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용의 타임머신... 영원한 시간 속에서 자세히보기

미술·공예·조각

[미륵사지 석탑] 날이 갈수록 커지는 ‘부실 복원' 논란

잠용(潛蓉) 2019. 3. 24. 19:19

미륵사지 석탑 ‘부실 복원’ 논란 확산
전북일보ㅣ김진만 기자 2019.03.24 15:55


지역사회 충격 속 문화재청 책임론도
세계문화유산 가치·이미지 훼손 우려

속보= 세계문화유산인 미륵사지 석탑을 원형과 다르게 복원했다는 감사원 감사결과가 발표되면서 지역사회에 논란이 확산되고 있다. (22일 자 1면 보도) 복원을 책임진 문화재청에 대한 비난여론이 일고 있는 가운데 세계문화유산을 지정·관리하는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센터가 어떤 입장을 내놓을 지도 관심이다. 22일 익산의 좋은정치시민넷은 “문화재청과 국립문화재연구소는 미륵사지 석탑 부실 복원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한다”며 “세계문화유산인 미륵사지 석탑에 대한 이미지 훼손과 전북도민을 비롯한 익산시민의 정신적 충격에 대해서도 보상하라”고 촉구했다. 지난 21일 감사원은 미륵사지 석탑이 원형대로 복원되지 않았고, 구조계산 등을 거친 실측설계도서 없이 축석되었다고 발표했다.



▲ 18년간 해체·보수 공사를 마친 미륵사지 석탑(국보 제11호)이 지난 24일 일반에 공개되고 있다. /연합뉴스


국보 11호인 미륵사지 석탑은 국내 현존하는 석탑 중 가장 크고 오래된 세계문화유산으로 익산과 한국을 대표하는 유물이며 정체성으로 평가된다. 이런 세계문화유산을 20년에 걸쳐 225억원을 들여 복원한 결과가 부실 복원으로 평가되면서 큰 충격을 안기고 있다. 더욱이 지난 1993년 복원된 동탑도 화강암을 기계로 깎아 졸속으로 복원해 큰 실망감을 안긴데 이어 서탑마저 부실 복원으로 평가되면서 충격을 더하고 있다. 좋은정치시민넷은 “문화재청은 해명자료를 통해 전문가 자문과 검토를 거쳤고 내부 적심 부재 변경도 예산낭비와 공사 중지를 막기 위함이었다고 밝혔지만 설득력이 없다”며 “개탄스러운 부실 복원 논란에 대한 책임과 반성, 대책이 시급하다”고 주장했다.


이어 “복원을 책임진 문화재청·국립문화재연구소와 사업 발주처인 전라북도는 석탑 부실 복원 사태에 대한 책임 있는 입장을 내놓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마한백제문화재연구소 최완규 소장은 “충격적인 결과인 것은 분명하다”면서도 “우리의 소중한 유산이 왜 이런 평가를 받게 되었는지 잘잘못을 분명히 하고, 문화재청은 객관적이고 투명한 대책을 내놓아야 한다”고 조심스러운 입장을 내놨다. 아울러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미륵사지 석탑에 대한 부실 복원이 세계문화유산으로서 가치를 지속적으로 인정받을 수 있을 지도 우려된다.


이에 대해 익산시 관계자는 “세계문화유산지정 과정에서 보수진행이 긍정적 영향을 줬다”며 “이번 감사결과는 설계변경과 타당성 검증 등 세부 분야이고, 전체적인 틀에선 큰 변화가 없기 때문에 세계문화유산 지정 유지에는 어떤 영향도 없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앞서 문화재청은 “적심의 구성이 달라진 것은 석탑의 구조적 안정성 확보와 역사적 가치 보존을 함께 고려한 결과이며 배합재료의 변경도 구조적 안정성에 큰 영향이 없다”며 “감사원이 제기한 구조적 안전점검을 실시하겠다”고 해명했다. [저작권자 © 전북일보]


[서소문사진관] 국보 11호 익산 미륵사지 석탑, 18년만에 다시 일반 공개돼
[중앙일보] 최승식 기자ㅣ2019.03.24 16:30

▲ 18년간 복원공사를 마친 전북 익산시 금마면 미륵사지 석탑(국보 제11호)이 지난 23일 일반 관람객에게 다시 공개됐다. 왼쪽은 동탑.[연합뉴스]  .


