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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민속·역사

[제사가 달라진다 4] 간소화되는 제사…'조상님 추모'라면 OK

잠용(潛蓉) 2013. 3. 31. 07:57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1676호(12.09.26~10.09 일자) 기사입니다]

 

[제사가 달라진다]

간소화되는 제사…조상님 기리는 취지 살린다면 OK 
[매경이코노미] 2012.10.04 09:12:42 | 최종수정 2012.10.04 09:17:30   

 


▲ 한때 100명, 200명의 후손이 제사를 올리던 안동, 전주 등지의 명문 집안들조차도 시대 변화에 따라 제사를 통합하거나 간소화하고 있다. 사진은 갈암 이현일 종가의 제사 모습.

 

요즘에는 복잡한 절차를 모두 지키면서 제사를 지내는 집이 많지 않다. 제사 대신 가족과 친지들이 모여 추도식을 하거나 종손 대신 자녀들이 교대로 제사를 맡는 경우도 있다. 과일, 생선 몇 가지만 올리는 등 제사 음식도 많이 간소화되고 있다. 다양한 제사 간소화 사례를 살펴봤다.

 

가족 얘기 담은 편지 읽으며 추도

 

“얼마 전 애플 창업주 스티브 잡스가 타계했습니다. 그를 보며 아버지와 비슷하다고 생각했어요. 스티브 잡스는 조직에서 해임된 적이 있고 아버지도 민주화 투쟁을 하시다 해임되신 적이 있죠. 스티브 잡스는 아이폰 같은 혁신적인 제품으로 인류에 큰 영향을 줬죠. 아버지는 언론사를 떠나 중동 건설현장을 진두지휘하며 중동 국가 주택건설에 이바지하셨고요. ‘우주를 바꿔보자’ ‘하루하루를 마지막 날인 것처럼 살아라’라는 스티브 잡스의 말을 듣고 아버지께서 살아생전 ‘가족끼리 화목해라’ ‘최선을 다하자’라고 하셨던 말씀을 떠올리며….”

 

대기업에 근무하는 박기회 씨(41)가 지난해 10월 부친 추도식에서 읽었던 편지의 일부다. 박 씨 가족은 1996년 부친이 암으로 세상을 뜬 이후 지난해까지 15년간 단 한 번도 제사를 지내본 적이 없다. 대신 가족과 친지 10여명이 모여 30분 안쪽의 추도식을 한다.

 

간소화된 자리지만 한 해도 거르지 않았던 일이 편지를 읽는 것이다. 쌍둥이 형제가 한 해씩 번갈아가며 글을 썼다. ‘아버지께’로 시작하는 편지에는 취직이나 결혼, 출산 등 한 해 동안 일어났던 가족의 소소한 일상이 담겨 있다. 그해 벌어진 굵직굵직한 국내외 사건들도 포함된다. “1년에 한 번 아버지 앞에서 그동안의 일상과 세상사를 말씀드린다는 생각으로 편지를 씁니다. 글을 써 내려가다 보면 다시 한번 아버지에 대한 추억을 되새길 수 있어 좋아요.”

 

박 씨 가족이 추도식에 편지라는 형식을 빌려온 이유가 있다. 돌아가신 부친(故 박세원 씨)은 1970~1980년대 중동 건설붐의 주역이었다. 대우건설 해외본부장으로 근무하며 10여년간 리비아, 수단 등 중동 전 지역을 누볐다. 국가를 위한다는 생각에 몸 바쳐 뛰었지만 정작 가족과 함께할 수 있는 시간은 1년에 2~3주씩 2차례뿐. 타향살이에 힘들었던 부친이 가족과 소통했던 방법은 손으로 정성껏 쓴 편지와 육성이 담긴 녹음테이프였다. 박 씨는 “아버지의 편지와 녹음테이프를 보면 타지에서 얼마나 가족이 보고 싶었을까 하는 생각에 지금까지도 마음이 저며옵니다”라고 말했다.

 

“아버지께서 떠나시고 가장 아쉬웠던 부분이 가족과 함께하는 시간이 적었다는 점이었습니다. 그래서 아버지가 자녀와 소통하는 방식이었던 편지를 빌려 저희도 대화를 나누기로 했습니다. 굳이 제사를 지내지 않아도 아버지를 기리는 데는 아무 문제가 없다고 생각해요.”

 

형제들이 교대로 준비

 

광주광역시 남구 봉선동에 거주하는 박철수 씨(가명·67)는 매년 6번 이상 제사를 도맡아 했다. 종손인 그는 설, 추석 차례에 부모, 조부모 기제사까지 꼬박꼬박 챙겼다. 아내가 “박 씨 집안은 왜 이렇게 제사가 많냐”며 불평불만을 쏟아냈지만 어쩔 수 없었다. 하지만 2년 전인 2010년, 종손 맏며느리로서 제사를 주도했던 아내가 간암으로 사망하면서 상황은 180도 달라졌다.

 

“동생이 제사를 맡기로 했지만 제수씨가 맏며느리가 아니어서 그런지 책임감이 강하지 않더라고요. 지난해까지 동생네서 제사를 지냈지만 계속 갈 수 없다 싶어 올 설부터는 제 큰아들에게 맡기고 있습니다.”

