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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 대선

[무속과 대선] "불상 300만개 놓으면 대통령 됩니다" 무속의 역사

잠용(潛蓉) 2022. 1. 30. 11:26

"불상 300만개 놓으면 대통령 됩니다" 대선 흔든 무속의 역사
머니투데이ㅣ김성휘 기자 입력 2022. 01. 30. 09:00 댓글 727개

정치노트: 대선읽기

▲ 청와대 본관 집무실 모습. 2019.09.19. /사진=뉴시스


노태우 대통령을 당선시킨 300만개의 불상(부처 형상), 김영삼 대통령과 '30금'의 비밀, 역술인 조언에 따른 10월유신…. 대개 사실과 거리가 멀지만 그럴 듯한 이야기다. 대선 때마다 무속과 미신에 얽힌 이야기들은 끊임없이 나왔다. 송월주 스님의 회고록에도 노태우 전 대통령과 불상 300만개에 얽힌 소문이 등장한다.

▲ 사진= 김성휘 기자


"십원짜리 동전에 불상 새겼다"
1987년 어떤 점술가가 집집마다 '불상'을 모시면 노태우 민주정의당 후보가 당선된다고 말했다는 이야기가 파다했다. 그는 300만개의 불상을 거론했다. 현실적으론 무리였으므로 일부에서 꾀를 냈다. 집집마다 가질 수 있는 물건, 즉 10원짜리 동전 속 다보탑에 불상을 표시하자는 거다. 10원짜리 앞면은 우리 전통문화의 대표작인 경주 불국사의 다보탑이다. 이에 불상 모양의 형체를 넣은 새 10원짜리가 선거기간에 제조, 유통됐고 거짓말처럼 노 대통령이 당선됐다는 이야기다.

이건 금세 헛소문으로 드러났다. 다보탑 내부에 마치 불상처럼 보이는 형체는 다보탑에 있는 사자상이다. 이 디자인은 선거 4년 전인 1983년부터 공급됐다. 송월주 스님은 2011년 동아일보에 연재한 회고록에서 "소문은 그 도안이 대선보다 한참 전에 적용된 것이라는 한국은행의 해명에도 한동안 사그라지지 않았다"고 썼다. 1987년 대선은 날짜 결정 과정에도 무속이 등장한다. 그해 6월 민주화 항쟁 결과 10월 새 헌법이 공표됐고 대선 날짜로 12월 16일이 정해졌다. 당시 유명하던 '청운동 도사'에게 문의해 날짜를 받았다고 알려졌다.

12월16일은 자식 적다▶총선 여소야대 적중?
이 도사는 12월 16일이든 17일이든 노태우 후보가 당선되지만 16일은 자식이 적고 17일이면 자식이 많을 것이라고 '예언'했다고 한다. 노 후보는 대통령에 당선됐지만 다음해인 1988년 총선에서 여당보다 야당 의석합계가 많은 여소야대가 됐다. '12월16일이 대선이면 자식이 적다'는 예언이 맞아떨어진 셈이다. 그로부터 5년 뒤 김영삼 대통령이 당선된 1992년 대선에도 재미있는 이야기가 전한다. 선거일을 명시한 요즘과 달리 당시 대선은 금요일이었다. 1992년은 12월 18일이다. 12와 18을 더하면 30, 금요일이므로 '30금'이다. 이걸 거꾸로 읽으면 '금03' 즉 김영삼이 된다. 당시 김 대통령은 여당인 민주자유당 후보였으므로 유리하게 날짜를 정했다는 소문이 돌았다. 이 정도면 무속보다는 그럴듯하게 끼워맞춘 이야기 즉 도시전설 정도로 듣고 넘길 수도 있겠다.

▲ 1990년 1월 한자리에 모인 김대중(왼쪽부터), 김종필, 노태우, 김영삼. (운정김종필기념사업회 김종필 화보집) 2015.11.23 /뉴스1

'30금' 거꾸로 읽으면 김영삼(금03)
그에 앞서 박정희 대통령이 김대중 신민당 후보와 격돌했던 1971년 대선에도 역술이 끼어든다. 당시 정치권에는 청와대가 정치인 6명의 사주를 갖고 역술인에게 운명풀이를 의뢰했다는 이야기가 퍼졌다. 이름을 가린 '익명 사주'였지만 박 전 대통령은 물론 김대중, 김영삼, 김종필 등 그의 '정적'을 포함했다는 것이다. 여기서 '박정희가 김대중을 이긴다'는 답이 나왔다고 한다. 결말은 반전의 연속이다. 1971년 제7대 대선은 '박정희 대 김대중'의 진검승부였고 박 대통령은 쉽게 이길 거란 예상과 달리 힘겹게 당선됐다. 정치적 위기를 느낀 박 대통령은 다음해인 1972년 10월 유신을 단행한다. 국회를 해산하는 등 기존 헌법이 무너지고 그 자리를 유신헌법이 채웠다. 10월17일이란 유신 날짜도 유명 역술인에게 조언을 받았다는 게 정설이다. 이는 과거 언론에도 보도된 걸로 알려졌다.

 

▲ 21일 청와대 본관 세종전실에 박근혜 전 대통령을 비롯한 역대 대통령 초상화가 걸려 있다. 2017.06.21. photo1006@newsis.com  /사진=뉴시스 전신기자

풍수 믿고 조상 묘 옮기기도
당선을 향한 욕망의 질주는 용하다는 도사들과 점술가, 예언가의 몸값을 높였다. 선거는 풍수지리, 역술, 관상, 점괘, 부적, 굿 등 전통신앙이나 넓은 의미의 무속과 뗄 수 없는 관계였다. 이회창 전 국무총리를 포함, 대선에 출마하면서 부모님이나 조상 묏자리를 옮긴 이장 사례는 드물지 않다. 물론 그것이 모두 효과를 봤다고 할 수는 없다. 조상 묘 이전을 제외하면 역대 대선에서 무속이 연관된 이야기는 대부분 확인되지 않는 '썰'에 가까웠다. 요즘 식으로 가짜뉴스, 허위왜곡정보다. 입소문으로 번지는 이야기에 '팩트체크'를 하기도 어려웠다. 지금처럼 인터넷매체와 소셜미디어(SNS)가 발달한 것도 아니다. 올해 대선은 유별나다. 유력 대선후보와 배우자의 '무속 심취' 여부가 대선의 핵심 쟁점 중 하나다. 구체적인 전화 녹취나 실제 인물이 미디어에 오르내린다. 암암리에 통하던 이야기가 이토록 진지하게 다뤄지고 AI(인공지능), 전기차, 첨단 디지털기술 공약과 함께 공론장에 오른다. 대선 결과와 무관하게 이런 사실은 2022년 대선의 특징으로 기록될 전망이다.

[김성휘 기자 sunnykim@mt.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