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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애청곡

[추억의 가요] "울며 헤진 釜山港" (1939 원곡) - 남인수 노래

잠용(潛蓉) 2022. 6. 20. 15:33

"울며 헤진 釜山港" (1939)
趙鳴岩 작사/ 朴是春 작곡/ 노래 南仁樹

< 1 >
울며 헤진 釜山港을 
돌아다보니
連絡船 波濤 넘어 
사라진 港口

離別만은 슬프더라 
離別만은 野俗터라
더구나 情들인 사람끼리 
사람끼리~

< 2 >
달빛 아래 虛虛 바다
물새만 울고
釜山港 간곳 없는 
水平線 千里

離別만은 無情터라 
離別만은 어렵더라
더구나 못잊을 사람끼리 
사람끼리~

 

▲ 악보(반야월 개사곡)

 


남인수~울며헤진 부산항(1940 원곡)


남강수 - 울며 헤진 부산항(원곡)


남인수 /울며헤진 부산항 (반야월 개사곡] /스타365 (영상출연 가수김수진)


[도전 꿈의 무대] 박정서의 ‘울며 헤진 부산항' 원곡 (KBS 2022.06.15 방송)


트롯신동 박정서군 '울며 헤진 부산항'(원곡) '사랑반 눈물반


울며헤진부산항(원곡)- 정정아


주현미- 울며 헤진 부산항 (1939 개사곡)


울며 헤진 부산항(개사곡)/ 이미자


소리사랑- 울며 헤진 부산항 (1940 개사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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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釜山)의 '부'와 시모노세키(下關)의 '관'을 따서 부관연락선(釜關連絡船) 혹은 관부(關釜)연락선이라 불리던 이 배는 1905년 일본의 대륙 진출 정책의 일환으로 개설되었습니다. 아이러니하게도 침략의 수단으로 만들어진 이 노선은 부산의 발전에도 기여하게 되지요. 서울과 부산을 잇는 경부선 또한 같은 해인 1905년에 개통되면서 부산은 한국과 일본을 잇는 가장 중요한 거점이 되었습니다.

'사의 찬미'로 유명한 여가수 윤심덕과 연인이었던 김우진이 바다에 뛰어들어 자살한 사건은 들어보셨을 거예요. 1926년 8월 4일에 일어난 이 사건의 장소가 바로 부관연락선입니다. 또 조용필 선배님의 노래 '돌아와요 부산항에'에 등장하는 "오륙도 돌아가는 연락선" 또한 이 배를 가리키고 있지요.

역사만큼이나 슬픈 사연을 많이 간직하고 있는 부관연락선은 1945년 미국에 의해 격침되면서 그 막을 내리게 됩니다. 이후 한일간의 국교가 정상화되고 1970년부터는 부관페리라는 이름으로 지금도 부산과 시모노세키를 왕복하고 있다고 하네요.
희망도 없이 깜깜한 망망대해를 바라보며 타국으로 향하는 사람들의 마음은 얼마나 절망적이었을까요. 시대를 넘어 오늘은 1939년의 연락선을 올라타고 떠나가봅니다. 막연하게 기억될 법한 역사 속에서도 우리 가요는 이렇게 구체적이고 명확한 장면을 보여주고 있답니다.

'아침마당' 조항조 "13살 박정서 '울며헤진 부산항' 노래 호흡 쓰는 법 타고나" [TV캡처]
스포츠서울ㅣ2022년 06월 15일(수) 09:15 최종수정2022년 06월 15일(수) 09:18

▲ 아침마당 박정서와 조항조 / 사진=KBS1 아침마당 캡처


[스포츠투데이 임시령 기자] '아침마당' 박정서 군이 가수 조항조의 칭찬을 받았다. 15일 방송된 KBS1 교양프로그램 '아침마당'의 '도전 꿈의 무대'에서는 박정서 군이 출연했다. 이날 박정서 군은 "이모 집에서 살고 있다. 지금은 엄마, 아빠보다 이모가 없으면 잠을 못 잔다"고 밝혔다. 이어 "한 번은 부모님과 2박 3일 일정으로 제주도 여행을 갔는데, 밤이 되니 이모가 보고 싶어 잠이 안 오더라. 그래서 엄마를 졸라 집으로 가게 돼 엄마가 화가 난 적이 있다"고 전해 웃음을 안겼다.

