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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적의 역사

[흔적의 역사] 통일신라시대 ‘복불복 게임’

잠용(潛蓉) 2019. 12. 18. 11:48

[이기환의 흔적의 역사]

통일신라시대 ‘복불복 게임’

경향신문ㅣ2011.12.07 21:03

 

▲ 통일신라시대 ‘복불복 게임’


‘벌주로 원샷 3잔’ ‘무반주 댄스 몸개그’ ‘신청곡 부르기’….
문무왕대(674년)에 조성된 경주 안압지는 통일신라시대 궁중연회장이었다. 1974년. 이 연못 바닥에서 ‘14면체 주사위’를 발굴했다(사진). 각 면에 4~5자의 글씨가 어렴풋이 보였다. 놀이도구였다. 술자리에서 주사위를 던져 14개면에 새겨진 글대로 벌칙을 받았던 ‘주령구(酒令具)’가 분명했다. 통일신라시대판 ‘리얼 버라이어티 복불복’ 게임. ‘삼잔일거(三盞一去)’는 술 석 잔을 ‘원샷’하는 벌칙이었다.

 

이 ‘벌주 삼배’ 전통의 뿌리는 깊다. 왕희지(王羲之·307~365) 때 시작됐다. 풍류가들이 모여 곡수(曲水)에 띄운 술잔이 돌아올 때까지 시(詩)를 짓지 못하면 ‘삼거굉(三巨굉)’의 벌주를 받은 데서 유래했다. 즉 큰 잔으로 술 석 잔을 마셔야 하는 것이다. 그 전통이 신라에까지 이어진 것이다. 주사위를 굴려(던져) ‘삼잔일거’가 나오면 박수를 쳐가며 “삼잔” “삼잔”을 외쳤을 것이다. “원샷!” “원샷!”을 외치듯…. 혹 지금도 유행하는 벌칙인 ‘후래삼배(後來三杯)’의 전통도 예서 나왔을까. 14면체 주령구에는 또 자창자음(自唱自飮·스스로 노래 부르고 마시기)과 음진대소(飮盡大笑·술잔 비우고 크게 웃기) 등의 벌칙도 새겨져 있다. ‘다양한 몸개그 벌칙’과 ‘개인기 발사’도 새겨져 있다. 금성작무(禁聲作무·노래 없이 춤추기)는 무반주 댄스였다. 몸개그였으니 얼마나 어색했을까. 유범공과(有犯空過)는 ‘덤벼드는 사람이 있어도 참기’다. 혹 요즘의 ‘야자타임’? 반말로 바득바득 달려들어도 꼼짝 못하는…. 또 임의청가(任意請歌), 즉 ‘마음대로 노래 청하기’도 수상쩍다. 혹시 ‘신청곡’을 받아 노래부르기? 혹 ‘도전 1000곡’?
      
자창괴래만(自唱怪來晩)은 밤늦게 술 먹고 노래 부르면서 휘적휘적거리며 들어오는 품새(괴래만)를 재연하라는 뜻 같다. 그렇다면 ‘취권’을 흉내 내라는 말인가. 양잔즉방(兩盞則放)은 술 두 잔을 한꺼번에 비우는 것이었다. 공영시과(空詠詩過·시 한 수 읊기)는 나름 고상한 벌칙이었을 터. 하지만 흥취의 술판에 찬물을 끼얹었을 것이다. 이 밖에 중인정비(衆人鼻·여러 사람으로부터 코맞기), 농면공과(弄面孔過·얼굴에 간지럼 태워도 참기) 등도 있다. 1300년 전이나 지금이나 어쩌면 노는 모양이 그렇게 비슷한가. 어떨까. 이번 송년회에서 이 ‘복고’의 놀이를 한번 즐겨보면…. 지금도 손색이 없는 ‘복불복 게임’일 터….


<이기환/ 문화·체육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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