이것도 쉽지 않았다. 장남은 처음엔 형식적인 제사를 굳이 이어갈 필요가 있느냐며 제사 맡기를 거부했다. 의논 끝에 장남이 제사를 맡는 대신 연간 제사 횟수를 절반인 3회로 줄이기로 합의했다. 설 차례, 추석 차례는 그대로 지내고 부모 기제사를 한 번으로 합쳐 아버지 기일에 지내기로 한 것.

 

대신 아내 기일에는 가족끼리 모여 간단히 식사만 하기로 했다. 박 씨 입장에서는 제사를 제대로 모시지 않으려는 아들 내외가 못마땅했지만 방법이 없었다. 장남은 또 2남 1녀가 돌아가며 제사를 지내고 제사비용도 공동 분담했으면 한다고 제안했다. 막내 박기상 씨는 흔쾌히 동의했다. 아들 둘이 모두 제사를 담당하기 어려운 사정이 생길 경우 딸과 사위가 제사를 맡기로 했다.

 

예를 들어 기제사는 장남, 설 차례는 막내아들, 추석 차례는 딸이 맡는 식이다. 제사비용은 장남이 50%, 막내아들과 딸이 각각 25%씩 분담하는 것으로 합의했다. “조상님께는 면목 없지만 이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제사가 계속 유지될 수 있을지 확신을 못 하겠더라고요. 처음엔 죄스러웠지만 막상 해보니 참 편합디다. 형식이 아닌 정성이 중요한 거지 하는 생각도 들고. 듣기로는 조선시대에도 아들 형제들이 돌아가며 모시는 ‘윤회봉사’라는 제도가 있었다더군요. 아버지 제사는 아들이 모시고 어머니 제사는 딸이 맡는 ‘분할봉사’도 있었고요. 지금 우리가 제사를 지내는 모습이 전통과 크게 어긋나지 않는 만큼 나쁘지 않다고 봅니다.”

 

제사 횟수만 줄인 게 아니다. 음식도 과일과 생선 정도로 간략하게 바꾸고 제사 시간도 초저녁으로 옮겼다.

“옛날이야 음식이 귀한 시절이었으니 제사 때만이라도 가족 친지들이 풍족하게 먹자는 성격이 있었지만, 이제는 상황이 달라졌잖아요. 굳이 음식을 바리바리 할 필요가 뭐가 있습니까. 음식을 덜 해 며느리들 스트레스가 줄어들면 더욱 즐겁게 제사를 지낼 수 있을 테고, 그게 더 좋은 것 아닙니까.”

 

제례 교육받고 제사문화 바꿔

 

 
▲ 서울에 사는 체험학습 교사 김민선 씨는 제례교육을 받은 후로 제사를 간소하게 지내고 있다. 사진은 김민선 씨가 아버지 기일에 제사상을 차리는 모습.

 

서울에서 초·중학생 체험학습 교사로 일하는 김민선 씨(42)는 제사에 대한 공부를 하고 나서 제사를 간소하게 드리기로 결심했다. 김민선 씨는 지난 2008년부터 국립민속박물관 내 박물관대학에서 매주 한 번씩 3시간 동안 한국 민속문화와 관련된 강의들을 5년째 듣고 있다. 체험학습 교사로서 민속문화와 한국사 지식을 쌓기 위해 시작한 공부였다. ‘통과의례로 본 한국인의 한평생’ 강의를 듣던 김 씨는 성리학자들이 본래는 검소한 삶을 살았으며 형편에 맞는 간소한 제사상을 차렸다는 사실을 알고 충격을 받았다.

 

김 씨는 “성리학을 깊이 공부한 유생들도 제사상을 간소하게 차렸다는 사실이 놀라웠습니다. 특히 ‘성리학의 본질은 인간의 본성을 따라 더불어 사는 것이다’ ‘제사문화는 살아 있는 사람들을 위한 것’이라는 말이 마음을 움직였지요”라고 말했다.

 

강의를 듣고 난 후 김 씨네 제사상에 올라가는 음식은 5분의 1로 줄었다. 준비하는 사람의 정성만 깃들어 있다면 음식의 많고 적음은 중요치 않다는 믿음에서다. 가장 특징적인 부분은 과일을 종류별로 작은 접시에 한 개씩만 올리는 것. 사과 한개, 배 한 개, 이런 식이다.김 씨는 “옛 조상들은 과일을 한 개씩만 올렸다는 얘길 듣고 나도 그렇게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라고 덧붙였다.

 

김 씨네는 ‘큰집’이 아닌 만큼 부모님 제사만 드리면 된다. “처음엔 많지도 않은 제사를 너무 간소하게 차리는 것 아닌가 싶어 걱정도 됐지만 그런 생각을 하는 것 자체가 허례허식이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부모님도 제사상에 올라온 음식의 종류와 규모보다는 부모님을 생각하고 그리는 우리의 마음에 더 기뻐하실 것이란 생각을 하니 지금은 제사상을 단출하게 차리는 게 아주 자연스러워졌네요.”

 

[명순영·김경민·노승욱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