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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음악

[불교가요] "이차돈의 죽음" - 손인호 노래

잠용(潛蓉) 2019. 7. 13. 15:39





"異次頓의 죽음"
半夜月 작사/ 李在鎬 작곡/ 노래 孫仁鎬
(1961년 오아시스레코드사 발매)


< 1 >
白峯國師 스승님께

供養을 올린 뒤에
異次頓 무릅 꿇고

香불 피워 合掌하오


衆生은 덧 없는 것

사랑이란 덧 없는 것
龍泉庵 깊은 산속

노루 사슴 벗을 삼고


念珠 알 헤이면서

南無 阿彌陀佛~


< 2 >
山을 넘고 물을 건너

高句麗 他國 땅을
異次頓 그리운 님

찾아 도는 달님 별님


애 태우는 가슴 속에

사랑 愛字 恨을 품고
목메여 불러 봐도

산울림만 외로운데


지친 몸 이끌면서

觀世音菩薩~


< 3 >
平岡公主 그 사랑도

太子도 물리치고
異次頓 눈을 감고

자는 듯이 죽어가오


衆生의 罪를 빌며

나라 위해 福을 빌며
흰 피가 쏟아졌소

하늘 땅은 소리쳤소


 거룩한 님의 큰 뜻

千秋에 빛나리~



위의 그림은 불교 벽화로 목에서는 젖빛 피가 한 길이나 솟아오르는 광경을 생생히 표현하고 있다. 발 밑에는 땅이 흔들리는 모습을 파도가 일렁이는 것처럼 표현했다. 하늘에는 비가 쏟아지다가 꽃으로 변해 하염없이 일렁이며 떨어지는 광경이다. 믿음을 위하여 순교한 이차돈의 성(姓)은 박(朴)이요, 자(字)는 염촉(厭燭)이다. 혹은 이차(異次)라 하고, 이처(異處)라고도 하니 우리 말로 발음이 다를 뿐이요, 한문으로 번역하면 염(厭)으로 '싫다'는 뜻말이다. 촉(燭)은 돈(頓), 도(道), 도(覩), 독(獨) 등 다 글 쓰는 이의 편의에 따랐으니, 이는 뜻이 없는 어조사이다



순교자 異次頓의 성은 異씨가 아니다


 ↑ 이차돈의 죽음-손인호作


신라 법흥왕때 자기의 목을 바침으로 불교를 공인받게 한 이차돈을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신라인으로서는 최초의 순교자로 그의 행적은 영화 및 소설, 연극 드라마등으로 많이 소개되었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의 성이 ‘이‘씨가 아님을 모르고 있다. '이차돈(異次頓)'은 성이 이(異)이고 이름이 차돈(次頓)인 줄 알고 있는 사람이 의외로 많다는 것이다.


몇일 전, 선생님 열 분과 차를 나누며 담소를 하다가

“선생님, 이차돈의 성씨가 무엇인지 아세요?

“그야 이씨지요..”

“이름은?”

“물론 ‘차돈’이겠지요.”

열분 선생님 모두 우리 경주에 재직하고 계시는 선생님들인데도 서슴지 않고 대답을 하신다. 불행하게 박씨임을 알고 계신 선생님이 한분도 없었다.


이차돈은 지증왕 7년(506년)에 태어났으며 그의 아버지는 길승(吉升), 할아버지는 공한(功漢), 증조할아버지는 흘해왕(訖解王)으로 되어 있다. 법흥왕의 근신(近臣)으로서 일찍부터 불교에 귀의하였으며 벼슬은 왕의 뒷바라지를 하는 내사사인(內史舍人)이었다. 이차돈은 527년 8월 5일, 22살의 젊은 나이로 육신을 기꺼이 버림으로써 신라불교의 찬란한 꽃을 피운다.


『삼국유사』를 쓴 一然스님이 남긴 기록, '원종(原宗)이 불교를 진흥시키고, 염촉(厭燭)이 몸을 희생하다' 에 이렇게 적고 있다. 이차돈의 성(姓)은 박(朴)이요, 자(字)는 염촉(厭燭)이다. 혹은 이차(異次)라 하고, 이처(異處)라고도 하니 우리말로 발음이 다를 뿐이요, 한문으로 번역하면 염(厭)으로 '싫다'는 뜻말이다. 촉(燭)은 돈(頓), 도(道), 도(覩), 독(獨) 등 다 글 쓰는 이의 편의에 따랐으니, 이는 뜻이 없는 어조사이다. 여기서 위의 글자만 한문 글자 염(厭)으로 번역하고, 아래 글자는 번역하지 않았으므로 염촉, 또는 염도 등으로 불렀다고 되어있다.


