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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스터리] 시름시름 앓다 죽어간 소련주재 美 대사들... 공포의 광선 때문이었나?

잠용(潛蓉) 2022. 1. 9. 14:55

시름시름 앓다 죽어간 소련주재 美 대사들... 공포의 광선 때문이었나?
조선일보ㅣ정지섭 기자 입력 2022. 01. 09. 07:31 댓글 54개

'아바나 증후군'으로 재조명받는 과거 '모스크바 신호'
과거 40년 가까이 소련 주재 미 대사관에 극초단파 공격
'소련의 도청 공작' 추측속 공식확인된 건 없어
'데탕트 상황서 미국이 침묵했을 것' 지적도
지난 2016년 쿠바 수도 아바나의 미국 대사관에서 근무하던 미국 외교관들이 원인 모를 두통, 이명(耳鳴), 어지럼증 등을 겪기 시작했다. 이른바 ‘아바나 증후군’의 등장이었다. 이후 국내외에서 외교관·정보 요원 및 가족 200여 명이 아바나 증후군을 겪은 것으로 집계됐다. 작년 10월 미국 외교 사령탑인 토니 블링컨 국무장관의 남미 콜롬비아 방문을 앞두고 현지 근무중이던 대사관 직원과 가족들이 이상 증상을 호소했다. 또 8월에는 카멀라 해리스 부통령의 베트남 방문 일정이 역시 현지 근무 직원의 아바나 증후군 증상 발현으로 세 시간 가량 지연되는 일이 나타났다. 미 정부는 이 증상이 특정 세력의 공격에 따른 것이라고 추측하고 있지만, 명확한 증거는 나오지 않은 상태다.

 

▲ 러시아 모스크바 주재 미국 대사관에 양국 국기가 나란히 내걸려 있다. /AFP 연합뉴스


온갖 음모론을 생산하면서 미국 외교의 위협으로 등장한 아바나 증후군. 그러나 이 같은 일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미 외교관협회 소식지 포린 서비스 저널이 최신호에서 전직 외교관 제임스 슈메이커가 아바나 증후군의 ‘선배 괴질’로 조명받고 있는 ‘모스크바 신호(Moscow Signal)에 관련한 비화를 소개했다. 모스크바 신호는 미국과 소련의 체제경쟁이 극한으로 치닫던 냉전 시기부터 데탕트를 지나는 40여년간, 모스크바 주재 미국 대사관과 관저 등에 정체불명의 초단파가 장기간 투사됐던 사건을 말한다. 슈메이커는 1974년부터 2008년까지 모스크바 근무 두 번을 포함해 키예프(현재 우크라이나 수도), 베오그라드(현재 세르비아 수도), 레닌그라드(현 상트페테르부르크), 소련침공기 아프가니스탄 카불, 민스크(현재 벨라루스 수도), 블라디보스토크, 예카테린부르크 등에 근무한 소련·러시아통이다.

▲ 정면에서 바라본 러시아 모스크바 주재 미국 대사관 /AFP 연합뉴스


슈메이커에 따르면 미국 대사관 및 관저 등에 대한 극초단파 투사는 수십년간 이어졌다. 처음으로 미국 당국에 발각된 것은 6·25 전쟁이 치열하게 벌어지고 있던 1951년 모스크바 주재 미 대사의 관저였던 스파소 하우스였다. 이곳에는 1959년 리처드 닉슨 당시 부통령의 방문 당시에도 초단파를 쐈다는 보고가 있었다. 이 같은 극초단파 공격의 목적은 소련 정부의 도청일 것으로 추측됐다. 혹은 미국 전자제품들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도록 ‘공격’하는 것이라는 추측도 제기됐다. 이 괴현상이 ‘모스크바 신호’이다. 그러나 이런 괴현상은 공개적으로 거론되지 않았다. 다만, 미 정부는 은밀하게 조사를 시작했다. 존스홉킨스 대학 소속 물리학자 등 외부 인력들도 참가한 가운데 정밀 조사가 시작됐다. 연구자들이 당시 내놓은 결론은 극초단파는 일단 인체에 무해하는 쪽이었지만, 일부 연구자들은 격렬히 반대했다.

