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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제복지원 사건] 장장 35년 만에 첫 진실 규명… "중대한 인권 침해" 인정

잠용(潛蓉) 2022. 8. 24. 14:15

형제복지원 사건 35년 만에 첫 국가 진실규명… 
"중대 인권침해" 인정

연합뉴스ㅣ김치연 기자  2022-08-24 10:00 

▲ 형제복지원 인권침해사건 진실규명 결정발표 (서울=연합뉴스) 신준희 기자 = 진실 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 정근식 위원장(왼쪽)이 24일 중구 위원회 사무실에서 형제복지원 인권침해 사건 진실규명 결정 발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2022.8.24 hama@yna.co.kr

(서울=연합뉴스) 김치연 기자 = 2기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진실화해위)가 형제복지원 사건을 국가의 부당한 공권력 행사에 의한 중대한 인권침해 사건이라고 결론내렸다. 형제복지원 사건이 세상에 알려진 지 35년 만에 국가 기관이 처음으로 '국가 폭력에 따른 인권침해 사건'으로 인정한 것이다. 진실화해위는 24일 오전 위원회 대회의실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전날 진실규명 결정한 형제복지원 인권침해 사건의 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위원회는 "이 사건은 경찰 등 공권력이 적극적으로 개입하거나 이들의 허가와 지원, 묵인하에 부랑인으로 지목한 불특정 민간인을 적법절차 없이 단속해 형제복지원에 장기간 자의적으로 구금한 상태에서 강제노동, 가혹행위, 성폭력, 사망, 실종 등 총체적인 인권침해가 발생한 사건"이라고 밝혔다. 이번 조사에서 위원회는 ▲ 부랑인 단속 규정의 위헌·위법성 ▲ 형제복지원 수용과정의 위법성 및 운영과정의 심각한 인권침해 ▲ 정부의 형제복지원 사건 인지 및 조직적 축소·은폐 시도 등을 밝혀냈다.

 

▲ 형제복지원 피해자들 "진실화해위 조사 1년…조속한 진상규명을" (서울=연합뉴스) 조다운 기자 = 군사정권 시절 부랑자 수용을 명목으로 감금·강제노역 등을 당했던 형제복지원 사건 피해자들이 4일 서울 중구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진실화해위)와 청와대 앞에서 잇따라 집회와 기자회견을 열고 조속한 진상규명과 실질적인 피해자 배상을 거듭 촉구했다. 사진은 이날 청와대를 찾아 요청서를 전달하는 이동진 피해자협의회 회장(오른쪽). 2022.3.4 allluck@yna.co.kr

◇ 단속·수용·운영 모두 인권침해…사망자 105명 추가 확인
조사 결과 형제복지원 사건은 부랑인 단속부터 수용, 시설 운영 등 전반적인 과정에서 인권침해가 발생한 것으로 드러났다. 형제복지원 사건은 1960년 7월 20일 형제육아원 설립부터 1992년 8월 20일 정신요양원이 폐쇄되기까지 경찰 등 공권력이 부랑인으로 지목된 사람들을 민간 사회복지법인이 운영하는 형제복지원에 강제수용하고, 강제노역과 폭행, 가혹행위, 사망, 실종 등 중대한 인권침해 행위가 벌어진 사건이다. 형제복지원 입소자는 부산시와 부랑인 수용 보호 위탁계약을 체결한 1975년부터 1986년까지 총 3만8천여 명이었고, 특히 1984년에는 한 해에만 입소자가 4천355명에 달했다.

마구잡이식 부랑인 단속과 형제복지원 수용의 근거가 됐던 내무부 훈령 제410호는 법률유보·명확성·과잉금지·적법절차·영장주의 원칙 등을 모두 위반한 것으로 조사됐다. 이 훈령은 부랑인 단속반이 부랑인으로 지목된 사람을 어떤 형사절차도 밟지 않고 수용시설에 보내 강제수용할 수 있도록 한다. 진실화해위는 최초로 사망자 통계와 명단 등 14건을 검토한 결과 1975∼1988년 형제복지원 사망자가 기존에 알려진 552명보다 105명이 더 많다는 사실을 추가로 밝혀냈다. 위원회는 수용자 응급 후송 중 사망 사례나 사망진단서가 조작된 사례가 있는 것으로 판단했다.

