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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문학·설화

[불교설화] '밤중에 백월산 두 수행승을 찾아온 성스런 낭자'

잠용(潛蓉) 2013. 3. 2. 14:52

 

“밤중에 백월산 두 수행승을 찾아온 성스런 낭자”
三國遺事 塔像 第四 白月山兩聖條 (노힐부득과 달달박박조)

 

(창원시 백월산 전경 ⓒ김연옥)

 

이 설화의 무대는 경남 창원시 북면에 있는 백월산(白月山)이다 . <백월산양성성도기 白月山兩聖成道記>에 이르기를, 옛날 신라 때 이 산 동북쪽 선천촌(仙川村)에 노힐부득과 달달박박이 살았다고 한다. 부득(夫得)의 아버지는 월장(月藏), 어머니는 미승(味勝)이고. 박박(朴朴)의 아버지는 수범(修梵), 어머니는 범마(梵摩)였다. (<미륵하생경>에는 미래에 하생할 미륵의 아버지는 수범마(修梵摩), 어머니는 범마월(梵摩越)이라고 했고, <아미타고음성왕다라니경(阿彌陀鼓音聲王多羅尼經)>에는 미타의 아버지는 월상전륜성왕(月上轉輪聖王), 어머니는 수성묘안(殊勝妙顔)이라고 했다. 이 설화에는 각각의 부모 이름이 바뀌어 있다.)

두 젊은이는 나이 스무 살 무렵 출가했다. 부득은 회진암(懷眞庵)에, 박박은 유리광사(琉璃光寺)에 살았 는데, 모두 처자와 함께 산업을 경영하며 지냈다. 그러다 신세(身世)의 무상함을 느낀 두 사람은 풍진 세속을 벗어나 더 깊은 산골에 숨으려고 했다.

그러던 어느날 밤 두 사람은 같은 꿈을 꾸었다. 백호(白毫)의 빛이 서쪽으로부터 오더니, 그 빛 속에서 금빛의 팔이 내려와 이마를 만져주는 꿈이었다. 그 꿈에 감탄한 그들은 백월산의 무등곡(無等谷)으로 들어갔다. 박박은 사자암의 판방(板房)에서 아미타불을 염송(念誦)하고, 부득은 동쪽 고개의 뇌방(磊房)에서 미륵불을 희구하면서 부지런히 수행했다.

 

채 3년이 못 된 709년(성덕왕 8) 4월 8일 불탄일(佛誕日)이 되었다. 그날 해가 저물 무렵, 스무살 쯤 된 아릿t다운 한 낭자(娘子) 한 분이 북암(北庵)을 찾아와 하루밤 묵어가기를 청했다. 그 낭자의 몸에서는 난초 향과 사향 향기를 발하면서... 낭자가 시로서 이렇게 말했다.

 

行逢日落千山暮 가는 길에 해가 지니 산은 첩첩 저문데,
路隔城遙絶四隣 길은 막히고 인가는 멀어 이웃도 없네.
今日欲投庵下宿 오늘은 이 암자에 묵어가려 하오니,
慈悲和尙莫生嗔 자비로운 화상이여, 노하지 마르소서.

 

박박이 말했다.
“난야(蘭若: 암자)는 청정한 곳. 그대가 가까이 올 곳이 아니라오. 이 곳에서 지체하지 마시오.”
일언지하에 거절하고는 문을 쾅 닫고 그만 들어가 버렸다. 하릴없는 낭자는 다시 남암(南庵)으로 가서 앞서와 똑같이 청했다. 부득이 말했다.
“그대는 이 밤에 어디로부터 왔습니까?”

낭자가 대답했다.
“어찌 오고 감이 있겠습니까? 다만 현사(賢士)의 덕행이 높다는 말을 듣고 도와서 보리(菩提)를 이루어 드리려 할 뿐입니다.” 그리고는 한 수의 게송(偈頌)을 주었다.

 

日暮千山路 첩첩한 산길에 해가 저물고,
行行絶四隣 가도가도 사방에 인가는 없네.
竹松陰轉邃 소나무 대나무 그늘은 더욱 깊고,
溪洞響猶新 골짜기 시냇물 소리 더욱 새로워라.

 

乞宿非迷路 자고 가기를 청함은 길 잃은 탓 아니고,
尊師欲指津 높으신 스님을 인도하려 함인 것.
願惟從我請 원컨대, 나의 청 들어만 주시고,
且莫問何人 다시 길손에게 누구냐고 묻지 마소서.

