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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민속·역사

[제사] 기일제사(忌日祭祀)의 시각과 절차

잠용(潛蓉) 2013. 3. 31. 08:53

[古禮의 제사 지내는 날짜와 시각]

"기제사(忌祭祀)"라는 말은 돌아가신 날인 기일(忌日)에 지내는 제사(祭祀)입니다.그러므로 돌아 가시기 전날 지내는 것이 아니라 돌아가신 날에 지내야 되겠지요. 제사 지내는 시각은 돌아가신 날의 자시(子時: 전날 23시~기일날 01시)에 지낸다고 합니다. 실제로는 돌아가시기 전날 준비를 하여, 밤 12시가 지난 후 첫 닭이 울기 전, 돌아가신날 새벽에 지냅니다. 제사를 지내는 시각에 관하여 예로부터 내려오는 말에는 아래와 같은 것이 있습니다.
1) 기제(忌祭)는 궐명(厥明: 다음날이 시작할 때, 子時)과 질명(質明: 날이 샐 무렵, 丑時) 사이에 지낸다. 예학자들은 궐명(厥明)에 준비해서 질명(質明)에 모시라고 하였으며, 질명은 첫닭이 울 때(새벽 1시경)를 말한다. (家禮忌祭編○厥明夙興設蔬果酒饌○質明主人以下變服詣祠堂封神主出就正寢)
2) 자시(子時; 전날23시~기일 01시)에 지낸다.
3) 제사는 산날 들어서, 돌아가신날 낸다.
4) 12시가 넘어 지내되, 새벽 첫 닭이 울기 전에 지낸다. (닭이 울면 신이 떠나 버린다는 속설 때문이라함.)

 

[최근의 실제상황-가정의례준칙]

1) 기일 전날 제사를 준비하여, 밤 12시를 기다리지 않고, 초 저녁 일찍 제사를 지내는 경향이 날로 더해가고 있습니다. 현대 생활여건 및 다음날의 직장이나 생업의 문제 때문에 부득이한 사정이라고 생각합니다.
2) 그 결과 제사 지내는 시간이 점점 이른 저녁으로 가는가 하면, 이제는 아예 제사 지내는 날을 돌아가신 기일이 아닌 그 전날에 지내는 것으로까지 여겨지게 되었습니다.
3) 그러나 사정상 제사를 밤 12시가 아닌 초저녁에 지내야 할 형편이라면, 기일(돌아가신 날) 전날 초저녁이 아니라, 기일(돌아가신 날) 초저녁에 지내는 것이 옳다고 합니다. (현행 가정의례준칙도 이와 같은 취지: 기제 ② 기제는 매년 사망한 날 해진 뒤에 제주의 가정에서 지낸다.)
 
[제사 절차] 

기제사(忌祭祀) 절차는 각 지방별로, 성씨별로, 같은 성씨에서도 문중(門中)이나 종중(宗中)의 전통에 따라서 조금씩 차이가 있다. 이를 가가예문(家家禮文)이라고도 한다. 그래서 여기서는 가장 일반적인 절차를 소개하려고 한다.

 

1. 영신(迎神)
먼저 대문을 열어 놓는다. 제상의 뒤쪽(북쪽)에 병풍을 치고 제상 위에 제수를 진설한다. 지방을 써 붙이고 제사 준비를 마친다. 고례에는 출주라 하여 사당에서 신주를 모셔 내오는 의식이 있었다.
 
2. 강신(降神)
영혼의 강림을 청하는 의식으로써 제주가 신위 앞으로 나아가 무릎을 꿇고 앉아 향로에 향을 피운다. 집사가 제상에서 잔을 들어 제주에게 건네주고 잔에 술을 조금 따른다. 제주는 두 손으로 잔을 들고 향불 위에서 세 번 돌린 다음, 모사그릇에 조금씩 세 번 붓는다. 빈잔을 집사에게 다시 건네주고 일어나서 두 번 절한다. 향을 피우는 것은 하늘에 계신 망자(亡者)의 혼(魂)에게 알리기 위함이고, 모사(茅砂)에 술을 따르는 것은 땅 아래 계신 망자의 백(魄)에게 알려 제사에 모시기 위함이다.
 