▲ 18년간 복원공사를 마친 전북 익산시 금마면 미륵사지 석탑(국보 제11호)이 지난 23일 일반 관람객에게 다시 공개됐다.[연합뉴스] 


□ 국보 11호 익산 미륵사지 석탑(국보 11호)이 18년간의 보수정비를 마치고 지난 23일 일반 관람객에게 다시 공개됐다.  전라북도 익산시 기양리 미륵사지에 있는 백제 미륵사지 석탑은 국내에 남아있는 가장 오래된 석탑이다. 1962년 국보 11호로 지정됐다.  


▲ 24일 미륵사지를 찾은 관람객들이 석탑(국보 제11호. 뒤)과 당간지주를 구경하고 있다.[연합뉴스] 


▲ 익산 미륵사지 석탑의 보수 전후 모습.[사진 문화재청] 


▲ 한국 석탑의 기원으로 꼽히는 백제 미륵사지 석탑 5층을 복원하는 모습.[사진 문화재청] 


▲ 지난 2015년 복원공사 작업이 진행되는 백제 미륵사지 석탑 모습. /최정동 기자 


▲ 석탑 4개의 모퉁이에 놓여진 석인상 중 유일하게 형태를 알아볼 수 있는 석인상.[뉴스1] 


▲ 지난해 6월 공개된 미륵사지 석탑의 내부. 통로 가운데 불빛이 비추고 있는 심주석에 사리장엄구가 봉안되어 있다. [뉴스1] 


▲ 삼국유사에는 백제 30대 왕 무왕(武王·재위 600~641)과 신라 선화공주가 결혼한 뒤 미륵사를 지었다고 적혀있다. 2010년 미륵사지 석탑 해체 보수 과정에서 절의 유래가 적힌 봉안기가 출토됐다. 선화공주가 아닌 사택적덕의 딸에 의해 미륵사가 창건됐단 사실이 기록돼 학계를 놀라게 했다.[사진 문화재청] 


▲ 지난해 6월 언론에 공개된 익산 미륵사지 석탑 복원모습. 과거 재료인 구재와 새로운 재료인 신재가 혼합되어 보수정비 되어 있다. [뉴스1] 



▲ 지난해 6월 언론에 공개된 익산 미륵사지 석탑 복원모습. 과거 재료인 구재와 새로운 재료인 신재가 혼합되어 보수정비 되어 있다. 보수를 마친 미륵사지 석탑은 원래 없었던 덮개돌이 최상단 옥개석 뒤쪽을 지지해주기 위해 추가됐다.[뉴스1] 


▲ 지난해 9월 복원을 마친 익산 미륵사지 석탑모습. /권혁재 기자 


▲ 지난해 7월11일 익산시 금마면 기양리 미륵사지 복원공사장에서 국립문화재연구소 김현용 학예사가 해체, 보수 정비공사중인 백제 말기의 화강석 석탑인 국보 제11호 미륵사지 석탑(미륵사지 서쪽 석탑)의 공사 과정 등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뉴시스]  


□ 미륵사는 백제 무왕대(639년)에 창건된 백제 최대사찰이다. 최초에는 목탑 1개와 석탑 2개가 세워졌으나, 목탑은 소실되고 동탑은 1993년 다시 복원됐다. 이번 복원작업은1998년 구조 안전진단을 거쳐 2001년부터 18년간의 보수정비 끝에 복원이 마무리됐다. 
 

