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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찰개혁

[조정은] 박지원 만나기 전날 밤... 자료 106건 캡처

잠용(潛蓉) 2021. 9. 14. 07:34

[단독] 박지원 만나기 전날 밤... 조성은, 자료 106건 캡처
중앙일보ㅣ김기정 입력 2021. 09. 14. 05:01 수정 2021. 09. 14. 06:41 댓글 1781개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의 윤석열 전 검찰총장 전격 입건에 맞서 국민의힘이 ‘박지원 국가정보원장 기획설’로 총반격에 나서면서 이른바 ‘고발사주’ 의혹을 둘러싼 여야간 갈등이 가팔라지고 있다. 특히 국민의힘 지도부는 13일 “제보자 조성은씨가 박 원장을 만나기 전후로 김웅 국민의힘 의원과의 텔레그램 대화방 내용을 캡처 등의 방법으로 집중적으로 저장했다”고 주장하며 박 원장 관련 의혹을 더욱 강하게 제기했다. 이와는 별도로 윤 전 총장 캠프는 이날 박 원장과 조씨를 공수처에 고발했는데, 지난 8월 11일 소공동 롯데호텔에서 진행된 두 사람의 식사자리에 동석했다며 '성명불상자 1명'을 고발대상에 추가로 포함시켰다. 이에 따라 이번 사건이 제3자 개입 의혹으로 확산될 가능성을 배제하기 힘들게 됐다.

"박지원 만남 전후 휴대전화 다수 캡처"

▲ 조성은씨가 김웅 국민의힘 의원과의 텔레그램 대화방을 지난 8월 10일 캡처한 휴대 전화 사진(좌측) 시각과, 해당 파일의 상세정보(우측)에 나온 시각이 ‘10:15’로 동일하다. /국민의힘 제공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는 이날 오전 국회에서 열린 당 최고위원회의에서 “박지원 국정원장이 8월 11일 서울 모 호텔에서 제보자를 만났다고 하는데, 공교롭게도 같은 달 10일과 12일에 휴대전화 캡처된 메시지들이 언론에 공개됐다”며 “이런 것들이 야권 대선 후보 및 인사의 공격에 사용됐다”고 주장했다. 실제로 중앙일보가 입수한 해당 자료에 따르면 조씨가 김웅 국민의힘 의원과의 텔레그램 대화방 내용을 캡처 및 다운로드한 파일 총 143건 중 106건이 박 원장을 만나기 전날인 8월 10일 오후 10시 무렵 이뤄진 것으로 나타났다. 조씨는 박 원장 만남 다음 날인 12일에도 김 의원과의 대화방 화면을 두 건 더 캡처했다. 조씨가 확보했다는 텔레그램 대화방 3분의 2 이상의 캡처 또는 다운로드 작업이 이 때 이뤄졌다.

이와 관련해 이 대표는 “박 원장이 모종의 코치를 한 게 아닌지 의심할 수밖에 없다”며 “의문 사안에 대해 조씨가 아닌 국정원장의 입으로 즉각 해명하라”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조씨는 이날 중앙일보와의 통화에서 “뉴스버스의 ‘고발사주’ 의혹 보도를 당시 원치 않았기 때문에, 일방적인 보도 이후 상황을 대비하기 위해 사전에 확보해 둔 방어용 증거”라며 “박 원장의 코치를 받기 위해서라면 만남 이후에 확보에 나섰어야 하는 것 아니냐. 박 원장과는 전혀 관련이 없는 사안”이라고 주장했다.

조씨는 “이미지 파일 140여건이 담긴 자료는 대검찰청과 공수처 등 수사기관에만 제출했다. 뉴스버스를 비롯한 다른 언론사에 전혀 제공한 적이 없다”며 자료 유출과 관련한 새로운 의혹도 제기했다. 그는 “뉴스버스도 최초 보도 당시 고발장이나 관련 자료 등을 갖고 있지 않았다”며 “며칠 뒤에 다른 언론사가 텔레그램 자료 전문을 입수했다고 보도하길래 깜짝 놀랐다”고 말했다. 조씨는 “자료 유출 정황을 공수처에도 다 설명했다”고 덧붙였다.

