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폐 사(廢寺)" 법철(法徹)스님 ‘정업이야기’ 중에서 "비가 오거나 눈이 내리는 음습(陰濕)한 날, 지박령(地縛靈)의 신세가 되어 원한으로 사무친 저주와 탄식 속에서..." (본문 중에서) -------------------------------------------------- 지금부터 나는 젊은 날, 지리산(智異山) 기슭에 있는 어느 큰절의 산내 암자인 동암(東庵)에서 있었던 너무도 가슴아픈 이야기를 회상하고자 한다. 동암은 큰절에서 멀리 떨어진 지리산 기슭에 자리한 작은 천년 고찰이었다. 세월은 강물처럼 흘러 그때로부터 어언 30년이 흘렀건만, 나는 지금도 그 동암만 생각하면, 눈앞에 암자를 에워싼 울창한 대나무 숲이 세찬 비바람에 서로 부비면서 몸부림치며 흐느끼는 듯 호곡하는 소리와 그 속에서 눈비를 맞으며 한스럽게 울고있는 세 여승(女僧)의 모습이 눈앞에 보이는 듯 서언하다. 언제부턴가 “유서 깊은 동암에 원귀(怨鬼)가 나타나 아무도 살지 못하고 폐사(廢寺)가 되어가고 있다”는 소문을 듣고 나는 걸망을 둘러메고 불원천리 그 동암을 찾아 길을 떠났다. 1960년대 말, 내가 20대 중반일 때였다. 나는 먼저 동암이 소속된 큰절의 조실(調室)스님을 찾아갔다. 예를 갖추어 삼배인사를 드린 후, 무릎을 꿇고 조심스럽게 그동안 동암에서 있었던 그 소문에 대해 여쭈어보았다. 조실스님은 누데기가 다 된 승복을 입고, 주름진 얼굴은 한일자로 굳게 다문채 여윈 손에는 호두알 만한 단주(丹珠)를 한 알씩 굴리며 장탄식(長歎息)과 함께 무거운 입을 떼었다. “소문대로 동암에는 밤이면 이상한 일이 벌어진다네... 암자에 사는 사람들에게 귀신이 나타나 무서움을 주고 있었지... 그 암자에 살던 사람들이 귀신에 놀라 모두다 도망을 쳤어. 그래서 지금은 아무도 암자에서 살려는 사람이 없게 되었다네. 그러니 부처님께 예불 드리는 목탁소리와 승려의 독경소리가 끊겨버리고 이제는 인적(人迹)마저 완전히 끊겨 버렸지.” “부처님 도량에서 어찌 그런 일이 있을 수 있을까요?” “괴이한 일이야... 사람이 살지 않는 동암에는 산에서 칡넝쿨이 울타리 안으로 덤벼들고 마당은 쑥대밭이 되어 버렸네. 그래서 어제는 만부득히 그곳 법당의 불상과 탱화(幀畵) 등을 큰절로 이운(移運)해 왔고, 이틀 뒤에는 화장하듯 아예 동암을 불태워버릴 걸세.” 나는 두 눈을 감고있는 조실스님을 조심스럽게 쳐다보면서 여쭈었다. “ 동암의 원귀는 누구며 왜 천도(遷度)가 되지 못하는 것일까요?” “그 원귀의 정체는 바로 그 암자에서 살다가 억울하고 원통하게 죽은 젊은 비구니 세 명이라네...” “비구니라면 수행자가 아닙니까? 어찌하다 다른 사람도 아닌 수행자의 영혼이 천도되지 못하고 원귀가 되어 부처님 도량을 황폐화시킬 수 있을까요?” “착한 비구니들이었네... 그런데 억울하게 무참히 죽임을 당한 거야…. 생각하면 불쌍하기 짝이 없는 비구니들이지... 그 이야기를 듣고 싶은가?” 