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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생태·건강

[바다코끼리] 수백마리 스스로 절벽에서 뛰어내려 자살

잠용(潛蓉) 2019. 10. 17. 13:31

바다코끼리는 왜 스스로 절벽에서 뛰어내렸을까 [이정아 기자의 바람난과학]
헤럴드경제 2019.10.17. 11:07 수정 2019.10.17. 11:08 댓글 512개


바다코끼리, 스스로 절벽 떨어지는 '이상 행동' 보고
지구 온난화로 유빙 감소 원인
"이대로라면 인류 여섯 번째 대멸종 맞는다"
동물 멸종 막을 기술 속속 도입

[헤럴드경제=이정아 기자] 러시아 북동부 축지해 부근 해안. 무게만 1t(톤)에 달하는 바다코끼리가 짧은 지느러미로 80m 높이의 가파른 절벽에 기어올랐다. 지구 온난화로 해빙이 줄어들어 서식지를 잃은 바다코끼리가 살기 위해 선택한 마지막 방법이었다. 바다코끼리는 절벽이 아닌 해안가로 갈 수도 있었다. 그러나 해안가에는 쉴 공간이 없어 서로 다닥다닥 붙어선 채 몸을 포갠 바다코끼리가 10만8000마리나 됐다. 땅 위에서 무리 밑에 깔려 죽느니 적어도 누울 수 있는 절벽 위가 나았다. 문제는 시력이 나쁜 바다코끼리가 절벽 위에 다다른 순간부터였다.


깎아 세운 듯 가파른 절벽 너머로 푸른 바다가 보였다. 배가 고파진 바다코끼리는 그 푸른 바다가 가까이에 있다고 착각했다. 바다코끼리는 벼랑 끄트머리로 계속해서 나아갔고 그 순간 몸이 미끄러졌다. 이어진 끝없는 추락. 거친 바위 돌이 가득한 절벽 밑에서 내장이 터진 채로, 바다코끼리는 서서히 죽어갔다. 해마다 이곳에서 반복되고 있는 현상이다.


넷플릭스의 다큐멘터리 ‘우리의 지구’(Our Planet)에도 이 같은 바다코끼리의 처절한 모습이 담겼다. 환경운동가이자 영국의 저명한 동물학자인 데이비드 애튼버러 경은 “바다코끼리는 벼랑을 유빙으로 착각하고 나쁜 시력으로 자신이 벼랑 끝에 있다는 사실을 혼동하고 있다”라며 “이런 절박함 속에서 매년 수백 마리의 바다코끼리들이 죽어가고 있다”고 말했다.


▲ 해안가 절벽에서 추락하는 바다코끼리 모습 [자료: 넷플릭스 다큐멘터리 '우리의 지구']


▲ 지구 온난화로 유빙이 감소해 해안가에 몰려든 바다코끼리의 모습

[자료: 넷플릭스 다큐멘터리 '우리의 지구']


지구 여섯 번째 대멸종 시작됐다

= 대표적인 ‘온난화 난민’인 바다코끼리에게 인간은 그저 자신의 서식지를 파괴하는 가장 위협적인 대상이다. 북극여우, 타히티달팽이, 래서판다, 수마트라오랑우탄, 짧은꼬리녹색까치, 훔볼트펭귄, 서아프리카긴코악어, 은색비단털쥐, 다코타팔랑나비, 그레이왕도마뱀 등 100여 종에 이르는 멸종위기종에도 인간은 자신들을 속절없이 사라질 위기에 처하게 만든 다른 종일뿐이다.


이렇다 보니 일부 과학자들은 현재 인류가 지구 역사상 여섯 번째 대멸종을 향해 가고 있다고 말한다. 최악의 경우 모든 생물이 사라지고 인간만이 남는 ‘고립기’가 올 것이라는 전망도 있다. 기후 변화로 인해 추운 산악지대나 극지방의 얼음에 의존해 살아가는 생물을 시작으로 마침내 지구상에 있는 모든 종이 영향을 받게 된다는 것이다.


특이한 점은 소행성 충돌이나 지각변동 등 자연적인 원인에 의해 일어난 지난 다섯 번의 대멸종과 달리, 이번 여섯 번째 대멸종은 인간이 만든 재앙이라는 점이다. 그 진행 속도도 과거보다 1000배 정도 빠르다. 실제로 국제자연보전연맹(IUCN)의 조사 보고서에 따르면 현재 지구상의 생물 종의 4분의 1 이상이 이미 멸종위기에 처해 있다. 우리는 한 생물 종이 모든 생물 종을 멸종시키는 전대미문의 사건 앞에 놓여 있는 것이다.


지난해 맷 데이비스 덴마크 오르후스대학 고생물학과 박사팀이 미국국립과학원회보(PNAS)에 보고한 연구 내용에 따르면 현대 인류가 출현한 이래 300종이 넘는 포유류가 이미 멸종했다. 이 종이 원 상태로 회복하려면 최소 500만~700만 년이 걸린다. 그것도 인간이 50년간 환경 파괴를 하지 않는다는 전제하에서 가능하다. 데이비스 박사는 “공룡을 멸종시켰던 규모의 대멸종 시기에 이미 진입했다”고 설명했다.


멸종을 막기 위한 기술들

= 현실을 피할 방법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다. 전 세계의 과학자들이 동물의 개체 수를 회복시키기 위해 새로운 기술을 도입하는 노력을 기울이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 2월 보존생물학자인 헬렌 피지는 코스타리카의 올리브각시바다거북 밀렵꾼과 맞서 싸우기 위해 3D 프린팅으로 제작한 미끼용 알에 위치추적장치(GPS)를 설치해 이를 바다거북 둥지에 밀어 넣었다. 그 결과 인간이 약탈한 알들이 둥지에서 수 킬로미터 떨어진 내륙의 판매점까지 이동한 경로를 추적해냈다.


케냐의 야생동물 전문가들은 로이사바 야생동물보호구역에 사는 기린의 머리에 난 뼈에 GPS를 부착해 이들에게 얼마나 더 넓은 공간이 필요한지 연구 계획을 세우고 있다. 아울러 희귀한 고릴라를 냄새로 추적하기 위해 개를 훈련하는 연구도 진행 중이다. 최근에는 일본 고베대학 연구팀이 환경DNA(eDNA) 분석법을 활용해 멸종 위기종인 일본 장어의 정확한 서식지를 밝혀내기도 했다. 이는 살아있는 유기체가 아닌 수중에 존재하는 배설물, 점액, 비늘 등을 수집해 유전체 염기서열을 분석해 생물의 서식지를 확인하는 새로운 추적 방법이었다.


한편 지구상에서 생물이 사라지면 인간도 삶의 터전을 함께 잃게 된다. 인권 전문가이자 웨이크 포레스트 대학교 국제법 교수인 존 녹스 국제연합(UN) 특별조사위원은 최근 UN 보고서를 통해 “인권에 있어 생물 다양성과 건강한 생태계가 필수적”이라는 내용을 처음으로 밝혔다. 생물 다양성은 식량, 물, 건강을 유지하는데 꼭 필요하다는 의미다. [dsun@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