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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애청곡

[신파극 주제가] "장한몽가" (이수일과 심순애) - 고복수와 황금심

잠용(潛蓉) 2019. 8. 6. 07:30





"長恨夢歌" (李守一과 沈順愛)

半夜月 작사/ 金富海 작곡/ 노래 黃琴心,高福壽

(1941년  지구레코드 발매 - 원곡은 1917년 일본교가)


<변 사>
달빛 푸른 大同江邊에

두 靑春男女의 그림자가 비쳤으니

이는 곧 李守一과 沈順愛였던 것이였다.


< 1 >
大同江邊 浮碧樓에 散步하는
李守一과 沈順愛의 兩人이로다
幄手論情 하는 것도 오날뿐이요
徒步行進 散步함도 오날뿐이다


< 2 >

守一이가 學校를 마칠 때까지
어이 하여 沈順愛야 못 참았더냐?
男便의 不足함이 있는 緣故냐?
不然이면 金錢에 貪이 나더냐?


<대 사>
順愛야

金重倍의 다이아몬드가
그렇게도 貪이 나더냐?
에이 ! 惡魔 ! 賣春婦 !
萬一에 來年 이 밤 來明年 이 밤
萬一에 저 달이 오늘같이 흐리거던
이 守一이가 어디에선가
沈順愛 너를 怨望하고
오늘같이 우는 줄이나 알아라 !


< 3 >

郎君의 不足함은 없지요만은
당신을 外國留學시키려고
叔父님의 말씀대로 順從하여서
金重倍의 家庭으로 시집을 가요


< 4 >

順愛야 半 病身된 이 守一이도
이 世上에 堂堂한 義理 男兒라
理想的인 나의 妻를 돈과 바꾸워
外國留學 하려 하는 내가 아니다


<대 사>
오! 수일씨!

한번만 용서해 주세요!

놓아라 잡으면 찢어진다!
너의 치마는 값 많은 윳동치마요

나의 즈봉은 단돈 일전에 지나지 않는

골프 즈봉이다.


<변 사>

이 말이 끝나자 한발작 두발짝 뛰어놓기를 시작한

수일의 모습은 영영 사라지고 만 것이었다.

이어지는 배경 음악이 <희망가> 이었다


---------------------------------------------

* 악수논정(握手論情) : 손을 잡고 사랑을 얘기하다.

* 도보행진(徒步行進) : 걸어서 앞으로 나아가다,

* 불연(不然)이면 : 그렇지 않으면. 




(이수일과 심순애 음반 쟈켓)



이 노래의 배경인 그 소설은 영국의 여류작가인 버서 클레이(Bertha M.Clay,1836~1884)의 '여자보다 약한(Weaker than a woman)'를 일본의 오자키 고요(尾崎紅葉, 1868-1903)가 '금색야차(金色夜叉, こんじきやしゃ)(1897년~ 1902년 요미우리 신문에 연재)'라는 제목으로 그 무대만 일본으로 옮겨 번안한 것이 2000년에야 밝혀졌고, 그것을 조선의 조중환(1863~1944) 이 '장한몽(長恨夢)'이라는 제목으로 무대만 다시 대동강변으로 옮겨 1913년 1월 1일부터 1915년 5월 13일까지 조선총독부 기관지 매일신보에 연재했던 것이다. <동영상 업로더>





장한몽(長恨夢)


이수일과 심순애 (장한몽) 1941 고복수 황금심


[t신파극] '長恨夢' (이수일과 심순애) KBA-TV



長恨夢 (李守一과 沈順愛)    

2006. 12. 24. 18:58

http://blog.naver.com/tss52/50012365847 


1897년에서 1899년 사이에 일본의 국민적인 작가 오자키 고요(尾崎紅葉)의 신문 연재 소설인 ‘곤지키 야사(金色夜叉)’가 우리가 알고 있는 이수일과 심순애의 원작이다. 금색야차라는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이 작품은 배금주의에 희생당하는 인간성에 대해 고발하는 소설이다. 어려서 부모를 잃은 칸이치(貫一)는 자신이 의탁하고 있는 집안의 외동딸인 미야마(宮)와 서로 사랑하는 사이가 된다. 성실하고 착한 칸이치의 성격에 호감을 갖고 있던 미야의 부모는 칸이치가 대학을 졸업하는 때를 맞추어 결혼을 시켜줄 것을 약속한다.


그러던 어느날 미야가 소식도 없이 사라졌다. 이를 이상하게 여긴 칸이치가 수소문을 한 결과 미야는 거부인 토미야마(富山)의 구애를 받아 그를 따라 떠난 것이었다. 캉이찌는 미야를 찾아 나섰다. 비록 자신이 재력에 있어서는 비견할 바가 아니지만, 그는 자신과 미야 사이의 사랑에 대한 확신이 있었다. 그러나 토미야마의 재물에 마음이 혹한 미야는 결국 칸이치를 외면하고 만다. 이 사랑의 실패로 인해, 칸이치는 사람이 변하고 만다. 순수하던 청년이던 칸이치는 괴로움을 잊지 위해 오직 돈을 버는데만 현혹이 된다. 육년 후, 자신의 선택이 잘못되었음을 깨닫고 괴로워하던 미야는 칸이치를 찾아가지만, 이미 다른 사람이 되어 버린 칸이치는 그녀를 차갑게 외면한다.


그러나 완고했던 그의 마음도 어느 순간부터인가 풀어진다. 미야가 측은하게 생각된 그는 그동안 뜯어보지도 않았던 미야의 편지를 돌아본다. 소설은 여기서 중단이 된다. 작가인 오자키 고요가 이 대목을 쓰는 도중에서 사망했기 때문이다. 일재(一齋) 조중환(趙重桓)은 오자키 고요의 금색야차를 번안하여 매일신보에 ‘장한몽(長恨夢)’이라는 제목으로 소설을 연재하였다.


