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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민속·역사

[제사가 달라진다 5끝] 성균관 김경선교수 인터뷰

잠용(潛蓉) 2013. 3. 31. 08:09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1676호(12.09.26~10.09 일자) 기사입니다]

 

[제사가 달라진다]

<인터뷰> ‘제례’ 강의하는 김경선 석전(釋奠)교육원 교수…

조선시대 서민들은 부모 제사만 지내 
[매경이코노미] 2012.10.04 09:12:34 | 최종수정 2012.10.04 09:17:11  
 


▲ 김경선 성균관 석전(釋奠)교육원 교수

 

한국 유교문화의 본산이라 불리는 성균관. 성균관 석전교육원에서 오래도록 ‘제례’ 강의를 해온 김경선 교수는 “제사가 간소화되는 것은 시대적인 당연한 결과고, 또 제사 간소화가 절대 바람직하지 않은 게 아니다”라고 주장한다. ‘한자리에 모여 조상을 기리고 가족 간의 화합을 다지는’ 제사의 본래 의미만 실현할 수 있다면 형식은 그리 중요하지 않다는 설명이다.

 

Q. 지금과 같은 제사 형태가 자리 잡은 게 실상 오래되지 않았다는데 언제부터인가?
A. 우리나라에서 지금과 같은 형태의 제사를 지낸 것은 조선 시대 이후 유교, 그중에서도 주자성리학이 확고하게 자리를 잡은 이후부터다. 조선 초기에는 신분에 따라 제사가 달랐다. 1품 이상은 3대 봉사, 7품 이상은 2대 봉사, 일반 서민은 부모 제사만 지냈다. 당시엔 제사만 보고도 신분을 알 수 있었다. 조선 중기 이후 ‘예송논쟁’ 등 당쟁이 예와 얽히면서 예가 자꾸 복잡해졌고 양반층은 4대 봉사를 시작했다. 1895년 갑오개혁 이후 신분제가 철폐되면서 너나없이 전 국민이 4대 봉사에 나섰다. 양반은 해오던 대로 4대 봉사를 했고, 상민이나 천민 출신은 4대 봉사를 안 하면 근본이 양반이 아닌 것이 탄로 날까 두려운 마음에서 4대 봉사에 집착했다. 이게 현재까지 지속되고 있는 ‘전 국민 4대 봉사’의 진실이다.

 

Q. 지금은 신분제가 완벽하게 사라졌다. 굳이 자신의 근본이 양반임을 자랑하기 위해 또는 양반이 아니었던 것을 감추기 위해 4대 봉사를 계속할 이유가 없는 것 아닌가?
A. 한번 머릿속에 박힌 인식이 사라지기는 쉽지 않다. 1960년대에 故 박정희 전 대통령이 ‘가정의례준칙’을 발표했을 때 국민들은 엄청난 충격을 받았다. 4대 봉사를 2대 봉사로 줄이며 각종 명절 제사를 추석과 설에만 지내고(예전엔 한식, 동지, 유두 때도 제사를 지냈다) 제사상도 간소화하라는 게 핵심이었다. 다들 ‘박 대통령이 예를 모른다’며 말을 듣지 않았다. 제사가 대폭 간소화된 것은 근 10년래 일이다. 인식이 바뀌었다기보다는, 산업화의 자연스러운 결과물이다.

 

Q. 지금의 제사가 너무 화려하다는 지적의 목소리도 있다. 제사상을 보다 간소하게 차리고 절차도 간소화할 필요가 있다는 얘기도 나온다...
A. 예의 기본서는 ‘주자가례’다. 조선 후기 때 대학자 도암 이재가 ‘사례편람’을 출간했는데 지금까지도 주자가례와 사례편람은 예를 논하는 사람들이 가장 숭상하는 책이다. 주자가례와 사례편람에는 제사상을 직접 그린 ‘제찬도’가 있는데 비교적 소박한 편이다. 조선 중기 이후 4대 봉사가 시작되면서 제례 또한 자꾸 복잡하고 화려해졌다. 지금의 소위 ‘상다리 부러지는 제사상’은 그 유산이다.

 

Q. 그 ‘상다리 부러지는 제사상’을 차리는 며느리들은 불만을 토로하고 이게 가족 간 불화의 원인이 되기도 한다...
A. 제사의 본은 ‘조상을 추모하고 가족들이 모여 유대감을 느낌으로써 화합을 다지는 것’이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제사의 본이 퇴색했다. 아이러니하게도 지금 제사의 형식을 지키느라 가족 간에 싸움이 나고 가족들이 병나고 힘들어한다. 만약 제사의 형식인 음식 준비 때문에 집안에 분란이 일어난다면 과감하게 형식을 바꿀 필요가 있다. 형식을 바꿔서 본을 찾을 수 있다면 그게 맞다. 집에 찾아온 조상이 많은 음식을 먹고 자손들이 서로 싸우는 모습을 보는 게 좋겠나, 아니면 달랑 밥과 국 한 그릇 먹더라도 자손들이 서로 아끼고 사랑하는 모습을 보는 게 좋겠나?

