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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남북통일

[북한 쓰레기] "해안 밀려온 北쓰레기 수집... 상품 질·종류 설펴보니 시장경제 퍼졌더라"

잠용(潛蓉) 2022. 1. 21. 13:16

"해안 밀려온 北쓰레기 수집... 상품 질·종류 보니 시장경제 퍼졌더라"
문화일보ㅣ최지영 기자 입력 2022. 01. 21. 10:20 수정 2022. 01. 21. 10:20 댓글 25개

 

▲ 강동완 동아대 부산하나센터 교수가 지난해 12월 20일 인천 옹진군 연평면 연평도 해안에서 북한에서 떠내려온 쓰레기를 줍고 있다. 강동완 교수 제공


■ M 인터뷰 - 北 쓰레기 연구서 펴낸 강동완 동아대 교수
서해5도 돌며 1년간 모아 전체 양만 708종 1414점
주민 삶 생생하게 드러나 예전보다 제품 종류 늘어
주스 브랜드만 30개 달해 생리대 겉면‘생리통 완화’
北제품도‘과장광고’증거 어슬렁대다 신고 당하고
지뢰 지대에 들어간 적도
“우리가 잘 알지 못하는 북한 경제와 사회를 이해하는 데 북한 쓰레기만큼 귀중한 자료는 없습니다. 서해5도 해안가를 돌며 새로운 북한 제품 포장지를 발견할 때마다 한없이 기뻐요. 연구실을 벗어나 살아 있는 연구를 할 수 있는 나날입니다.” 강동완 동아대 부산하나센터 교수는 지난 1년간 한국의 서해5도 지역에서 북한 쓰레기를 모은 소회를 이같이 밝혔다. 서해5도는 북한과 가장 가까운 백령도, 대연평도, 소연평도, 대청도, 소청도 등 5개의 섬을 가리킨다. 강 교수는 2020년 9월부터 지난해 10월까지 쓰레기들을 수집했고, 두 달 뒤인 지난해 12월 자신의 경험을 풀어낸 ‘서해5도에서 북한 쓰레기를 줍다’를 출간했다. 그가 모은 북한 쓰레기의 양은 708종, 1414점에 달한다.

강 교수는 국내 북한 전문가 중 방방곡곡을 누비는 ‘현장형 전문가’로 유명하다. 그간 북·중 접경 지역, 러시아 국경을 방문해 탈북여성, 해외 파견 북한 노동자들을 인터뷰하거나 이곳 주민들의 모습을 사진으로 담는 등 생생한 연구 자료를 수집해 왔다. 하지만 코로나19가 터진 뒤 중국 입국이 제한되자 더 이상 북·중 국경을 방문할 수 없게 됐고, 국내 최북단 지역인 서해5도에 들어갔다. 수상한 사람으로 보여 현지 주민들에게 신고를 당하는 등 우여곡절도 많았지만, 그의 열정을 막을 순 없었다. 지난해 12월 22일, 서울 중구 재단법인 통일과 나눔 세미나실에서 그를 만나 속 이야기를 들었다.