원작은 일본 소설이지만 다수의 독자들에게 친숙할 수 있도록 이야기의 큰 줄기를 제외한 다른 부분을 독자들의 구미에 맞게 각색을 한다. 즉, 일본인인 칸이치가 조선인 학생인 ‘이수일’로, 이수일의 애인인 미야가 미모의 조선인 여성인 ‘심순애’로 바뀌는 것이다. 그리고 그들의 사랑이야기가 펼쳐지는 공간 역시 일본이 아닌 조선의 평양으로 설정이 된다. 그리고 또한 큰 줄기가 되는 내용이 아닌 부분은 내용상에서도 손질을 한다. 장한몽에서 유명한 대목인 대동강 변에서 이수일이 심순애의 마음을 확인한 이수일이 보름달을 보며 절규하고, 그런 이수일의 바지가랑이를 붙잡는 심순애의 모습은 사실 원작이 아닌 조중환 자신의 창작물인 것이다. 다른 번안물과 다르게 ‘장한몽’이 한국인에게 친숙한 것도 이런 조중환의 배려가 있기 때문이다. [출처] 장한몽 (이수일과 심순애)|작성자 난세간웅


장한몽 (이수일과심순애)

줄거리와 가사


(長恨夢의 무대가 된 大同江邊 浮碧樓 1930년대 사진)  


大同江邊 浮壁樓에 散步하는 이수일과 심순애의 兩人이로다

握手論定 하는것도 오날뿐이요 徒步行進 散步함도 오늘뿐이다


수일이가 學校를 마칠때까지 어이하여 심순애야 못 참았느냐

남편의 不足함이 있는 然故냐 不然이면 金錢이 탐이 나더냐


순애야 김중배의 다이야몬드가 그렇게도 탐이 나더냐

에이! 악마! 賣春婦! 만일에 來年 이 밤 來 明年 이 밤

만일에 저 달이 오늘같이 흐리거던 이수일이가 어디에선가

심순애 너를 怨望하고 오늘같이 우는줄이나 알아라


郎君의 不足함은 없지요만은 당신을 外國留學 보내기 위해

叔父님의 말씀대로 順從하여서 김중배의 가정으로 시집을 가요


순애야 反病身된 이 수일이도 이 세상에 당당한 義理男兒라

理想的인 나의 妻를 돈과 바꾸어 外國留學 하려하는 내가 아니다


어려서 들었던

무성영화 변사의 대사 한 토막

『때는 바야흐로 춘 삼월 !  비둘기 쌍쌍이 날으는 대동강 가에 사랑을 속삭이는 젊은 두 청춘 남녀가 있었으니, 그 들의 이름은 이수일과 심순애였던 것이었다. 대동강 물이 변해 모란봉이 되고 모란봉이 변해 대동강이 될지라도 우리사이 서로 변치 말자고 약속 했건만...., 네가 나를 배반하다니....,

"수일씨! 흐흐흑!" "놔라! 이 바지를 놓으란 말이다. 바지찢어질라...," "수일씨!"

"나는 너를 만나기 위에 어제  전당포에서 일자로 쭉 뻗은 단꼬 쓰봉을 빌려입고 왔단다."

"수일씨! 흐흐흑!"  "순애야! 김중배의 다이야몬드 보석 반지가 그렇게도 좋더란 말이냐?"

"김중배의 다이야몬드가 그렇게도 탐이 났더란 말이다" "에이! 더러운 년! 매춘부!"

"만일에 내년 이밤 아니 내명년 이밤저달이 오늘같이 흐리거던 이수일이가 어디에선가 심순애 너를 원망하고,저 달이 흐려져 비가오거든 나의 눈물인줄 알아라. 순애야! 돌아온 섣달 그믐날  비가 오거든  이 오빠는 만경창파에 몸을 싣고 21세기의 청춘으로 돌아 가련다."

"순애야 이젠 기다리지 마라." 꽃바람속에 ..."필름돌아갑니다"』


조중환(趙重桓)의 번안소설 장한몽 (長恨夢)

매일신보에 1913년 5월부터 1915년 5월 25일부터 12월 26일까지 연재되었다 한다. 원작은 일본의 오자키 고요[尾崎紅葉]가 1897~99년 "요미우리신문"에 발표한 연재소설『곤지키야샤>(金色夜叉 ; '돈 빛깔 야차')』는 자유민권운동이 실패로 돌아간 뒤 일본이 러일전쟁을 향해 치닫고 있던 상황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모았고‘돈과 사랑’이라는 통속소설의 소재를 바탕으로 정치적 색채를 지워버고 일본대중들의 관심을 돌려놓는 데성공한 것으로 평가받는다.


(조중환의 번안 신소설 長恨夢)


장한몽의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이수일은 일찍이 부모를 여의고 아버지의 친구인 심택의 집에서 자라나 고등학교까지 마친 뒤 심순애와 혼인을 약속한다. 그런 어느 정월 보름날, 심순애는 김소사의 집으로 윷놀이를 갔다가, 거기에서 대부호의 아들인 김중배를 만난다. 심순애에게 매혹된 김중배는 다이아몬드와 물질공세로 그녀를 유혹하였고,

심순애의 마음은 점점 이수일로부터 멀어져간다.


이 사실을 알게 된 이수일은 달빛 어린 대동강가 부벽루에서 심순애를 달래보고 꾸짖어도 보았으나, 물질에 눈이 어두워진 여자의 마음을 돌릴 수 없었다. 울분과 타락 끝에 고리대금업자 김정연의 書記가 된 이수일은 김정연의 죽음과 함께 많은 유산을 받게 된다. 자신의 과오를 뉘우친 심순애는 대동강에 투신자살하려다가 수일의 친구 백낙관에게 구출된다. 결국, 두 사람은 백낙관의 끈질긴 설득으로 다시 결합하여 새 출발을 하게 된다는 이야기다.


이 소설은 당시에 크게 유행하였던 신소설과 고소설을 압도하고 소설과 연극으로 신문학 최초의 베스트 셀러가 되었던 점은 특기할만하다. 이 작품은 신소설의 퇴조와 함께 이후의 통속적 애정소설의 등장을 재촉했으며, 연극에서도 이후 신파극의 대명사가 될 정도로 그 파급효과가 컸던 작품이다. 비련을 그린 이 작품은 물질적 가치에 대항할 수 있는 사랑의 힘을 그 주제로 하고 있다. 이것은 순수한 한국적 배경과 유형으로 개작되어 수많은 개화기의 독자를 얻은 통속 번안소설로 신문연재 애정소설에 적지 않은 영향을 준 작품이다.


