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용의 타임머신... 영원한 시간 속에서 자세히보기

음악·애청곡

[클래식 명곡] 슈만의 피아노곡 '트로이메라이' (꿈)

잠용(潛蓉) 2013. 7. 14. 08:23

 

Robert Alexander Schumann

Op.15 Kinderszenen 중 ‘Traumerei’
슈만의 ‘어린이의 정경‘ 중 7번 ‘트로이메라이-어린시절의 꿈’


 

더블클릭을 하시면 이미지를 수정할 수 있습니다

슈만(Robert Alexander Schumann 1810∼1856, 독일)이 작곡한 피아노곡집 작품 15번에는 모두 13곡이 들어있다. 제목만 보아도 알 수 있듯이, 모든 곡은 슈만 자신의 어린시절의 추억으로 가득 차 있다. 그 낭만적인 추억들이 곧 음악의 내용으로 표현되어 있는 것이다. 그 중 제 7곡 ‘트로이메라이’는 ‘꿈’ 을 뜻하는 소품으로 F장조, 4/4박자의 서정적인, 비교적 쉬운 곡이며 아름답고 친숙한 선율로 구성되어 있다. 그래서인지 피아노곡집 <어린이 정경>13곡 중에서도 가장 널리 알려지고 유명하다.

그러나 소박한 겉 모습과는 달리 불규칙적인 박절법(拍節法) 등 독일 낭만파의 음악적 성격을 지닌 소품에서 보이는 특유의 복잡한 구성법도 보이고 있어 수준 높은 내용을 지닌 음악으로 다루어진다. 바이올린과 첼로, 그리고 가곡 용으로도 편곡되어 널리 애창되고 있다.

음악가 중에서 가장 교양이 있었던 슈만은 1810년 독일 색소니의 츠비카우에서 태어났다. 어려서부터 음악적 천품을 보였고, 7세 때 교회의 오르간 연주자로부터 기초교육을 받고 음악을 좋아하기 시작하였다. 이어 슈만의 음악에의 열정은 불같이 타올랐지만 불행히도 손가락을 다쳐 연주자로서의 희망이 좌절되었다. 그 결과 작곡과 지휘, 평론의 길을 택한 슈만은 오히려 이런 일로써 명성을 날리게 되었다.

 

[악곡 구성]
‘트로이메라이’는 독일어의 traum(꿈)에서 파생된 '꿈을 꾸다'라는 뜻이다. 이 곡의 소재는 단 하나. 상승했다가 다시 하강하는 4마디의 선율이 모두 8번 되풀이 된다. 그것 뿐이지만 그 짜임의 뉘앙스가 미묘하게 변화되어 마치 꿈을 꾸는 듯한 가볍고 단조로움의 미묘한 변화를 주고 있다. 슈마네스크한 선율의 얽힘, 특히 내려오는 선율의 모습은 표정이 대단하다.

이 곡의 주제도 근본 궤적과 관계되고 있다. 그것이 표현하는 표정 변화의 훌륭함은 다음 마디를 살펴보면 분명히 알 수 있다. 즉 제 2, 6번 마디, 제 10, 14번 마디, 제 18, 22번 마디 등이 그것이다.



▲ Nageeb Gardizi plays Robert Schumann "Traumerei"in St. Aposteln Music Hall, Germany.


▲ "Traumerei" Kinderszenen No 7 Wilhelm Kempff Piano with snow Images.

 


▲ Horowitz plays Schumann ‘Traumerei’ in Moscow(1986) 

 

[연주자: 호로비츠의 60년만의 귀국공연-모스크바, 1986]
블라디미르 호로비츠(Vladimir Horowitz 1904~ 1989, 우크라이나)는 1904년 10월 1일 우크라이나의 수도 키예프에서 출생하였다. 아버지는 유명한 전기 기술자였고, 어머니는 피아니스트였다. 호로비츠는 6살 때부터 어머니에게 피아노를 배우기 시작했고, 12살 때에 키에프 음악원에 입학하여 당시 러시아의 유명한 작곡가 안톤 루빈슈타인의 제자 페릭스 블루멘펠트에게 사사했으나 그때 벌써 어린 나이인 호로비츠는 기술적으로 아무 것도 더 배울 것이 없을 정도로 뛰어난 재능을 보였다고 한다.

그가 19세 때인 1925년 미국으로 망명한 후 근 60년만에 조국 러시아로 돌아온 82세의 피아니스트의 귀국 연주회. 그다지 화려하진 않았지만 자신의 어린시절의 추억을 피아노 건반을 통해 관객들과 교감하는 감동의 무대였다고 한다. 청중은 모두 눈을 감고 음악에 도취했으며, 그 중에는 불운했던 그의 일생을 회상하며 눈물짓는 사람도 있었다고 한다. 오랫동안 미국에서 살다가 죽기 3년전 1986년 고향 모스크바에서 가진 61년만의 귀국 연주회는 지금까지도 그의 일생에 있어 가장 아름다웠던 연주회로 기억되고 있다. 그때 그는 이미 노쇠하여 자신의 몸조차 제대로 가눌 수 없을 정도로 쇠약했었지만 건반 앞에 앉아 천상의 소리처럼 맑고 아름다운 음악을 들려주며 어린아이처럼 기뻐하던 호로비츠...

 

그날 이 연주를 보고 서방의 한 콘서트고어(concertgoer)는 “It's not by human, it can only come from heaven”이라고 극찬했다. 다음날 <뉴욕타임즈>에는 다음과 같은 헤드라인 기사가 실렸다. “Horowitz in moscow, bravos and tears” 뛰어난 연주 이상의 감동을 안겨준 이 연주가 진행되는 동안에는 당시 세계를 양분시킨 냉전시대의 갈등도, 강대국의 이데올로기 대립으로 인한 왜곡과 비난의 시각도 존재하지 않았으며, 다만 가슴 뜨거운 감동만이 장내를 뒤덮었다.


호로비츠는 한 세기에 한명 나올까말까 한 테크니션으로 “악마적 기교주의자” 라고까지 불리었다. 이는 마치 악마에게서 배운 듯한 그의 세련된 기교에 대해 보내는 찬사이다. 물론 그가 젊은 시절에 받았던 찬사이긴 하지만 팔순을 넘긴 나이에 라흐마니노프나 리스트, 스크리아빈 등의 연주 솜씨는 젊은이 못지 않은 힘을 느끼게 해 주고도 남음이 있다. 그러나, 그도 나이는 어쩔 수 없어 1989년 11월 05일 85세를 일기로 뉴욕 맨하탄 자택에서 영면하였다.  [사진: 젊었던 시절의 호로비츠] (글: ccm 악보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