 쳐부수기 위해 이 목숨 다할 때까지 투쟁하는 것이 우리의 기백이며, 정의감에 입각한 이성의 호소인 것이다." 1960년 2월 28일 낮 12시 55분, 경북고 학생부 위원장 이대우 등이 조회단에 올라 격앙된 목소리로 결의문을 읽자 흥분이 고조된 학생들은 함성을 지르고 박수를 쳤다. 반독재의 횃불은 이처럼 대구에서 처음 불타올랐다.

◇ 운동 주체 - 2.28 운동은 고교생들이 주체이고, 계획적 조직 시위의 민족운동 요건을 갖춘 학생 운동이었다. 우리 역사상 1926년 6·10 만세운동, 1929년 광주 학생 항일 운동에 이은 의거로 전후 학생 운동의 효시가 되기도 했다. 특히 4·19 혁명의 도화선으로 독재 정권을 무너뜨리는 결정적인 계기를 만들었으며, 한일 수교 반대와 그 이후 민주화 운동에 큰 영향력을 미쳤다. 경북고등학교, 대구고등학교, 경북대학교 사대 부설고등학교, 대구상업고등학교 (현 대구상원고등학교), 대구농림고등학교 (현 대구자연과학고등학교), 대구공업고등학교, 경북여자고등학교, 대구여자고등학교 등 10개 고등학교로 대구는 곧 1,200여 명 학생들의 ‘민주화 함성’ 도가니로 변했다. 이때는 발췌 개헌(1952년), 사사오입 개헌(1954년), 진보당 사건(1958년) 등 자유당 정권의 실정에 분노하고, 대통령 선거(3월 15일)가 다가온 시기였다.

◇ 기념사업- 1961년 4월 10일 매일신문이 주관하여 대구시민 성금으로 명덕로터리에 2.28대구학생기념탑을 세웠다. 1990년 2월 28일 2.28기념탑을 명덕로터리에서 두류공원으로 이전하였다. 1999년 2월 28일 문희갑 대구시장은 대구광역시 중구 공평동에 위치한 대구중앙초등학교 부지를 2.28민주의거기념공원으로 조성할 것을 선포하였다. 경북고등학교에 2.28기념탑과 작은 조형물이 설치되어 있다. <위키백과>


☞ [홈페이지] 2.28 민주운동 기념사업회 바로가기 http://www.228.or.kr/index.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