 

부득이 놀라면서 말했다.
“이곳은 부녀자가 더럽힐 곳이 아니오. 그러나 중생을 수순(隨順)함도 역시 보살행의 하나인데, 하물며 궁벽한 산골에 밤이 어두우니, 어찌 홀대할 수야 있겠소”

부득은 그녀를 암자 안에 머물도록 허락했다. 밤이 되자 부득은 마음을 맑게 하고 지조를 가다듬어 희미한 등불 아래서 염송(念誦)에만 전념하였다. 밤이 깊었을 때였다. 낭자가 부득을 불러 말했다.
“제가 해산할 기미가 있습니다. 화상(和尙)께서는 짚자리를 좀 깔아주십시오. ”

 

부득은 처음 매우 놀랐지만 이내 그녀가 불쌍한 생각이 들어 거절하지 못하고 촛불을 은은히 밝히니, 낭자는 벌써 해산하고 또 다시 목욕물을 청했다. 부득은 부끄럽기도 하고 두렵기도 했다. 그러나 불쌍한 생각이 앞서서 또 물통을 준비하여 그 속에 낭자를 앉히고 물을 데워 목욕시켰다. 그러자, 조금 뒤에 통 속의 물에서 강열한 향기가 풍기고 물이 금빛으로 변했다. 부득이 깜짝 놀라 말을 못하자 낭자가 말했다.

“우리 스님께서도 여기에서 목욕하십시오.”

 

부득이 마지 못해 그 말대로 했더니, 홀연히 정신이 상쾌해지는 것을 깨닫고 살갗이 금빛으로 변했다. 그리고 그 옆에 문득 하나의 연화대(蓮花臺)가 생겼다. 낭자는 부득에게 앉기를 권하면서 이렇게 말했다. “나는 본래 관음보살인데, 대사가 대보리(大菩提)를 성취하도록 와서 도운 것입니다.” 말을 마치자 홀연히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한편, 박박은 생각했다. 부득이 오늘 밤에 틀림없이 계를 더럽혔을 것이니, 내일 날이 밝으면 찾아가서 그를 비웃어 주어야겠다고 생각하고 이튿날 그의 암자를 찾아갔다. 그런데, 이게 어찌된 일인가? 부득은 미륵존상(彌勒尊像)이 되어 연화대에 올라앉아 밝은 광명을 발하고, 몸은 금빛으로 단장되어 있었으니. 박박은 그만 자신도 모르게 그 앞에 머리를 조아리고 예를 드리면서 말했다.

“이게, 어떻게 이렇게 되셨습니까?” 

 

부득이 그 연유를 자세히 말하자, 박박이 탄식하며 말했다.

 “나는 업장(業障)이 무거워서 대성(大聖)을 만나고도 알아보지 못했습니다. 대덕(大德)은 지극히 인자하여 나보다 먼저 뜻을 이루셨으니, 원컨대 옛 약속을 잊지 마시고 나도 함께 도와주셔야 하겠습니다.”

부득이 말했다.

“아직도 통에 금물이 조금 남아 있으니 목욕할 수 있습니다.”

 

그러자 박박도 목욕을 했다. 그리고 무량수불(無量壽佛)이 되었다. 미륵존상과 무량수불은 서로 마주 보며 앉아 있었다. 산 아래 마을 사람들이 이 소식을 듣고 다투어 달려왔다. 우러러보고, 감탄하고, 그리고 참으로 드문 일이라고 입을 모았다. 두 부처는 마을 사람들을 위하여 불법(佛法)의 요체(要諦)를 설했다. 그런 뒤 구름을 타고 가버렸다. 이상이 달달박박과 노힐부득의 현신성도(現身成道)의 이야기이다.



 

[원문] <三國遺事> 塔像 第四 

南白月二聖 努힐(月+弓)夫得 但但朴朴條

 

-삼국유사 塔像 第四 白月山兩聖『成道記』云, 白月山在新羅仇史郡之北(古之屈自郡, 今義安 郡), 峯巒奇秀, 延무(衣안에 矛)數百里, 眞巨鎭也.
백월산 양성 <성도기>에 이런 기록이 있다. '백월산은 신라 구사군의 북쪽에 있었다. 산봉우리가 기이하고 빼어났으며, 그 산줄기는 수백리에 연무(산맥이 남북으로 뻗어있는 모양)하니 참으로 큰 진산이다.'

古老相傳云, 昔唐皇帝嘗鑿一池, 每月望前, 月色滉朗, 中有一山, 岩石如師子, 隱映花間之影, 現於池中. 上命畵工圖 其狀, 遣使搜訪天下,

옛 노인들은 서로 전해 말했다. '옛날에 당나라 황제가 일찍이 못을 하나 팠는데, 매월 보름 전에 달빛이 밝으면, 못 가운데 산이 하나 있는데 사자처럼 생긴 바위가 꽃 사이로 은은하게 비쳐서 못 가운데에 그림자를 나타냈다. 황제는 화공에게 명하여 그 모양을 그리게 하고, 사자(使者)를 보내 천하를 돌며 찾게 했다.