 

Q. 그래도 너무 간소화하는 것은 예에 맞지 않는 것 아닌가 하는 걱정이 되는 것도 사실이다...
A. 일반적으로 ‘유교는 매우 어렵고 복잡하고 그래서 힘든 것’이라 생각하지만 절대 그렇지 않다. 유교는 본래 ‘아주 간소한 형식을 통해 본을 찾는 예’다.

 

Q. 일부에서는 제사 간소화를 두고 ‘전통’을 그렇게 함부로 여기면 안 된다며 목소리를 높이기도 한다...
A. 전통문화는 절대 변하지 않는 게 아니다. 모든 문화는 시대에 따라 변한다. 바뀐 그 문화가 새로운 전통문화가 된다. [김소연 기자 sky6592@mk.co.kr / 사진 : 박정희 기자]

 

<인터뷰> ‘내제사받지않기운동’ 펼치는 고은광순 대표…

억지로 지내는 제사는 의미 없어 
[매경이코노미] 2012.10.04 09:12:21 | 최종수정 2012.10.04 09:16:54  

 

 
▲ 여성운동가 고은광순 새로운세상여성연합 대표

 

여성운동가인 한의사 고은광순 씨는 2009년부터 ‘내 제사 받지 않기’ 운동을 펼쳐오고 있다. 당장 조상의 제사를 지내지 말자고 하는 것은 여러 가지 분란을 가져올 수 있기 때문에 조상의 제사는 지내되, 대신 자손에게 자신의 제사는 지내지 말라고 다짐을 받는 게 ‘내 제사 받지 않기’운동의 핵심 개념이다.

 

Q. 여성이 힘드니 제사를 간소화하자고 얘기하는 건 들어봤어도, 나는 제사를 지내겠지만 자손이 내 제사를 지내는 것은 원치 않는다는 주장은 별로 들어보지 못했다...

A. 지금까지 수백여 명의 여성이 뜻을 함께하겠다고 서명했다. 당장 제사를 지내지 말자고 하면 남편, 시집 등과 싸우고 혼란을 빚을 수 있다. 혼란과 비난을 최소화할 수 있는 게 이 방법이라고 생각했다. 어느 순간 고리를 끊는 결단을 해야 한다면 그게 내 조상이 아니라 나 자신부터면 된다. 개인적으로 ‘망자도 해방시켜줘야 하지 않나’라는 생각도 있다. 제사 때마다 조상에게 한 끼 음식 대접하고 나 좀 잘되게 보살펴달라고 하는 것은 조상에게도 예의가 아니지 않나 싶다.

 

Q. 왜 제사를 굳이 안 받아도 되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나?

A. 부끄러운 얘기지만 조부께서 이름난 ‘난봉꾼’이셨다. 거의 가족과 함께 사시지도 않았다. 그분의 제사를 며느리와 손자며느리가 모시고 있는데, 며느리와 손자며느리는 실상 조부를 생전에 얼굴도 제대로 보지 못했다. 얼굴도 보지 못한 사람 제사를 얼마나 진정성 있게 지낼 것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실제 제사 지내고 나오는 이들한테 물어보면 누구 제사를 지냈는지 제대로 설명하지 못하는 경우가 태반이다. 제사 지내면서 고인의 생전 행적을 기리는 일도 드물다. 잠깐 모여 일렬로 절을 하고 나올 뿐이다. 오늘날 제사에는 진정성이 없다. 누군지도 모르는 사람을 생각하는 척, 기리는 척 시늉만 낸다. 돌아가신 날 생각하는 척 시늉하는 대신, 탄신일을 기려 기쁜 마음으로 추모하면 어떨까 싶은 생각이 들었다.

 

Q. 탄신일에 추모하자는 게 대안인가?

A. 탄신일도 좋고 명절도 좋고 돌아가신 날도 좋다. 그게 언제든 모두 모여 자손의 근황을 전하고 조상을 생각하는 시간을 가지면 좋을 것 같았다. 근본적으로는 죽음이 아닌 삶에 초점을 맞추고 싶었다. 살아 있는 사람을 중심으로 함께 즐길 수 있는 새로운 문화를 만들어야 한다. 지금의 가족 모임은 남성 중심, 죽은 사람 중심이다. 명절에 가족이 모여 봤자 남성은 남성끼리, 여성은 여성끼리, 아이는 아이끼리, 어른은 어른끼리, 이런 식으로 다 따로 논다. 이런 문화를 남녀노소 모두 함께하는, 살아 있는 사람 중심으로 바꿔야 한다.