이 소설을 쓴 조중환(趙重桓 호 일재(一齋).서울 출생)은 1906년부터 약 10년 동안 《쌍옥루(雙玉淚)》 《장한몽(長恨夢)》 등 일본작품을 번안(飜案) 개작(改作)하고, 《매일신보(每日申報)》에 연재하여 개화기에 많은 작품 활동을 하였다. 연극에도 조예가 깊어 윤백남(尹白南)과 함께 ‘문수성(文秀星)’이라는 극단을 창립했다. 그의 작품은 대개 일본 것을 번안한 것이지만 문장이 유창하고 뛰어나서 많은 독자를 가졌다한다. (동아대백과사전) 
 

이수일과 심순애 가사 (長恨夢歌)

노래/ 고복수 황금심


1. 대동강변 부벽루에 산보하는
이수일과 심순애의 양인이로다
악수논정 하는것도 오날뿐이요
도보행진 산보함도 오늘뿐이다


2. 수일이가 학교를 마칠때까지
어이하여 심순애야 못 참았느냐
남편의 부족함이 있는 연고냐
불연이면 금전이 탐이 나더냐


<대 사>

순애야 김중배의 다이야몬드가 그렀게도 탐이 나더냐
에이! 악마! 매춘부! 만일에 내년 이밤 내명년 이밤
만일에 저달이 오늘같이 흐리거던 이수일이가 어디에선가
심순애 너를 원망하고 오늘같이 우는줄이나 알아라


3. 낭군의 부족함은 없지요 만은
당신을 외국유학 보내기 위해
숙부님의 말씀대로 순종 하여서
김중배의 가정으로 시집을 가요


4. 순애야 반병신 된 이 수일이도
이 세상에 당당한 의리 남아라
이상적인 나의 처를 돈과 바꾸어
외국유학 하려 하는 내가 아니다

눈물에 젖은 식민지
조선 신파의 시대 대표하는 이수일과 심순애의 사랑… 끊임없는 리메이크로 한국인의 감성 장악 1969년 신상옥이 이끄는 ‘신필름’에서 <장한몽>이라는 제목의 영화를 제작한다. 감독은 신상옥, 주연은 신성일과 윤정희 그리고 남궁원이 맡았다. 이 영화는 유신정권의 서슬이 퍼렇던 70년대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대중들의 사랑을 받으며 전국 곳곳에서 상영된다. 뿐만 아니라 70년대 말과 80년대 초 연극계의 최대 히트작 중의 하나가 극단 가교의 <이수일과 심순애>였다. 그 이름도 유명한 ‘이수일과 심순애’는 이 땅에 처음으로 그 모습을 드러낸 지 70년이 다 된 시점에서도 의연히 그 매력을 잃지 않고 있었다. 아니 지금까지도 이수일과 심순애의 ‘황금을 넘어선 숭고한 사랑’은 다양한 모습으로 변주되어 우리의 눈물샘을 자극한다. 한국인의 감성을 장악해버린 이수일과 심순애의 사랑, 그렇다면 그 기원은 어디에 있는가?

 

(신상옥 감독의 영화 <장한몽>의 한 장면)


조선을 ‘접수’한 일본의 눈물 공세

1910년 8월29일 조선은 일본의 ‘공식적’ 식민지로 전락했다. 제국주의 일본은 조선을 ‘접수’하기가 무섭게 모든 언론을 통폐합해 <매일신보>라는 총독부 어용기관지로 언로를 일원화화고, 판매부수를 확장하기 위해 대대적으로 소설을 연재한다. 독자를 유인하는 가장 강력한 판매전략 중의 하나가 연재소설이었던 것이다. 그런데 식민지 조선과 제국주의 일본의 관계를 드러내기라도 하듯, <장한몽> <쌍옥루> <국의향> 등 연재소설의 대부분이 메이지시대 일본소설의 번안’이었다. 그리고 일본소설 번안 분야에서 가장 왕성하게 활약한 인물이 조중환(趙重桓)이었다.


조중환이 번안해 당시 조선의 독서계를 강타한 소설이 바로 이수일과 심순애를 주인공으로 한 <장한몽>(長恨夢>이다. <장한몽>의 원작은 일본 메이지시대의 작가 오자키 고요(尾崎紅葉·1867∼1903)의 ‘황금 두억시니’라는 뜻의 <곤지키야사>(金色夜叉)다. 이 소설은 토쿠토미 로카의 <불여귀>와 함께 일본근대문학사에서 이른바 ‘언문일치’를 확립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 작품으로 꼽힌다. 그리고 자유민권운동이 실패로 돌아간 뒤 일본이 러일전쟁을 향해 치닫고 있던 상황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모았다. ‘돈과 사랑’이라는 통속소설의 전형적인 소재를 바탕으로 정치적 색채를 지워버린 이 작품은 일본대중들의 관심을 돌려놓는 데 성공한 것으로 평가받는다.


1913년 단행본으로 출판된 <장한몽>

이 작품을 번안한 <장한몽>은 1913년 5월13일부터 10월1일까지 <매일신보>에 연재됐으며, 같은해 유일서관에서 단행본으로 발간돼 판을 거듭한다. 몰락한 사무라이 집안의 고아로 입신출세를 꿈꾸는 명문 중학교 학생 하자마 간이치, 은행가의 아들 도미야마 다다쓰구, 간이치를 키워준 은인의 딸 미야가 각각 이수일과 김중배 그리고 심순애로 그 이름을 바꾸고, 공간적 배경도 도쿄에서 평양으로 옮긴 <장한몽>은
그 내용이나 형식면에서 원작과 많은 차이를 보인다.


예컨대 원작에서는 도미야마와 결혼한 미야가 간이치의 용서를 받지 못하고 자결하는 비극으로 끝나는 것과 달리 <장한몽>에서는 이수일과 심순애가 재결합함으로써 행복한 결말로 막을 내린다. 원작과의 거리는 번안자의 선택과 독자들의 보이지 않는 압력, 문화적 환경과 정서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라 할 수 있다. 따라서 이러한 굴절은 번역과 번안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겪을 수밖에 없는 일종의‘운명’이라 해도 지나친 말을 아니다.