至海東 見此山有大師子岩. 山之西南二步許有三山, 其 名花山(其山一體三首, 故云三山), 與圖相近.
해동에 이르러 이 산을 보니 큰 사자암이 있고 산의 서남쪽 2보쯤 되는 곳에 삼산이 있는데 그 이름이 화산으로 그 모양이 가지고 간 그림과 같았다.

然未知眞僞, 以隻履懸於師子岩之頂, 使還奏聞, 履影亦現池. 帝乃異之, 賜名曰白月山(望前白月影現, 故以名之), 然後池中無影.
그러나 그 산이 진짜인지 아닌지는 알 수 없으므로 신발 한짝을 사자암 꼭대기에 걸어놓고 사자가 돌아와 아뢰었다. 그런데 신발 그림자도 역시 못에 비치므로 황제는 이상히 여겨 그 산의 이름을 백월산이라고 했다. 그 후로는 못 가운데 나타났던 산 그림자가 없어졌다.'

山之東南三千步許, 有仙川村, 村有二人, 其一曰努(힐月+兮)夫得( 一作等), 父名月藏, 母味勝; 其一曰달달朴朴, 父名修梵, 母名梵摩.(『鄕傳』云雉山村, 誤矣. 二士之名方言, 二家各以‘二士心行, 騰騰苦 節’二義, 名之爾.)
이 산의 동남쪽 3천보쯤 되는 곳에 선천촌이 있고, 마을에는 두 사람이 살고 있었다. 한 사람은 노힐부득 이니 그의 아버지는 이름을 월장이라고 했고, 어머니는 미승이었다. 또 한사람은 달달박박이니 그의 아버지는 이름을 수범이라고 불렀고, 어머니는 범마라 했다. (향전에 치산촌이라 함은 잘못이다. 두 사람의 이름은 방언이니 두 집이 각각 두 사람의 심행이 등등하고 고절하다는 두 뜻으로 이름했을 뿐이다.)

皆風骨不凡, 有域外遐想, 而相與友善. 年皆弱冠, 往依村之東北嶺外法積房, 剃髮爲僧.
이들은 모두 풍채와 골격이 범상치 않았으며 역외하상(域外遐想-속세를 초월한 높은 사상)이 있어 서로 좋은 친구였다. 20세가 되자 사는 마을 동북쪽 고개 밖에 있는 법적방(法積房-절이름)에 가서 머리를 깎고 중이 되었다.

未幾, 聞西南雉山村,法宗谷,僧道村有 古寺, 可以栖(手변)眞, 同往大佛田,小佛田二洞各居焉.
그 얼마 후 서남쪽의 치산촌 법종곡 승도촌에 옛절이 있는데 서진(栖眞-정신을 수련함)할 만하다는 말을 듣고, 함께 가서 대불전과 소불전 두 마을에 각각 살았다.

夫得寓懷眞庵, 一云壤寺(今懷眞洞有 古寺基, 是也); 朴朴居瑠璃光寺(今梨山上有寺基, 是也), 皆설妻子而居. 經營産業, 交相來往, 棲神安養, 方外之志, 未常暫廢.
부득은 회진암에 살았는데 혹은 이곳을 양사라고도 했다. 박박은 유리광사에 살았는데 모두 처자를 거느리고 와 살면서 산업을 경영하였으며, 서로 왕래하며 정신을 수양하여 방외지지(方外之志-속세를 떠나고 싶은 마음, 방외는 세상밖)를 잠시도 폐하지 않았다.

觀身世無常, 因相謂曰: ‘嫂(月변)田美歲良利也, 不如衣食之應念而至, 自然得飽煖也; 不如蓮池華藏千聖共遊, 鸚鵡孔雀以相娛也.
그들은 몸과 세상의 무상함을 느껴 서로 말했다. "기름진 밭과 풍년 든 해는 참으로 좋으나, 의식이 생각대로 생기고 저절로 배부르고 따뜻함을 얻는 것만 못하다.

婦女屋宅情好也, 況學佛當成佛, 修眞必得眞!
또한 부녀와 집이 참으로 좋으나, 연지화장(蓮池花藏-비로사나불이 있는 功德無量 廣大莊嚴의 세계)에서 여러 부처나 앵무새와 공작새와 함께 놀며 서로 즐기는 것만 못하다. 하물며 불도를 배우면 응당 부처가 되고, 참된 것을 닦으면 필연코 참된 것을 얻는 데에 있어서랴!

今我等旣落彩爲僧, 當脫略纏結, 成 無上道, 豈宜汨沒風塵, 與俗輩無異也!’
이제 우리들은 이미 머리를 깎고 중이 되었으니 마땅히 몸에 얽매여 있는 것을 벗어버리고 무상의 도를 이루어야 할 터인데, 이 풍진 속에 파묻혀서 세속 무리들과 함께 지내서야 되겠는가?"

