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S] 성한용 선임기자의 정치 막전막후 442
그는 도대체 왜 대통령을 하는 걸까? :
윤석열 대통령의 '취임 100일 기자회견'을 지켜보며 생긴 근본적인 궁금증
한겨레ㅣ성한용 기자 2022.08.21 13:06 수정 2022.08.21 13:13
▲ 윤석열 대통령이 17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브리핑룸에서 열린 취임 100일 기자회견에서 취재진 질문에 답하고 있다. /출처 : 대통령실사진기자단
이해하기 어려운 정치인, 윤석열
공허한 철학의 과잉이 위기 근원
‘문 정권=전체주의’ 확신하는 듯
색깔론에 갇혀 정체성 못 만들어
“경청·소통 대통령” 약속 지켜야
윤석열 대통령의 100일 기자회견 평가 중에서 압권은 “성공한 대통령이 임기 100일 남기고 5년간 자신의 업적을 자랑하는 회견인 줄 알았다”는 것이었습니다. 윤석열 대통령은 기자회견 내내 자신감에 넘쳤고 당당했습니다. 조금은 미안한 표정을 지을 수도 있겠다는 예측은 완전히 빗나갔습니다. 윤석열 대통령은 참 이해하기 어려운 정치인입니다. 8월19일 발표한 한국갤럽 국정 지지율은 28%였습니다. 지난주 25%에서 3%포인트 올라갔습니다.(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누리집 참고) 대략 25% 정도가 윤석열 대통령을 맹목적으로 지지하는 ‘콘크리트 지지층’인 셈입니다. 윤석열 대통령 국정 지지율은 추가로 반등할 수 있을까요? 윤석열 대통령이 어떻게 하느냐에 달렸습니다. 지금처럼 “나는 잘못한 것 없다”고 버티면 바닥세에서 벗어나기 힘들 것입니다. 반성하고 사과하면 올라갈 것입니다.
▲ 윤석열 대통령 직무 수행 평가 /출처 : 한국갤럽
인적 개편이 필요한 까닭
반성과 사과의 증표는 인적 개편입니다. 대통령제에서 대통령이 자신의 잘못을 반성하고 국민에게 사과하는 거의 유일한 방안이 바로 인적 개편입니다. 비서실장, 국무총리, 장관 등 정무직 공직자들에게 대통령의 잘못을 뒤집어씌워 경질하는 것입니다. 속죄양을 제단에 바치는 것과 같은 원리입니다. 역대 대통령은 누구나 이런 방식으로 위기를 넘겼습니다.
윤석열 대통령처럼 임기 초 국정 지지율이 추락했던 이명박 대통령도 그랬습니다. 미국산 쇠고기 수입 파동으로 광화문 촛불집회가 계속되자 청와대 관저 뒷산에 올라가 ‘아침이슬’ 노래를 들었습니다. 류우익 대통령실장과 민정수석, 외교안보수석, 경제수석, 국정기획수석, 교육과학문화수석을 경질했습니다. 국민의 분노는 누그러졌습니다. 국정 지지율은 서서히 회복됐습니다.
윤석열 대통령은 과연 어떻게 할까요? 알 수 없습니다. 그런데 저는 이번 취임 100일 기자회견을 지켜보면서 한가지 근본적인 궁금증이 생겼습니다. 윤석열 대통령은 도대체 왜 대통령을 하는 것일까요? 좀 엉뚱한 생각이지요? 어쨌든 궁금했습니다. 해답을 구하기 위해 그가 과거에 했던 말을 다시 찾아봤습니다.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해 3월4일 검찰총장직을 사퇴하고 6월29일 서울 서초구 매헌 윤봉길 의사 기념관에서 대선 출마 선언을 했습니다. 선언문은 ‘문재인 정권’에 대한 분노, 증오, 저주로 가득 차 있었습니다.
