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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민속·역사

[제사가 달라진다 1] 제사 문화는 지금 '변신 中'이다

잠용(潛蓉) 2013. 3. 31. 07:03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1676호(12.09.26~10.09 일자) 기사입니다]

 

[제사가 달라진다] 제사는 지금 '변신 中'  
[매경이코노미] 2012.10.04 09:13:18 | 최종수정 2012.10.04 09:18:22 

“제사는 조상님의 은덕을 기리는 것으로 정성이 중요합니다. 이런 마음만 변치 않으면 됩니다. 다른 건 시대 흐름에 따라 달라질 필요가 있어요. 물론 급진적으로 바꾸는 건 어렵겠지만 앞으로 시대에 맞게 변화하지 않으면 제사가 아예 없어질 수도 있어요. 그래서 지금부터 자손들에게 조금씩 제사 형식을 바꾸도록 얘기하고 있습니다.” 퇴계 이황 선생의 가문인 진성이씨(眞城李氏) 대종손 이세준 씨 얘기다.

 

제사가 달라지고 있다. 제사 음식, 절차, 횟수 등 형식은 물론이거니와 제사를 지내는 주체, 제사에 대한 인식도 달라지고 있다. ‘제사 비용도 제사 준비도 제사 진행도 모두 장남이 알아서 하는 것’이라는 인식은 이제 아무도 공감하지 않는 옛날 얘기다. 한국의 전통 4가지 의례 중 하나인 제사가 제 의미를 찾고 그 역할을 다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변해야 할 것인가. 민족의 대명절 한가위를 맞아 매경이코노미가 달라지는 제사 문화를 되짚어본다.  


달라지는 제사문화

음식은 줄이고 횟수는 통폐합  

 

 

▲ 제사 때 술을 세 번 올리는 삼헌 절차도 점차 단헌(술을 한 번만 올리는 것)으로 간소화되고 있다.

 

조선 시대 왕비를 가장 많이 배출한 집안이라는 파평윤씨 노종파 종가는 제사를 간소하게 지내기로 유명하다. 이 같은 전통은 조선 중기 문신인 명재 윤증(明齋 尹拯, 1629~1714년) 선생의 유훈에서 시작됐다. 명재는 “제상에 떡을 올리지 말고 일거리가 많은 화려한 유과나 기름이 들어가는 전도 올리지 마라. 훗날 못 사는 후손이 나오면 제사를 지내는 것도 경제적으로 부담이 될 테니 간단히 하라”고 당부했다. 명재의 13세손인 윤완식 씨(56)는 “떡과 전을 안 하니 여자들이 고생을 덜 하고 경제적 부담도 적다. ‘제물보다는 마음으로 제사를 지내라’는 게 대대로 이어져오는 교훈”이라고 말했다.

 

윤증 선생 유훈을 따라 노종파 종갓집에서 차리는 제사상은 단출하기 그지없다. 제철 과일과 나물 각각 3가지, 밥과 국, 그리고 적뿐으로 10개가 채 안 된다. 사실 더 차리고 싶어도 차릴 수가 없다. 윤 씨 가문에는 대물림돼 내려오는 제사상이 따로 있다. 크기가 가로 99㎝, 세로 68㎝에 불과하다.

 

차례는 원래 ‘차’ 올리고 절하는 것

명절에 지내는 차례상은 더 간단하다. 제사상 차림에서 밥과 탕, 나물과 적이 빠진다. 윤 씨는 “설·추석 차례(茶禮)는 말 그대로 차만 올려놓고 간단히 하는 것인데 언제부턴가 허례허식 때문에 ‘제례(祭禮)’를 올리는 것으로 변질됐다”며 안타까워했다.