遂唾謝人間世, 將隱於深谷. 夜夢白毫光自西而至, 光中垂金色臂, 摩二人頂. 及覺說夢, 與之符同, 皆感嘆久之. 遂入白月山無等谷(今南洞也),
이들은 마침내 인간 세상을 떠나 장차 깊은 산골에 숨으려 했다. 어느날 밤 꿈에 백호(白毫)의 빛이 서쪽에서 오더니 빛 속에서 금빛 팔이 내려와 두 사람의 이마를 쓰다듬어 주었다. 꿈에서 깨어나 이야기하니 두 사람이 똑같은 꿈을 꾼지라 이들은 모두 오랫동안 감탄했다. 드디어 백월산 무등곡으로 들어갔다.

朴朴師占北鎭嶺師子岩, 作板屋八尺房而居, 故云板房; 夫得師占東嶺磊石下有水處, 亦成方丈而居焉, 故 云磊房(『鄕傳』云, 夫得處山北瑠璃洞, 今板房; 朴朴居山南法精洞磊房, 與此相反. 以今驗之,『鄕傳』誤矣),
박박스님은 북쪽 고개에 있는 사자암을 차지하여 판자집 8자방을 만들고 살았으므로 판방이라고 하고, 부득 스님은 동쪽 고개의 돌 무더기 아래 물이 있는 곳에서 역시 방을 만들어 살았으므로 뇌방이라 했다. <향전>에 이르기를,부득은 산의 북쪽 유리동에 있었으니 지금의 판방이요, 박박은 산의 남족 법정동 뇌방에 있었다 하니 이와 상반되나 지금 상고해 보면 향전이 잘못이다.)

各庵而居. 夫得勤求彌勒, 朴朴禮 念彌陀. 未盈三載, 景龍三年己酉四月八日, 聖德王卽位八年也,
이들은 각기 암자에 살았는데, 부득은 미륵불을 성심껏 구했으며, 박박은 미타불(아미타불)을 경례 염송(念誦)했다. 3년이 채 못되어 경룡 3년 기유(709) 4월 8일은 성덕왕 즉위 8년이다.

日將夕, 有一娘子年幾二十, 姿儀殊妙, 氣襲蘭麝, 俄然到北庵(『鄕傳』云南庵), 請寄宿焉, 因投詞曰:
날이 저물어 가는데 나이 20세에 가까운 한 낭자가 매우 아릿다운 얼굴에, 난초와 사향의 향기를 풍기면서 문득 북암에 와서 자고 가기를 청하며, 그녀는 이렇게 글을 지어 바쳤다.

行逢日落千山暮, 갈 길은 아득한데 해 지니 온 산이 저물고,
路隔城遙絶四隣. 길 막히고 성은 먼데 사방이 고요하네.
今日欲投庵下宿, 오늘 밤 이 암자에 자려 하오니,
慈悲和尙莫生嗔. 자비하신 스님이시여 노하지 마오.

朴朴曰: ‘ 蘭若護淨爲務, 非爾所取近.行矣, 無滯此處!’ 閉門而入
박박은 말했다. "절은 깨끗해야 하는 것이니, 그대가 가까이 올 곳이 아니오. 다른 데 가보시고, 이곳에서 지체하지 마시오 " 하고는 문을 닫고 들어가 버렸다.
(『記』云: ‘我百念灰冷, 無以血囊見試.’)
( 『記』에 이르기를 “나는 모든 생각이 재처럼 싸늘하니 젊은 육신으로 나를 시험치 말라.)

娘歸南庵(『傳』曰北庵), 又請如前, 夫得曰: ‘汝從 何處, 犯夜而來?’ 娘答曰: ‘湛然與太虛同體, 何有往來! 但聞賢士志願深重, 德行高堅, 將欲助成菩提.’ 因投一偈曰:
낭자는 남암으로 가서 또 전과 같이 청했다. 부득이 말했다. "그대는 어디서 이 밤중에 왔는가?"
낭자가 답했다. "담연(湛然-정적의 경지, 즉 우주의 근원)함이 태허(太虛-역시 우주의 근원)와
같은데 어찌 오고 감이 있겠습니까? 다만 어진 선비의 바라는 뜻이 깊고 덕행이 높고 굳다는 말을 듣고 장차 도와서 보리를 이루고자 합니다." 그리고는 게송(偈頌) 하나를 주었다.

日暮千山路, 깊은 산길 해는 저문데
行行絶四隣. 가도가도 인가는 보이지 않네
竹松陰轉邃, 송죽의 그늘은 한층 그윽하고,
溪洞響猶新. 골짜기의 시냇물 소리 더욱 새로워라.