3. 참신(參神)
고인의 신위에 인사하는 절차로서 모든 참사자가 일제히 두번 절한다. 신주인 경우에는 참신을 먼저 하고, 지방인 경우에는 강신을 먼저 한다. 미리 제찬을 진설하지 않고 참신 뒤에 진찬이라하여 제찬을 올리기도 한다. 진찬때는 주인이 육, 어, 갱을 올리고 주부가 면, 편, 메를 올린다.
 
4. 초헌(初獻)
제주가 첫번째 술잔을 올리는 의식이다. 제주가 신위 앞으로 나아가 꿇어 앉아 분향한다. 집사가 잔을 제주에게 주고 술을 가득 붓는다. 제주는 오른손으로 잔을 들어 향불 위에 세 번 돌리고 모사그릇에 조금씩 세 번 부은 다음 두 손으로 받들어 집사에게 준다. 집사는 그것을 받아서 밥그릇과 국그릇 사이의 앞쪽에 놓고 제물 위에 젓가락을 올려 놓는다. 제주는 두 번 절한다. 잔은 합설인 경우 고위앞에 먼저 올리고 다음에 비위 앞에 올린다. 집안에 따라서는 술을 올린 뒤 밥그릇의 뚜껑을 연다. 
 
5. 독축(讀祝)
초헌이 끝나고 참사자가 모두 꿇어 앉으면 축관이 옆에 앉아서 축문을 읽는다.
축문은 제주가 읽어도 되는데, 엄숙한 목소리로 천천히 읽어야 한다. 축문읽기가 끝나면 모두 일어나 두 번 절한다. 과거에는 독축 뒤에 곡을 했다.
 
6. 아헌(亞獻)
두번째 술잔을 올리는 의식으로 원래는 주부가 올린다. 주부가 올리기 어려운 경우에는 제주의 다음 가는 근친자가 올린다. 절차는 초헌 때와 같으나 모사에 술을 따르지 않는다. 주부는 네번 절한다.
 
7. 종헌(終獻)
세번째 술잔을 올리는 의식이다. 아헌자의 다음 가는 근친자가 아헌 때와 같이 한다. 잔은 7부쯤 부어서 올린다. 
 
8. 첨작(添酌)
종헌이 끝나고 조금 있다가 제주가 다시 신위 앞으로 나아가 꿇어 앉으면 집사는 술 주전자를 들어 종헌 때 7부쯤 따라 올렸던 술잔에 세번 첨작하여 술잔을 가득 채운다. 
 
9. 삽시정저(揷匙正箸)
첨작이 끝나면 주부가 밥그릇의 뚜껑을 열고 숟가락을 밥그릇의 중앙에 꽂는다. 젓가락을 고른 뒤 어적이나 육적 위에 가지런히 옮겨 놓는다. 숟가락은 바닥(안쪽)이 동쪽으로 가게 한다. 삽시정저가 끝나면 제주는 두번, 주부는 네번 절한다. 

 

◈ 유식(侑食): 첨작과 삽시정저의 두 절차를 통틀어 유식이라 하는데 이는 진지를 권하는 의식이다.
 
10. 합문(闔門)
참사자가 모두 잠시 밖으로 나가 문을 닫고 기다린다. 대청마루에 제상을 차렸으면 뜰 아래로 내려가 읍한 자세로 잠시 기다린다. 단칸방의 경우에는 제자리에 옆드려 몇 분 동안 있다가 일어선다.
 
11. 계문(啓門)
닫았던 문을 여는 절차이다. 축관이 헛기침을 세 번하고 문을 열고 들어가면 참사자가 모두 뒤따라 들어간다. 
 
