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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 총선

[총선분석] 보수몰락, 그것은 예정된 참패였다

잠용(潛蓉) 2020. 4. 18. 13:11

보수몰락, 예정된 참패였다
경향신문 정용인 기자 입력 2020.04.18. 11:24 수정 2020.04.18. 11:32 댓글 2055개

 

▲ 황교안 미래통합당 총괄선대위원장이 4월 15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도서관에 마련된 제21대 국회의원 선거 개표상황실에서 긴급기자회견을 열고 모든 당직에서의 사퇴를 발표하고 있다. / 이준헌 기자


[경향신문] 예정된 결말이었다. ‘멘붕’은 미래통합당과 그 지지자들의 몫이었다. 이른바 선거 판의 ‘선수’들은 이미 수주 전부터 결과를 알고 있었다. 147석 대 101석. 2주 전 기자가 판세 기사를 쓰면서 취합·계산한 각 당의 의석수다. 선관위의 선거기사 준칙상 판세 기사에서는 구체적 수치를 언급할 수 없다. 믿기 힘든 결과였다. 기사에는 쓸 수 없었지만 그대로만 나오면 더불어민주당의 대승이었다. 울산에서 민주당 측 당선자를 1명으로 잡고, 부산에서 2석을 받는 것으로 계산했는데도 나오는 수치였다. 기사에서는 “각 권역에서 민주당 강세가 지속되고 있다”고 에둘러 표현했다.

 

구체적 결과는 기사에선 쓰지 못 했지만 여·야 정당 관계자들, 여론조사 전문가들을 만나서 각각의 예측치를 취합했다. ‘민주당 압승’은 대체로 2~3주 전부터 전문가들의 의견일치를 본 데이터였다. 통합당 측 전문가도 대체적으로 인정하는 부분이었다. 김장수 제3정치연구소 소장은 “결과 예측이나 전망은 다를 수 있지만 야당이라고 다른 자료를 가지고 그렇게 판단하는 것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4월 15일 저녁에 발표된 방송3사 출구조사 결과와 관련, 그는 “3월 30일 즈음에 치러진 여의도연구소 1차 내부 여론조사 데이터와 거의 동일한 결론이 나온 것 같다”고 말했다. 그 후 2주 동안 반전을 만드는 데 통합당은 실패했다는 지적이다.

 

선거 이틀 전 돌았던 ‘비보도용 민주연구원 판세’라는 제목이 달린 엑셀분석 문서도 마찬가지다. 문서의 분석 결론은 민주당은 최대 155석 우세, 26석이 경합우세로 이 경우 야당의 필리버스터 무력화가 가능하며, 최소 예상은 지역구 133석 이상인데, 이 경우도 비례를 포함하면 과반을 넘을 것으로 보고 있다. 반면 통합당은 44석이 당선권이고 53석이 경합 혼전, “이변이 나더라도 지역구에서 110석을 넘지는 못할 듯”이라고 전망하고 있다. 민주당 전략기획위원회 관계자는 이 파일의 ‘실체’를 묻는 기자들 질문에 자신도 그 파일을 봤다며 “우리가 아니고 아마도 상대방 측이 보수결집을 노리고 만들어낸 마타도어일 가능성이 높다”고 답했다. 그러나 확인결과 통합당 측에서 나온 파일이 아니었다. 여론조사 결과를 집계해 파일을 만든 인사는 “자신이 취합 판세 자료를 만들었을 때와 달리 유포되는 와중에 누군가 관심을 끌려고 ‘비보도용 민주연구원 판세’라는 이름을 붙인 것 같다”고 해명한 것으로 알려졌다.

 

예견되었던 민주당 압승과 보수 궤멸

정확한 지지율은 아니더라도 공표용 여론조사 자료를 활용해 추세 예측 자료를 만드는 것은 어렵지 않다. 중앙선관위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사이트에 들어가면 언론사 의뢰로 여론조사회사가 수행한 여론조사 결과의 원소스(raw data)가 일목요연하게 등록되어 있다. 여론조사 회사별로 다른 항목설계 등은 약간의 가공만 거치면 거의 실시간으로 뽑아낼 수 있다. 게다가 총선의 경우 지역구는 253개에 불과하다. 승패예측의 논리는 단순하다. <신호와 소음> 저자 네이트 실버가 “실제 해보니 야구나 미식축구 경기 승패보다 선거결과 예측이 훨씬 쉬웠다”며 여론조사 분석 전문 사이트 ‘538’사이트를 만든 이유다. 538는 간접선거로 치러지는 미국 대선에서 각 주의 선거인단의 총수다.