▲ 윤석열 전 검찰총장이 2021년 6월 29일 서울 서초구 매헌 윤봉길 의사 기념관에서 대선 출마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출처 : 공동취재사진
“이 정권이 저지른 무도한 행태는 일일이 나열하기도 어렵습니다. 정권과 이해관계로 얽힌 소수의 이권 카르텔은 권력을 사유화하고, 책임 의식과 윤리 의식이 마비된 먹이사슬을 구축하고 있습니다. 이 정권은 권력을 사유화하는 데 그치지 않고 집권을 연장하여 계속 국민을 약탈하려 합니다. 우리 헌법의 근간인 자유민주주의에서 자유를 빼내려 합니다. 민주주의는 자유를 지키기 위한 것이고 자유는 정부의 권력 한계를 그어주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자유가 빠진 민주주의는 진짜 민주주의가 아니고 독재요 전제입니다. 이 정권은 도대체 어떤 민주주의를 바라는 것입니까. 도저히 이들을 그대로 두고 볼 수 없습니다.”
쉽게 풀면 “문재인 정권은 국민의 자유를 박탈하는 독재 정권인데, 그런 독재 정권을 무너뜨리고 정권을 교체하는 데 내가 적임자이기 때문에 대선에 출마하기로 했다”는 뜻입니다. 저는 이때만 해도 윤석열 전 검찰총장이 대통령 선거에 나서기 위한 명분으로 ‘자유’라는 가치를 임시로 차용했다고 생각했습니다. 아니었습니다. 윤석열 대통령은 올해 5월10일 대통령 취임식에서 자유를 주제로 온 국민에게 철학 강의를 했습니다. 자유라는 단어를 무려 35차례 사용했습니다.
“우리는 자유의 가치를 제대로, 그리고 정확하게 인식해야 합니다. 자유의 가치를 재발견해야 합니다. 인류 역사를 돌이켜보면 자유로운 정치적 권리, 자유로운 시장이 숨 쉬고 있던 곳은 언제나 번영과 풍요가 꽃피었습니다. 번영과 풍요, 경제적 성장은 바로 자유의 확대입니다.”
8월15일 광복절 경축사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윤석열 대통령은 이번에도 자유라는 단어를 33차례 사용했습니다.
“갈수록 심화되는 양극화와 사회적 갈등은 우리 사회가 반드시 해결해야 할 과제입니다. 이를 본질적으로 해결하기 위해서는 도약과 혁신이 필요합니다. 도약은 혁신에서 나오고 혁신은 자유에서 나옵니다.”
순서를 바꾸면 “자유는 혁신을 낳고, 혁신은 도약을 낳고, 도약은 양극화와 갈등을 해소할 것이다”라는 뜻입니다. 대선 출마 선언부터, 대통령 취임사, 광복절 경축사까지 ‘자유가 모든 문제를 해결하리라’는 주문을 줄기차게 외고 있는 것입니다. 자유의 가치를 온 세상에 전파하기 위한 철학자처럼 말입니다.
색깔론의 다른 말, ‘자유’'
참 걱정스럽습니다. 여러분은 철학자와 정치인의 차이가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플라톤이 ‘철인 정치’를 주창한 바 있지만 그건 고대 그리스 시대의 얘기입니다. 현대 민주주의 국가에서 정치인은 국민의 주권을 위임받아 국정을 수행하는 공직자일 뿐입니다. 공직자에게는 철학이 아니라 문제를 해결하는 ‘실천지’(prudence: 실천적인 지혜)가 필요합니다. 윤여준 전 환경부 장관은 2011년에 쓴 에서 ‘스테이트크래프트’를 실천지 개념으로 설명한 일이 있습니다. 그는 ‘스테이트크래프트’를 “국가를 다스리는 ‘실천지’로서, 특히 근대 민족국가라는 특수 유형의 정치 공동체를 창설, 유지, 발전시키는 과정에서 요구되는 집단적 결정과 그 실행을 관리 감독하는 실천적 능력”이라고 정의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정치인은 뭔가를 ‘하는’ 사람입니다. 특히 생각하는 사람이 아니라, 실천하는 사람이어야 합니다. 윤석열 대통령의 대선 출마 선언, 대통령 취임 연설, 광복절 경축사까지 수없이 울려 퍼진 ‘자유’라는 단어가 공허하게 들리는 이유는 그 자유를 구현하기 위한 구체적이고 실천적인 방안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얼마나 더 기다려야 내용을 채울 수 있을지 궁금합니다. 그런데 윤석열 대통령이 ‘자유’라는 화두를 꼭 붙들고 내려놓지 않는 이유가 뭘까요? ‘문재인 정권’을 ‘국민의 자유를 박탈하는 전체주의 세력’이라고 진짜로 확신하는 것 같습니다. 중국 공산당 정권이나 북한의 김정은 정권처럼 말입니다. 자유를 앞세운 색깔론인 셈입니다. 윤석열 대통령이 후보 시절 대형마트에서 멸치와 콩을 구매하는 장면으로 ‘멸공 챌린지’에 동참했던 순간을 기억하시죠? 저는 그게 극우 보수층의 표를 얻기 위한 선거용 이벤트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그게 아니었던 것 같습니다.