 

퇴계 이황 선생을 배출한 가문으로 유명한 진성이씨 대종손 이세준 씨(65)도 제사를 간소화했다. 경북 안동 주하리 주촌(周村, 속칭 두루마을) 대종가에 기거하며 전통을 이어가고 있는 이세준 씨는 “예전엔 조율이시, 홍동백서 등의 원칙을 반드시 지켜야 한다고 생각했지만 지금은 정성 들여 상을 올린다는 데 의미를 두고 있다”고 귀띔했다. 이황 선생 역시 “제사 때 과일을 높게 괴지 말고, 나물은 한 그릇에 담으라”는 말씀을 남겼다.

 

이 씨는 복잡한 제사 절차도 대폭 바꾸려 고민 중이다.

“보통 제사 때는 삼헌(잔을 세 번 올림)을 하는데 이를 단헌(잔을 한 번만 올림)으로 줄이고 남자는 2배, 여자는 4배를 하는 것을 단배로 바꿀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다. ‘유세차~’로 시작하는 축문도 뜯어고칠 계획이다. 어려운 한자가 많아 제관들마저 뜻도 모르고 올리는 경우가 많다. 축문을 한글화하면 추모의 참된 뜻을 더욱 많은 사람들이 공유할 수 있을 것 같다.”

 

제사가 달라지고 있다. 그 핵심은 ‘제사 간소화’다. 우선 횟수 줄이기가 대세다. 부모, 조부모, 증조부모, 고조부모까지 모두 8분의 기제사와 설, 추석 차례상 등 기본 10번씩이던 제사를 합쳐서 연 2~4회로 줄이는 게 일반적인 풍토가 되고 있다. 제사 음식도 간소화되고 있다. 이제 제사 음식을 마련하기 위해 일주일 전부터 그릇을 손질하고 나물을 다듬고 밤을 깎는 풍경은 찾아보기 어렵게 됐다. 간소화되다 못해 심지어 직접 제사 음식을 만들지 않고 전문업체에 맡겨 준비하는 경우도 주변에서 적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설과 추석에 차리는 차례상은 더욱 간소화되는 추세다. 사실 이는 정확하게 표현하면 ‘간소화’라기보단 ‘기본’으로 돌아가는 것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예법에 관한 어떤 책도 차례 때 상차림을 그려 놓은 책은 없다. 그저 큰 접시에 송편이나 떡국 같은 시절 음식을 담고 그 사이에 과일과 나물 몇 가지를 곁들이면 된다고 했다.”

 

방동민 성균관 의례팀장의 설명이다. “명절은 원래 제삿날이 아니다. 옛사람들이 명절이라고 잔치를 즐기면서 조상을 추모하지 않을 수 없다며 사당에 음식을 올렸는데 그것이 차례다. 제사가 아니니 기제사보다 상차림이 훨씬 소박했다.”

 

최순권 국립민속박물관 박사도 같은 얘기를 한다. “원래 조상 제사는 기일에 지내는 기제사를 일컫는 것이었고, 차례는 제사가 아니라 명절을 맞이했음을 조상에게 알리는 간략한 의식이었다. 차례에 올리는 제물도 주과포(酒果脯)와 시절 음식을 차리는 정도로 간소하며 축문을 읽지 않고 단헌의 절차로 거행했다.” 조선 후기로 접어들며 차례가 점차 중시되면서 차례상에 올라가는 제물도 기제사에 버금가는 음식들로 채워졌다. 제사를 가문의 위세를 대외적으로 과시하기 위한 수단으로 생각한 때문이다.

 

제사와 관련한 각종 인식도 바뀌는 중이다. ‘제사는 무조건 장남이 지내야 한다’는 인식이 가장 먼저 깨지고 있다. 장남이 제사를 맡아 지낸 풍습은 그리 오래된 것이 아니다. 우리나라에 유교가 들어오기 전에는 가문을 영구히 이어간다는 의식이 미약했다. 따라서 재산과 조상 제사를 특정 자녀가 독점적으로 물려받는 사례는 거의 없었다. 아들, 딸 상관없이 또 출생 순서에 상관없이 부모 재산은 공평하게 분배됐고 조상 제사도 함께 모셨다. 김미영 한국국학진흥원 박사는 “고려 때는 사찰에 부모 위패를 모셔두고 재를 올리는 방식으로 조상을 공양했는데, 이때 소요되는 비용은 모든 자녀가 교대로 담당했다”고 설명한다. 이를 ‘윤회봉사’라 한다.