[영화] '이수일과 심순애'

[시놉시스] 아버지의 병환으로 생활이 궁핍해진 심순애는 장안의 재벌인 김중배의 청혼을 받아들인다.
이수일은 김중배의 다이아몬드 반지에 이끌린 심순애를 증오하게 되고 심순애와 이수일의 사랑은 어긋나게 된다. 이수일은 자신의 초라한 모습에 방탕한 생활이 시작되고 수일을 사모했던 고리대금업자인 차미옥의 도움으로 재기하게 된다. 사랑의 배반으로 점점 냉혹한 인간으로 변해 가는 이수일은 그의 절친했던 친구들도 점점 이수일을 멀리하게 된다. 한편, 심순애는 김중배의 가혹한 학대를 받고, 엄동설한에 어린 자식까지 빼앗긴 채 쫓겨 나가게 되어 거리를 방황하게 된다. 눈이 내리는 거리에서 심순애와 이수일은 상봉하게 되는데... [동아대백과사전]




한국연극연출가협회의

일재 조중환의 <장한몽-이수일과 심순애>

100주년 기념공연을 보고


공연명 장한몽 이수일과 심순애

공연단체 한국연극연출가협회

작가 일재 조중환 연출 1부 이종훈, 2부 김태훈

공연기간 2013년9월11~17일

공연장소 아르코예술극장 소극장

관람일시 9월17일 오후4시


아르코예술극장 소극장에서 한국연극연출가협회(회장 김성노)의 일재 조중환의 <장한몽> 1부 김정숙 재구성 이종훈 연출의 <이수일과 심순애> 2부 오일영 각색 김태훈 연출의 <이수일과 심순애> “첫사랑 반환소송” 재판을 관람했다. 1897년에서 1899년 사이에 일본의 국민적인 작가 오자키 고요(尾崎紅葉)의 신문 연재 소설인 ‘곤지키 야사(金色夜叉)’가 우리가 알고 있는 이수일과 심순애의 원작이다. 금색야차(金色夜叉)라는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이 작품은 배금주의에 희생당하는 인간성에 대해 고발하는 소설이다. 어려서 부모를 잃은 칸이치(貫一)는 자신이 의탁하고 있는 집안의 외동딸인 미야마(宮)와 서로 사랑하는 사이가 된다. 성실하고 착한 칸이치의 성격에 호감을 갖고 있던 미야의 부모는 칸이치가 대학을 졸업하는 때를 맞추어 결혼을 시켜줄 것을 약속한다.


그러던 어느날 미야가 소식도 없이 사라졌다. 이를 이상하게 여긴 칸이치가 수소문을 한 결과 미야는 거부인 토미야마(富山)의 구애를 받아 그를 따라 떠난 것이었다. 캉이찌는 미야를 찾아 나섰다. 비록 자신이 재력에 있어서는 비견할 바가 아니지만, 그는 자신과 미야 사이의 사랑에 대한 확신이 있었다. 그러나 토미야마의 재물에 마음이 혹한 미야는 결국 칸이치를 외면하고 만다. 이 사랑의 실패로 인해, 칸이치는 사람이 변하고 만다. 순수하던 청년이던 칸이치는 괴로움을 잊지 위해 오직 돈을 버는데만 현혹이 된다. 육년 후, 자신의 선택이 잘못되었음을 깨닫고 괴로워하던 미야는 칸이치를 찾아가지만, 이미 다른 사람이 되어 버린 칸이치는 그녀를 차갑게 외면한다. 그러나 완고했던 그의 마음도 어느 순간부터인가 풀어진다. 미야가 측은하게 생각된 그는 그동안 뜯어보지도 않았던 미야의 편지를 돌아본다. 소설은 여기서 중단이 된다. 작가인 오자키 고요가 이 대목을 쓰는 도중에서 사망했기 때문이다.


일재(一齋) 조중환(趙重桓)은 오자키 고요의 금색야차를 번안하여 매일신보에 ‘장한몽(長恨夢)’이라는 제목으로 소설을 연재하였다. 원작은 일본 소설이지만 다수의 독자들에게 친숙할 수 있도록 이야기의 큰 줄기를 제외한 다른 부분을 독자들의 구미에 맞게 각색을 한다. 즉, 일본인인 칸이치가 조선인 학생인 ‘이수일’로, 이수일의 애인인 미야가 미모의 조선인 여성인 ‘심순애’로 바뀌는 것이다. 그리고 그들의 사랑이야기가 펼쳐지는 공간 역시 일본이 아닌 조선의 평양으로 설정이 된다. 그리고 또한 큰 줄기가 되는 내용이 아닌 부분은 내용상에서도 손질을 한다. 장한몽에서 유명한 대목인 대동강 변에서 이수일이 심순애의 마음을 확인한 이수일이 보름달을 보며 절규하고, 그런 이수일의 바짓가랑이를 붙잡는 심순애의 모습은 사실 원작이 아닌 조중환 자신의 창작물인 것이다. 다른 번안물과 다르게 ‘장한몽’이 한국인에게 친숙한 것도 이런 조중환의 배려가 있기 때문이다.


일재(一齋) 조중환(趙重桓)은 소설내용은 주인공 이수일이 일찍이 부모를 여의고 아버지의 친구인 심택의 집에서 자라나 고등학교까지 마친 뒤 심순애와 혼인을 약속한다. 어느 정월 보름날, 심순애는 김소사의 집으로 윷놀이를 갔다가, 거기에서 대부호의 아들인 김중배를 만난다. 심순애에게 매혹된 김중배는 다이아몬드와 물질 공세로 심순애를 유혹하였고, 심순애의 마음은 점점 이수일로부터 멀어져간다. 이 사실을 알게 된 이수일은 달빛 어린 대동강가 부벽루에서 심순애를 달래보고 꾸짖어도 보았으나, 한 번 물질에 눈이 어두워진 여자의 마음을 돌릴 수 없었다. 울분과 타락 끝에 고리대금업자 김정연의 서기가 된 이수일은 김정연의 죽음과 함께 많은 유산을 받게 된다. 이런 소용돌이 속에서 자신의 과오를 뉘우친 심순애는 대동강에 투신자살하려다가 이수일의 친구인 백낙관에게 구출된다. 결국, 두 사람은 백낙관의 끈질긴 설득으로 다시 결합하여 새 출발을 하게 된다. 참고문헌『신소설연구(新小說硏究)』(전광용, 새문사, 1986)


1부 장한몽 김정숙 재구성, 이종훈 연출의 <이수일과 심순애>에서는 이수일과 심순애를 원작과는 달리 재결합시키지 않고 두 사람이 자살로 연극을 마무리 한다. 무대는 배경 막에 그림영상을 투사해 낡은 정자처럼보이는 가옥과 개울처럼 보이는 대동강, 그리고 구름이 흘러가는 화면을 장면변화마다 효과적으로 제공한다. 대소도구는 초반에는 소파 하나로, 후반에는 책상과 의자를 배치해 사용한다. 오영수가 이수일, 이현숙이 심순애, 김재건이 김중배로 출연해 연극을 이끌어 간다. 이수일의 친구인 백낙관으로 고인배, 전대준으로 김봉환, 심순애 어머니로 임일애, 여인으로 진아라, 순사로 이종열이 출연해 호연을 보인다. 전대준 역의 김봉환의 출중한 연기와 열창, 어머니 역의 임일애의 열창은 극의 분위기를 상승시킨다.