12. 헌다(獻茶)
탕국을 내리고 숭늉을 올린뒤 밥 세술을 떠서 물에 말아 놓고 저를 고른다. 이때 참사자는 모두 머리를 숙이고 잠시동안 조용히 앉아 있다가 고개를 든다.
 
13. 철시복반(撤匙覆飯)
숭늉 그릇에 놓인 수저를 거두어 제자리에 놓고 밥 그릇의 뚜껑을 덮는다. 

14. 사신(辭神)
고인의 영혼을 전송하는 절차로서 참사자가 신위 앞에 일제히 두번 절한 뒤, 지방과 축문을 불사른다. 지방은 축관이 모셔 내온다. 신주일 때는 사당으로 모신다. 이로써 제사를 올리는 의식절차는 모두 끝난다.
 
15. 철상(撤床) 
제상 위의 모든 제수를 집사가 뒤쪽에서부터 차례로 물린다.
 
16. 음복(飮福)
참사자가 한자리에 앉아 제수를 나누어 먹는데 이를 음복이라 한다. 고례에는 '준'이라 하여 참사자 뿐만 아니라 가까운 이웃들에게 제사음식을 나누어 주고 이웃 어른들을 모셔다가 대접하기도 했다.

 

◇ 기제 시각(忌祭時刻)에 대한 문제

예문(禮文)에는 별세한 날 자시(子時)에 제사를 지낸다고 되어 있다. 궐명제(厥明祭)니 질명제(質明祭)니 한다. 궐(厥)은 기야(其也)요 . 질(質)은 성야(成也)니 궐명(厥明)하면 미명(未明)이요. 질명(質明)하면 먼동이 틀 무렵이다.


그러니까 자정(子正)(零時)부터 인시(寅時)(五時)까지 날이 새기 전 새벽에 기제(忌祭)를 올리는 것이 예(禮)이다. 신도(神道)는 음(陰)이라 하여 늦 밤중에 활동을 하며 닭소리가 나기 전에 돌아가야 한다는 말은 예문(禮文)에는 없는 미신적인 헛소리다.


날이 바뀌는 첫 새벽(자시(子時))에 기제(忌祭)를 올려야 한다는 궐명행사(蹶明行祀)의 예문정신(禮文精神)은 돌아가신 날이 되면 제일 먼저 고인의 제사부터 올리는 정성을 강조한데 있다고 본다. 그러나 오늘날과 같은 사회구조와 생활여건에서 볼 때 한밤중 제사는 핵가족화 되어서 분산 거주하는 가족들의 참석이 어려울 뿐만 아니라 다음 날 출근과 활동에도 지장이 많게 된다.


그래서 가정의례준칙(家庭儀禮準則)을 보면 별세한 날 일몰 후 적당한 시간에 지내게 되어 있다. 저녁때라면 사업하는 분이나 회사에 근무하는 사람들이 집에 돌아오는 시간이며 제관들이 모이기 좋은 시각이어서 도시에서는 저녁 여덟시(八時), 아홉시(九時) 사이에 행사(行祀)하는 집안이 대부분이며 또 결례도 아니라고 본다. 종래에는 가정에 따라서 생활의 여유가 있는 사람들은 제청이라 하여 제사를 지내는 장소를 따로 마련해 두어서 항상 그 장소에서 제사를 지내는 것이었으나 그것은 허식에 불과하며 지나친 것이다.

 

◇ 합설(合設)과 단설(單設)에 대한 문제

임하필기 제15권 문헌지장편(文獻指掌編)  

 

김주신(金柱臣)이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기제(忌祭)나 길제(吉祭)에서 고비(考妣)의 신위를 합설한다는 말이 고례(古禮)에 없으며, 문공(文公)의 《가례(家禮)》에서도 다만 한 위(位)만을 진설하는 것으로 되어 있다. 그런데 지금의 풍속은 퇴계와 율곡 등 여러 선현(先賢)들의 의견을 따라 합설하여 제사하는 규정이 생기게 되었다. 사대부 가문의 제례 또한 서로 같지 않아서 더러는 제사를 지내야 할 분에 대해서만 제사를 올리기도 하고 더러는 두 분을 같이 지내는 이들도 있다.