조실스님은 단주를 딱딱 굴리면서 광채 있는 눈으로 이번에는 나를 응시하며 말했다. 나는 무릎을 꿇고 가슴에 합장하며 목례(目禮)를 드림으로써 경청의 뜻을 표시했다. “동암에는 세 명의 바구니들이 사형제(私兄弟)로써 다정하게 살았다네. 사형인 묘주(妙珠)가 30대 초반이었고, 둘째 묘인(妙印)은 20대 중반, 막내인 묘관(妙觀)은 20대 초반이었지. 출가자는 과거지사를 밝히지 않는 전통으로 그녀들이 출가하기 전의 소식은 나도 알 길은 없네.” 세 명의 비구니들은 모두 동진출가(童眞出家: 나이가 어릴 때 출가)한 청정한 비구니들이었다. 그리고 그녀들은 모두 총명하고 빼어난 미모의 소유자였다. 동암은 그녀들의 스승이 입적(入寂)하면서 그들에게 물려진 그들의 출가지(出家地)요, 수행처(修行處)였다. 봄이 되면 세 비구니들은 언제나 밝고 고운 미소 속에 함께 산에 올라가 나물을 캐고, 개울가에서 빨래를 하며, 밭을 일구어 씨를 뿌리고 채소를 거두었고, 함께 기도하고 함께 면벽(面壁) 참선공부를 했다. 속세에 때묻지 않은 그들의 모습은 마치 지리산에 내려온 세 명의 선녀(仙女)와 같았다. 그녀들은 입적하신 스승의 유훈을 받들어 상구보리(上求菩提) 하화중생(下化衆生)의 정신으로 수행정진에 여념이 없었다. 그들은 서로를 경책(警策)하면서 경전을 읽고, 참선을 하고, ‘하루 일하지 않으면 하루 밥 을 먹지 않는다(一日不作 一日不食)’는 불문(佛門)의 철칙을 준수하여 매일 부지런히 노동을 했고 암자를 찾는 중생들에게는 언제나 친절하게 차와 식사를 대접했다. 매일 새벽예불이면 언제나 가사장삼을 정제하고 부처님 전에 향을 피우고, 청정수로 다기물을 올린 뒤, 불전삼배를 드린 후 무릎을 꿇고 가슴에 두 손을 합장하여 다함께 합창으로 <이산선사(怡山禪師)의 발원문>을 큰소리로 낭송했다. “시방삼세(是方三世) 부처님과 팔만사천 큰 법보(法寶)와 보살성문(菩薩聲聞) 스님네께 지성귀의(至誠歸依)하옵나니 자비하신 원력으로 굽어살펴 주옵소서. 이 세상의 명과 복은 길이길이 창성하고 오는 세상 불법지혜 무럭무럭 자라나서 날 적마다 좋은 국토 밝은 스승 만나오며 바른 신심 굳고 세고 아희로서 출가하여 귀와 눈이 총명하고 말과 뜻이 진실하여 세상일에 물 안들고 청정범행 닦고 닦아 사리같이 엄한 계율 털꿑인들 범하리까?” 그녀들은 매일 새벽 예불이면 불전에 <이산선사의 발원문>을 낭송하면서 세세생생 처녀의 깨끗한 몸으로써 출가하여 불교를 향한 신심을 마음 속 깊이 다지고 다졌다. 때는 여순반란사건(旅順反亂事件)이 발생하고 난 뒤 얼마 되지 않아 지리산은 소위 빨치산들의 소굴로 되어갔고, 곧이어 북쪽에서 포성이 울리더니 6.25 한국전이 시작되었다. 지리산 기슭에 있던 마을 대다수는 밤에는 지리산 산속에서 암약하던 적군(赤軍)들이 하산하여 인민공화국의 세상으로 만들었고, 낮에는 우리의 군경(軍警)이 진주하여 대한민국의 세상이 되었다. 이 같은 상황은 지리산의 빨치산이 완전히 소탕될 때까지 살벌한 풍경으로 몇 달 간이나 계속되었다. 