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인민해방군 군가" (原 팔로군 행진곡) 向前!向前!向前!
同志們整齊步伐奔向解放的戰場,
我們的隊伍向太陽, 向最後的勝利, 向全國的解放! 앞으로! 앞으로! 앞으로 !
앞으로! 앞으로! 우리들은 태양을 향해 달려간다, 최후의 승리를 향해, 전국의 해방을 향해 ! 동지들아 발맞춰 해방의 전장으로 달려가자,
◆ 국인민해방군 군가 중국인민해방군군가(中國人民解放軍軍歌, Military Anthem of the People's Liberation Army) 또는 중국인민해방군 행진곡(中國人民解放軍進行曲)은 중화인민공화국의 현행 공식군가이다. 중국인 시인궁무가 작사하고, 조선 출신 작곡가 정률성 (鄭律成)이 작곡했다. 1939년 가을, 옌안시에서 만들어졌고 원명은 팔로군 행진곡(八路軍進行曲)이었다. 같은 해 정률성이 직접 노신예술학원(鲁迅艺术学院) 합창대와 악대를 지휘하여, 양가령 중앙대강당(杨家岭中央大礼堂)에서 수차례 이 곡이 연주되었다. 제2차 국공 내전시 곡명은 해방군 행진곡(解放軍進行曲)이었다. 1965년 지금의 이름으로 곡명을 바꾸고 계속 사용되고 있다. 1988년 7월 25일 중국공산당 중앙대회에서 비준하고, 중국 중앙군사위원회 당시의 주석 등소평이 서명하여, 이 곡이 중국인민해방군 군가로 정식 채택되었다. <위키백과> ◆ 음악가 정율성 (鄭律成, 전남광주 출신 1914~1976) 정울성은 1914년 전남 전남 광주에서 태어나 숭일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전주 신흥중학교로 전학하여 다니던 1933년 형을 따라 중국으로 건너가 무정부 단체에서 활동하였다. 나중에 모택동의 근거지인 연안으로 가서 공산주의자로서 해방될 때까지 활동하였다. 정율성은 해방후 북한에 가서 잠시 살다가 다시 연안파 탄압의 시작 때 중국으로 나와 음악가로서의 인생을 계속했다. 그는 음악대학에서 체계적으로 작곡을 공부한 것이 아니었다. 중국생활 중에 상해거주 영국인에게 개인 교습식으로 기초를 닦아 연안으로 간 뒤에 노신예술학원(魯迅藝術學院) 음악학부에서 1년 정도 음악 수업을 하였다. 다른 저명한 음악가들과 달리 전문적인 학습을 하지는 못했지만 천부적인 소질로 여러 명곡을 작곡하여 이름을 날리었다. 정율성은 현재 중국 현대 음악계의 고전이 된 옌안송, 팔로군 대합창 등을 작곡 발표하였다. <팔로군 대합창> 중에 나오는 <팔로군 행진곡>은 1949년 중국 건국과 함께 인민 해방군가로 불려 오다가 1988년 중국 공산당 중앙군사위원회에서 정식군가로 비준을 받았다.
그는 홍위병 난동 때 고초를 겪다가 1976년 고혈압으로 사망하였다. 그의 부인은 중국 외교계에서 활동하다가 덴마크대사와 외교부국장을 지낸 정설송(鄭雪松)이다. 지금 아버지 추모사업에 열중하는 딸 정소제는 중국군 군악부에서 근무했었고 현재 베이징 바로크 실내 합창단의 단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그녀는 얼마 전 사망한 동포 김인철 장군의 부인이다. 김인철 장군은 중장까지 진급했으며, 중월전쟁 때 운남군구 보병사단장으로 참전했었다. 현재 정율성은 남한에서는 잘 알려져 있지 않지만 고향 광주에서 정기적으로 정율성 음악제를 개최하고 있다. <인터넷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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