 

몇 가지의 데이터를 더하면 이들 선거인단의 투표성향은 사전 예측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같은 논리가 선거 여론조사에도 적용된다. 이번 총선에선 심지어 유튜브에서 실시간 여론조사 분석 데이터를 판별해주는 실시간 방송까지 존재했다.

KBS의 선거관련 캠페인 프로그램에 패널로 참여한 유시민 노무현재단 이사장은 자신이 챙겨본 여론조사기관의 로 데이터에서 여권 180석 달성이라는 결론을 내린 뒤, 선거 나흘을 앞두고 자신이 진행하는 ‘알릴레오’ 방송을 통해 천기누설하는 실수(?)를 저질렀다. 의문은 여기서 제기된다. 미래통합당 측은 이미 수주 전부터 예정된 패배를 왜 막지 못했을까?

 

할 수 있는 것은 선거 며칠을 앞두고 “개헌 저지선만은 막아달라”며 지지자들을 향해 읍소전략을 펴는 것밖에 없었을까? 2018년 지방선거 당시 기자는 민주당이 유례없는 압승을 거둔 선거결과를 두고 “이것은 전략이나 전술적인 오류가 아니라 보다 기저에서 진행되는 변화, 구체적으로 유권자 구성변화가 원인일지 모른다”는 가설을 제기했다. 2002년 노무현 전 대통령 당선 때부터 두드러지기 시작한 유권자 세대 성향 차이는 벌써 20년 가까이 누적됐다. 이원재 카이스트 문화기술대학원 교수는 “처음 세대결집이 일어난 것으로 평가되는 2002년 당시에는 스마트폰도 없었다”며 “큰 추세에서 진보의 파이가 커지는 형태로 선거결과가 달라지는 것은 코호트이펙트가 지속되는 동시에 인구피라미드 구조 자체가 변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간단히 말해, 당시 30대였던 386세대는 자신의 투표성향을 유지한 채 이제 50대가 되었고, 당시 20대이자, 현 50대와 함께 한국사회의 최대 인구구성 그룹인 포스트386은 역시 전국적인 범위에서 진보의 최대 지지자가 되었다는 것이다. 이들이 그 후 근 20년째 준거하고 있는 크고 작은 인터넷커뮤니티 등은 이들이 자신과 동료의 진보성향을 확인하고 토론·검증하는 교류이자 실천 무대다. 이 교수는 인구구성 변화라는 구조적 변화와 동시에 “보수의 ‘시대적 몰락’ 경향이 뚜렷하게 드러나고 있다”고 지적했다.

 

“몰락은 크게 세 단계로 나눌 수 있다. 가장 설득력 있게 자기의 이야기를 할 수 있었던 보수는 고 박세일 교수 같은 분이 중심에 있던 시절의 보수다. 그런 분들이 보수의 주류일 때가 첫 단계, 즉 자기 스스로 시대정신을 만들어낼 능력과 세력이 있던 시절의 전성기 보수다. 둘째 단계가 이명박·박근혜 정부 시기다. 이때는 뭐를 해도 이겼다. 그러다보니 보수 집권당 최고위원 회의에서 <조선일보> 같은 보수매체 사설만 줄줄 읽어도 통하던, 말하자면 보수매체가 어젠다를 세팅해주던 시절이다. 그다음엔? 그런 보수지도 안 읽고 최순실의 주장과 같은 출처불명의 미신이나 이른바 태극기부대·우파 유튜버의 주술 같은 주장에 경도된 현시점이다.”

이 교수는 “한번 그 쇠락의 경로에 들어서면 외부의 충격 같은 대사건이 일어나지 않는 한 그 추세를 거의 바꿀 수 없다”고 덧붙였다.