 

乞宿非迷路, 길 잃어 갈 곳을 찾음이 아니라,
尊師欲指津. 존경하는 스님의 뜻 인도하려 함일세.
願惟從我請, 부디 나의 청만 들어 주시고,
且莫問何人. 길손이 누군지는 묻지를 마오.

 

師聞之驚駭, 謂曰: ‘此地非婦女相汚, 然隨順衆生, 亦菩薩行之一也. 況窮谷夜暗, 其可忽視歟!’ 乃迎揖庵中而置之.
부득스님은 이 말을 듣고 몹시 놀라면서 말했다. "이 곳은 여자와 함께 있을 곳이 아닙니다. 그러나 중생의 바램을 따라 순응함도 역시 보살행의 하나일 것이오. 하물며 깊은 산골에서 날이 어두웠으니 어찌 소홀히 대접할 수 있겠소?" 이에 그녀를 맞아 읍하고 암자 안에 있도록 했다.

至夜淸心礪操, 微燈半壁, 誦念厭厭,及夜將艾, 娘 呼曰:
밤이 되자 부득은 마음을 가라앉히고 지조를 닦아 희미한 등불이 비치는 벽 밑에서 고요히 염불했다. 날이 새려할 즈음에 낭자는 부득을 불렀다.

‘予不幸適有産憂, 乞和尙排備?草.’ 夫得悲矜莫逆, 燭火殷勤, 娘旣産, 又請浴.
"내가 불행히도 마침 산고(産苦)가 있으니 원컨대 스님께서는 짚 자리를 준비해 주십시오." 부득은 불쌍히 여겨 거절하지 못하고 촛불을 들고서 은근히 대했다. 낭자는 이미 해산을 끝내고 또다시 목욕하기를 청한다.

弩힐(月+兮)懼交心, 然哀憫之情有加無已, 又備盆槽, 坐娘於中, 薪湯以 浴之. 旣而槽中之水春氣郁烈, 變成金液.
부득은 부끄럽기도 하고 두렵기도 했으나, 가엾게 여기는 마음이 그녀보다 더해서 마지 못하여 또 목욕통을 준비하였다. 낭자를 통안에 앉히고 물을 데워 목욕을 시키는데 잠시 후에 통 속의 물에서 향기가 풍기면서 그 물이 금액(金液)으로 변했다.

弩힐大駭, 娘曰: ‘吾師亦宜浴此.’ 힐勉强從之, 忽覺精神爽凉, 肌膚金色, 視其傍忽生一蓮臺.
이에 부득은 크게 놀라니 낭자가 말했다. "우리 스님께서도 이 물에 목욕해야 합니다." 마지못해 부득이 그 말을 좇았다. 갑자기 정신이 상쾌해 짐을 느끼게 되고 피부가 금빛으로 변했다. 그 옆을 보니 문득 연대(蓮臺)가 있었다.

娘勸之坐, 因謂曰: ‘我是觀音菩薩, 來助大 師, 成大菩提矣.’ 言訖不現.
낭자가 부득에게 그 위에 앉기를 권하며 말했다. "나는 관음보살인데 이곳에 와서 대사를 도와 대보리를 이루도록 한 것이오." 말을 마치더니 이내 보이지 않았다.

朴朴謂힐今夜必染戒, 將歸昕(口변)之, 旣至, 見힐坐蓮臺, 作彌勒尊像, 放 光明, 身彩檀金, 不覺叩頭而禮曰:
한편 박박은 생각했다.'부득이 지난밤 반드시 계를 더럽혔을 것이므로 가서 비웃어 주리라' 하고 도착했다. 보아하니, 부득이 연화대에 반듯하게 앉아 미륵존상이 되었고, 금빛으로 단장된 몸에서는 광채를 발하고 있었다. 박박은 자기도 모르게 머리를 조아리며 절했다.

"何得至於此乎?" 힐具敍其由, 朴朴嘆曰: "我乃障重, 幸逢大聖, 而反不遇. 大德至仁, 先吾著鞭, 願無忘昔日之契, 事須同攝.”
'어떻게 이 경지에 이르렀습니까?' 부득이 그 까닭을 자세히 말해주었다. 박박은 탄식하며 말했다. "나는 마음 속에 가린 것이 중첩되어 요행히 부처님을 만났으나 도리어 만나지 못했던 것입니다. 큰 덕이 있고 지극히 어진 그대가 나보다 먼저 뜻을 이루었군요. 부디 지난 날의 약속을 잊지 마시고 부처되는 일은 모름지기 함께 거두셔야죠."

힐曰: "槽有餘液, 但可 浴之." 朴朴又浴, 亦如前成無量壽, 二尊相對儼然.
부득이 말했다. "통 속에 남은 금액이 조금 있으니 다만 거기에 목욕할 수 있습니다." 박박이 또 목욕을 하여, 전과 같이 무량수를 이루니, 두 부처가 상대함이 엄연했다.

