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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세훈] '야당 인사라도 정부정책 지지하면 밀어버릴 필요 없다'

잠용(潛蓉) 2013. 8. 27. 05:43

“야당 인사라도 정부정책 지지하면 밀어버릴 필요 없다”
[한겨레] 등록 : 2013.08.26 13:50 수정 : 2013.08.26 15:25


[사진] 16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국정원의 댓글과 대선개입 의혹 진상규명 국정조사청문회에서 원세훈(왼쪽) 전 국정원장과 김용판 전 서울지방경찰청장이 증인으로 출석한 가운데 원 전 원장이 답변 중 잠시 눈을 감고 있다. /2013.08.16. 뉴시스


검찰, 원세훈 첫 공판서 국정원 회의 녹취록 육성 공개
“내곡동 사저 문제도 잘 차단해주라” 정치 관여 지시도

원세훈(62) 전 국가정보원장의 ‘공직선거법 위반 및 국정원법 위반 사건’의 첫 공판이 26일 서울중앙지법 형사21부(재판장 이범균) 심리로 열렸다. 이날 공판에서 검찰은 “원세훈 전 원장이 ‘대북 심리전’을 구실로 정부·여당에 반대하는 국민들을 종북으로 규정하고 이들에게 무차별적으로 ‘종북 딱지’를 붙이는 ‘신 매카시즘 행태’를 보였다”고 말했다. 또 국정원이 “원 전 원장이 정치적 중립을 지키라고 강조했다”며 공개한 원 전 원장의 발언도 실제로는 정부·여당을 지지하고 야당을 반대하라는 취지의 발언이었던 것으로 드러났다.

 

검찰의 ‘모두 진술’을 보면, 국정원은 “원 전 원장이 2012년 1월27일 부서장 회의에서 ‘직원 업무 수행에 오해가 유발되지 않도록 신경 써달라’고 말한 대목을 공개하면서 원 전 원장이 공정한 업무 수행을 지시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검찰이 이날 공개한 당시 회의 녹취록을 보면, 원 전 원장은 “야당 인사라도 정부정책을 지지하면 밀어버릴 필요가 없다. 최인기 의원도 그렇잖아? 바로 된 사람이면 가도 되요.”라고 말했다. 원 전 원장은 같은 회의에서 “(이명박 전 대통령의) 내곡동 사저 문제도 잘 차단해주라”라고 지시하기도 했다.

 

또 국정원은 “마지막 공직 생활이라는 각오로 업무를 추진하겠다”는 원 전 원장의 2009년 11월20일 발언 요지를 공개하면서 원 전 원장이 공정한 업무를 지시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검찰이 공개한 녹취록을 보면, 원 전 원장은 “국민 의사가 많이 반영된 게 여당이다. 많은 국민이 원하는 쪽으로 일하는 게 맞다라며 국정원의 여당 지지 활동을 지시했다. 원 전 원장은 특히 “부서장은 이 정권하고밖에 더 하겠어요?… 이 정권 빼고 길게 할 것 같아요?” 라며 사실상 이명박 정권만을 위해 충성할 것을 주문했다.

 

검찰은 “결국 피고인(원 전 원장)의 지시는 정치적 중립을 준수한 게 아니다. 피고인은 북한과 유사한 주장을 하는 단체와 정치인 모두를 종북으로 규정했다. 이는 구체적 근거도 없이 무차별적으로 종북딱지를 붙이는 신종 매카시즘”이라고 말했다.

 

원 전 원장은 정부·여당에 반대하는 세력은 무조건 종북·좌파로 인식한 것으로 드러났다. 2010년 지방선거를 5개월 가량 앞둔 1월22일, 원 전 원장은 부서장 회의에서 “그땐 판사도 아마 저기(종북) 되버려서 사법처리 안 될 거야. 다 똑같은 놈들일 텐데…”라고 말했다. 그는 19대 총선을 2개월 정도 앞둔 2012년 2월17일에는 “총선도 대선도 있고 종북 좌파들은 어떻게 해서든 다시 정권을 잡으려고 하고, 야당이 되지 않는 소리하면 처박야지, 잘못 싸우면 국정원이 없어져…”라고 말했다. 이를 두고 검찰은 “종북 좌파가 과거 정권을 잡았다는 걸 전제로 한 발언으로, 피고인의 종북관을 여실히 보여준다”고 지적했다.

 

이날 공판에서는 국정원의 댓글 작업이 조직적으로 벌어진 사실도 드러났다. 3차장 산하 심리전단 4개팀 70여명은 커피숍에서 노트북과 스마트폰을 사용해 활동하고, 매일 하달되는 주요 이슈 및 논지에 따라 게시글을 작성한 뒤 동향 등을 상부에 보고했다. 이들은 1일 3~4건씩 게시글을 올린 목록을 제출했고, 사이버 1개팀이 하루에 60~80개 글을 보고했다. 또 국정원이 2011년 12월부터 1년 동안 외부 조력자들을 활용하면서 이들에게 매달 300만원의 활동비를 지급한 사실도 드러났다.

 

검찰은 “국정원의 사이버 활동은 원 전 원장의 일반적 교지 강령으로 매달 전 부서장 회의 때, 매일 모닝 브리핑을 통해 지시 사항이 하달됐다. 이는 지휘계통에 따라 모든 직원에게 전파됐고, 내부전산망에 ‘원장님 지시·강조 말씀’을 게시해 전직원이 열람했다”라고 밝혔다.

 

검찰은 “민주적 의사 형성에 필수적인 자유로운 사이버 공간에서 국정원 직원이 일반 국민을 가장해 정치·선거 여론을 인위적으로 조장한 행위는 민주주의의 근간을 흔드는 반헌법적 행태다. 피고인의 그릇된 인식으로 소중한 안보 자원이 특정 정치세력에 이용돼 안보 역량이 저해됐다”고 지적했다. 이에 대해 원 전 원장의 변호인은 “심리전단의 활동은 객관적으로 정치·선거 개입이 안 되며, 원 전 원장은 선거 개입 댓글 작성을 지시하지 않았다”고 반박했다. [이경미 기자 kmle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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