같은 단군(檀君) 할아버지의 피를 이어받은 자손들이 외국에서 들어온 이념(理念) 하나 때문에 철천지원수(徹天之怨讐)가 되어 동족상잔(同族相殘)을 해대었고, 지리산 골짜기는 양쪽에서 흘린 선혈(鮮血)로 냇물을 이룰 지경이었다. (사진: 당시 빨치산의 거점이던 지리산 빗점골 - 지리산공비토벌 루트를 가다) 그 해 여름 어느 날이었다. 낮에 큰절에 다녀온 묘주스님이 두 사제를 방안으로 불렀다. 사형은 작설차를 끓여 주전자에 담아 자신의 잔과 사제의 잔에 따르면서 두 눈에 두려움을 가득 담고 무겁게 입을 열었다. “여기 이 암자는 오직 적멸 속에 평안하지만, 지금 지리산에는 좌익 빨치산들의 세상이 되었다는 게야. 그 빨치산들이 조국통일을 위한답시고 총칼과 죽창으로 무장하여 자신들을 지지하지 않는 사람들은 무자비하게 살륙을 한다는 거야. 그런 빨치산들이 동암에 나타나는 것은 시간문제라며, 큰절 스님들은 우리에게 잠시 암자를 떠나 큰절에 와 있으라고 권했어. 어찌했으면 좋겠나?” 묘인이 찻잔을 접시에 받쳐 입가에 대면서 공포에 질린 두 눈을 크게 뜨고 말했다. “설마 그들이 우리같이 죄 없는 사람을 죽이려 들지는 않겠지요. 우리는 이곳을 굳이 떠날 필요가 있겠어요?” 묘관도 겁에 질려 말했다. “우리같이 수행정진하는 사람에게 전쟁의 불씨는 날아오지 않을 거예요.” 묘주가 더욱 두려운 눈이 되어 다시 말했다. “지리산 빨치산 즉 공비가 무섭다지만, 공비를 토벌하는 국군도 무섭다는 거야. 큰절의 스님들의 말에 의하면 국군이 깊은 산속 사찰과 암자는 공비들의 소굴이 될 수도 있다는 판단아래 작전상 사찰과 암자를 강제로 불태우기도 한다는 거야. 오대산 상원사(上院寺)에도 국군 중위가 부하를 시켜 불태우려는 것을 거기 계시는 방한암 큰스님이 목숨을 걸고 지켰다는 게야. 국군장교는 큰스님이 생사를 초월하여 상원사를 지키려는 모습을 보고 감동하여 절 문짝만 불태우고 떠났다는 거야. 우리도 그런 일이 발생할 지 모르지 않어?” 묘인이 머리를 가로 저으며 단호하게 말했다. “사형, 세상이 아무리 아수라판이라 해도 우리같이 죄 없는 사람은 죽이지 않을 거예요. 우리 동암도 절대로 아무 탈 없을 거구요.” 저녘 예불 때부터 빗방울이 후드득후드득 어두워진 동암의 도량에 떨어지고 있었다. 그녀들은 부처님 전에서 오래도록 정근 목탁을 치면서 하루속히 전쟁이 끝나고 평화가 돌아오기를 간구하는 기도를 했다. 그녀들이 간절하게 기도를 하는 그 시간에 동암 뒷산 어두운 대나무밭 속에서는 두 사람이 짐승처럼 낮게 웅크리고 사나운 눈초리로 법당을 호시탐탐 응시하고 있었다. 한 사내가 내뱉듯이 차갑게 말했다. “길수동무, 저 암자에는 저 여승들 세 명뿐이디?” “네. 낮에 확실히 파악했습니다. 대장동무. 그런데, 대장동무, 세 여승이 모두 굉장히 미인이던데 어쩌지요? 흐흐흐...” 다음날 오전이었다. 누가 방문 밖에서 소리쳐 부르는 소리에 묘관이 문을 열고 나와보니 무장한 국군 7,8 명이 마당에 서 있었다. 그들은 모두 오랫동안 세수와 면도를 하지 않아 검은 얼굴에 수염이 텁수룩했다. 