 

만약  재실(再室)이나 삼실(三室)이 있을 경우 합설하려고 한다면 실로 난편(難便)한 일이 많을 수밖에 없다. 가령 예를 들어 반(飯)과 갱(羹), 면(麵)과 병(餠)은 각각 따로 진설하지 않을 수가 없는데, 반과 갱 각 4기(器)와 면과 병 각 4기를 합치면 모두 16기가 되고, 여기에 어(魚)ㆍ육(肉)ㆍ탕(湯)ㆍ적(炙)ㆍ실과(實果)ㆍ소채(蔬菜)ㆍ포(脯)ㆍ해(醢) 등의 제물을 합친다면 도저히 하나의 상탁(床卓)에 나누어 안배하여 진설할 수가 없으니, 이것이 이미 난처한 일이다.

 

그리고 또 고위(考位)와 전후실(前後室)의 삼위(三位)가 모두 직접 휘일(諱日)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해마다 매번 네 차례씩 설전(設奠)을 하는 것은 또한 매우 번독(煩瀆)스러운 일이니, 이것은 참으로 예(禮)가 번거로우면 오히려 비례(非禮)가 되고 혼란스럽다는 혐의가 있다.


지금의 풍속에서 비록 기일(忌日)에 양위(兩位)를 합설하여 제사를 올리더라도 재실과 삼실의 경우에는 고례와 문공의 《가례》에 의거하여 제사 지내야 할 신위에 대해서만 제사를 올리는 것이 아마도 형식과 실질에 있어 모두 합당할 것 같다.” (출처: 한국고전번역원)


 

추로지향(鄒魯之鄕) 안동은 아직도 전통 우세 

[중앙일보] 입력 2013.03.27 00:30 / 수정 2013.03.27 00:30

 

◇ 한국국학진흥원, 안동 사람들 조사
46%는 조부모까지 제사 모시고, 52%는 밤 11시~12시에 지내

경북 안동 사람들은 ‘추로지향’(鄒魯之鄕)이란 말을 즐겨 쓴다. 추로지향은 공자와 맹자의 고향이란 뜻으로 예절을 알고 학문이 왕성한 곳을 이른다. 공자의 77대손 고 공덕성 박사는 1980년 안동에 ‘추로지향’이란 휘호를 남겼고 지금도 도산서원 입구에 세워져 있다. 안동에는 이름난 종가만 80여 곳이 있다. 그래서인지 안동은 지금도 한국의 전통예절이 잘 보존된 지역으로 회자된다. 오늘날까지 생활 속에 남은 전통 의례는 관·혼·상·제 사례 중 제사가 대표적이다. 안동 사람들은 지금 제사를 어떻게 지내고 있을까. 또 제사를 어떻게 받아들일까?

 

한국국학진흥원(원장 김병일) 국학연구실이 안동 사람들의 개별 제사 행태를 최근 낱낱이 조사했다. 금기시된 질문도 포함됐다. 국학연구실은 지난해 6월부터 10월까지 5개월에 걸쳐 안동에 살면서 제사를 지내거나 참석하는 남녀 250명씩 500명을 대상으로 조상 제사의 실태와 의식을 조사했다. 이번 조사에서 안동 사람들은 제사를 지내는 시간이 오후 11시부터 자정 무렵까지가 51.9%로 가장 많았다. 오후 10~11시(18.7%)와 자정~오전 1시(5.3%) 시간대에 제사를 지내는 집도 있었다. 제사 지내는 시간과 관련해 한국역사박물관 김시덕 전시운영과장은 “예서에 따라 약간의 차이는 있지만 대개 자정을 넘겨 지내는 것으로 돼 있다”며 “하루 전에 준비해 기일이 시작하는 첫 시간에 기제사를 올리는 것”이라고 정리한다.

