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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민속·역사

[고양여행] 최영장군 묘에 600살 은행나무까지... 지금 걷기 딱 좋은 길

잠용(潛蓉) 2021. 11. 18. 16:35

최영장군 묘에 600살 은행나무까지... 지금 걷기 딱 좋은 길
오마이뉴스ㅣ고양신문 유경종 2021. 11. 18. 12:06 수정 2021. 11. 18. 13:57 댓글 62개

[유경종 기자의 하루여행] 고양누리길
[고양신문 유경종]
석 달 가까이 매주 고양누리길을 걷다 보니 그동안 보지 못했던 것을 보게 된다. 산길·물길의 흐름과 연결이 머릿속에 그려지고, 예전부터 있었던 것들과 새로 만들어지는 것들 사이의 보이지 않는 긴장감도 감지된다. 무엇보다도 평범히 지나쳤을 장소들의 숨은 매력을 알게 된 것은 가장 큰 기쁨이다. 물론 고양시에 산다고 해서 이런 것들을 꼭 알아야 할 필요는 전혀 없다. 다만 일상 속 여가를 보다 풍성하게 즐기기 위한 아이템으로 고양누리길 나들이가 꽤 괜찮은 선택지라고 말하고 싶을 뿐이다. 어느덧 세 코스만 더 소개하면 누리길 연재의 종착점에 닿는다. 오늘은 고양누리길 12코스, 조선시대 고양군의 역사가 곳곳에 남아 있는 고양동누리길 7.1km를 함께 걸어보자.  
 

▲  대자산에 자리한 최영 장군 묘를 두른 아름다운 곡장. ⓒ 고양신문

 

▲  통일로 휴게소에 서 있는 제24회 서울올림픽 기념비. ⓒ 고양신문
   

▲  기념비 기둥 뒷면에 새겨진 88올림픽 마스코트 호돌이. ⓒ 고양신문


호돌이가 반기는 통일로 휴게소 
고양동누리길이 시작되는 필리핀군 참전기념비 건너편, 고풍스러운 팔각정이 있는 공원은 과거 통일로 휴게소가 운영됐던 곳이다. 몇 해 전부터는 공원 전면에 여러 개의 태극기가 상시 게양되며 관산동 태극기공원으로 불리기도 한다. 팔각정 공원에는 제24회 서울올림픽 기념비가 서 있다. 88올림픽 때 사이클 도로경기가 열린 역사적 장소이기 때문이다. 비석 기단부에는 당시 사이클경기 참가국과 입상자들의 이름이 상세히 적혀 있고, 기둥 전면에는 88올림픽 엠블렘이, 뒷면에는 88올림픽 마스코트인 호돌이가 귀여운 미소를 지으며 S자 상모를 휘날리고 있다. 역대 올림픽 마스코트 중 가장 인기 있는 디자인으로 평가받는 호돌이는 중년 이상의 세대들에게 반가운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캐릭터임에 틀림없다.

커다란 자비를 기원하는 대자동

 

▲  대자동길 초입에 줄지어 늘어선 묘역 입구 비석들. ⓒ 고양신문


 나들이길이 시작되는 대양로 초입에는 열댓 개에 이르는 비석들이 줄지어 있다. 최영 장군, 성령대군 등 대자산 기슭 곳곳에 자리한 역사 인물들의 묘역 입구를 나타내는 이정표들이다. 이렇게 많은 역사 인물들이 한 마을에 잠들어 있는 곳이 또 있을까 싶다. 대자천 물길을 따라 관산25통 마을회관까지 1km 남짓 단조로운 찻길이 이어지지만, 붉게 물든 단풍나무가 가을 정취를 더해주는 덕분에 지루함을 잊는다. 고양동누리길은 마을회관을 지나 대자산 숲길로 이어지는데, 시간이 허락된다면 인근에 자리한 영사정과 성녕대군묘를 들러봐도 좋겠다. 영사정은 조선 숙종 때 왕비 인원왕후 김씨의 부친인 경원부원군 김주신(金柱臣)이 1709년에 지은 집을 2014년 복원한 건물로, 고양에서 가장 아름다운 한옥으로 손꼽힌다. 고택 옆 언덕에서 바라보는 북한산 경관도 일품이다.   

성녕대군은 태종의 넷째 아들, 그러니까 세종대왕의 친동생이다. 총명했던 막내 아들이 십대의 어린 나이에 요절한 것을 안타깝게 여긴 태종임금이 묘역을 커다랗게 조성한 것으로 전해진다. 성녕대군의 명복을 빌기 위해 대자암(大慈庵)이라는 암자를 지은 이후 이 일대가 대자동이라는 이름을 얻게 됐다.