▲ 2022년 1월 8일 국민의힘이 공개한 윤석열 대선 후보의 장보기 사진. 윤 후보는 SNS에 '#멸치 #콩' 등의 해시태그를 달아 '멸공' 논란을 불러 일으켰다. /출처 국민의힘 선거대책위원회 제공
윤석열 대통령이 100일 기자회견에서 소개한 성과는 대개 문재인 대통령, 문재인 정부의 잘못을 바로잡았다는 것들입니다. “소득주도성장과 같은 잘못된 경제 정책을 폐기했다”고 했습니다. “세제를 정상화시켰다”고 했습니다. “일방적이고 이념에 기반한 탈원전 정책을 폐기했다”고 했습니다. “방만하고 비대화된 공공기관을 핵심 기능 위주로 재편”했다고 했습니다. “한-미 동맹을 재건”했다고 했습니다. “역대 최악의 일본과의 관계 역시 빠르게 회복하고 발전시켜 나가고 있다”고 했습니다. 윤석열 대통령 자신의 경제 정책이나 외교·안보 정책이 무엇인지는 제대로 설명하지 않았습니다. 결국 ‘반문재인’, ‘반민주당’이 윤석열 대통령과 윤석열 정부의 정체성이요, 가치관인 것 같습니다. 도대체 국정을 어떻게 운영해가려는 것인지 궁금합니다.
국민 향한 약속, 지켜질 수 있을까?
다 좋습니다. 어쨌든 지금 대한민국 대통령은 윤석열입니다. 윤석열 대통령이 실패하면 대한민국 정부가 실패하는 것입니다.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다행히 윤석열 대통령이 해답을 가졌는지도 모릅니다. 지난해 11월5일 국민의힘 대통령 후보 수락 연설에서 윤석열 당시 후보는 놀랍게도 이런 말을 했습니다.
“저 윤석열, 경청하고 소통하는 대통령이 되겠습니다. 정치의 본질은 다양한 이해, 가치와 신념의 차이가 빚어낸 갈등을 해결하는 것입니다. 전체주의 국가에서는 지도자의 ‘독단’으로 문제를 정리하나 민주주의에서는 오직 대화와 타협만이 해결책입니다. 국민의 말씀을 경청하는 대통령이 되겠습니다.”
“진정성 있는 대통령이 되겠습니다. 손해를 보더라도 원칙과 소신, 상식과 진정성으로 다가가겠습니다. 국민의 마음을 읽지 못하면 저에 대한 지지와 성원이 언제든지 비판과 분노로 바뀔 수 있다는 겸손한 자세로 임하겠습니다.”
정말 멋지지 않습니까? 이대로만 하면 윤석열 대통령은 성공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윤석열 대통령이 후보 수락 연설에서 국민에게 한 약속을 꼭 지켰으면 좋겠습니다. 가능할까요?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한겨레 정치부 성한용 선임기자 shy99@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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