그러면서 박정서 군은 "4학년 때 창원 가요제에서 인기상을 받고 진해의 가수가 됐다. 제가 노래할 때면 늘 제 옆엔 이모가 온다"며 "사실 제가 부모님도 사랑하는데, 서운해하시더라. 오늘은 부모님을 생각하며 노래를 부르겠다"고 말했다. 이후 박정서 군은 남인수 의 '울며 헤진 부산항'을 열창했다. 이를 들은 조항조는 박정서 군에게 "지금 나이가 13살 아니냐"며 "호흡을 쓸 줄 아는 걸 보면 선천적으로 타고난 것 같다. 지금 변성기인 것 같은데, 극복 잘하면 좋은 가수가 될 것 같다"고 칭찬했다. [스포츠투데이 임시령 기자 ent@stoo.com]

김리아 “父, 이벤트 진행하다 취객에 각목으로 맞은 적도” (아침마당)
뉴스엔ㅣ2022-06-15 09:05:11
      
김리아가 가족을 위해 일했던 아버지를 향한 애틋함을 드러냈다.
6월 15일 방송된 KBS 1TV '아침마당'에서는 박정서, 김리아가 참가자로 출연했다.
13살 박정서 군은 "초등학교 2학년 때부터 지금까지 이모 집에서 살고 있다. 처음엔 부모님이 장사를 해서 낮에만 이모 집에 있었는데 시간이 지나면서 그냥 이모 집에서 살고 있다. 지금은 이모가 없으면 잠을 못 잔다. 집에서 자다 새벽 1, 2시에 깨서 이모 집에 간다"며 이모를 향한 애틋한 마음을 드러냈다.

▲ 김리아


이어 "제가 노래할 때면 옆에 이모가 있다. 오늘은 부모님을 위해 노래하겠다. 부모님도 사랑하는데 오해하며 많이 서운해한다"며 부모님을 위해 '울며 헤진 부산항'을 열창했다. 노래를 들은 조항조는 "선천적으로 노래 호흡 쓰는 게 타고난 것 같다. 변성기만 극복 잘하면 훌륭한 가수가 될 것 같다"며 용기를 북돋아줬다.

또 다른 참가자 김리아는 "아버지에게 힘을 주기 위해 출연했다"며 "저는 어릴 때부터 춤추고 노래하는 걸 좋아했고, 아버지의 지방 행사 무대에 저를 가수로 세워줬다. 그 무대 덕분에 노래를 잘한다고 주변 행사 관계자에게 소문났다. 그래서 순천 지역 각종 행사 가수가 됐다"고 회상했다.

이어 "보증을 잘못 서서 빚이 있었던 아버지는 가족들을 위해 열심히 일했다. 행사 기획뿐만 아니라 MC, 밤무대 밴드 마스터 등 하루에 2-3시간 자면서 일했다. 힘든 일도 많이 당했다. 행사 진행을 하는데 술 취한 사람이 아버지 머리를 각목으로 때린 적도 있다. 밴드를 할 때도 모르는 사람이 욕하는 걸 참아야 했다. 그러다 코로나19때문에 이벤트 일이 망했다. 모든 장비를 급하게 팔았지만 빚만 더 쌓였다"고 전했다.

이후 아버지는 가족을 살리기 위해 보험 설계를 시작했지만 실적에 대한 부담감 때문에 지인들에게 보험 가입을 시키고, 스스로 보험금을 냈다고.

김리아는 "아버지가 사람 만나는 걸 피하고 두꺼운 커튼을 치고 방에서 TV를 보며 하루를 보낸다. 지인들 전화도 다 안 받으니 주변에서 아버지가 죽었다는 소문까지 돌았다. 가족들을 위해 평생 일만 했던 아버지의 활짝 웃는 모습을 보고 싶다. 꼭 성공해서 아버지를 괴롭혔던 돈을 많이 벌고 싶다"며 애틋함을 드러냈다.
[뉴스엔 박정민 odult@]

[백세시대 금요칼럼] 노래 ‘울며 헤진 부산항’에 서린 참뜻 /이동순
백세시대ㅣ2021.10.29 14:26 호수 792 댓글 0기사공유하기

 

▲ 이동순 한국대중음악힐링센터 대표


일제의 인력 공출로 인해 부관연락선을 타야만 했던 징용 한인들의 쓰라린 이별
그 절절한 아픔을 담은 노래 남인수, 단골 앙코르 곡으로 불러
일제 식민통치하에서 부산항구의 쓰라린 이별을 다룬 가장 대표적인 대중가요를 하나 들라면 우리는 ‘울며 헤진 부산항’(1939)을 먼저 손꼽기에 주저하지 않겠다. 제국주의 철권통치의 압제가 점차 극에 달해가던 1939년, 이 한 해 동안 일제는 어떤 음모와 비극적 일들을 저질렀던가? 조선의 물자와 인력을 강압적으로 착취해가려는 ‘조선징발령’, 민족주의 세력들을 철저히 단속하려는 ‘국경취체법’, 한국인을 일제경찰의 보조역으로 부리려던 간교한 의도로 만든 ‘경방단(警防團) 규칙’, 일제 말까지 무려 45만 명의 한국인을 그들의 전쟁준비 도구로 끌고 간 ‘국민징용령’, ‘총동원 물자사용 수용령’ 따위의 식민지 악법을 공포하고 실행에 옮겼다. 실제로 그해 9월부터 부산항 제2부두에서는 일본으로 끌려가는 한국인 노동자공출이 시작됐던 것이다. 