대자산 산길을 오르기 전에 만나는 최영장군 기림비
   

▲  대자산 산길을 오르기 전에 만나는 최영장군 기림비. ⓒ 고양신문


대자산으로 들어서는 길은 고려 말의 명장 최영 장군을 알현하러 가는 길이기도 하다. 산길 초입에는 몇해 전 최영 장군 탄생 700주년을 맞아 고양문화원에서 세운 최영 장군을 기리는 석비가 서 있는데 전면에는 '황금 보기를 돌같이 하라'는 장군의 좌우명이, 뒷면에는 장군의 연대기가 새겨져 있다.  대자산을 찾으며 기억해야 할 또 하나의 장면이 있다. 바로 1919년 기미년 봄에 벽제면 대자리와 고양리 주민들이 대자산에 올라 만세를 외쳤던 '산상만세운동'이다. 일경의 탄압을 피해 대자산에 오른 30여 명의 주민들은 횃불을 피우고 밤이 새도록 만세를 외치며 저항을 이어갔다는 기록이 전해온다. 대자산 산상(山上)만세운동은 앞서 행주산성역사공원에서 만났던 선상(船上)만세운동과 함께 잊지 말아야 할 고양의 소중한 역사다.  

해발 210m의 나지막한 산인 대자산 숲길은 초입부터 만추(晩秋)의 계절색이 가득하다. 바닥에는 모양이 제각각인 여섯 종 참나무들의 낙엽들이 두툼하게 깔려 발걸음을 옮길 때마다 바스락 소리를 낸다. 단풍과 낙엽이야 도심 공원에서도 만날 수 있지만, 이처럼 압도적인 낙엽 풍경을 만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일 년에 딱 며칠 사이에, 대자산처럼 낙엽목이 울창하면서도 인적이 드문 숲길을 찾아야만 가능한 경험이기 때문이다.  

아름다운 곡장 두른 최영장군 묘
 

▲  최영장군과 부친 최원직공의 묘. ⓒ 고양신문


넓고 완만한 길을 따라가다가 최영 장군 묘 돌계단길과 마주한다. 고려 말의 명장 최영 장군(崔瑩 將軍, 1316~1388)은 고양을 대표하는 역사 인물이다. 의로운 영웅의 억울한 죽음은 집단의 기억 속에 오래도록 각인되는 것일까. 외적과 싸워 혁혁한 전공을 세운 명장이지만, 국운이 기울어가는 고려를 지켜내기 위해 마지막까지 신념을 지키다가 희생된 최영 장군은 고양지역 일대의 무속신앙에서 가장 영험한 힘을 지닌 장군신(將軍神)으로 모셔지고 있다. 단아하게 이어진 100여 개의 돌계단을 따라 올라가면 돌로 쌓은 기단 위에 상·하 두 기의 봉분이 나타난다. 최영 장군과 부친 최원직 공의 무덤이다. 무덤은 우아한 곡장(曲墻)에 둘러져 있는데, 무덤 뒤편으로 올라가서 내려다보면 곡장과 무덤 전경을 가장 아름다운 구도로 감상할 수 있다.  

중국 사신을 맞이했던 의주길

 

▲  의주로 구간의 계단숲길. ⓒ 고양신문


묘소에서 산길로 들어서는 길목에는 작은 산신제단(山神祭壇)도 눈에 들어온다. 고양누리길을 걷다 보면 종종 마을 토지신과 산신에게 제를 올리는 제단들을 만나곤 한다. 여기서부터 고양향교까지 1km 남짓의 산길이다. 낙엽들이 펼치는 가을 잔치는 대자산 숲길 내내 이어진다. 산길 중간쯤에 대자산 정상과 향교 방향으로 갈라지는 삼거리를 지나면, 이내 내리막길이다. 숲 사이로 언뜻언뜻 고양동 아파트단지가 보일 즈음, 나뭇가지위에 '의주길' 리본이 등장한다. 조선시대 중국 사신을 맞았던, 고양과 파주를 잇는 옛길을 따라 경기문화재단에서 조성한 역사기행 코스가 바로 의주길이다. 

울긋불긋 단풍에 물든 고양향교
  

▲  고양향교의 가을 정취. ⓒ 고양신문

   
산기슭을 따라 들어선 텃밭과 농장을 지나오면 멀리 돌담장과 한옥 건물이 보인다. 고양향교(高陽鄕校)다. 이곳 역시 일 년 중 가장 멋진 풍경을 나들이꾼에게 선사한다. 노오란 은행나무와 붉은 단풍나무가 우아한 맵시를 자랑하는 한옥 지붕과 어우러진 풍경이 말 그대로 한폭의 그림이다. 고양향교 바로 옆은 고양시가 보유한 또하나의 문화 자산인 중남미문화원이 자리하고 있다. 중남미 여러 나라의 독특한 유물과 미술품들을 소장하고 있는 이곳 역시 아름답게 조성된 정원 나들이 명소로도 인기가 높다. 

600살 은행나무의 찬란한 생명력

 

▲  수령 600년을 자랑하는 고양동 향교골 은행나무. ⓒ 고양신문


중남미문화원 주차장에서 고양동누리길 코스는 길 건너 언덕길로 이어지는데, 아래쪽 고양동 중심가를 건너뛰기에는 아쉬움이 남는다. 이름에서 알 수 있듯 고양동은 오랜 세월 고양지역의 중심지였기 때문이다. 조선시대 고양군청(高陽郡廳)과 중국 사신을 맞이하는 영빈관(迎賓館)이었던 벽제관(碧蹄館)이 바로 이 마을에 자리했다. 벽제관로를 따라 마을로 내려오면 고양동의 오랜 역사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나무 하나가 나타난다.