山下村民聞之, 競來瞻仰, 嘆曰: "希 有, 希有!" 二聖爲說法要, 全身?雲而逝.
산 아래 마을 사람들이 이 소식을 듣고 다투어 달려와 우러러 보며 감탄했다. "참으로 드문 일이로다!" 두 부처는 그들에게 불법의 요체를 설명하고는 온몸이 구름을 올라타고 홀연히 가버렸다.

天寶十四年乙未, 新羅景德王卽位(古記云, 天鑑二十四年乙未法興卽位, 何先後倒錯之甚如此),
천보 14년 을미년(755) 신라 경덕왕이 즉위하니(고기(古記)에 이르기를, 천감 24년 을미에 법흥왕이 즉위했다고 하니, 어찌 선후의 뒤바뀜이 이와 같이 심할까?)

聞斯事, 以丁酉歲遣使創大伽藍, 號白月 山南寺, 廣德二年(古記云大曆元年, 亦誤)甲辰七月十五日, 寺成更塑彌勒尊像, 安於金堂, 額曰‘現身成道彌勒之殿’,
이 일을 듣고 정유년(757)에 사자를 보내 큰 절을 세우고 이름을 백월산 남사라 했다. 광덕 2년 갑진년(764) 7월 15일에 절이 완성되므로, 다시 미륵존상을 만들어 당금에 모시고 액자를 <현신성도미륵지전> 이라 했다.

又塑彌陀像安於講堂, 餘液不足, 塗浴未周, 故彌陀 像 亦有斑駁之痕, 額曰‘現身成道無量壽殿’.
또 아마타불상을 만들어 강당에 모셨다. 그러나 남은 금액이 모자라 몸에 골고루 바르지 못한 탓으로 아미타불상에는 역시 얼룩진 흔적이 있다. 그 액자에는 <현신성도무량수전>이라 했다.

議曰, 娘可謂應以 婦女身攝化者也.『華嚴經』摩耶夫人善知識, 寄十一地生佛如幻解脫門,
사론(史論)해 보건대, 낭자는 참으로 부녀의 몸으로 섭화(攝化-중생을 자비심을 가지고 보호하여 교화함)하였다 할만하다. 화엄경이 마야부인 선지식(善知識-부처님의 교법)이 십일지(十一地)1)에 살며 부처를 낳아 해탈문(解脫門)을 여환(如幻)2)한 것과 같다.

[주 1) :十一地: 十地와 等覺을 말함. 보살이 수행하는 계위인 52位 중 41위로부터 50위까지를 십지라 한다. 이 10위는 佛智를 생성하고 능히 住持하여 흔들리지 않고 온갖 중생을 짊어지고 교화 이익되게 함이 땅이 만물을 낳고 키움과 같아서 地라고 한다. 등각은 보살이 수행하는 순서로서 그 지혜가 부처님과 거의 같으므로 등각이라 한다. 여기서는 보살을 마야부인과 비교하고 있다.]
[주 2) :如幻: 환은 여러 방편으로 코끼리, 말, 인물 등을 나타내어 사람들에게 사실이 아닌 것을 사실처럼 느끼게 하는 것.]

今娘之角(木변)産微意在此. 觀其投詞, 哀婉可愛, 宛轉有天仙之趣.
이제 낭자의 각산[順産]한 뜻이 여기에 있으며, 그녀가 준 글은 슬프고 간곡하며 사랑스러워서 천선(天仙)의 지취(旨趣)가 있다.

嗚呼! 使娘婆不解隨順衆生語言陀羅尼, 其能若是乎? 其末聯宜云‘淸風一榻莫予嗔!’, 然不爾云者, 盖不欲同乎流俗語爾.
아, 만일 낭자로 하여금 중생의 바램을 따르는 다라니를 해득할 줄 모르게 했다면 어찌 이처럼 할 수 있었겠는가? 그 글의 끝에는 당연히 “맑은 바람이 한 자리함을 꾸짖지 마오” 라고 했어야 할 것이다. 그러나 그렇게 말하지 않았던 것은 대개 세속의 말과 같게 하고싶지 않았을 뿐이리라.

 

讚曰: 찬을 지어 이르되,

滴翠岩前剝啄聲, 푸른 빛 드리운 바위 앞에 문소리 똑똑똑,
何人日暮叩雲坰(戶변). 뉘신데 저문 날애 구름 속 빗장문 두드리나?
南庵且近宜尋去, 남암이 가까우니 그곳으로 가시지요,
莫踏蒼苔汚我庭. 푸른 이끼 밟아 나의 뜨락 더럽히지 마오.
右北庵. 이것은 북암을 기린 글이다.