 

Q. 좋은 얘기지만 오랜 전통인 제사를 없애자고 얘기하는 것은 쉽지 않다...

A. 제사는 우리의 오래된 전통이 아니다. 김경일 교수가 쓴 ‘공자가 죽어야 나라가 산다’에 따르면 기원전 1324년, 지금으로부터 약 3300년 전에 중국에서 왕권을 합리화하기 위해 만들어낸 게 조상에 대한 제사다. 그 전에는 두려움을 이기려는 목적으로 천신이나 황하에 제사를 지냈다. 우리나라에서 제사가 일반화된 것도 그리 오래전 일이 아니다.

 

Q. 오랜 전통이 아니니 바꿔도 괜찮다는 의미인가?

A. 오랜 전통이라고 무조건 옹호하는 게 바람직하지 않다는 얘기다. 제사가 남성 중심 가부장제 문화의 핵심이라면 가부장제 문화가 달라지는 요즘 제사 문화도 달라질 필요가 있다. 소설가 이문열은 그의 책 ‘선택’에서 제사상에 올릴 떡시루에 김이 안 올라 목을 맨 며느리에게서 섬뜩한 아름다움을 발견한다고 했다. 이 문구에 찬성할 사람이 요즘 과연 한 명이라도 있겠나? 중국에선 당나라 때부터 1000년간 전족이라는 문화가 세습됐다.전족이 오랜 전통이니 지켜야 한다고 얘기하는 사람은 한명도 없다. 물론 제사와 전족을 직접적으로 비교하는 건 아니지만, 어쨌든 모든 전통이 꼭 지켜야 할 가치가 있는 것은 아니라는 얘기다. 지켜야 할 가치가 있는 전통이라도 시대에 따라 형식이 바뀌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임혜린 기자 lynn@mk.co.kr]

 

<opinion> 제사의 문제점과 개선방향 잘 짚어 
[MK뉴스] 2012.10.15 09:10:09 | 최종수정 2012.10.15 09:26:53

 

추석 명절을 앞두고 발행된 1676호 커버스토리 ‘달라지는 제사문화’는 시의적절한 기사였다.

‘달라진 제사트렌드’에서는 핵가족화에 걸맞은 여러 가지 현대화된 제사의식의 사례들을 보여줬다. IT기기를 활용해 제사를 지낸다거나 온라인상에서 추모를 하는 식으로 명절을 보낸다는 사례는 무척 흥미로웠다. 또한 제사음식을 대행하는 업체들이 늘어나고 명절에도 호텔이 성수기를 맞는 등 제사와 관련된 산업이 점차 커지고 있다는 점을 알 수 있었다.

 

인터뷰 기사는 제사에 대한 현대인의 생각을 잘 드러냈다. 명절은 현재 가족과 친지들이 함께 한자리에서 즐길 수 있는 시간이 돼야 한다는 점에 동의한다. 명절에는 가족 간의 소통이 깊어지고, 쉼과 재충전이 있는 시간이 돼야 할 것이다.

 

이번 기사 구성에서 한 가지 아쉬운 점은 제사 인식에 대한 설문조사에서 계층별로 차이가 뚜렷히 구분되지 않았다는 점이다. 연령대와 성별로 드러나는 차이를 뚜렷히 구분해서, 제사에 대한 각 계층의 인식이 어떻게 다른지 살펴보는 작업도 의미 있었을 것으로 보인다. 최근 들어 결혼과 장례, 제사 등 전통적으로 행해온 우리 문화에 대해 비판적으로 돌아보자는 의견이 표출되고 있다.

 

지금까지 오랜 시간을 이어져 내려온 관습을 당연하게 여기고 수동적으로 받아들이는 것은 바람직하지 못하다. 가치 있는 전통은 살리면서 우리의 문화를 다시 바라보자는 움직임은 상당히 바람직하다. 물론 불편하고 거추장스럽다는 이유만으로 전통을 쉽게 버리지는 말아야 한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이번 매경이코노미 기사는 제사의식에 대한 사회적 합의를 이끌어 내기 위한 공론장을 마련했다는 점에서 의미 있었다. 

 

[남향미 INR 부장]
달라지는 제사문화 실감해

제사가 달라지고 있다는 걸 실감할 수 있는 기사였다. 제대로 된 의미도 모르고 형식적으로 지내는 제사는 시간과 비용 낭비에 불과하다. 죽은 사람이 아닌 산 사람 위주로 명절 문화가 바뀌어야 한다는 취지에 크게 공감한다. 제사 때문에 가정불화가 생기기도 하고 옆에 있는 가족들을 제대로 챙기지 못하게 될 때도 있다. 시대에 맞게 누구나 즐길 수 있는 명절 문화가 만들어져야 한다. 내년 설부터는 꼭 그렇게 실천해보자.

 

[김덕배 대전시 유성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