 

그러나 17세기에 유교가 본격적으로 정착하면서 재산 상속과 제사 계승에서 장자가 우선권을 갖게 됐다. 제사를 맡을 장남에게 재산을 좀 더 많이 물려줘 불만이 없게 한다는 취지였다. 이후 장자 상속의 원칙은 최근까지 계속됐다. 그러나 1989년부터는 친족법이 개정되면서 모든 자녀에게 재산을 균등하게 상속하도록 법이 바뀌었다. 여기서부터 문제가 발생했다. 예전처럼 장자가 모든 재산을 물려받지도 못하는데, 인식은 여전히 장자가 제사를 도맡아 지낸다는 데서 한 발자국도 더 나아가지 못했던 때문이다. 이런 이유로 제사 때마다 가족 간 갈등이 분출돼 큰소리가 나는 사례도 적지 않았다.

 

제사의 의미는 ‘근원 돌아보기’  

▲ 예의 기본서로 꼽히는 주자가례와 사례편람에 나온 제사 진설도(상차림).

 

윤회봉사 전통을 되살리면 이런 갈등의 상당 부분이 사라질 수 있을까. 정종수 국립고궁박물관장은 자칭 ‘윤회봉사 홍보대사’다. 정 관장 집은 1999년부터 형제들이 제물 준비를 나눠 맡은 데 이어 2003년에는 아예 형제들이 제사를 돌아가면서 맡기로 했다. 정 관장은 기회가 있을 때마다 “윤회봉사를 하니 6남 1녀가 싸울 일이 없다. 윤회봉사를 하면 제사가 골치 아플 게 없다”며 윤회봉사를 적극 장려한다.

 

제사 간소화가 전반적인 트렌드가 되면서 ‘제사도 제대로 안 지내는 예를 모르는 인간’이란 식의 인식도 옅어졌다. “가가례라는 말이 있다. 집마다 다 예가 다르다는 의미다. 제사든 뭐든 각 가정이 처한 상황에 맞게 가족끼리 합의하고 그에 따르면 된다. 다른 사람이 참견할 게 없다. 또 다른 사람에게 창피해서 어쩌지 생각할 것도 없는 일이다.”

 

김경선 성균관 석전교육원 교수의 얘기는 시사하는 바가 크다. 모든 전통이 다 변하는 만큼 제례 전통 역시 현대 사회에 맞게 인식과 절차가 변할 필요가 있다는 얘기도 나온다. “가례에 대한 주자의 기본 입장은 이렇다. ‘예법이란 때가 중요하다. 성현에게 예법을 쓰게 하면 반드시 옛 예법을 따르지 않을 것이다. 아마도 옛 예법을 감쇄해 지금의 예법을 따를 것이다.’ 옛 예법에 의존하는 범위를 줄이고 당대 사회의 예속을 적극 수용해도 된다는 의미다.” 금장태 서울대 명예교수(종교학)의 설명도 같은 맥락이다.

 

제사 형식은 간소화되고 있지만 제사를 왜 지내는가에 대한 명확한 생각과 중심은 있어야 한다.

이욱 한국학중앙연구원 박사는 “일상적인 삶 속에 묻혀서 자칫 잊히기 쉬운 나의 시원(始原)을 반복적으로 되돌아보게 하고 기억하도록 하는 게 제사다. 제사를 통해 내가 태어난 곳을 되돌아보는 동시에 내가 나아갈 곳을 바라다보는 것이 중요하다”고 조언한다.

 

[김소연 기자 sky6592@mk.co.kr ,노승욱 기자 inyeon@mk.co.kr]

[특별취재팀 : 김소연(팀장)·명순영·김경민·김범진·박수호·노승욱·임혜린 기자 / 사진 : 박정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