野 "'우리 원장님' 발언, 박지원 개입 자백"

▲ 사진은 지난 2018년 1월 12일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국민의당지키기운동본부 전체회의에서 박지원 국민의당 전 대표(현 국가정보원장)와 조성은 전 미래통합당 선대위원회 부위원장이 대화를 하고 있는 모습. /뉴스1

야권에서는 이날 지난달 11일 외에도 지난 2월 박 원장이 국정원장 공관에서 일부 전직 야당 의원과 저녁 식사를 함께 한 자리에도 조씨가 동석했다는 사실을 강조하는 등 두 사람의 친밀한 관계를 부각했다. 야당은 두 사람이 단순한 지인관계가 아니라 정치적으로 긴밀하게 연계돼 있다고 보고 있다. 특히 지난 8월 11일 만남과 관련해 조수진 국민의힘 최고위원은 이날 최고위에서 “박 원장이 조씨와 호텔에서 회동한 것은 올해 들어 남북관계 긴장감이 최고조일 때”라며 “(만남 전날인) 10일에 김정은의 여동생인 김여정이 한·미연합훈련을 맹비난하고 주한미군 철수 요구를 하며 연결됐던 남북통신선을 다시 끊었다”고 말했다. 이어 조 최고위원은 “안보 위기 속에 대한민국 국정원 수장은 서울 시내 유명 호텔에서 오찬을 했다”며 “지금까지 정황만으로도 문제의 회동에서 대선을 앞두고 모종의 정치 공작이 이뤄졌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남북관계가 위급한 상황에서 이뤄진 현직 국정원장과 조 씨의 만남이 단순한 친목 활동일리 없다는 주장이다.

여기에 조씨가 전날 SBS 인터뷰에서 "사실 9월 2일(뉴스버스 최초 보도)이라는 날짜는 우리 원장님(박 원장)이나 제가 원했던 거나 제가 배려받아서 상의했던 날짜가 아니거든요”라고 말 한 것도 야당의 '박 원장 기획 주장'에 기름을 부었다. 김기현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해괴망측한 발언이다. 박 원장이 이 사건에 깊숙이 개입된 걸 자백한 것”이라고 했다. 이에 조씨는 라디오 인터뷰 등을 통해 관련 발언을 “얼떨결에 나온 표현”이라며 “(박 원장과) 전혀 상의하지 않았을뿐더러, 박 원장은 이 내용 자체를 인지도 못 했다”고 반박했다.

박 원장도 이날 언론 인터뷰를 통해 “야당이 헛다리를 짚는 것”이라며 기획설 주장을 일축했다. 그러면서 박 원장은 “이 사건의 본질은 이게 아니지 않나”라며 “왜 이게 본질인 양, 단역도 아닌 사람을 주연배우로 만들려고 하나”라고 덧붙였다. 하지만 국민의힘은 대정부질문에서 “(박 원장과 가까운 전직 의원에게 들었는데)조씨가 이 사건 관련 자료를 보도 전에 박 원장에게 사전에 보내줬다고 한다”(권성동 의원)라며 공세의 고삐를 더욱 조였다.

윤석열 "동석자 있었다" 제3자 개입설 확산

▲ 윤석열 국민캠프 정치공작 진상조사 특별위원회 소속 박민식(가운데) 전 의원과 변호인들이 13일 오전 정부과천청사 앞에서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에 박지원 국정원장과 조성은 씨 등을 국가정보원법 및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로 고발장을 접수하기 위해 고발장을 들고 이동하고 있다. /연합뉴스

정치권에선 박 원장과 조씨의 지난달 11일 만남에 정보 분야에 밝은 정치권의 A씨가 동석했다는 이야기도 돌고 있다. 윤 전 총장 캠프의 ‘정치공작 진상조사 특별위원회’가 이날 오전 공수처에 “박 원장과 조씨, 그리고 성명불상자 1인을 국가정보원법 및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로 고발했다”며 고발대상자를 3명이라고 밝힌 것도 같은 맥락이다. 이날 오후 SK바이오사이언스를 방문한 뒤 기자들과 만난 윤 전 총장은 “당과 캠프에서 들었는데 그 자리에 동석자가 있다고 한다. 그리고 그걸 거의 확인한 사람들이 있다고 한다”며 “그래서 ‘여러 가지 방법을 사용하면 동석자의 신원이 특정되지 않겠냐’고 해서 고발장에 동석자를 넣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고 말했다. 윤 전 총장 측의 주장대로 동석자의 존재가 확인될 경우 동석 이유와 정치적 의도 등을 놓고 논란이 확대될 수 있다. 하지만 조씨는 “11일엔 박 원장과 저 둘뿐이었다. 그 외엔 경호원만 가득했다”고 했고, A씨 역시 중앙일보와의 통화에서 “박 원장과 조씨를 만난 적이 없다”고 했다.

[김기정 기자 kim.kijeong@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