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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애청곡

[유성기 가요] "눈물의 금강환" (1939) - 박향림 노래

잠용(潛蓉) 2019. 5. 23. 05:00





"눈물의 金剛丸"

朴英鎬 作詩/ 全基玹 作曲/大村能章 編曲/ 노래 박향림


< 1 >

매달려 느껴우는 사랑을 밀치고

限없이 志向 없이 떠나는 몸이라

가기는 간다만은 가기는 간다만은

情은 차마 두고 간다


< 2 >

千萬層 물굽이에 運命을 띄우고

바람이 부는대로 떠다닐 몸이라

가기는 간다만은 가기는 간다만은

꿈은 차마 두고 간다


< 3 >

歲月은 흘러가도 追憶은 새로워

靑春은 시들어도 사랑은 남는다

울기는 왜 우느냐, 울기는 왜 우느냐?

情 모르는 사람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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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금강환 (金剛丸 こんごうまる) : 일제시대 관부연락선에

 취항한 여객선의 이름 (위의 사진)



<눈물의 金剛丸>은 가수 朴響林님이 1938년 8월에 콜럼비아레코드에서 발표한 노래입니다. .飜案曲

<他國의 旅人宿; C.40822/ 朴響林ㆍ南一燕ㆍ申懷春 노래>과 같이 발매된 이 노래는, 朴英鎬 作詩/ 全

基玹 作曲/大村能章 編曲의 작품으로, 新傾向流行歌 <電話日記(38/2)>를 金海松님과 같이 취입하면

서 콜럼비아에서 작품을 발표하기 시작한 朴響林님이 불렀읍니다. 1938년 중반에 漫謠 <시큰둥 夜市

>에 이어 발표한 <눈물의 金剛丸>,<雲水衲子>


관부연락선(關釜聯絡船)

부산과 일본의 시모노세키[下關(하관)] 사이를 운항하는 연락선. 광복 전에는 관부연락선이라 하였다. 1905년 9월 일본이 본격적으로 한국ㆍ만주ㆍ몽골ㆍ중국 등지로 진출하기 위하여 만든 국책해운회사였던 산요[山陽(산양)]기선주식회사에 의하여 처음 개설되었다. 이 연락선은 일본의 한국침략의 한 수단이기도 했는데 수많은 한국인이 징용으로 끌려갔다. 제2차세계대전 때는 연락선들을 징발, 전선에 투입했으나 미군에 의해 격침되었다. 45년 3월부터 사실상 두절되었으며, 70년 6월부터는 부관페리호가 다니기 시작하였다. 그러나 이 연락선은 일본의 한국 침략의 한 수단이기도 하였다. 수많은 한국인들이 징용으로 끌려갔으며 일본인들의 수탈에 농토를 잃고 북해도 탄광으로 가기 위하여 관부연락선에 몸을 맡겨야 하였다. 최초로 취항한 연락선은 이키마루(壹岐丸, 1,680t)라는 배로 11시간 반이 소요되었다.


그 뒤 3,000t급의 쇼케이마루(昌慶丸)ㆍ도쿠주마루(德壽丸)ㆍ쇼토쿠마루(昌德丸) 등이 운항되었다. 1935년부터는 북중국·만주·몽고 등지로의 진출이 본격화되면서 여객과 화물의 격증에 대비하여 당시로서는 최신예인 7,000t급의 대형 여객선 공고마루(金剛丸)·고안마루(興安丸) 등을 운항하였으며 시간도 7시간 반으로 단축하였다. 이들 연락선은 일본이 태평양전쟁을 수행하기 위하여 사람들을 징발하고, 전선과 일본 본토를 운항하는 데 투입되었으나, 미군에 의하여 격침되고 말았다. 그리하여 1945년 3월부터 사실상 관부연락선은 두절되었으며, 그 뒤 광복이 된 뒤에도 한일간의 국교가 정상화될 때까지 연락선이 오가지 못하였다. <재봉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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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물의 금강환 (박향림)


일본엔까 - 눈물의 연락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