음악 최종혁, 의상분장 손진숙, 조연출 진수아, 조명 이인연, 음향오퍼 김동수, 무대 이엄지, 영상 이남훈, 대소도구 김재범 등 모두의 노력이 하나가 되어 김정숙 재구성, 이종훈 연출의 <이수일과 심순애>를 성공작으로 만들어 냈다. 2부 오일영 각색, 김태훈 연출의 <이수일과 심순애> “첫사랑 반환소송 재판”은 원작의 이수일과 심순애가 재결합한 이후의 내용을 현대감각에 맞도록 각색한 내용이다. 이수일의 의처증이 심순애를 괴롭히고, 심순애가 어쩔 수 없이 김중배를 만난 사실로, 두 사람은 이혼법정에 서게 된다. 무대는 법정장면에서 시작된다. 배경 가까이 가로놓인 긴 탁자와 의자가 판사와 배석판사의 자리가 되고, 바로 그 앞에 법원서기의 테이블과 의자가 배치되어 있다. 하수가 원고석 상수가 피고석이 되어 이수일과 심순애의 자리로 지정된다. 관객은 배심원 역할을 맡는다. 남녀 경찰공무원이 질서유지에 힘을 쓰고 판사가 등장할 때 관객을 기립시킨다. 이혼법정에 이수일과 심순애가 등장하고, 경찰이 관객을 기립시키면, 기괴한 행동과 걸음걸이로 판사와 배석들이 등장해 좌정한다.


판사는 이수일과 심순애가 법정안에서 티격태격하는 장면을 목격하고, 자중하라고 이르면서 판사 자신은 비속어와 상 욕설을 남발한다. 이수일과 심순애의 이혼의 사유로 되는 발언내용을 영상물을 통해 재확인하기도 하고, 이수일 입장에서, 또는 심순애의 입장에서 편집한 영상물을 살펴보다가, 배심원석에 최종판단을 요구한다. 배심원은 두 사람의 이혼으로 재판을 마무리 짓지만, 마지막 이수일과 심순애의 영상은 두 사람의 키스로 연극이 종결된다.


김중배와 법정경찰로 정의갑, 판사로 박수용, 심순애로 이하나, 순애모와 법정경찰로 신소영, 이수일로 김홍기, 배석판사로 우진우와 오택조, 기록원으로 오미란이 출연해 호연으로 객석의 갈채를 받는다.

제작감독 이재성, 예술감독 최재오, 드라마터기 최서은, 무대감독 서철, 영상디자인 이남훈, 무대디자인 이엄지, 음향디자인 김정수, 조명디자인 이주환, 움직임지도 이영일, 의상 김인옥, 분장 이은선, 조명오퍼 안정민, 음향오퍼 김동수, 소품 김양희 강지원 홍보 김보미 등의 힘이 일치되어 오일열 각색, 김태훈 연출의 2부 <이수일과 심순애> “첫사랑 반환소송 재판”을 성공적인 공연으로 창출시켰다.

9월17일 박정기(朴精機) [출처/ 서울대학교연극동문회]


이수일과 심순애
나무위키: 2019-07-30 12:33:00


1. 개요
일본소설이 원작인 대한민국의 신파극. <육혈포강도>와 함께 한국의 대표적인 신파극이다. 장안 최고의 갑부의 아들 김중배(金重培, 도미야마(富山))와 가난한 고학생 이수일(李守一, 간이치(貫一)), 그리고 그 둘과 얽힌 여주인공 심순애(沈順愛, 오미야(お宮))의 삼각관계를 그린다. 일재(一齋) 조중환(1863~1944) 원작인 <장한몽(長恨夢)>은 1913년 1월 1일부터 1915년 5월 13일까지 총독부 기관지 매일신보에 연재되었던 장편소설로, 일본 소설인 오자키 고요(尾崎紅葉, 1868-1903)의 <금색야차(金色夜叉, こんじきやしゃ)(1897년~ 1902년 요미우리 신문에 연재)를 번안한 것이다.


실은 <금색야차>도 영국의 여류작가인 버서 클레이(Bertha M.Clay,1836~1884)의 <여자보다 약한(Weaker than a woman)보러가기에서 캐릭터와 스토리의 구조를 무대와 이름을 일본으로 바꾼 2차 창작 소설인 것이 일본인 연구자에 의해 2000년에 밝혀졌다. 대사나 다이아몬드 소품 요소까지 동일하다. 그러니까 이수일과 심순애는 번안작의 번안작인 셈이다. 변호하자면 당시 일본에는[1] 이런 식의 번안작은 흔했고, 몬테크리스토 백작의 경우, 암굴왕으로 번안되어 주인공은 일본인이었다. 일본문학사적으로 의의가 있다면, 나쓰메 소세키의 나는 고양이로소이다와 함께, 메이지 시대 당시 새롭게 도입된 문장 스타일로, 기존의 문어체소설이 주류였던 시기에 일반 서민들도 쉽게 읽을 수 있는 언문일치(言文一致)로 쓴 작품이다. 하지만 100년이 지난 지금은, 문학연구가가 현대어로 번역해 주지 않으면 독해가 힘들다.


2. 플롯
수일은 순애의 뺨을 후려갈기며 피를 토하듯 외쳤던 거시~다. 순애야 너는 김중배의 다이아몬드 반지가 그렇게도 탐나더란 마리~냐!? ‘이수일과 심순애’는 이수일과 심순애의  비련을 그린 통속적 애정소설이다. 주인공 이수일은 일찍이 부모를 여의고, 아버지의 친구 집에서 자라며 고등학교를 마친 뒤, 심순애와 혼인을 약속한다. 어느 정월 보름날, 심순애는 김 소사의 집에 윷놀이를 갔다가 대 갑부의 아들이자 도쿄 유학생 김중배를 만난다. 김중배는 심순애에게 매혹되어 다이아몬드 반지와 물질 공세로 심순애를 유혹하였다. 심순애의 마음은 점점 이수일로부터 멀어져간다. 이수일은 이러한 사실을 알게 되자 달빛 어린 대동강 변 부벽루에서 심순애를 달래고 꾸짖었다.