그들은 하나같이 피곤해 보였으며 사나운 표정으로 묘관을 노려보았다. 그들 가운데 소대장이 거칠게 말했다. “여기 암자에 사는 사람 모두 몇 명입니까?” 묘관은 잔뜩 겁을 먹고 기어 들어가는 목소리로 대꾸했다. “모두 승려들 세 명입니다.” “모두 나오라고 하시오.” 비구니들 세 명이 그들 앞에 섰다. 소대장이 여전히 거칠고 단호하게 말했다. “도주하고 있는 공비들이 이 근방 산 속으로 숨은 것 같다는 정보가 있습니다. 곧 이곳에서 공비토벌 전투가 시작될 것입니다. 세 분 스님들의 생명이 위험하니 즉시 동암을 비우고, 모두 암자를 떠나 큰절에 내려가십시오. 아시겠어요?” 그 때, 묘주가 두 사제에게 귓속말로 말했다. “상원사를 생각해봐 ! 우리가 떠나면 이곳은 불태워질지도 몰라. 안 되지, 절대...” 세 비구니는 완강한 얼굴로 단호히 대꾸했다. “우리는 암자를 떠날 수가 없어요. 우리는 그동안 살아오면서 아무런 죄도 짓지 않았어요. 누가 우리를 죽일 이유가 없어요. 우리는 암자에서 절대 못 떠납니다.” 소대장은 어이없다는 표정을 짓더니 이내 성난 얼굴을 하고 군화발로 마당에 있는 돌을 힘껏 걷어차면서 사납게 말했다. “순진한 말씀 하지 마세요. 전쟁터에서 죄 있고, 죄 없는 자를 가려서 죽이는 줄 아시오? 우리 토벌부대의 본대가 내일 오전에 도착하는데 그 때까지 스님들이 이곳에 머무르고 있으면 우리가 혼이 난다는 것을 아셔야 합니다. 우리는 내일 오전에 다시 오겠어요. 거듭 경고 합니다. 스님들은 당장 큰절로 떠나야 합니다.” 장교는 세 비구니가 너무 착해서 바보 같다는 생각을 하면서 애써 얼굴에 노기를 띠고 거듭거듭 떠나라고 재촉했다. 그러나 그녀들은 자신들이 암자를 떠나고 나면 암자는 작전상 불태워질지 모르기 때문에 오대산 상원사처럼 사수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 날 오후, 하늘은 동암의 불행한 전조(前兆)인듯 뇌성이 무섭게 울리면서 번개가 번쩍이는 가운데 폭우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그녀들은 방 한가운데 밝혀 놓은 호롱불을 응시하면서 침묵 속에 정좌하고 쏟아지는 빗소리를 가슴에 담고 있었다. 그들의 마음에는 내일 공비토벌대의 부대가 도착하면 암자에서 강제로 내쫓기고, 암자는 불태워질지도 모른다는 두려운 걱정을 하고 있었다. 빗소리를 듣고 있던 묘주가 두려움에서 벗어나기 위한 방편으로 이야기를 꺼내었다. “내가 인과(因果)에 대해서 법문(法門)을 해줄까?” 빗소리를 듣고만 있던 두 사제는 두려움 속에서 벗어날 수 있는 활로를 찾았다는 생각에 이구동성으로 대답했다. “사형님, 어서 이야기를 해주세요.” 순간 묘주는 싸늘하게 미소를 지으면서 말했다. “복수(復讐)에 대한 이야기지...” 어느때 부처님이 인도의 죽림정사(竹林精舍)에서 중생들에게 설법하고 계실 때, 성안의 어떤 젊은이가 헐레벌떡 달려와 황급히 부처님께 예배하고 떨리는 음성으로 이렇게 고했다는 거야.” “세존이시여, 지금 왕사성 성내에 이해할 수 없는 괴이한 사건이 발생하여 온 성내가 쑤군거리고 있습니다.” 