 

▲ 선거를 사흘 앞둔 4월 12일 서울 청계광장에서 미래통합당 제21대 국회의원 선거 서울 지역 출마자들과 황교안 후보, 유승민 의원 등이 모여 집중유세를 하고 있다. / 이준헌 기자


유권자 구성 변화, 보수 궤멸의 근본 동인

보수 궤멸 또는 몰락이라고 하지만 과연 몰락한 주체가 보수가 맞느냐는 의구심은 끊임없이 제기된다. 실제 2018년 지방선거 당시 “유권자 구성의 변화가 대한민국 주류세력 교체로 이어졌다”는 기자의 기사에 달린 댓글에서 가장 많은 추천을 받은 글은 “우리나라에 보수가 있는가”라는 댓글이었다. 당시 자유한국당 등 이른바 보수세력을 대표한다는 정당은 엄밀히 말해 보수의 가치를 대변하는 정당이 아니며, 수구와 극우를 대변하는 붕당이라는 것이다. “우리나라의 진짜 보수는 대한민국 국민의 안위를 걱정하며 일본과의 갈등 등에서 국익을 수호하는 문재인 정부”라는 댓글도 많은 사람의 지지를 받고 있었다. 그러니까 현 집권당인 민주당이 취하는 정책이나 노선이 오히려 보수이며, 보수를 참칭하고 있는 야당은 보수주의자라면 마땅히 배격해야 할 일본 등 외세의 이익을 대변하는 집단으로 전락했다는 레토릭이다. 얼핏 봐서 정치권의 대립구도가 진보와 보수의 정치적 이념을 둘러싼 대립구도인 것 같지만 실제 그어지는 대치선은 상식과 몰상식, 국익과 정의와 같은 보수주의적 가치에 맞는 과업을 누가 더 잘 수행하느냐를 두고 그어져 있다는 의견이다.

 

사실 큰 그림으로 봤을 때 현재 ‘대한민국 보수’의 기원은 1990년의 3당 합당이다. 1987년 민주화 항쟁 이후 치러진 총선에서 ‘여소야대’라는 민심의 결과를 인위적으로 엎어 3당 합당 참여를 거부했던 호남과 호남을 기반하는 정치 리더십을 포위하는 전략이었다. 다시 말해 대한민국의 보수주의는 이때 정초(定礎)되었다. 박정희 군사독재정권에 저항했던 야도(野都) 부산은 여권의 일원이자 유력 대선주자가 되었던 YS의 변신을 따라 하루아침에 보수로 입장을 바꿨다. 3당 합당으로 만들어진 보수대연합은 역설적으로 지역주의의 그림자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다. 진보를 인위적으로 배제해 호남이라는 지역에 묶어두는 전략을 취했기 때문이다.

 

30년이 지난 지금, 이번 총선 결과를 통해 드러난 최종 모습은 역설적이다. 다수파 기득권 연합·3당 합당 정당인 민주자유당의 맥을 잇는 미래통합당은 이번 총선결과 대구·경북(TK) 지역으로 위축되는 ‘역포위 상태’로 고립됐기 때문이다. 선거컨설턴트 출신인 신철우 더불어민주당 정책위원회 부위원장은 “야권으로서는 애초부터 조국 전 장관 논란과 경제 위기 문제라는 필승카드에 코로나 창궐이라는 상황까지 겹치면서 이번 선거는 실패할 수 없는 선거였다”고 말한다. 그러나 블랙홀처럼 모든 것을 빨아들인 코로나는 극복과정에서 정반대의 결과를 야기했다고 그는 덧붙인다. “전 세계적인 유행병이 된 코로나에 대한 한국 정부의 성공적인 대처가 확인되면서, 민주당의 지지에 거의 매주 대통령 지지율을 5%씩 얹어주는 결과를 가져왔다.”

 

유승찬 스토리닷 대표는 “민주당이 잘해서 이겼다기 보다 문재인 대통령의 코로나 방역대책이 좋은 평가를 받아 중도층이 대거 민주당에 투표한 것”이라며 “보수의 참패는 촛불 이후 달라진 민심을 보수가 전혀 수용하지 않고 오히려 박근혜 대통령 탄핵에 대한 애매한 태도를 보인 점, 막판의 세월호 유족 막말 파동 등으로 국민들에게 미래를 맡길 수 있는 당이라는 신뢰를 주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평가했다.

