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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적의 역사

[흔적의 역사] 후견인 누구를 택할 것인가?

잠용(潛蓉) 2019. 12. 18. 11:58

[이기환의 흔적의 역사]

후견인 누구를 택할 것인가?

경향신문ㅣ2011.12.28 21:24


▲ 후견인 누구를 택할 것인가?


기원전 1046년. 무왕이 은(상)을 멸하고 주나라를 세웠다.
‘창업 스트레스’ 탓일까. 무왕은 불과 2년 뒤 사망하고 만다. 포대기에 싸인 어린 성왕이 뒤를 잇는다. 천하는 불안했다. 은(상) 유민들의 반발이 거셌기 때문이다.
무왕의 동생인 주공(周公) 단(旦)이 어린 조카를 대신, 섭정을 펼친다. 우선 왕실의 일족과 공신들에게 땅을 나눠줬다. 이것이 ‘봉건제’이다. 관직과 행정의 순서를 정한 <주관(周官)>을 지었다. 예의와 법제가 바로잡혔다. 7년 뒤 미련없이 정권을 조카에게 돌려주었다. 공자는 주공을 ‘유교의 성인’으로 추앙했다. 오죽했으면 “주공이 꿈에 나타나지 않는다”고 한탄했을까?


“심하구나, 내가 너무 늙었다. 오래됐구나, 내가 다시 꿈에서 주공을 뵙지 못한 것이.”(<논어> ‘술이·述而’)

기원전 210년. 천하를 통일한 진나라 시황제가 5번째 순행(巡行)에 나섰다가 도중에 죽음을 맞는다. 매일 밤 산더미처럼 쌓인 공문서를 혼자 처리했던, 10년간 5번이나 순행, 즉 ‘현장지도’에 심혈을 기울였던 ‘일중독’ 황제의 최후였다. ‘후계자 처리’가 초미의 관심사였다.


황제는 죽기 직전, 변경에 있던 맏아들 부소(扶蘇)를 후계자로 낙점하는 조서를 작성했다. 하지만 환관 조고(趙高)는 황제의 막내아들(호해·胡亥)과 짜고 조서를 변조했다. 시신은 온량거(온梁車·사진)에 실려 비밀리에 함양(咸陽)으로 운구됐다.


호해는 21살에 황위에 올랐다. 조고가 후견인이 됐다. 조고는 먼저 호해의 피붙이 24명을 도륙했다. 황위에 도전할 싹을 자른다는 것이었다. 아방궁 공사도 재개했다. 신하들이 ‘중단’을 요청했다. 호해는 “내 맘대로 하고 싶어 황제가 됐는데 무슨 잔소리냐”고 호통쳤다. “사람의 머리로 짐승 울음을 낸(人頭畜鳴)” 것이다. 변경 수비와 장성 수축 등에 동원된 백성이 200만명에 달했다. 조고는 한술 더 떴다.


“폐하가 아직 어려 신하들 앞에 나서면 단점만 보입니다. 궁궐 깊숙한 곳에 계십시오. 내가 다 일을 처리하겠습니다.”

호해와 조고는 천하대란의 소용돌이 속에서 비참한 최후를 맞는다. 진 제국은 시황제가 죽은 지 불과 4년 만에 멸망한다. 지금 북한에서는 김정은의 고모부 장성택이 어린 지도자의 후견인으로 등장했단다. 그는 누구를 따를까. 주공인가, 조고인가?
 

<이기환/ 문화·체육 에디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