 

제사 때 모시는 대상은 지방(紙榜)이 93.6%로 대부분을 차지했다. 영정사진은 10.4%로 나타났고 신주(神主)를 모시는 집도 0.4%에 이르렀다. 또 제사상을 차리는 방식은 ‘예법에 맞는 제사상’이 94.4%를 차지했다. 응답자 중 4.0%는 ‘고인이 즐기던 음식 위주의 제사상’을, 2.4%는 ‘가족들이 즐기는 음식 위주의 제사상’을 차린다는 답도 있었다. 제사를 지낼 때 축문을 읽는 집은 18.6%로 나타났다. 여성도 헌관으로 술을 올리느냐는 질문에는 32.3%가 ‘올린다’고 답했고, 그 경우 맏며느리(54.0%)가 대개 술을 올렸다.

 

제사에 대한 의식은 뜻밖이었다. 제사는 조부모(2대)까지 지내는 게 좋다는 응답이 46.4%로 가장 많았고 증조부모(3대)는 25.0%로 나타났다. 반면 고조부모(4대)는 12.0%에 그쳐 4대 봉사 제사에 부정적이었다. 제사 비용을 어떻게 부담하느냐는 질문에는 ‘형제들이 현금으로 상호부조’가 54.8%로 가장 많았고, ‘전적으로 제사를 주관하는 집이 부담’도 39.0%로 나타났다. 또 지금 제사를 지내면서 가장 힘든 점은 무엇이냐는 질문에는 ‘제물 준비’가 41.2%로 가장 많았고, ‘힘든 점이 없다’는 응답도 33.2%나 됐다. 그 다음은 ‘제사 참석의 어려움’(19.8%)이었으며 ‘비용 부담’은 18.4%에 그쳤다.이번 조사를 기획한 국학진흥원 김미영 책임연구위원은 “제사의 실태와 의식이 면접을 통해 드러났다”며 “제사의 본질은 자신의 근원을 되돌아보는 것”이라고 말했다. [송의호 기자]

 

제사, 형식보다 형편에 맞추는 예법…
3대 봉사로 줄이고 시간도 초저녁으로'
[서울경제] 2013.02.07 17:36:31수정시간 : 2013.02.12 14:39:05

 

조상제사 어떻게…' 책 낸 김미영 국학진흥원 책임연구위원

1년에 10번 넘는 기제사, 한번에 지내는 것 고려를
조상 모시기 수고로움 당연… 지나친 편의주의는 안돼

 

▲ 김미영 책임연구위원

 

"과감히 제사를 3대 봉사로 줄여야 합니다. 나아가 생전에 낯이 있는 조부모까지로 제사를 줄이거나 기제사를 한번에 치르는 것을 생각해봐야 합니다. 제사시간도 초저녁으로 당기는 것이 옳습니다. 형식에 얽매이기 보다는 각자의 형편에 맞춰 지내는 게 오히려 예법에 맞습니다." 설을 앞두고 최근 '조상 제사 어떻게 지낼 것인가'(민속원)라는 책을 낸 한국국학진흥원의 김미영(51·사진) 책임연구위원을 인터뷰했다. 조상에 대한 제사 문제는 우리나라가 급격히 산업화, 도시화 하면서 명절 때마다 논란이 돼온 주제다.

 

책에 따르면 우리나라에서는 불과 300여년 전까지만 해도 아들, 딸 할 것 없이 자손들이 제사를 나눠 지냈고, 성리학이 번성하던 즈음에도 보통 3대 봉사(위로 3대 증조부까지 제사를 지내는 것) 했다. 이는 조선시대 법전인 경국대전에도 나와있는 내용으로, 4대 봉사는 중국에서도 제후의 예법이다. 제사 음식도 국조오례의에 따르면 10가지를 넘기지 않았다. 김 연구원은 "제사가 많으면 기제사를 1년에 10번 넘게 지내는데, 이는 부담이 너무 크다"며 "현재 경북 안동지역에 종가가 50여개 있는데 이중 절반 가량이 3대 봉사로 줄이고, 제사시간도 자정이 아닌 초저녁으로 바꿨다"고 설명했다.