북한 쓰레기를 처음 마주했을 당시가 궁금하다...
“2020년 9월 백령도를 여행하다 우연히 해안가에 밀려온 북한산 소주병, 우유 포장지를 발견했다. 처음엔 북한 제품인지 몰랐는데 포장지에 ‘국규’라고 쓰여 있었다. 북한에서는 국가에서 정한 표준 규격을 ‘국규’라고 부른다. 포장지에는 생산지가 ‘평양시’로 표시돼 있었다. 그때부터 백령도를 제외한 다른 지역에도 북한 쓰레기가 있지 않을까 궁금해졌고, 서해5도 지역을 돌며 쓰레기를 모으기 시작했다. 해안가에 있는 쓰레기 10개 중 2∼3개 정도는 북한 쓰레기 포장지였다.”
쓰레기 수거 작업을 하며 어려운 점도 많았을 텐데...
“가장 위험했던 건 섬 내부에 매설된 지뢰였다. 연평도나 백령도 곳곳에는 지뢰 경고 표지판이 있는데 표지판을 못 보고 지뢰 지대에 들어가는 바람에 군부대에서 긴급 출동하는 일도 있었다. 날씨도 복병이었다. 북한 쓰레기가 한국으로 가장 많이 떠내려오는 시기는 북풍이 부는 겨울이다. 겨울에는 풍랑주의보나 특보가 내려지는 경우가 평소보다 많아 배가 잘 뜨지 않는다. 보통 1주일을 작업 기간으로 예상하고 섬에 들어가지만, 날씨가 나빠지면 배가 운항하지 않아 2∼3주가량 꼼짝없이 갇힌 적도 종종 있었다.”
북한 제품 포장지의 가장 큰 특징은 무엇인가?
“북한 당국이 산업 미술을 강조한다는 점을 알 수 있다. 자기들만의 고유한 사상과 정서를 제품 안에 담아야 한다는 것이다. 사회주의 경제 건설과 인민 생활 향상이 북한 정부의 가장 큰 목표다. 보통 북한 쓰레기에는 공장 이름과 상표가 같이 쓰여 있다. ‘조선인민군 11월 2일 공장’이라 쓰인 사탕과 과자 봉지를 발견한 적이 있다. ‘11월 2일 공장’은 북한에서 군인들에게 배급할 사탕과 과자를 만들어내는 군수품 생산 기지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이 공장을 현지지도하며 식료품과 간식을 끊기지 않게 공급하라고 지시했다는 소식도 국내 언론에 보도된 적이 있다. ‘11월 2일 공장’에서 쓰는 상표는 ‘전승’인데, 군대에 납품하는 물건답게 ‘전쟁에서 승리했다’는 점을 부각하고 있다.”
다른 인상적인 제품은?
“생리대와 같은 북한산 여성용품을 보고 놀랐다. 북한 제품을 선전하는 책자로만 봤지 눈으로 직접 본 건 처음이었다. 락랑봉화상점이라는 곳에서 제작한 ‘봉선화’라는 제품이었다. 생리통이 있는 여성들의 아픔을 완화해준다는 식의 ‘과장 광고’로 볼 수 있는 표현도 있었다.”
북한 쓰레기를 분석하며 느낀 점은?
“북한에서 자본주의 시장경제가 확산되고 있다는 점이다. 지금껏 북한은 중앙 정부가 생산과 소비를 통제하는 사회주의 계획경제를 고수하고 있다고만 생각해 온 탓에 북한 주민이 소비자로서 어떤 역할을 하는지 고민할 기회가 없었다. 그런데 막상 보니 상품의 질이나 종류, 색상, 디자인, 브랜드가 정말 다양했다. 북한에서는 주스를 ‘단물’이라고 부르는데 사이다 단물, 사과 단물 등 단물의 종류만 30여 개에 달했다. 단물 한 종류를 생산하는 공장도 20곳이 넘었다. 상품의 종류와 포장지가 저마다 다르다는 것은 북한의 기업들이 주민들의 선호를 존중하고 민감하게 생각한다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다.”
올해는 김 위원장이 당과 국가의 최고 지도자로 추대된 지 10년이 되는 해다. 북한 쓰레기로 김정은 시대 북한의 경제 상황도 엿볼 수 있을 텐데...
“북한이 수출입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점을 유추해 볼 수 있다. 김 위원장은 지난 2016년 이후 경공업 제품의 다종화, 다양화를 추진해 왔다. 특히 인민 생활 소비품에 대한 생산을 늘리는 게 중요하다고 보고 제품의 국산화를 강조하고 있다. 중국에서 대부분 수입하던 원료조차도 국산화를 하라고 지시했다고 한다. 그래서 나온 게 탄산단물의 주원료인 ‘8월풀당’(식물 팔월풀의 당 성분을 우려내 정제한 것)이다. 설탕이 있다면 굳이 쓸 필요가 없는 재료를 만들어야 한다는 건데, 북한이 설탕을 수입하거나 생산할 여력이 없다는 점을 알 수 있다.”
북한 경제가 발전한 것 같아도 여전히 어렵다는 건가?
“언뜻 보면 상품의 종류와 양이 많아 북한이 경제적으로 발전했다고 보일 수 있지만, 실상 형편이 좋다고만 보긴 어렵다는 점에서 상당히 이중적이다. 북한 제품 중 한국의 인공 조미료에 해당하는 ‘맛내기’가 있다. 서해5도 지역에서 발견한 것만 35종이다. 한국은 1970년대까지 원재료가 부족해 다시다, 미원과 같은 조미료를 쓸 정도로 경제 사정이 좋지 않았다. 북한도 마찬가지다. 멸치와 같은 육수의 원료를 구하기 어렵기 때문에 따로 조미료를 만들어 쓰고 있을 가능성이 크다. 아직은 북한이 한국의 1970∼1980년대 경제 수준에 머물러 있다는 점을 방증한다.”
남북한의 제품을 비교해 보기도 했나?
“북한 쓰레기 중에는 한국 제품을 카피(모방)한 것으로 보이는 것들이 있다. 북한의 ‘소고기 맛 즉석 국수’는 한국의 ‘신라면’과 포장지 디자인이 매우 비슷하다. 과자인 ‘새우튀기과자’는 한국의 ‘새우깡’, 초코파이 종류인 ‘쵸콜레트단설기’ 포장은 한국 오리온사의 초코파이와 유사하다. 북한 당국과 기업들이 장마당(시장)을 통해 주민들 사이에서 유통, 판매되는 한국 제품을 들여다보고 있을 것으로 추정된다. 북한이 지난 2020년 소위 ‘K-팝 금지법’이라 불린 ‘반동사상문화배격법’을 제정하며 한국의 영화와 드라마 유통을 단속하는 등 내부 통제를 강화했지만, 경제 활동의 흐름까지 막지는 못하고 있는 것이다.

[최지영 기자 goodyoung17@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