 

▲ 눈이 쌓인 러시아 모스크바 붉은 광장에서 관광객으로 보이는 사람이 사진을 찍고 있다. /타스 연합뉴스


앨런 프레이 박사는 “극초단파는 사람으로 하여금 귀에서 딸깍딸깍 소리가 들리는 현상을 유발할 수 있다”며 가볍게 보면 안된다는 의견을 제시했다. 로버트 베커 박사는 미 정부가 주도하는 모스크바 시그널 연구가 부도덕하다며 자리를 박차고 나가버렸다. 그는 미 대사관·관저로 쏘인 초단파는 근무자들의 신경계에 영향을 미쳐 의사결정장애나 스트레스를 유발한다고 생각했다. 소련 정부가 미국 외교관들을 상대로 낮은 강도의 전자기파 실험을 한다고도 생각했다. 이런 의견에도 불구하고 극초단파 공격은 공개적으로 거론되지 않았다.

▲ 러시아의 한 공원에 과거 소련시대를 상징하는 구조물이 눈에 덮여있다. /AFP 연합뉴스


이런 일련의 상황을 슈메이커는 “미국 외교관들은 어둠속에 갇혀있었다”는 말로 비판적으로 서술했다. 미국은 글로벌 패권을 다투던 소련의 만행으로 의심되던 극초단파 투사를 왜 당시 문제삼지 않았을까. 슈메이커는 두 가지 이유를 들었다. 첫째, 당시 연구가 제대로 진척되지 않아 실제로 극초단파가 인체에 미치는 영향은 미미했을 것으로 판단했다는 것이다. 둘째, 당시 미·소 사이에 조금씩 데탕트(외교적 해빙) 무드가 조성되고 있다는 점도 한 배경으로 꼽힌다. ‘모스크바 시그널’의 존재가 알려지면서 소련 주재 미국 외교관들은 극도의 긴장감과 불안감에 시달렸다.

 

▲ 소련의 붕괴를 2주 앞뒀던 1991년 12월 11일 수도 모스크바 붉은 광장에서 시민들이 근위대가 걷는 모습을 지켜보고 있다. /AP 연합뉴스

포착된 초단파가 인체에 무해하다는 입장에도 불구하고 실제로 건강 이상자들이 속출했다. 백혈구 수치가 이상적으로 증가하는 증상을 겪고 임지를 떠나는 외교관들이 있었고, 암과 백혈병 등 중병을 얻는 경우도 있었다. 두통과 피로감을 호소하는 경우도 잇따랐다. 무엇보다도 전직 소련 주재 미국대사인 레웰린 톰슨(1972년 사망)과 찰스 볼렌(1974년 사망)이 모두 암으로 세상을 떠났고, 이들의 뒤를 이어 근무했던 후임 대사 월트 슈퇴셀도 혈액 질환을 앓다가 1986년 백혈병으로 숨졌다. 우연의 일치로 보기엔 섬뜩한 결과였다. 1976년 12월 발간된 잡지 뉴요커에 본격적으로 ‘모스크바 신호’에 대한 기사가 실렸다. 이후 모스크바 미 대사관 직원들이 겪었던 괴증상에 대한 심층도서가 쏟아져나왔다.

 

▲ 토니 블링컨 미국 국무장관이 지난 11월 아바나 증후군에 관한 브리핑을 하고 있다. /로이터 연합뉴스


이후 모스크바에서 근무한 직원들은 미국 정부를 상대로 국가에 봉직하면서 잃어버린 건강에 대한 배상을 요구하는 소송을 잇따라 냈으나, 모조리 기각됐다. 단돈 1센트도 받지 못한 것이다. 한동안 잊혀졌던 ‘모스크바 신호’는 최근 ‘아바나 증후군’이 핫 이슈로 떠오르면서 함께 주목받고 있다. 슈메이커는 “1960~80년대 소련에서 근무한 일부 외교관들이 세상을 떠났지만, 여전히 많이 생존해있다”며 “모스크바 신호와 아바나 증후군이 연관돼있는지는 확인되지 않았지만, 미국 정부는 이들이 겪었던 일들에 대해 대답해줄 의무가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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