▲ 익산 미륵사지 동탑. 1993년 복원된 동탑은 2년만의 공사과정을 통해 다시 지어졌다. /권혁재 기자


▲ 1910년도 당시 훼손된 미륵사지 석탑 서측면 모습. 벼락을 맞아 상당 부분 훼손된 상태로 있다가 일제강점기인 1915년, 조선총독부에서 시멘트를 땜질해서 응급 보수한 상태로 남아있었다.[사진 문화재청]


▲ 1910년도 당시 훼손된 미륵사지 석탑 동측면 모습. 벼락을 맞아 상당 부분 훼손된 상태로 있다가 일제강점기인 1915년, 조선총독부에서 시멘트를 땜질해서 응급 보수한 상태로 남아있었다. [사진 문화재청]


▲ 전북 익산 미륵사지 전경. 백제말기에 지어진 미륵사지는 사적 150호로 지정됐다.[사진 문화재청] 

 
□ 미륵사지 석탑은 원래 9층이었지만 석탑 상층부가 무너져 6층까지만 남아있다. 높이 14.5m, 폭 12.4m로 남아있던 6층 높이로 다시 복원됐다. 가장 오래된 자료사진인 1910년 기록에도 지금과 같은 6층만이 남아있다. 문화재청은 검증과 첨단 보존기술을 사용해 원래 있던 부재를 81% 사용해 복원을 마무리했다. [최승식 기자]

  

[출처: 중앙일보] [서소문사진관] 국보 11호 익산 미륵사지 석탑, 18년만에 다시 일반 공개돼


"미륵사지 석탑 부실복원 익산시민 정신적 충격"
신아일보ㅣ 김용군 기자 2019.03.24 14:43


▲ 익산 미륵사지 석탑. (사진=문화재청)
 

익산 좋은정치시민넷 "사태에 대한 책임있는 입장 내놓아야"
전북 익산 미륵사지 석탑이 부실 복원됐다는 주장이 제기돼 논란이 일고 있다. 익산시 좋은정치시민넷 손문선 대표는 지난 22일 성명서를 통해 "문화재청과 국립문화재연구소는 미륵사지 석탑의 부실복원 논란에 대해 책임을 져야 할 것"이라며 "세계문화유산 미륵사지 석탑에 대한 이미지 훼손, 전라북도 도민과 익산시민의 정신적 충격에 대해 보상할 것"을 촉구했다.


특히, 발주처인 전북도는 석탑 부실 복원 사태에 대해 책임 있는 입장을 내놓아야 한다고 강력주장했다. 손 대표는 "미륵사지 석탑이 원형대로 복원되지 않았고, 구조계산 등을 거친 실측설계도서 없이 축석됐다는 감사원 감사 발표는 매우 충격적 사건으로 전라북도 도민과 익산시민은 분노를 금치 못한다"며 "국가문화재를 복원하는데 있어 석탑의 내부가 사전검토 절차도 없이 원형과 달리 층별로 다르게 복원됐고, 내부 적심을 축석하는데 안전성 검토와 실측설계도서 없이 진행했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지적했다. 
 
또 "문화재청이 해명자료를 통해 전문가 자문과 문화재위원회의 검토를 거쳤고, 내부 적심 부재 변경관련 설계변경도서를 받지 않고 공사한 것은 예산낭비와 공사 중지 시 공사품질이 저하 될 수 있어 불가피한 조치였다고 하고 있지만 이는 변명으로 설득력이 없다"고 질타했다. 그러면서 "전체사업비 225억원이 투자된 미륵사지 석탑 복원사업은 1998년 사업을 시작해 20년에 걸친 해체와 복원과정을 마치고 올 4월 말 대규모 준공식을 앞두고 있다"며 "이런 중요한 시점에 부실 복원 논란에 휩싸이게 된 것은 매우 개탄스러운 일로 훼손된 이미지를 생각하면 답답하다"고 말했다.


앞서 감사원은 지난 21일 익산 미륵사지 석탑 보수 정비 과정에서 문화재청이 구조적 안정성 여부 등에 대한 사전 검토 절차를 제대로 거치지 않았다는 감사 결과를 공개했다. 손문선 익산좋은정치시민넷 대표는 "감사원의 미륵사지 석탑 보수정비사업에 대한 감사결과로 미륵사지 석탑에 대한 이미지 훼손과 도민과 익산시민은 엄청난 정신적 충격을 받았다"면서 "사업을 대행한 문화재청과 국립문화재연구소는 이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할 것이며, 사업 발주처인 전라북도는 석탑 부실 복원 사태에 대해 책임 있는 입장을 도민들에게 내놓아 한다"고 강력히 주장했다. [신아일보] 익산/김용군 기자 kyg1541@hanmail.net