▲ 멈추지 않는 눈물 (서울=연합뉴스) 김인철 기자 = 20일 오전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 앞에서 열린 형제복지원 서울·경기피해자협의회 소속 피해자 국가 상대 80억원 청구 손해배상 소송 기자회견에서 한 피해자가 눈물을 흘리고 있다. 2021.5.20 yatoya@yna.co.kr

◇ 국가의 묵인·외면 속 은폐된 진실
당시 국가가 형제복지원의 실상을 알면서도 묵인하고 외면한 정황도 드러났다. 1982년 형제복지원 강제수용 피해자 가족이 정부와 수사기관에 수사를 촉구했지만, 오히려 진정인이 무고죄로 고소를 당하고 실형을 선고받았다. 1986년 보안사령부는 형제복지원에 수용된 간첩 용의자를 감시하기 위해 보안사 요원을 수용자로 위장 침투시켜 복지원 실상을 파악했다.
보안사령부는 이때 "교도소보다 더 강한 규율과 통제로 재소자 대부분이 탈출하지 못해 전전긍긍하고 있는 곳"이라고 형제복지원을 평가하면서도 어떤 조처도 하지 않았다. 1987년 형제복지원 사건이 알려지고 검찰 수사가 시작된 후에도 보건사회부는 부랑인 강제수용이 불가피하다는 입장을 고수한 것으로 확인됐다. 진실화해위는 "부산시와 경찰, 안기부 등 부산 지역 모든 기관이 사건을 조직적으로 축소, 은폐했다"며 "특히 부산시는 피해자와 가족들의 진정과 소송을 회유하고 원장과 측근들이 다시 형제복지원 법인을 장악할 수 있는 길을 열어줬다"고 했다.

▲ 형제복지원 인권침해사건 진실규명 결정 발표 기자회견 (서울=연합뉴스) 신준희 기자 = 진실 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 정근식 위원장이 24일 중구 위원회 사무실에서 형제복지원 인권침해 사건 진실규명 결정 발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2022.8.24 hama@yna.co.kr

◇ 국가 공식 사과·피해회복 실질 조치 권고
위원회는 이런 조사 결과를 토대로 국가가 형제복지원 강제수용 피해자와 유가족에게 공식적으로 사과하고, 피해회복 및 트라우마 치유 지원방안을 마련하라고 권고했다. 또 국가가 각종 시설의 수용 및 운영 과정에서 피수용자의 인권이 침해되지 않도록 관리·감독을 철저히 하고, 국회는 유엔 강제 실종 방지협약을 조속히 비준 동의하라고 했다. 특히 부산시에는 형제복지원 피해자 조사 및 지원 업무를 담당하는 부서를 위해 예산·규정·조직을 정비하라고 권고했다. 정근식 진실화해위원장은 "오랜 시간 기다려온 형제복지원 사건의 인권침해 진실이 드러난 것은 피해자와 유가족, 사회단체 등이 기울인 노력의 결과"라며 "2기 진실화해위 출범의 계기가 된 이번 사건에 대한 종합적인 진실규명을 계속해 나가겠다"고 밝혔다. 위원회는 2020년 12월 10일 형제복지원 사건을 1호 사건으로 접수한 뒤 지난해 5월 조사를 개시했다. 이번 진실규명은 전체 신청자 544명 중 작년 2월까지 접수된 191명을 대상으로 나온 것이다. [chic@yna.co.kr]

 


◆ 형제복지원 사건



▲ 원생들의 강제 노역을 위해 만든 숙소: 야산에 원생 1백80명을 강제 노역시키기 위해 농가 축사를 개조, 탈출를 막기 위해 쇠창살을 만들어 숙소로 이용했다. 1987.1.19 ⓒ /연합뉴스

박정희 (임기 1963~1979) 군부독재 기간인 1975년 부랑인을 선도한다는 명목으로 무고한 사람들을 부산 형제복지원에 감금하고 가혹행위를 한 인권유린 사건이다. 1987년 직원의 구타로 원생 1명이 숨지고, 35명이 탈출함으로써 내부에서 일어난 인권유린 사실이 세상에 알려지게 됐다. 이같은 인권유린의 근거는 국가가 제공했다. 1975년 제정된 내무부 훈령 410령이 그것이다. 정부는 거리를 배회하는 부랑인들을 영장도 없이 구금하도록 이 훈령을 만들었다. 1988년 서울올림픽을 '성공적'으로 치르기 위한 '사회정화'가 목적이었다. 형제복지원에서 1975년부터 12년 동안 513명이 숨졌지만 죽음의 원인은 아직도 밝혀지지 않았다. 진상규명을 위한 형제복지원 특별법이 2014년 7월 국회에서 발의됐지만 안전행정위원회에서 계류중이다.