하지만 물질에 눈이 어두워진 여자의 마음을 돌릴 수는 없었다. 울분과 타락 끝에 금력과 물질의 원한으로 고리대금업자 김정연의 서기가 된 이수일은 김정연의 죽음과 함께 많은 유산을 받게 된다. 이후 김중배의 몹쓸 짓을 겪다가 과오를 뉘우친 심순애는 이수일에게 사과하지만 그는 냉담하게 그녀를 내치고 심순애는 속죄의 의미로 대동강에 투신자살을 시도하였으나, 이수일의 친구 백낙관에게 구출된다. 낙관은 이수일을 설득하지만 그는 듣지않고 금전일에만 몰두하다 신경쇠약으로 청량암에 휴향하며 머물게 된다. 그러다 어느 남녀연인이 자살시도하는 걸 구해주면서 기분과 감정에 변화가 오고 이후 두 연인은 백낙관의 끈질긴 설득으로 다시 결합하여 새 출발을 한다.


원작은 미완결인 데 반해 <이수일과 심순애>에서는 결말이 났다.[스포일러] <금색야차>에서는 오미야(여주인공)가 칸이치(남주인공)을 버리고 떠나는 이유를 '말하기 힘들다' '저한테는 어떤 생각이 있어요'라고 얼버무리는데 (그래서 발로 걷어 차이는데), <Weaker than a woman>에서는 여주인공은 남주인공을 버리고 부자집 귀족과 결혼하려는 이유를 '난 돈이 좋고 사치와 호화로움이 좋고 당신같은 가난한 집안에서 난 결코 만족할 수 없다. 서로 비참해 질 거다'라고 화끈하게 밝힌다. 그리고 몇년 후 그녀는 미망인이 되어 엄청난 재산을 얻게 되자 그녀의 첫사랑 남주인공과 비밀리에 재결합하려고 한다는 스토리로 이어진다.[3]미완결로 끝난 <금색야차>에서도 오자키 코요의 원래 구상은 이런 식이었다고 한다. 이건 뭐야? 막장 드라마 스토리?


3. 영향
당시 폭발적인 인기를 끌었다고 한다. 연재가 끝나기도 전에 연극 무대에 올려졌을 정도. 이후 신파극으로 만들어져 큰 인기를 끌었고, 1927년과 1965년에 각각 영화로도 만들어졌다. 1927년 버전에서는 소설가 심훈이 출연했다. 한국을 빛낸 100명의 위인들에도 들어가 있다. 애초에 가상 인물인데다 일본소설이 원작이라 위인이라고 볼 수 있는지 논란이 된다. 이수일의 "김중배의 다이아몬드 반지가 그렇게도 좋더냐?"라는 명대사는 이후로도 사골 수준으로 우려먹게 되고 xx의 xx가 그렇게도 좋더냐?라는 바리에이션이 수두룩하게 배출되었다. 하지만 세월이 흐르면서 이제 김중배의 다이아 드립을 못 알아듣는 사람이 늘고 있어서 사장되어 가고 있다. 그 외에 "순애야, 저 달을 보아라. 저 달이 흐리면 이수일이가 피눈물을 흘리는 줄 알아라" 도 유명하다 여기에 심순애가 이수일의 다리를 붙잡고 매달리자 이수일이 외친 트레이드 마크급 대사 "노~아라(놓아라를 극적인 분위기를 위해 늘려 말한 것)!"가 있다.


이수일이 심순애를 발로 뻥 차는 장면도 유명하다. 실은 이것은 실화(!)에서 힌트를 얻은 일본판 오리지널 장면인데, 일본판 도작가 원작가 오자키 코요의 친구였던 아동문학가 이와야 사자나미에게 고급요정에서 일했던 애인이 있었는데 그가 다른 지방에서 2년간 파견근무를 하는 동안 다른 남자와 눈이 맞아서 헤어졌다고 한다. 이 얘기를 들은 분노한 오자키는 그 요정으로 찾아가서 그 여자를 발로 걷어 차 버렸다고. 그런데 정작 당사자였던 이와야 사자나미는 결혼할 맘도 없었고 별로 대수롭지도 않게 생각했었다나. 덤으로 어린이날을 만든 방정환의 호가 이 아동문학가 이와야 사자나미(巌谷小波)의 '小波'에서 따왔다는 말도 있었지만 사실과는 다르다. 심지어 일본 원작의 책 표지가 바로 그 장면.


(오자키고요 (尾崎紅葉)의 작품 <金色夜叉> 표지)


위의 그림은 1897년 1월부터 일본 요미우리 신문(讀賣新聞)에 2년간 연재되었던 작가 미기홍엽(尾崎紅葉: 오자키고요)의 연재소설 '금색야차' (金色夜叉: 고지키야샤)의 표지- 이 소설이 우리나라에서 조중환(趙重桓)의 신소설 '長恨夢'(장한몽)의 원작이 되었다)


원작의 책 표지. 차도남 게다가 아래에도 언급되듯 이 장면을 그대로 묘사한 동상도 존재한다. 1960-70 년대 극장 쑈 나 TV 코미디에서 신파극 특유의 변사 말투나 소위 신파쪼의 대사로 단골로 패러디 되던 장면이었다. 사실 이게 하이라이트였다. 당시 극 무대에서 배우들은 대사없이 연기를 하고 대신 변사가 극중인물들의 대사를 읊었는데 극의 재미를 더하기 위해 일부러 대사의 말미를 늘이거나 줄이는 식으로 관객들의 관심을 끈것. 예를 들어 심순애가 자기는 일편단심 이수일 뿐이란 말을 "내게는 오직 수일씨 뿐입~니!"라고 하는 식이다. 그래서 학생들 장기자랑 따위에도 단골로 등장하는 레퍼토리로 쓰이기도 했다. 1990년대 극중극의 형태로 드라마화된 적이 있다. 장한몽을 공연하던 악극단에서 벌어진 이야기를 다룬 대하극인데, 중간 중간 장한몽 공연 장면이 나와서 이야기를 구성하고 있다. 이수일 역은 유인촌.

소설의 배경이 된 장소인 일본 아타미에는 원작을 훌륭히 재현한(?) 동상이 세워져 있다. 게임 러브 플러스+에서도 아타미 관광을 가면 볼 수 있다.