谷暗何歸已暝煙 산골에 해 저무니 어디로 가리오?,
南窓有覃(竹아래)且流連 남창 빈 자리에 머물고 가오.
夜蘭(초두 없이)百八深深轉 깊은 밤 백팔염주 세고 있으니,
只恐成喧惱客眠 길손이 시끄러워 잠 못들까 두려워라.
右南庵. 이것은 남암을 기린 것이다.

十里松陰一徑迷 솔그늘 십리길 한 길을 헤매다가
訪僧來試夜招提 밤 되어 招提(중들을 쉬게 만든 절)로 스님 찾아 시험했네
三槽浴罷天將曉 세번 통에 목욕 끝나 새벽이 오려할 때
生下雙兒擲向西 두 아이 낳아 놓고 서쪽으로 가셨네.
右聖娘. 이것은 성랑(聖娘: 관음보살)을 기린 것이다.
  


 

경덕왕(敬德王)의 감동과 불사(佛事)

 

경덕왕(742~765)도 이 소식을 듣고 감동했다. 그리고 왕은 곧 백월산으로 사람을 보내 큰 절을 짓게 하였다. 불사는 757년에 시작하여 764년 7월 보름에 끝나고 백월산 남사(白月山南寺)라 명명했다.

 

금당에는 미륵존상을 모시고 ‘현신성도미륵지전(現身成道彌勒之殿)’이라 하고, 강당에는 아미타불상(阿彌陀佛像)을 모시고 ‘현신성도무량수전(現身成道無量壽殿)’이라 했다. 아미타불상에는 얼룩진 흔적이 있었는데 그날밤 목욕할때 금(金)물이 약간 모자랐기 때문이다.

 

이처럼 관음보살은 갖가지 몸으로 나타나 종종의 방편(方便)으로 중생을 교화한다. 스무 살 아릿다운 낭자의 모습으로 화신한 관음보살은 두 사람 수행자를 마음껏 시험한 것이다.

 

어둠이 내린 깊은 산속 북암(北庵), 처녀가 하루밤 묵어가기를 청한다. 사향의 향기까지 풍기는 그 낭자가 관음의 화신일 줄이야 그 어찌 알았으랴? 박박은 매정하게 거절하며 문을 닫고 들어가 버린다. 그는 파계가 두려웠을 뿐, 낭자의 딱한 사정은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 한편 묵어가기를 허락한 남암(南庵)의 부득, 흔들리는 마음을 염송으로 다잡으며 뜬눈으로 밤을 지새운다. 한밤중에 낭자의 해산(解産). 그것은 한바탕 큰 소동이었다. 더구나 산속 암자에서. 그것도 수행자 부득이 처녀의 해산을 돕기 위해 자리를 깔고 산모를 목욕시키는 등의 법석을 떨어야 했으니... 그래도 그것은 부처를 낳기 위한 시험이자 한편의 연극이었으니...

 

화엄경의 입법계품 (入法界品)에는 일체보살의 어머니 마야부인(摩耶夫人)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 마야는 대환화(大幻化)의 뜻이 있다. 마술사[幻師]의 솜씨만큼이나 신비롭고 불가사의한 해탈의 경지를 얻었기에 그녀는 세간(世間)을 관찰하고 화신(化身)으로 나타나는 지혜와 행위는 가히 불가사의할 정도로 신비롭다. 마야부인은 선재동자(善財童子)에게 설명했다. 무엇 때문에 그가 일체보살의 어머니가 되는지에 대해서.

 

“불자야, 나는 이미 보살의 크나큰 원(願)과 지혜가 환술(幻術)과 같은 해탈문[大願智幻解脫門]을 성취했으므로 항상 보살의 어머니가 되었노라. 현겁(現劫) 중에 모든 보현행원(普賢行願)을 수행하여 일체 모든 중생을 교화하기 위함이 있는 자에게 내가 스스로 현신(現身)하여 다 그 어머니가 될 것이니라.”

 

일연(一然) 스님이 이미 평했듯이, 낭자의 해산은 마야부인이 일체 보살의 어머니가 된다는 의취와 같은 것이다. 부득은 낭자가 권하는 대로 목욕한 뒤에 미륵불이 되었다. 현신성도(現身成道)며 현신성불(現身成佛)이다. 부모로부터 받은 이 현신을 가지고 곧 바로 불도를 이루었고 성불한 것이다. 중생의 몸을 버리지 않고 살아 있는 몸 그대로 성불한 것이다. 밀교(密敎)의 즉신성불(卽身成佛)과 다를 것 없다.