공출(供出)이란 식민지 시절, 일제가 군수물자와 식량을 조달하기 위해 실시한 각종 물자의 강압적 수탈정책을 일컫는다. 1938년 일본은 전쟁 준비의 일환으로 이른바 ‘국가총동원법’이란 것을 공포하고, 이를 식민지 조선에도 확대 적용했다. 
이 악법을 바탕으로 일제는 군수물자 및 식량을 충당하기 위해 공출이란 제도를 실시했다. 여기에는 물자공출, 인력공출이 있었는데, 이로부터 부산항에는 일본으로 떠나는 한국인 노동자와 그들을 피눈물로 배웅하는 가족, 친지들의 행렬로 붐비었다. 말하자면 인력공출의 현장이었던 것이다. 

여기저기서 작별의 뼈저린 통곡이 들려왔고 가족 친지들은 서로 부둥켜안은 채 떨어질 줄 몰랐다. 이렇게 헤어지면 언제 다시 만날 기약이나 할 수 있을 것인가? 과연 살아서 정든 고향 땅을 밟을 수는 있을까? 하지만 출발을 재촉하는 날카로운 호루라기 소리는 줄곧 들려오고, 뱃고동은 연신 울었다. 

떠나는 사람은 눈물로 범벅이 된 얼굴로 차마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을 옮겨 뱃전의 갑판에 기대어 선다. 떠나는 사람과 배웅하는 사람은 서로 손수건을 흔들며 애간장이 끊어지는 마음의 깊은 정을 주고받는다. 노래 ‘울며 헤진 부산항’의 가사 내용과 분위기는 온통 이런 이별 정서로 흥건하다.

울며 헤진 부산항을 돌아다보는 

연락선 난간머리 흘러온 달빛 

이별만은 어렵더라 이별만은 슬프더라 

더구나 정들인 사람끼리 음~ 음~ 

 

달빛 아랜 허허바다 파도만 치고 

부산항 간곳없는 검은 수평선 

이별만은 무정터라 이별만은 야속터라 

더구나 못 잊을 사람끼리 사람끼리~(반야월 개사곡)

가사의 전편을 음미해보기로 하자. 부관연락선은 일본으로 떠나는 인력집단을 싣고 부산항 부두를 막 출발했다. 선박의 굴뚝에서 내뿜는 검은 연기는 부두에 뒤덮이고 슬픈 뱃고동 소리는 점점 멀어진다. 연락선은 서서히 항구를 빠져나간다. 출항시간은 대개 저녁 무렵이었다. 밤을 현해탄에서 보낸 다음날 아침에 일본의 항구에 도착하기 때문이다. 

연락선 난간에서 올려다보는 부산항 달빛엔 눈물이 그렁그렁하다. 왼쪽으로 오륙도가 잠시 보이는가 했더니 어느 틈에 부산항구는 멀어지고 이젠 깜박이던 불빛조차 보이지 않는다. 아무리 다시 찾아보려 눈을 크게 떠보지만 고국 땅은 아주 보이지 않고, 캄캄한 밤바다 위에는 무거운 침묵만이 내려앉아 있다. 정든 사람, 잊을 수 없는 사람과의 작별은 어찌 이다지도 사람의 애간장을 끊어내고 있는가? 작사가 조명암은 이 부분에 착안하여 그야말로 창자를 토막토막 끊어내는 사연을 단장(斷腸)의 고통으로 엮어서 노래가사에 담아내고 있다. 이런 심정은 일제말 한국인 모두의 심정을 상징적으로 대변한 것에 다름 아니다.  

워낙 대중들로부터 인기가 높아서 ‘가요황제’로까지 불렸던 남인수는 악극단무대 위에서 이 노래를 부를 때마다 목이 울컥 잠겨오고 피눈물이 솟구쳤다고 한다. 그의 특색은 한창 흥이 달아올랐을 때 마이크를 한쪽으로 밀어내고 육성으로 불러대는 것이다. 그럴 때 청중들은 더욱 흥분의 도가니로 빠져든다. 카랑카랑하면서 비극적 애수의 정감으로 뭉쳐진 가수의 음색은 듣는 이에게 또렷하고도 깊은 감동으로 유감없이 젖어 들었다. 

남인수는 훗날 고백하기를 무대에서 팬들로부터 앙코르를 요청받을 때 참으로 많은 자신의 곡목들 가운데 반드시 이 ‘울며 헤진 부산항’만을 선택했다고 했다. 그것은 아마도 이 노래의 가사가 민족사의 아픔을 가장 절절히 담았기 때문일 것이다. 이 노래에 서려있는 역사적 비극의 페이소스는 우리가 차마 두 번 다시 겪지 말아야 할 상처와 아픔이 아닐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