경주의 향토사학가 최용주선생님의 견해를 들어보면, “이차(異次), 이처(異處)에서 '아'또는 '어'는 옛 글자 아래 '·'와 같은 소리일 것이다. 한문 염(厭)은 오늘날 '싫다'이니 끝의 '다'는 도, 돈, 촉(옛말은 톡, 독이다)으로도 표기했다. '싫다'의 'ㅅ'과 '차, 처'의 'ㅊ'은 잇소리이니 고어 '�'으로 보아진다. 입을 다물었다가 잇소리를 내면서 벌리면 이차, 이처로 발음된다. 그래서 이차돈을 한문으로 쓰면 '이차'와 비슷한 소리가 나는 '싫다'라는 뜻말인 염(厭)이란 한자와, 소리를 빌어 적은 도, 독과 비슷한 발음이 나는 촉(燭)으로 기록할 수밖에 없었으리라“


각훈스님의 “해동고승전”에도 '이차돈'을 '박염촉'으로 기록한 것을 보면 이차돈의 성은 박(朴)씨가 틀림이 없으며 이름이 무엇인지는 기록된 것이 없어 알 수 없으나 당시 부르던 ‘이차돈’이라는 말을 한자로 기록했을 때 ‘염촉(염촉)’으로 쓰여졌다는 사실이다. 이름은 몰라도 이차돈의 성이 이씨가 아니고 박씨라는 사실 하나만은 기억하자. 一然스님이 이차돈을 위해 지은 시 한수를 소개한다


대의 위한 희생만도 놀라운 일이거든 (순의경생 이족경/ 徇義輕生 已足驚) 

하늘 꽃과 흰 젖 기적 더욱 미쁘오이다.(천화백유 갱다정/ 天花白乳 更多情)

칼날이 한번 번쩍 그 몸이 죽으시매 (아연일검 신망후/ 俄然一劍 身亡後)

절마다 쇠북소리 새벌(서라벌)을 진동하네. (원원종성 동제경/ 院院鐘聲 動帝京) 

- 염촉을 위하여 (爲厭燭) -


(참고로 이차돈을 최초의 순교자라고 함은 이차돈의 순교 훨씬 이전에 고구려의 정방스님이 신라에 왔다가 순교하였으며 멸구자라는 스님도 순교하였기 때문에 이차돈은 신라인으로서는 최초의 순교자이라는 의미이다)


이차돈 순교비

527년(법흥왕 14년)에 이차돈이 순교했고, 근 300년이 지난 818년(헌덕왕 10년)에 이 비가 세워졌다. 화강암으로 만든 육각기둥모양으로 비신의 높이는 1.04m이며, 각 면의 너비는 29cm이다. 가운데 면에는 이차돈의 목이 잘리는 형상을 그림으로 돋을새김하였고 나머지 다섯면에는 네모칸[井間]을 치서 한 면마다 7줄, 한 줄에 25자가 되도록 칸을 마련하여 각 칸마다 글자 크기 3cm정도의 글씨를 써 새겼다.


↑ 국립경주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는 이차돈 순교비 


↑ 1914년 백율사(白栗寺)에서 뒹굴고 있던 이차돈 순교비


그 내용은 법흥왕이 백성들을 위해 불법을 널리 펴고자 하는 마음과 이를 위해 이차돈이 순교한 사실 그리고 그때 사람들이 이차돈의 숭고한 뜻을 간절히 기리며 이 비를 세우는 뜻이 적혀져 있다. 이 비는 본래 이차돈의 머리가 떨어진 곳이라고 전해 오던 백률사에 세운 것이었는데 1914년에 백률사가 일시 폐허가 되자 시내에 있던 고적보존회로 옮겨졌다가 지금은 국립경주박물관에 보관하고 있다. 남아있는 비신을 보면 덮개돌도 있었을텐데 지금은 어디 가 있는지 알 수 없다. 마지막으로 경주지방에서는 옛날부터 이차돈의 목을 자른 곳이 고성숲(현재 황성공원)이라는 이야기가 전해오고 있는데 문헌상으로는 그 기록을 찾아볼 수가 없다. <출처/ 토함산솔이파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