 

부모가 낳아준 이 몸, 하루 세끼 먹어야 하고 화장실도 가야하지만, 그래도 이 몸으로 살고 이 몸으로 도업(道業)도 이루는 것. 그러나 어떻게 번뇌로 더럽혀진 중생의 몸을 씻고 무구(無垢)한 금색신(金色身)을 얻을 수 있을지는 여전히 풀어야 할 화두(話頭). 누가 금빛 나는 무구의 목욕물을 준비해서 그대를 목욕하라고 권할 것인가?

 

계를 엄격히 지키고자 했던 박박은 찾아온 관음대성(觀音大聖)을 알아보지 못한 채 문을 닫고 들어가 버린다. 중생을 따르는 수순중생(隨順衆生)도 보살행의 하나라고 생각했던 부득은 먼저 성불한다. 보살행, 이것이 성불의 중요한 조건이다. 보현행원(普賢行願)은 대승 보살행의 구체적 표현이고, 수순중생은 보현행원 중의 하나다.

 

“보현행원을 수행하여 일체 중생을 교화하려는 사람에게는 내가 현신(現身)하여 그 어머니가 될 것”이라던 마야부인의 말과 그 의취가 똑같다. 원효는 말했다. “보살도란 선정(禪定)과 지혜(智慧)를 닦되 동시에 대비(大悲)도 실천함으로써 자신은 물론 남도 함께 이롭게 하는 것”이라고.

 

“만일 대비를 버리고 바로 선정과 지혜를 닦는다면 이승(二乘)의 지위에 떨어져 보살도를 장애하고, 만일 자비만 일으키고 선정과 지혜를 닦지 않는다면 범부의 병에 떨어질 것이니, 그것은 보살도가 아니다.”라고. 삼기산(三岐山)에서 홀로 수행하던 원광(圓光)은 어느날 신(神)의 충고를 들었다. “법사가 이곳에만 있으면 비록 자신을 이롭게 하는 행위[自利之行]는 있겠지만 남을 이롭게 하는 공[利他之功]은 없을 것입니다. 왜 중국에 구법하여 이 나라의 혼미한 중생을 지도하지 않습니까?”

 

깊은 산에 숨어서 수행하던 자장(慈藏)도 어느날 공중에서 나는 소리를 들었다. “자기 홀로 착하기보다 항하사(恒河沙: 인도 갠지스강 모래, 무량 수를 나타냄)와 같이 많은 중생들을 두루 구제함이 낫다.”

 

“중생을 따르는 것도 보살행의 하나이다. ” 노힐부득의 말이 귓전에 맴돈다. 지금도 귀가 밝은 사람은 공중의 소리를 듣지 않겠는가?  “자기 홀로 착하기보다 많은 사람들을 두루 구제함이 낫다”는.

(원본 : 김상현교수의 에세이 삼국유사)-


 

수행자의 불심(佛心)과 계율(戒律)

 

<삼국유사> 본문의 구절을 원용하면 불심이란 중구삭금(衆口삭金)과 수순중생(隨順衆生)에서 찾을 수 있다, 전자는 수로부인조(水路夫人條)에 후자는 본조(本條)에 나온다, 많은 사람들의 입은 쇠도 녹인다는 말과 중생의 바램을 따라 순응한다는 뜻이다. 전자는 오늘날 여론의 힘으로 이해해도 무방하다.

 

근래 월령제한(月齡制限)을 푼 미국산 소고기 수입 반대 촛불집회에서 투표자의 절반에 가까운 득표를 하고도 무릎을 꿇은 이명박(李明博) 정부의 무력해지는 모습을 목도해야만 하는 가슴 아픈 생생한 기억을 갖고 있다 . 지지가 대선 당시의 여론이었다면 반대도 작금의 여론이었다.

본조의 수행자 노힐부득과 달달박박은 불심과 계율을 대표한다. 부득은 고유어로 '붙들이'이니 노힐부득은 계율에서 놓여나[방임되어, 벗어나, 자유로운] 불심을 붙든, 심행(心行)에 장애가 없는 '등등( 騰騰)'한 수행자라는 말 쯤으로 이해되고, 달달박박은 ‘고절(苦節)’이라는 일연(一然)의 주석에서도 알 수 있듯이 괴롭게도 절도[계율]를 지키고 계율을 잃어버릴까 두려워 하고 걱정하며 이를 지키기 위해 안달복달하는 인물로 보인다.

계율이란 수행자가 흔히 범하기 쉬운 사안에 대하여 금기(禁忌)한 것이니 금기에 대한 매력은 무의식의 심층에 자리하여 단절한다는 것이 매우 어려운 일임을 쉽게 짐작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행자가 계율만으로 득도하는 데는 한계가 있음을 이 설화는 웅변적으로 증명하였다. 말하자면 불심은 계율을 초극(超克)한다고 말할 수 있겠다.

* 이 페이지의 이미지는 KBS 등 유관 사이트에서 인용했습니다. (잠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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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상음악] 김영동 대금연주곡 - 옥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