 

▲ 더불어민주당 이해찬, 이낙연 상임선대위원장과 이인영 원내대표 등이 4월 16일 국회에서 열린 대한민국미래준비선거대책위원회의에 참석하기 위해 회의실로 들어오고 있다. / 김영민 기자

 

예견된 실패 피하지 못한 미래통합당

여기에 미래통합당 지도부, 특히 황교안 대표의 리더십 실패도 지적된다. 유시민 노무현재단 이사장은 4월 15일 저녁 KBS 선거해설 프로그램에 패널로 참석해 “이번 총선 결과 무너진 보수의 재건을 위해서는 2012년 총선 패배 직후 민주통합당이 어떻게 당의 리더십을 재건해냈는지를 연구해볼 필요가 있다”라고 지적한다. 그런데 통합당의 창당 과정에서 이미 이 2012년 민주통합당의 경험은 깊게 연구된 바 있다. 기자가 입수한 미래통합당 측의 ‘보수·중도 대통합 플랜’ 내부문서에는 민주당 측의 이 2012년 사례의 교훈이 10여 페이지가 넘게 리뷰돼 있다. 이 문서는 이주영 국회부의장을 중심으로 지난해 6월부터 워킹그룹을 만들어 작성·시행된 문서다.

 

문건을 제보한 인사는 이번 총선에서 통합당의 통합 행보를 복기해보면 한 가지 빠진 큰 그림이 있다고 주장했다. “바로 불출마를 선언한 유승민 의원과 황교안 대표가 만나 의기투합하는 장면이다. 적어도 불출마 선언 직전이나 직후에 그런 회합이 있었어야 했지만 너무 늦게(4월 12일 합동유세) 이뤄졌다.” 이 인사의 주장에 따르면 그런 노력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언론인 출신의 당 인사가 통합의 컨벤션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해서 두 사람 사이에서 만남을 조율하는 역할을 했지만 최종적으로 실패했다는 것이다. 불출마 선언을 한 유승민 의원은 선거운동 기간의 거의 마지막 순간까지 두문불출하며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결국 장고 끝에 악수’가 되고 만 황교안 대표의 종로 출마 결단의 컨벤션 효과가 지속되기 위해서는 당내 주요 대권주자들의 ‘자기희생’, 구체적으로 종로를 둘러싼 서울의 네 개 권역에 출마하는 계획을 내놓았지만, 홍준표 전 대표나 김태호 후보 등이 거부하면서 그림이 어그러지게 되었다는 것이다. 과연 그럴까? 이 부분은 앞으로 구체적인 증언을 통해 규명해야 할 대목이다. ‘민주당 압승’으로 귀결된 이번 총선 결과는 여러모로 역사적인 사건이다. 단순 수치로만 비교할 때 대한민국 수립 후 치러진 선거에서 단일 정당으로서는 최대 의석을 얻은 기록이다. 종전까지 기록은 이승만 정권 몰락 후 치러진 5대 민의원 선거에서 당시 민주당이 받은 175석(선출 의석 233석)이 가장 많았다. 전국 단위의 선거에서 한 정당이 연속해서 4승을 거둔 선거도 최초다.

 

박신용철 더체인지플랜 선임연구원은 “지난 지방선거 때도 그랬지만 이번과 같은 결과는 앞으로도 상당히 오랫동안 깨기 힘든 기록일 것”이라며 “전투에서는 이겼지만 그렇다고 전쟁에서 승리했다고 말하긴 어렵다”고 덧붙였다. 보통 정권 중반기 이후에 치르는 총선은 회고적 성격을 갖는 심판선거일 가능성이 많은데, 보통 중간선거 즉, 전투에서 이긴 정당이 그다음에 치르게 될 더 큰 전쟁(대선)에서 이긴 경우가 거의 없다는 것이다. 그는 “총선에서 압승한 여당과 문재인 정부는 이제부터 자신들만의 실력으로 정국을 돌파해야 한다. 개혁추진 실패를 더이상 야당의 발목 잡기 탓으로 돌리지 못하게 된 것”이라며 “이 국면에서 여당이 자기역할을 못 하면 민주당과 통합당의 종전 대립구도를 넘어서 새로운 판갈이를 요구받는 순간이 올지 모른다”고 덧붙였다. [정용인 기자 inqbus@kyunghyang.com]

 

샤이 보수는 왜 모습을 안 드러냈나?
경향신문ㅣ윤호우 선임기자 입력 2020.04.18. 11:24 수정 2020.04.18. 11:28 댓글 933개

 

