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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기념일

[한글] 조사 ‘~의’는 일본어 ‘の’에서 비롯된 일본식 표현이다?

잠용(潛蓉) 2022. 10. 10. 08:07

[팩트인사이드] 조사 ‘~의’는 일본어 ‘の’에서 비롯된 일본식 표현이다?
중부일보ㅣ기자명 이한빛·김광미 입력 2022.10.08 21:58  수정 2022.10.09 21:12  댓글 1
 

▲ 의왕시 갈미한글공원을 찾은 어린이들이 훈민정음이 새겨진 조각물에서 한글을 만져보고 있다. /중부일보DB


[검증 대상]

인터넷 커뮤니티 “우리가 많이 사용하는 조사 ‘~의’는 일본어 ‘の’에서 비롯된 일본식 표현이다”

한글이 창제된 지 576돌이 됐다. 한글의 위상이나 긍정적 인식은 여전히 높은 편이지만, 한글의 존립은 꾸준히 위협받고 있다. 외래어와 외국어 범람에 이어 한글을 변용한 신조어 등장, 문해력의 하락 등이 연달아 이어진 탓이다. 이에 정부는 한글에 대한 관심을 높임과 더불어 우리 사회에 만연한 외래어를 순화, 대체할 수 있는 순우리말을 만들어 정착하는 활동을 꾸준히 이어가고 있다. 이런 가운데 글쓰기 과정에서 많이 사용하는 조사 ‘~의’가 일본어 ‘~の’에서 비롯됐다는 주장이 나왔다. 몇몇 온라인 게시물에서는 ‘~의’가 ‘~の’를 번역하면서 무분별하게 남발되고 있음을 지적하며 되도록 사용하지 말아야 한다는 내용도 있었다. 이 같은 주장이 계속되자 일부 커뮤니티와 국립국어원에서 운영하는 ‘온라인 가나다’에는 조사 ‘~의’가 일본식 표현이 맞는지 물어보는 질문이 잇따르고 있다. 실제로 조사 ‘~의’는 일본어 번역체에서 비롯된 표현일까. 중부일보가 이에 대해 팩트체크했다.
 
[관련 링크]
1) 조사 ‘~의’가 일본식 표현인지 묻는 게시물(네이버 지식iN 2016년 12월 30일 게시)
2) 조사 ‘~의’가 일본식 표현인지 묻는 게시물(네이버 지식iN 2020년 2월 29일 게시)
3) 조사 ‘~의’가 일본식 표현인지 묻는 게시물(네이버 지식iN 2021년 9월 3일 게시)
4) 일본식 문장표현(티스토리 블로그 게시물)

[검증 방법]
검증문에 명시된 조사 ‘~의’와 일본어 ‘の’의 연관성을 확인하기 위해 국립국어원과 세종국어연구원 등 한국어 관련 단체와 일본어 전공 교수에게 관련 내용에 대해 질의했다. 조사 ‘~의’에 대해 연구한 논문도 확인했다.

 

[검증 내용]
◇ ‘의’와 ‘の’의 뜻
표준국어대사전에 따르면 ‘~의’는 체언 뒤에 붙어 앞 체언이 관형어 구실을 하게 하는 격 조사로 소유와 소속, 행동과 작용의 주체 또는 대상 등 일컫는 의미만 21개에 달할 정도로 다양한 방면에서 활용되고 있다. 일본어 ‘の’도 여러 역할을 한다. 고지엔 일본어 사전은 ‘の’가 ‘의’처럼 체언 뒤에 붙어 체언의 내용을 한정하는 격 조사뿐만 아니라 병립조사, 종조사로도 활용된다고 정의했다. 들·들판을 뜻하는 명사 역시 ‘の’를 사용한다.

▲ 한 시민이 용인 어린이박물관 외벽에서 아이에게 한글을 알려주고 있다. /중부일보DB


◇ ‘~의’는 일본어 영향을 받았나?
‘~의’가 일본어 ‘の’를 번역한 표현이라는 지적에 대해 전문가들은 어떤 의견을 냈을까?
먼저 국립국어원이 제공하는 국어 상담에서는 ‘의’를 일본식 표현으로 보기 어렵다고 답변했다. 국립국어원은 “일본어 ‘の’를 번역하면 주로 ‘~의’로 나타나다 보니 일본식 표현으로 보는 견해가 있다”며 “다만 사전에 ‘의’가 일본식 표현이라는 명확한 근거자료는 없다”고 밝혔다. 국립국어원 온라인 상담 서비스 ‘온라인 가나다’에 게시된 답변에서도 비슷한 이야기가 나왔다.

2007년 올라온 질문에는 “‘~의’가 국어에서 전혀 불가능한 결합형이 아니며 실제로 그런 표현을 다르게 고쳐 쓰려고 해도 마땅히 대체할 표현이 없는 경우도 많다”고 답했다. 국립국어원 이승재 연구관도 “조사 ‘의’는 글을 줄이고 구를 연결하기 위해 주로 사용되는 것으로 일본식 표현이라는 주장은 근거가 없다”고 설명했다.