미륵사지 석탑 감사에서 드러난 '원형복원'의 어려움
연합뉴스ㅣ2019-03-24 10:09



▲ 익산 미륵사지 석탑, 정비 마치고 23일 공개 (서울=연합뉴스) 문화재청이 23일 익산 미륵사지 석탑(국보 제11호)의 완전한 모습을 공개했다. 사진은 수리 전(왼쪽) 과 후 미륵사지 석탑 모습. /2019.3.21 [문화재청 제공=연합뉴스 자료사진] photo@yna.co.kr


건축문화재 원형(原形), 시기 특정과 정의 힘들어
"문화재 수리는 이상과 현실의 싸움… 최선 방안 도입해야"

(서울=연합뉴스) 박상현 기자 = 백제 무왕(재위 600∼641) 대인 639년 건립한 국내에서 가장 오래되고 큰 석탑인 익산 미륵사지 석탑(국보 제11호)이 논란의 중심에 섰다. 발단은 국립문화재연구소가 2001년 10월 시작해 최근 마무리한 미륵사지 석탑 해체·수리 공사에 대한 감사원 감사 결과 발표였다. 감사원은 지난 21일 공개한 '국가지정문화재 보수복원사업 추진실태' 감사 보고서에서 미륵사지 석탑을 첫머리에 올리고 보수가 '부적정'했다고 밝혔다. 문제가 된 부분은 석탑 외부가 아니라 겉보기에는 나타나지 않는 내부인 적심(積心). 미륵사지 석탑 적심은 본래 모양이 일정하지 않은 돌과 흙으로 채워졌으나, 돌과 돌 사이를 메운 흙이 빠져나가 구조적으로 불안정한 상태였다.
 
감사원이 석탑 보수 과정을 살펴본 뒤 적심에 대해 지적한 사항은 크게 구성물과 절차로 요약된다. 감사원은 연구소가 본래 적심을 해체할 때 확인한 공법대로 복원하기로 했으나, 6층 중 1∼2층은 새롭게 가공한 직사각형 석재를 사용하고 3층 이상은 기존 부재를 활용했다고 비판했다. 아울러 적심석 사이에 성능이 뛰어난 실리카퓸 배합 접착제가 아니라 접착력이 다소 떨어지는 황토 배합 접착제를 썼다고 몰아붙였다. 또 적심석 구성과 접착제를 변경하는 과정에서 설계도서를 새롭게 작성하지 않고 전문가 자문도 거치지 않는 등 절차상 문제를 노출했다고 강조했다.


이에 따라 미륵사지 석탑이 '원형'(原形)을 상실하고 일관성이 떨어졌으며 안정성을 확보하지 못했다는 것이 감사원 결론이다. 문화재청은 적심 구성물이 달라진 이유에 대해 1∼2층 내부를 새로운 석재로 쌓은 뒤 안정성이 어느 정도 갖춰졌다고 판단했고, 3층 이상은 해체 과정에서 나온 기존 적심석의 역사적 가치를 살리려고 재활용을 결정했다고 해명했다.



▲ 익산 미륵사지 석탑의 해체 당시와 축석 후 평면 비교 (서울=연합뉴스) 21일 감사원이 공개한 익산 미륵사지 석탑의 해체 당시와 축석 후 평면을 비교한 모습. 2019.3.21 [감사원 제공] photo@yna.co.kr


감사원이 미륵사지 석탑과 관련해 연구소를 비판하면서 여러 차례 언급한 용어가 '원형'이다. 그 근거로 제시한 법 조항은 "문화재 보존·관리·활용은 원형 유지를 기본원칙으로 한다"는 문화재보호법 제3조다. 하지만 문화재 수리와 복원에서 기준이 되는 '원형'은 누구나 쉽게 말하지만, 실상은 매우 정의하기 어려운 단어여서 문화재계에서 여전히 관련 논의가 진행 중이다. 24일 문화재청에 따르면 연구소가 펴내는 계간 학술지 '문화재'는 지난 2016년 봄호에서 '문화재 원형 개념의 역사적 변천 과정과 적용상의 제문제'를 특집으로 다뤘다.