[경향신문] 제1야당인 미래통합당이 마지막까지 기대했던 것은 ‘샤이 보수’였다. 평소에 보수성향을 갖고 있지만 여론조사에서는 드러내지 않은 샤이 보수가 대거 투표장에 나가 보수정당을 찍을 것이라 전망한 것이다. 때문에 여론조사에서 통합당 후보가 10%포인트가량 밀리더라도 선거에서 충분히 승산이 있다고 봤다. 4월 15일 저녁 출구조사 결과가 패배로 발표된 이후에도 통합당 측은 기대를 접지 못했다. 하지만 여론조사에서 열세였던 후보들은 낙선했다. 심지어 여론조사에서 박빙이었던 지역도 대부분 더불어민주당의 승리로 나타났다.

 

▲ 4월 15일 서울 마포구 서울동교초등학교에 마련된 망원2동 제3투표소에 시민들이 투표하기 위해 길게 줄을 서 있다.  /연합뉴스

 

거대 양당 정면충돌로 ‘숨은 표’ 사라져

실제 총선 결과 ‘샤이 보수’는 거의 없었다. 영남권을 제외한 전국에서 ‘샤이 보수’ 현상은 나타나지 않았다. 수도권에서 민주당은 거의 모든 지역구를 휩쓰는 압승을 거뒀다. 민주당은 서울에서 전체 49석 중 41석을, 경기도에서 59석 중 51석을, 인천에서는 13석 중 11석을 차지했다. 샤이 보수가 있었다면 도저히 이뤄질 수 없는 현상이다. 여론조사 전문가들은 샤이 보수가 아예 존재하지 않았다고 보고 있다. 안일원 리서치뷰 대표는 “국면에 따라 샤이 보수가 있을 수는 있지만 이번 총선을 앞두고 샤이 보수는 거의 없었다”면서 “샤이 보수가 투표장에 나오지 않은 게 아니라 아예 없었다”고 말했다. 안 대표가 이번 총선을 앞두고 4월 14일 작성한 리서치뷰의 보고서에는 “샤이 보수는 가상 번호 조사가 도입된 이후 ARS(자동응답시스템) 조사 기준 대략 1∼2%포인트 수준으로 미미하다”면서 “이번 총선에서 샤이 보수는 특별한 변수로 작용하지 못할 것”이라고 나타나 있다. 샤이 보수가 존재하지 않는다면 여론조사에서 통합당 후보가 10%포인트 차이로 지고 있을 경우 실제로 그 정도 차이가 난 것으로 봐야 한다.

 

이같이 샤이 보수가 나타나지 않은 이유로는 거대 양당이 정면으로 격돌하는 양상이 첫 번째 요인으로 지적됐다. 안 대표는 “제동장치가 없는 두 개의 지각판이 정면충돌했던 양상”이라면서 “양측 지지층이 대거 결집했다”고 말했다. 이 상황에서 ‘샤이 보수’가 있을 공간이 없었다는 것이다. 엄경영 시대정신연구소 소장은 “그동안 통합당은 열세를 인정하면서도 ‘숨은 표’로 1당은 문제없다고 주장했다”면서 “하지만 숨은 표는 투표율이 높거나 진영 대결이 격화하면 잘 나타나지 않는다”고 말했다.

 

‘숨은 표’란 샤이 보수와 같이 여론조사에서 나타나지 않지만 실제 투표 결과에서 나타나는 표를 말한다. 엄 소장은 “여론조사에서 일정 비율에 따라 고령 응답자와 20대 응답자의 표본을 정한다”면서 “하지만 실제 투표에서는 고령 유권자의 투표율이 높고, 20대 유권자의 투표율이 낮게 되면 편차가 발생하게 되는데, 이를 ‘숨은 표’로 보게 된다”고 말했다. 이런 ‘숨은 표’가 고령 유권자에게서 편차를 갖게 되고, 대부분 보수성향을 띠기 때문에 ‘샤이 보수’로 해석하게 되는 것이다.

엄 소장은 “이번 총선에서는 고령 유권자의 투표율과 20대 유권자의 투표율이 다 같이 높아져서 샤이 보수라고 하는 편차가 존재하지 않았다”며 “게다가 고령 유권자 중 50대가 대거 민주당을 지지하면서 샤이 보수라는 편차가 거의 없어졌다”고 말했다. 엄 소장은 “이번 총선에서 표가 숨어 있을 곳이 없었다”고 말했다.