1975년부터 1987년까지 부랑인을 선도한다는 명목으로 무고한 사람들을 부산 형제복지원에 감금하고 가혹행위를 한 인권유린 사건이다. 1987년 직원의 구타로 원생 1명이 숨지고, 35명이 탈출함으로써 내부에서 일어난 인권유린 사실이 세상에 알려지게 됐다. 이같은 인권유린이 버젓이 자행된 근거는 국가가 제공했다. 1975년 제정된 내무부 훈령 410호가 그것이다. 정부는 거리를 배회하는 부랑인들을 영장도 없이 구금하도록 이 훈령을 만들었다. 1988년 서울올림픽을 '성공적'으로 치르기 위한 '사회정화'가 목적이었다. 술에 취해 비틀거리거나, 주민등록증이 없거나, 집 잃은 어린 아이처럼 훈령의 실적 채우기를 위해 무고한 사람들이 잡혀들어갔다.

실제 박아무개씨는 14살이던 1984년 9월 집을 나와 어느날 부산 중구 용두산공원에서 낮잠을 자고 있었다. 한 승합차에서 사람들이 내리더니 신분증을 요구했다. 미성년자여서 주민등록증이 없다고 했더니, 그를 차 안으로 밀어넣어 형제복지원으로 강제로 데려갔다. 9살이었던 한 여자아이는 1982년 엄마 심부름을 하느라 거리에 나섰다가 형제복지원으로 납치됐고 이후 거의 날마다 매를 맞거나 기합을 받았다고 한다.

1975년부터 1987년까지 2만~3만명의 사람들이 형제복지원에 잡혀들어가 감금됐다. 가혹행위, 노동력 착취, 성적 학대, 인권 유린 등이 잔혹하게 자행됐다. 탈출하다 실패한 원생은 맞다가 사망하기도 했다. 형제복지원에서 1975년부터 12년 동안 513명이 숨졌지만 죽음의 원인은 아직도 밝혀지지 않았다. 1986년 단속으로 수용된 부랑인 수만 1만6125명이다. 부랑인들은 신체의 자유를 가지며 법률 절차에 의하지 않고는 체포·구금되지 않는다는 헌법과 사회로부터 배제된 국민이었다.

◇ 현재진행형인 형제복지원 사건
형제복지원 사건은 누구나 알고 알고 있지만 아직껏 아무것도 해결되지 못했다. 1960년 '형제육아원'으로 시작돼 국가로부터 땅을 불하받고 정부 지원금으로 규모를 키운 원장 박인근씨가 횡령과 외환관리법 위반 혐의 등으로 구속된 1987년까지 이곳에 갇혔던 수 만 명의 사람들이 대한민국에서 오늘을 살아가고 있다. 박인근씨의 특수감금 혐의는 대법원의 파기환송과 대구고법의 불복을 거치면서 7번의 판결 끝에 1989년 무죄를 받았다. 횡령 등의 혐의만 유죄로 인정됐다. 형제복지원은 이후 재육원, 욥의 마을, 형제복지지원재단에 이어 2014년 2월에는 느헤미야로 수차례 바꾸며 오늘날까지 이어지고 있다. 형제복지원에서 감금생활을 했던 이들은 이렇게 말한다. “형제복지원 입소자들은 대부분 죄가 없었다. 수감자 대부분은 형제복지원을 나온 뒤 고통을 이기려고 술과 약에 의존해 살고 있다. 진상 규명을 통해 명예를 회복시켜 달라.”

2014년 7월 진선미 새정치민주연합 의원 등 55명이 진상규명을 위한 '내무부 훈령에 의한 형제복지원 강제 수용 등 피해사건의 진상 및 국가책임 규명 등에 관한 법률'(형제복지원 특별법)을 발의했지만 관계 부처인 안전행정부와 보건복지부는 난색을 표했고, 2015년 5월 현재 국회 안전행정위원회 법안심사소위에 계류중이다. 2014년 4월28일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서 형제복지원 생존자 11명은 형제복지원 특별법 제정을 눈물로 호소하며 삭발을 했다. 이 자리에서 조영선 변호사는 “형제복지원 사건은 1987년의 세월호 사건이었다. 아우슈비츠였다. 특별법 제정은 생존자들이 왜 끌려갔고 왜 희생돼야했는지 진실을 밝히기 위함이다. 생존자들은 정신적으로 육체적으로 피폐해져 있다. 이들이 모욕당하고 자유를 핍박받을 이유는 없다. 판결도 없이 10여년, 5년, 이렇게 감금된 수많은 이들의 눈물을 닦아주는 것은 국회가 마땅히 해야할 일이다”라고 했다. <출처/ 다음백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