‘~의’를 남용하면 문장이 부자연스러워지는 이유에는 문장으로 풀어쓰면 길어지는 것을 막으려 과도하게 줄이려고 하기 때문이라고 봤다. 이 연구관은 “어떤 다른 조사라도 문장으로 연결해야 할 것을 구로 연결하려고 과도하게 사용하다 보면 이런 문제가 생긴다”고 말했다.

 

김슬옹 세종국어문화원장은 15세기 조선에서도 관형격·부사격 조사로 ‘의’를 사용했다는 기록이 있다고 밝혔다. 김 원장은 “예를 들면 ‘집에’를 ‘집의’라고 사용할 정도였는데 시간이 지나면서 ‘의’를 쓰는 점점 빈도가 줄어들었다”고 전했다.
이한섭 고려대 일어일문학과 명예교수도 ‘~의’는 일본식 표현이 아니라고 봤다.
이 명예교수는 “우리말에서는 ‘내 가방’, ‘철수 책상’ 등 조사 없이도 명사를 연결하지만, 일본어는 명사와 명사 사이에 바로 연결이 어렵고 조사 ‘の’가 들어가는 것이 원칙이다. 그래서 ‘나의 가방’, ‘철수의 책상’이라고 하는 것이 더 자연스럽다”고 말했다.

다만 전문가들은 일제강점기로 인해 일본어가 우리 언어에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었고 ‘~의’ 사용문제도 마찬가지라고 지적했다. 대표적인 예가 바로 1920년대 후반에 만들어진 동요 ‘고향의 봄’ 가사 중 첫 번째 소절이다. 이한섭 명예교수는 “정확히는 ‘내가 살던 고향’으로 표현해야 하는데, 일본어 교육의 영향으로 ‘나의 살던 고향’으로 굳어지게 됐다”고 말했다.

 

▲ 4일 오후 한 가족이 서울 용산구 국립한글박물관에 설치된 한글 이미지를 관람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윤호숙 사이버한국외대 일본어학부 교수는 2002년 자신이 발표한 논문 ‘남북한 언어에 보이는 일본어식 표현법 –소설을 중심으로-’를 언급하며 설명했다. 해당 논문은 “우리말에서 조사 ‘~의’는 일본어와는 달리 용법이 다양하지 않으며 생략되는 경우가 많은데 근대 소설에는 일본어와 마찬가지로 ‘~의’가 생략되지 않고 다양한 의미로 사용되고 있다”고 소개했다.

윤 교수는 “당시 작가들 대부분이 일본에서 유학하며 일본어를 모국어처럼 배우다 보니 소설 속에도 일본어식 표현이 자연스럽게 들어간 것으로 보인다”며 “그 영향을 받아 현대 소설에서도 일본어식 조사들이 흔하게 사용되고 ‘~의’도 남용하게 됐다”고 분석했다. 김슬옹 원장은 “일제강점기가 되면서 일본어식 표현 ‘의’를 많이 사용하다 보니 어색한 형태의 ‘의’를 사용하는 사례도 늘어났다”며 “우리도 옛날부터 ‘의’를 써왔던 만큼 무작정 사용을 배척할 것이 아니라 문맥의 흐름에 맞춰 쓸 땐 쓰고 뺄 땐 빼야 한다”고 조언했다.

[검증 결과]
중부일보 팩트인사이드팀은 국립국어원, 한국어·일본어 전문가 의견과 논문 등을 검증한 결과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제기된 “우리가 많이 사용하는 조사 ‘~의’는 일본어 ‘の’에서 비롯된 표현이다”라는 검증문은 전혀 사실이 아니라고 판단한다.
조사 ‘~의’는 15세기 조선에서도 사용됐던 데다 ‘일본식 표현이라는 근거가 없다’는 다수 전문가의 의견을 받은 만큼 일본어에서 비롯됐다고 말할 수 없다. 다만, 일제강점기를 거치며 조사 ‘의’를 쓰는 경향이 늘어난 건 사실이다.

 

[팩트인사이드팀 이한빛 기자, 김광미 인턴기자]

<<중부일보 팩트인사이드팀은 팩트체크 소재에 대한 시민들의 제안을 받고 있습니다. 이메일(jbbodo@joongboo.com)로 제안해 주시면 됩니다.>>

[근거자료]
1.네이버 표준국어대사전 ‘의’ 정의
2.다음 고지엔 일본어사전 ‘の’ 정의
3.국립국어원 전화 상담 전화인터뷰
4.경우, 의, 적 등은 모두 일본식 표현인가요?(국립국어원 온라인가나다)
5.국립국어원 공공언어과 이승재 연구관 전화인터뷰
6.김슬옹 세종국어문화원장 전화인터뷰
7.중세국어에서 조사 ‘~의’를 사용했다는 내용이 담긴 ‘속격조사’ 정의(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8.이한섭 고려대 일어일문학과 명예교수 이메일 인터뷰
9.윤호숙 사이버한국외대 일본어학부 교수 전화인터뷰
10.남북한 언어에 보이는 일본어식 표현법 ­소설을 중심으로­(윤호숙, 2002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