 

여론조사 전문가들에게 가장 곤란한 연구대상은 샤이 보수나 샤이 진보였다. 2016년 20대 총선에서는 여론조사를 통해 당시 여당인 새누리당의 압승이 점쳐졌지만, 투표 결과는 달랐다. 민주당이 비록 한 석 차이지만 새누리당을 누르고 제1당이 됐다. 진보임에도 불구하고 여론조사에서 진보임을 밝히지 않은 ‘샤이 진보’들이 투표장으로 대거 나섰다는 분석이 나왔다. 때문에 통합당에서는 20대 총선의 ‘샤이 진보’처럼 21대 총선에서 ‘샤이 보수’의 등장을 잔뜩 기대했다. 역대 총선에서 ‘샤이 보수’는 2004년 17대 총선에서 많았던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당시 노무현 대통령의 탄핵 역풍이 크게 불었다. 여론조사에서 열린우리당의 압승이 점쳐지는 상황에서 정동영 의장의 ‘노인 폄훼 발언’ 논란이 일었다.

 

선거에서는 탄핵 역풍 때문에 숨을 죽이고 있던 샤이 보수표가 쏟아져 나왔다. 열린우리당은 152석이라는 과반 의석을 얻는 데 만족해야 했다. 안일원 대표는 “당시 노인 폄훼 발언 논란 직전 여론조사 결과와 비례대표 정당득표율을 고려할 때 샤이 보수 규모는 16%포인트가량으로 추정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보수정당인 한나라당이 121석을 얻는 데에는 샤이 보수 16%포인트가 큰 역할을 했다는 것이다.2017년 초 박근혜 대통령의 탄핵 이후 샤이 보수는 다시 생겨났다. 여론조사에서 보수성향임을 감춘 응답자가 많아졌다. 때문에 2018년 지방선거에서 자유한국당은 ‘샤이 보수’의 존재를 기대했다. 하지만 참패로 끝나면서 ‘샤이 보수’가 끝내 투표장에 나타나지 않았다는 해석이 나왔다.

 

▲ 4월 15일 저녁 울산시 북구 오토밸리복지센터에서 개표 작업이 이뤄지고 있다. / 연합뉴스


“수도권은 샤이 보수를 담을 그릇이 없다”

이번 총선에서도 ‘샤이 보수’는 통합당의 기대만 불러일으켰다. 홍형식 한길리서치 소장은 “이번 총선에서 여론조사 결과 보수성향이 30% 가깝게 나왔다”면서 “샤이 보수는 지난해 조국 법무부 장관 사태 때 이미 커밍아웃을 해 자신을 보수라고 대답하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여론조사에서 보수성향을 감춘 ‘샤이 보수’가 아니라, 분명히 ‘보수’라고 입장을 표명했다는 것이다. 홍 소장은 “이들은 ‘샤이 보수’가 아니라 ‘샤이 통합당’으로 문재인 정부를 심판하는 입장이지만 통합당 지지자라고 떳떳하게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정치권에서는 샤이 보수를 다른 시각으로 보기도 했다. 여론조사에서 10%포인트가량 지는 통합당 수도권 후보에 대해 통합당의 한 인사는 “여론조사에서 10%포인트 뒤지는 것은 영남권과 수도권을 다르게 봐야 한다”면서 “영남권은 통합당이 조직을 갖고 있기 때문에 10%포인트 차이를 극복할 수 있지만, 수도권은 이미 2018년 지방선거에서 패배함에 따라 통합당의 조직이 무너졌기 때문에 차이를 극복할 수 없다”고 했다. 이 인사는 “샤이 보수를 담기 위해서는 조직이 중요한데 지금 수도권에서 샤이 보수를 담을 그릇이 없다”고 말했다. 이번 총선에서 샤이 보수는 영남권에서 막판에 나타났다고 볼 수 있다. 안 대표는 “수도권을 비롯한 비영남권에서 사전투표율이 높아지면서 4월 15일 영남권과 서울 강남벨트, 분당 등지에서 보수표가 대거 결집한 것으로 보인다”면서 “이를 굳이 이름 붙이자면 샤이 보수라고 할 수 있다”고 말했다. [윤호우 선임기자 hou@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