이수정 문화재청 학예연구사는 원형 개념이 유입된 과정을 분석한 논문에서 "원형이라는 개념은 과거에 만들어진 산물을 문화재로 인식하면서 생겨났다"며 "우리나라는 일제강점기를 전후해 원형 개념이 들어왔다고 본다"고 설명했다. 이 연구사는 이어 "우리나라는 원형 개념을 받아들인 뒤 역사성을 중시하는 태도를 취했지만, 역사성은 다양한 시대의 층위와 흔적보다는 오래된 것을 의미했다"며 "이러한 태도에는 문화재를 민족 정체성 회복을 실현하는 물리적 대상으로 인식하는 관점이 작용했다"고 덧붙였다.


강현 국립문화재연구소 학예연구관은 건축문화재의 원형 개념을 다룬 글에서 "건축문화재 보존에서 원형과 관련된 논쟁은 크게 보면 '예술적 가치'와 '역사적 가치' 중 어느 쪽을 중요하게 여기느냐의 문제로 귀결된다"고 밝혔다. 건축물을 예술적으로 본다면 예술가가 창조성을 바탕으로 제작해 최종적으로 완성된 상태가 원형이고, 역사적으로 인식한다면 건물에 존재하는 다양한 시대적 층위 중에 창건 당시 모습 혹은 전성기 모습이 원형이 된다는 것이다. 다만 동양에서는 건축물을 예술가의 창작물이 아니라 생활공간으로 인식했기에 현재 국내에서는 건물의 전성기 형태를 원형으로 간주하는 경향이 있다. 그는 "원형은 대체로 객관적이고 절대적인 개념에서 주관적이고 상대적인 개념으로 변화했다"며 "건물 외관적 형상뿐만 아니라 건축 부재, 건축 기술에도 원형 개념을 적용하게 됐다"고 주장했다.



▲ 파란 하늘 아래 미륵사지 석탑 (서울=연합뉴스) 22일 파란 하늘 아래 익산 미륵사지 석탑(제11호)이 위용을 드러내고 있다. /2019.3.22 [국립문화재연구소 제공] photo@yna.co.kr


문화재청 궁능유적본부 관계자는 1990년부터 복원 공사가 진행 중인 경복궁의 경우 원형이 되는 시점을 궁이 처음 만들어진 조선 태조(재위 1392∼1398) 시기가 아니라 고종(1863∼1907)이 중건한 19세기 후반으로 본다고 설명했다. 그는 "태조 때 건물 자취는 높이가 너무 낮아서 현실적으로 기준으로 삼기 어렵다"며 "광화문 현판 글씨를 중건 당시 훈련대장 임태영 글씨로 복원한 이유도 19세기 후반을 원형으로 생각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1천400년 가까이 보존된 미륵사지 석탑은 창건 당시 기록이 없어서 첫 모습이 어떠했는지 알 수 없다. 그래서 보수 도중 탑을 몇 층까지 쌓을지를 두고 논쟁이 벌어지기도 했다. 미륵사지 석탑 원형은 일제가 콘크리트로 공사하기 전 모습으로 보는 학자들이 많지만, 이에 대한 명확한 기록도 없다. 한 문화재 수리 전문가는 "문화재 원형은 말 그대로 '케이스 바이 케이스'"라며 "감사원 지적대로 석탑 적심을 해체 당시 모습대로 다시 쌓으려면 기록화 사업을 철저히 해야 할뿐더러 약해진 돌을 모두 강화 처리하고 사용 여부를 판단해야 해 공사기간이 매우 길어진다"고 주장했다.