 

그렇다면 오히려 더 합리적이었던 제사 및 상속 방식이 왜 지금처럼 변했을까. 김 연구원은 유교의 성리학적 가족이념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소위 '대종 (大宗)', 장자 혈통을 중요시하고, 혈통을 귀하게 여기는 유교적 전통의 영향이라는 것이다. 재산과 제사를 자손에게 골고루 나눠주기 보다는, 부계 친족구조 성립을 위해 맏아들에게 몰아줬다. 지배계층에 국한됐던 이러한 경향이 18세기 무렵 일반서민에게로까지 확산돼 장자 중심의 상속과 제사 문화로 뿌리 내리게 됐다는 것.

 

김 연구원은 "자녀들이 돌아가며 제사를 모시는 '윤회제사' 관습은 17세기 말까지도 당시 민간의 서간문이나 일기 자료에 자주 발견된다"며 "상대적으로 유교문화의 영향을 덜 받은 동해안, 서해안, 제주도 등지에서는 아직도 자식들 사이에 제사를 나누는 '제사 분할' 풍속이 있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안동의 명문가인 의성 김씨 청계종가에서는 7남매가 재산을 고르게 나누고, 제사도 나눠 모신다. 상속과 제사, 권리와 의무가 동등하게 분배되는 것이다. 김 연구원은 1991년부터 시행되고 있는 상속법에도 '조상 제사는 협의 하에 지낸다'는 내용이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책 제목처럼 제사를 어떻게 모셔야 할 지 고민하는 자손들을 위해 이 책을 쓰게 됐다고 밝혔다. 아파트에서 제사를 지낼 때 공간이 안 나오면 방위는 어떻게 할까, 맞벌이 부부인데 제사음식을 인터넷으로 주문하는 것이 너무 불경스러운 건 아닐까 등등.

 

"이 책의 요지는 현재의 제사문화를 바꿔야 한다는 것이 아니라, 바뀌어도 된다는 점입니다. 첫째가 상속과 제사를 모두 가져가는 게 한국 고유의 문화적 DNA가 아닙니다. 아파트라 공간이 마땅치 않으면 뒤에 병풍 치는 것으로 방위를 갈음하고, 손이 가는 어려운 음식은 사오더라도 그 외의 것들은 집에서 하면 됩니다. 아들이 없는 집은 사위나 외손자가 지내면 됩니다. 우리가 잘아는 신사임당 집안 제사도 결국 외손주인 율곡이 지냈습니다."

 

하지만 제사든 성묘든 지나치게 편의주의로 흘러가는 것은 우려했다. 사온 제사음식이든 외진 곳의 산소를 가까이 이장하는 추세는 어쩔 수 없는 흐름이라고 인정하지만, 어느 정도의 수고로움은 당연하다는 얘기다. "제사는 단순히 조상을 기리고 모시는 것을 넘어 우리 마음까지 풍요롭게 하는 것입니다. 최소한의 수고로움도 피하자면 효나 예의, 인간관계가 어떻게 되겠습니까. '가가예문(家家禮文)'이라는 말처럼, 집집마다 형편이 다르니 거기에 적절히 맞춰가는 거죠."

 

산소 이장과 화장에 대해서도 변화는 당연한 흐름이라고 강조했다. "언젠가는 묘 자체가 없어지는 시대가 옵니다. 가까운 일본만 해도 전체 장례의 99%가 화장이고, 국내 납골당이나 추모공원 등도 길어야 50년 계약입니다. 과거 산 속에 쓴 산소 대부분은 자손이 돌보지 않는 묵묘(陳墓)입니다. 안할 말로 살아있는 부모도 방치하는데 조상까지 손이 가겠습니까?" [이재유기자 0301@sed.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