1990년대 수능시험 관련 교육방송 예문에서도 언급된 바 있는데, 이 예문으로 쓴 어느 수필에서 '일본 번안소설의 가상 등장인물이 왜 위인이라고 들어가야 하는가? 의문이 든다'고 씹은 적도 있다. 뭐 그만큼 한국 연애물에 너무나도 영향을 주었지만. 한국 구비문학 관련 서적들을 찾다보면, 설화랍시고 채록된 사례도 있는데, 당시만 해도 구전문화가 강했기 때문에 실제로 설화처럼 받아들여졌을 수도 있다. 여명의 눈동자에서 대학생인 장하림이 저 복장으로 나오기도 하는데, 사실 시기상으로 일제시대에는 학생복이 대학교나 고등보통학교나 별 차이가 없었다. 한국에서 대학교 교복과 고등학교 교복의 차이가 생긴것은 1950년대 이후. 그것도 일본에서는 제각각이다. 영화 박치기 초반부에 보면 도쿄에서 교토로 여행온 고등학생들은 1960년대 한국 대학생 교복에 해당하는 교복을 입고 있다. 김장훈의 노래 난 남자다 뮤직비디오 컨셉도 바로 이 이수일과 심순애다. 김장훈이 이수일로, 차승원이 김중배로 분했다. 작고한 원로가수 고복수와 황금심 씨가 노래한 가요 장한몽도 있다. 1917년에 발표된 일본원곡을 한국어로 개사만 한 것. 원곡. 한국어판 가사는 이렇게 된디.


대동강변 부벽루에 산보하는 / 이수일과 심순애의 양인(兩人)이로다
악수논정 (握手論情) 하는것도 오날뿐이요 / 도보행진 산보함도 오날뿐이다
수일이가 학교를 마칠때까지 / 어이하여 심순애야 못 참았더냐
남편의 부족함이 있는 연고(緣故)냐 / 불연(不然)이면 금전이 탐이 나더냐

(이부분은 대사) (순애야 김중배의 다이아몬드가 그렇게도 탐이나더냐 에이!악마!매춘부!
만일에 내년 이밤 내명년 이밤 / 만일에 저달이 오늘같이 흐리거던
이수일이가 어디에선가 심순애 너를 원망하고 오늘같이 우는 줄이나 알아라)

낭군의 부족함은 없지요만은 / 당신을 외국 유학 시키려고
숙부님의 말씀대로 순종하여서 / 김중배의 가정으로 시집을가요
순애야 반병신된 이 수일이도 / 이 세상에 당당한 의리 남아라
이상적인 나의 처를 돈과 바꾸어 / 외국유학 하려하는 내가 아니다


참고: 한국을 빛낸 100명의 위인들 (?)

[1] 사실 일본 뿐만 아니라 당시 한국을 포함한 웬만한 나라들은 저작권에 대한 인식이 희박했다. 물론 관련 법과 인식이 잘 구축된 현대에 원작자의 허락을 받지 않고 이런 짓을 하면 얄짤없이 표절로 철컹철컹이다.

[스포일러] 김중배가 심순애를 4년간 건드리지 않아 순결을 지키는 것에 성공(?)한 심순애와, 고리대금업자 밑에 들어가 큰 돈을 번 이수일이 훗날 재결합한다... 뭐지? 상식적으로 4년간 결혼한 여자를 건드리지 않는 것이 이상한 수준이기 때문에 사실 김중배는 이수일을 좋아한 게이가 아니었냐는 썰이 잠시 나돈 적도 있다(...)알고보면 사내구실 못한거아니냐

[3] 어느 판본에서는 심순애가 아니라 그녀의 어머니가 다이아몬드 반지에 넘어가고,은단도로 심순애가 자결하는 스토리로 끝난다.

[4] 동상 근처에는 '오미야의 소나무(お宮の松)'라는 이름의 소나무도 있다. 원래는 다른 이름이었으나 1919년 8월 오자키 고요의 제자인 작가 오구리 후요가 금색야차 문학비 건립을 계기로 오미야의 소나무라고 부르게 된 이후 아예 이 이름으로 굳어졌다. 현존하는 오미야의 소나무는 2대로, 초대가 1966년에 차량 배기가스 등의 영향으로 쇠약해지면서 새로 심은 것. 하지만 세월이 흐르면서 2대 소나무도 점차 수명이 다해가고 있는 중이라고 한다.


장한몽 (조중환)
출처/ 위키백과


《장한몽》(長恨夢)은 일제 강점기에 조중환이 지은 번안 소설이다. 1913년 매일신보에 연재되었고, 혁신단에 의해 1913년에 공연되어 절찬을 받았다. 이 작품은 일본 작가 오자키 고요(尾崎紅葉)의 소설 《곤지키야샤(金色夜叉)》를 조중환이 한국식으로 번안한 것이다. 《곤지키야샤》는 1898년 일본 신파극단에 의해 상연되어 신파 베스트 10의 제1위에 든 작품이었고, 한국에서 공연되었을 때도 최고의 인기를 끌었다. 남녀 주인공인 이수일, 심순애의 이름은 클라이맥스 장면에서 ‘대동강변 부벽루에 산보하는’으로 시작되는 주제가와 함께 오늘날까지도 많은 인구에 회자되고 있다. 《장한몽》은 최근까지 수십번이나 연극과 영화대본으로 값지게 사용되었다.


[줄거리] 이수일(李守一)은 일찍이 부모를 여의고 돌아간 아버지의 친구 심택(沈澤)의 집에서 그집 딸 심순애(沈順愛)와 함께 성장한다. 그리고 어버이들의 뜻에 따라 두 사람은 약혼한다. 어느날 두 남녀는 서울 다방골의 부호인 김씨 집으로 초대받아 갔다가 그곳에서 도쿄 유학생인 그 집 아들 김중배(金重培)를 알게 되고 심순애는 김중배의 보석에 유혹된다. 심순애의 부모도 이수일과의 혼약을 파기하고 김중배와 결혼시킨다. 실연한 이수일은 그 집을 나와 금력에의 원한으로 고리대금업자가 된다. 심순애의 결혼 생활도 죄책감과 이수일에 대한 애정 때문에 불행해지지만 이수일은 냉담하다.


고민하던 심순애는 비관하고 대동강에 투신자살을 기도했으나 우연히 이수일의 친구 백낙관(白樂觀)에 의해 구출된다. 백낙관은 이수일에게 재회를 권하지만 이수일은 금전에만 몰두할 뿐 듣지 않는다. 그와 같은 이수일도 신경쇠약으로 휴양차 청량암에 머무는 동안 자살하려는 어느 남녀를 구출해주고 심경이 변한다. 한편 심순애는 친정으로 돌아와 이수일에 대한 연모의 정이 지나쳐 광증을 일으킨다. 백낙관의 중재로 이수일과 심순애는 결국 서로 과거를 뉘우치고 재회한다.[유민영.《글로벌 세계대백과사전》, 〈신파극의 작가와 작품〉] <위키백과>



('장항몽가' 악보)


장한몽가 전곡 가사

이수일과 심순애 - 고복수, 황금심


<대사>
달빛 푸른 대동간변에 두청춘 남여의 그림자가 비쳤으니 이는 곧 이수일과 심순애였던 것이였다.