 

높이가 24m, 밑동 둘레가 7m에 이르는 고양동 은행나무다. '향교골 은행나무'로 불리며 600여 년 세월동안 마을의 수호목으로 한 자리를 지킨 이 나무는 그동안 옹벽과 잡목림에 가려져 있었는데, 최근 주변을 깔끔한 공원으로 정비해 행인들에게 우람한 자태를 온전히 드러냈다. 가까이에서 올려다본 은행나무는 노거수(老巨樹) 특유의 아우라를 나무랄 데 없이 발산한다. 밑동이 하나로 합쳐진 암·수 두 그루가 서로 다른 수형으로 가지를 뻗고 있었고, 600살이라는 나이가 무색하게 나무 전체에 찬란한 생명력이 넘쳐 흘렀다.
  
주춧돌만 쓸쓸히 남은 벽제관지

 

▲  고양동 선정비군. ⓒ 고양신문


붉은 단풍길이 화사한 공원을 지나면 사적 제144호인 벽제관지에 닿는다. 비록 건물들은 일제강점기와 한국전쟁을 거치며 모두 훼손됐지만, 남아있는 주춧돌만으로도 과거의 웅장했던 규모를 짐작케 한다. 벽제관지를 지나면 조선시대부터 근대까지 고양동을 거쳐간 지방관리들의 치적을 기리는 비석들이 모여있는 고양동 송덕비군(頌德碑群)과 또다른 보호수인 수령 500년의 느티나무 3그루도 차례로 만나볼 수 있다. 

신선이 노닐었다는 마을 선유동

 

▲  호젓한 선유동 마을 전경. ⓒ 고양신문


누리길은 고양동 시내를 벗어나 벽제천과 호국로 큰길을 차례로 건너 응달촌마을로 들어선 후, 선유동으로 넘어가는 성황당 고갯길로 접어든다. 지금은 나들이꾼만 간간이 걷는 오솔길이지만, 과거 사신들의 연행로인 의주로가 바로 이 코스로 이어졌다. 고갯길에는 옛사람들이 이용했다는 작은 샘터와 돌무지 흔적도 남아있다. 고갯길을 벗어나면 키가 큰 전나무숲과 마당 넓은 저택들이 차례로 나타난다. 신선이 내려와 노닐만한 동네라는 이름이 딱 어울리는 선유동(仙遊洞)이다. 이제 누리길은 마을을 가로지른 서리골길이라는 차도를 따라 걷게 된다. 비록 차량통행이 많은 도로는 아니지만, 차도와 인도 구분이 없는 길이니만큼 오가는 차량을 유의하며 걸어야 한다.

 

도로변에는 '까마귀 검다하고 백로야 웃지마라…'로 시작하는 오로시(烏鷺詩)로 유명한 문경공 이직(文景公 李稷, 1362~1431)의 묘가 있다. 이직 선생은 고려 공민왕 때 관직을 시작해 조선 세종 때  영의정까지 지냈다. 선유동은 고양시에 남아 있는, 자연마을의 정취를 간직한 몇 안 되는 마을 중 하나다. 야트막한 야산에 둘러싸인 선유동의 가을 풍경이 더없이 느긋하다. 

나에게 선물하는 시절 인연의 호사

 

▲  고양동누리길의 종점이자 오선누리길의 시작점인 안장고개. ⓒ 고양신문


서리골길이 호국로와 만나는 어귀가 고양동누리길의 종착점인 안장고개다. 안장고개에서 왼쪽 언덕 숲길로 들어서면 고양누리길의 다음 코스인 오선누리길이 시작된다. 원당과 통일로, 고양동을 지나 장흥·의정부로 이어지는 호국로 길가에는 주차장 넓은 식당들이 줄지어 있다. 나들이를 마무리하며 한나절의 여정을 되돌아본다. 대자산과 고양동 지역의 여러 유적들이 풍성한 역사 이야기를 들려줬다면, 대자산과 선유동 마을의 아름다운 자연은 멋진 단풍과 낙엽 잔치를 베풀어줬다. 가을날의 추억 한 자락이 잘 마른 떡갈나무잎처럼 가뿐하게 마음에 내려앉는다. 좋은 시절에 좋은 길을 걷는다는 것은 스스로에게 선물하는 시절인연(時節因緣)의 호사다. 

고양동 누리길 걷기 정보
 

▲  고양동누리길 걷기 정보. ⓒ 고양신문


- 코스 길이 : 7.1㎞
- 소요 시간 : 2시간40분~3시간
- 출발점 : 통일로변 필리핀군 참전기념비
- 도착점 : 선유동 안장고개 
- 경관·휴식 포인트 : 최영장군 묘, 대자산 숲길, 고양향교, 중남미문화원, 고양동 은행나무, 벽제관지, 의주길 성황당고개 
- 화장실 : 2곳(통일로 휴게소, 호국로변 주유소) 
- 뒤풀이 맛집 : 고양동 & 호국로변 음식점


※ 덧붙이는 글 | 고양신문에도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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