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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애청곡

[유성기 가요] "마지막 글월" (1940) - 이화자 노래

잠용(潛蓉) 2019. 6. 2. 10:08





"마지막 글월" (1940)
작사 趙鳴岩 / 작곡 朴是春/ 노래 李花子
(1940년 11월 오케 레코드사 발매)


< 1 >

글자마다 눈물 젖는

하소연 片紙
새벽 달 窓門 아래

읽었나이다


사랑 두 자 千金 같은

말씀이구나
伽倻琴에 얽힌 몸은


사랑 '사' 字도
當치를 않사옵니다


< 2 >

글 句마다 多情하신

하소연 片紙
밤 늦게 돌아와서

읽었나이다


읽는대로 목이 메는

事緣이구나
술물 젖는 多紅치마


사랑 '사' 字도
받을 길이 없사옵니다


< 3 >

글줄마다 懇切하신

하소연 片紙
鏡臺를 앞에 놓고

읽었나이다


純潔하신 피 눈물의

글월이구나
臙脂 찍는 이 얼골에


사랑 '사' 字도
惶悚無地 로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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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황송무지 (惶悚無地) : 황송해서 몸 둘데가 없다


(마지막 글월 - 이화자)



[민요가수 李花子]



이화지는 출생이 1915년으로 사망은 1950년 (인천)으로 알려졌다. 민요의 여왕으로 불리울 만큼 매끄러운 목소리로 민중을 사로잡았다.

1936년 뉴코리아레코드의 섬사악씨로 데뷔
1938년 꼴망태 목동.님전화푸리.1939년어머님전 상백.
1940년 화류춘몽,화륜선아가거라. 관서신부. 눈물의노리개. 가거라초립동.등등
1941년 가거라 초립동.그리고 꼴망태목동.목단강편지.등등


이화자(李花子 본명 이원재 1916년~1950년)는 일제 강점기에 주로 활동한 가수이다. 출생지와 학력, 정확한 생년 등 개인 신상에 대한 내용이 모두 전해지지 않는 가수이다. 13세 무렵부터 술집에서 작부(酌婦)로 일하며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고만 알려져 있다.

정식으로 가수가 된 것은 20세 전후이던 1935년이었다. 포리돌 레코드의 김용환(김정구의 형)이 현 인천 부평구 지역의 한 술집에서 노래를 하던 이화자를 발굴하여 데뷔시켰다. 데뷔곡은 뉴코리아 레코드에서 발매한 신민요 〈초립동〉였다. 뉴코리아 레코드에서 <섬시악시〉<평양은 좋은 곳> <월미도> 등을 불러 이름을 알렸다. 신민요 장르에 강했던 포리돌 레코드에서 <천리몽>을 발표한 뒤 1938년 오케 레코드로 옮기면서 최고 인기 가수의 반열에 올랐다. 김용환 작곡의 <꼴망태 목동>, <님전 화풀이>가 오케 레코드에서 발표한 대표곡이다.


이화자는 잡가풍의 신민요와 애닯은 트로트에 고루 능하여 많은 인기를 얻었다. 주로 여성화자(女性話者)가 넋두리조로 신세 한탄을 하는 내용의 서민적인 노래를 불렀는데, 호소력이 뛰어났다. 자전적인 가사를 담은 자서곡이라는 설명이 붙어 있는 <어머님전 상백>과 기생의 한많은 삶을 그린 <화류춘몽>이 대표적이다. 그러나 일제 강점기가 종료된 후에는 히트곡을 내지 못했다. 태평양전쟁 중에 취입한 친일 가요 <목단강 편지>가 마지막 히트곡이 된 것이다. 1940년 대부터 손을 댄 아편에 중독되어 건강을 많이 상하고 잠시 결혼생활도 실패로 끝나면서 폐인과 같은 생활을 했다. 그후 주로 무대공연으로 연명하다가 1950년을 끝으로 활동기록이 없다. 이 무렵 홀로 쓸쓸히 사망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음악그리고추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