그는 사견임을 전제로 "감사원은 적심 구성물 중 돌은 원형을 따르지 않았다고 지적하면서, 돌 사이를 메운 접착제에 대해서는 원형이 아닌 성능을 잣대로 삼는 모순을 보였다"며 "원형을 따진다면 화학물질인 실리카퓸보다 흙인 황토가 낫지 않은가"라고 반문했다. 학계 전문가는 "문화재 수리를 하다 보면 원형이라는 이상과 안전성·비용·공사기간이라는 현실 사이에서 고민할 수밖에 없기 때문에 수시로 전문가 조언을 받아가며 최선의 방안을 도출해야 한다"며 "미륵사지 석탑을 계기로 원형 개념에 대한 논의를 진지하게 하면 좋겠다"고 말했다.

[psh59@yna.co.kr]


미륵사지 석탑 감사에서 드러난 '원형복원'의 어려움

건축문화재 원형(原形), 시기 특정과 정의 힘들어

데일리안ㅣ스팟뉴스팀 2019-03-24 15:44 



▲ 문화재청이 지난 23일 익산 미륵사지 석탑(국보 제11호)의 완전한 모습을 공개했다. 사진은 수리 전(왼쪽) 과 후 미륵사지 석탑 모습. ⓒ 문화재청  
 
건축문화재 원형(原形), 시기 특정과 정의 힘들어  
 국내에서 가장 오래되고 큰 석탑인 익산 미륵사지 석탑(국보 제11호)이 논란의 중심에 섰다. 미륵사지 석탑은 백제 무왕(재위 600∼641) 대인 639년 건립됐다. 발단은 국립문화재연구소가 2001년 10월 시작해 최근 마무리한 미륵사지 석탑 해체·수리 공사에 대한 감사원 감사 결과 발표였다. 감사원은 지난 21일 공개한 '국가지정문화재 보수복원사업 추진실태' 감사 보고서에서 미륵사지 석탑을 첫머리에 올리고 보수가 '부적정'했다고 밝혔다. 문제가 된 부분은 석탑 외부가 아니라 겉보기에는 나타나지 않는 내부인 적심(積心)이다. 미륵사지 석탑 적심은 본래 모양이 일정하지 않은 돌과 흙으로 채워졌으나, 돌과 돌 사이를 메운 흙이 빠져나가 구조적으로 불안정한 상태였다.


감사원이 석탑 보수 과정을 살펴본 뒤 적심에 대해 지적한 사항은 크게 구성물과 절차로 요약된다. 감사원은 연구소가 본래 적심을 해체할 때 확인한 공법대로 복원하기로 했으나, 6층 중 1∼2층은 새롭게 가공한 직사각형 석재를 사용하고 3층 이상은 기존 부재를 활용했다고 비판했다. 아울러 적심석 사이에 성능이 뛰어난 실리카퓸 배합 접착제가 아니라 접착력이 다소 떨어지는 황토 배합 접착제를 썼다고 지적했다. 이에 따라 미륵사지 석탑이 '원형'(原形)을 상실하고 일관성이 떨어졌으며 안정성을 확보하지 못했다는 것이 감사원 결론이다.


문화재청은 적심 구성물이 달라진 이유에 대해 1∼2층 내부를 새로운 석재로 쌓은 뒤 안정성이 어느 정도 갖춰졌다고 판단했고, 3층 이상은 해체 과정에서 나온 기존 적심석의 역사적 가치를 살리려고 재활용을 결정했다고 해명했다. 감사원이 미륵사지 석탑과 관련해 연구소를 비판하면서 여러 차례 언급한 용어가 '원형'이다. 그 근거로 제시한 법 조항은 "문화재 보존·관리·활용은 원형 유지를 기본원칙으로 한다"는 문화재보호법 제3조다.

하지만 문화재 수리와 복원에서 기준이 되는 '원형'은 누구나 쉽게 말하지만, 실상은 매우 정의하기 어려운 단어여서 문화재계에서 여전히 관련 논의가 진행 중이다.


학계 전문가는 "문화재 수리를 하다 보면 원형이라는 이상과 안전성·비용·공사기간이라는 현실 사이에서 고민할 수밖에 없기 때문에 수시로 전문가 조언을 받아가며 최선의 방안을 도출해야 한다"며 "미륵사지 석탑을 계기로 원형 개념에 대한 논의를 진지하게 하면 좋겠다"고 말했다. [데일리안 = 스팟뉴스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