1. 대동강변 부벽루하 산보하는
이수일과 심순애 양인이로다
악수논정 하는 것도 오늘뿐이요
보보행진 산보함도 오늘뿐이라


2. 심순애야 심순애야 내년에는
금일금야 이같이 밝은 달빛을
어데서 저 달빛을 보더래도
흐리거든 심순애야 심순애야


3. 금일금야 이 월색을 수일이는
원망하고 있는 줄 알려무나
수십만에 금전은 무엇이더냐
우리 둘의 애정보다 더할 수 있나


4. 심순애야 마음은 변했지요
용서하여 주서요 수일 씨는
대동강변 월색은 변할지라도
우리 둘의 애정은 변치 않어요


5. 나의 몸이 학교를 마칠 때까지
순애는 어찌하여 못 기다렸나
남편의 부족함이 생기었는가
불연이면 금전에 욕심이 났나


6. 남편의 부족함은 아니지마는
당신을 구미로 유학시키려
부모의 명령을 복종하여서
김중배의 가정으로 가게 되어요


7. 심순애야 반병신된 수일이도
이 세상에 당당한 일개 남아라
사랑하고 귀한 처를 돈과 바꾸어
구미로 유학가랸 내가 아닐다


8. 심순애야 반드시 오는 명년에
금일금야 저 월색을 저 월색을
이 내의 피눈물로 흐리어서
보이리라 남자의 당당한 의기


9. 여자는 정조가 제일이구요
금전은 이 세상에 순환물이라
다이아몬드의 맘이 변하여
반기어 타지 마라 신식 자동차


10. 연애의 실패한 이수일이는
달려우는 심순애를 떨쳐버리고
장한의 눈물을 뚝뚝 흘리며
돌아서니 막막한 물소리 뿐이라


<대사>
오! 수일씨! 한번만 용서해 주세요! 놓아라 잡으면 찢어진다!  너의 치마는 값많은 윷동치마요 나의 즈봉은 단돈 일전에 지나지 않는 골프 즈봉이다. 이 말이 끝나자 한발작 두발짝 뛰어놓기를 시작한 수일의 모습은 영영 사라지고 만 것이었다. 이어지는 배경 음악이 <희망가> 이었다



<일본 작가 오자키 고요[尾崎紅葉]가 쓴 《금색야차(金色夜叉)》를 번안하여 조중환(趙重桓 : 필명 조일재)이 1913년 《매일신보(每日申報)》에 연재한 연애소설 《장한몽(長恨夢)》이 1920년 연쇄극, 1926년에 무성영화로 제작되어 흥행에 크게 성공하였던 작품을 다시 리메이크하였다. 1931년 대경영화양행이 제작하여 단성사(團成社)에서 개봉한 흑백 무성영화 <수일과 순애>이다. 이구영(李龜永) 감독이 연출을 하였고 시마다[島田]가 제작을 맡았다. 이명우(李明雨)가 촬영을 하였는데 이 영화에서 이동촬영을 시도하였으며 손용진(孫勇進)이 현상을 맡았다. 이경선(李慶善)·김연실·심영·윤봉춘(尹逢春) 등이 출연한 통속영화이다. <한민족 우리끼리>


(1931년 이구영 감독의 무성영화 <수일과 순애>의 한 장면)


'장한몽' (長恨夢)은 "이수일과 심순애"로 더잘 알려져 있는 소설이자 신파극이다. 알게 모르게 요즈음 젊은이들도 알고 있는 이 소설은 꽤 오래된 소설이다. 우리나라에서 1913년 5월 13일부터 1913년 10월 1일까지 전편이, 1915년 5월 25일부터 12월 26일까지 속편이 조선총독부 기관지였던 "매일신보"에 연재되었던 장한몽(長恨夢)은 일제(一齊) 조중환(趙重桓)이 번안한 장편소설이었다. 1913년 유일서관에서 활자본(3권 2책)으로 발행되었고, 1930년 박문서관에서 단행본으로 발행되어 여러 판을 찍었다. '장한몽'은 연재되자마자 인기가 오르고 '헉신단' (革新團)에 의해 1913년 8월 연극으로 공연되어 절찬을 받았다. 이후 가요로도 만들어지고 영화로도 인기를 끌었던 것이다.


그런데, 조선말 '춘향전'(春香傳) 이후 장기 베스트셀러 소설 중 하나로 일제치하 식민의 설움을 달래준 신파극으로 끊임없이 상연되었고, 원작 장한몽은 최근까지 수십 번이나 연극과 영화와 가요에 사용되었다. 장한몽의 원작은 일본인 오자키고요(尾崎紅葉)의 '고지키야사' (金色夜叉)로 1897년 1월부터  1899년 1월까지 요미우리신문(讀賣新聞) 연재되었던 장편소설로 일본에서 큰 인기를 얻어 1898년 신파극으로 상연되어 일본 신파극 10위 안에 든 작품이었다. 다시 2000년에 밝혀진 바로는 이 "금색야차"도 영국의 여류작가인 버서 클레이(Bertha M. Clay)의 "여자보다 약한'(Weaker Than A Woman)"에서 캐릭터와 스토리 구조를 차용하였고 무대만 일본으로 옮겨 만든 번안작품으로 밝혀졌다. 그래서 조중환의 '장한몽'은 번안작을 또다시 번안한 셈이다.


'장한몽'은 "이수일과 심순애"로 수없이 연극무대에 올려졌고 1927년과 1965년에는 영화화 되었다. 내용은 다르지만 "성리수일뎐"으로 만들어지기도 했다. 우리나라 연애소설과 가요와 연극, 영화, 악극 등 많은 분야에 영향을 준 것은 틀림없는 예기다. 황금심, 고복수가 부른 '장한몽'(장한가)은 신파극에서 연기자들이 부르던 곡을 정식 가요로 취입한 것으로 곡조는 일본의 어느 학교교가에서 차용하였다고 알려져 있다. TV 코미디 프로에서 흔히 들었던 대사  "순애야, 너는 김중배의 다이아몬드가 그렇게 탐이 나더란 말이~냐!" 김중배의 다리를 붙잡고 울던 순애가 떠오른다. [출처: 인터넷]