그러자 부처님은 자비스러운 미소를 머금고 말씀했다. “마음을 가라앉히고 천천히 자세히 말해 보아라.” “세존이시여, 어떤 상인 하나가 성으로 걸어 들어가는 성문 앞길에서 나무에 새끼줄로 매인 출생한지 1년도 채 못되는 암소를 우연히 만날 수 있었는데, 암소는 그 상인을 보고는 갑자기 무섭게 성을 내며 길길이 날뛰더니 순식간에 무섭게 생긴 두 뿔로 그 상인을 떠받아 죽여버리고 말았습니다. 성문 앞 땅은 암소의 뿔에 찔려 죽은 상인의 유혈이 낭자하여 보기에도 참혹했답니다.” “.........” “그런데 더욱 괴이한 것은 그 암소의 주인이 자신의 암소가 살인사건을 벌이기 전에 잠시 그늘이 있는 고목나무 아래에서 낮잠을 자고 있었는데, 꿈 속에서 자기 암소가 사람을 뿔로 떠받아 죽이는 전조(前兆)의 꿈을 꾸었다고 고백한 것입니다. 꿈이 안 좋아서 내심 걱정하고 있는데 순식간에 참상이 일어났다며 사건을 사전에 막지 못한 것을 통탄했습니다.” “.........” “암소의 주인은 그 암소를 즉시 팔아버리려고 했지만, 참상을 아는 사람들은 선뜻 암소를 사려고 하지 않았답니다. 암소의 주인이 고심하고 있던 차에 지나가던 어떤 상인이 헐값으로 주면 사겠다고 나섰답니다. 암소는 상인에게 헐값에 팔렸습니다. 상인은 싸게 암소를 샀다고 좋아서 연신 좋아하며 암소의 목에 새끼줄을 묶어 끌고 자신의 집으로 걸었답니다. 때마침 상인은 목이 말라 길가에 있는 나무에 암소를 매어놓고 물을 마시려 강가에 엎드리는데, 돌연 암소가 무섭게 성을 내며 매어놓은 새끼줄을 끊고 순식간에 달려와 물을 마시려는 상인을 두 뿔로 떠받아 죽여버렸습니다. 강물은 소뿔에 찔려 죽은 상인의 피로 벌겋게 물들었답니다.” “.........” “뜻하지 않게 암소에게 죽임을 당한 두 상인의 가족은 분기탱천하여 서로 칼과 도끼와 창을 들고 암소를 무참히 죽여 가죽을 벗기고 사지를 갈갈이 찢어 고기를 헐값에 팔았습니다. 그런데 암소의 머리를 사겠다는 사람이 없어 고심하던 차에 때마침 어떤 상인 하나가 나타나 헐값으로 그 소머리를 사가게 되었습니다. 헐값에 소머리를 산 상인은 기분이 좋아서 콧노래를 부르면서 그 소머리를 새끼줄로 묶어 손에 들고 집으로 돌아가다가 피곤하여 큰 나무가지에 소머리를 새끼줄로 단단히 묶어 걸어놓고 그 밑에서 잠시 휴식을 취했답니다. 그런데 괴이하게도 단단히 묶어놓은 새끼줄이 갑자기 끊어지면서 소머리가 떨어져 그 아래서 휴식하고 있던 상인의 머리 위에 떨어졌습니다. 마치 암소가 살았을 때 무섭게 성을 내며 두 뿔로 사람을 떠받듯이 상인은 순식간에 두 뿔에 찔려 유혈이 낭자한 가운데 뇌진탕으로 즉사하고 말았습니다." “.........” “결국 암소 한 마리가 세 사람의 상인을 하루만에 모두 죽인 것입니다. 이런 까닭으로 왕사성의 임금과 백성은 괴이한 사건의 이야기를 서로 나누면서 세존께 여쭈어보아야 한다고 해서 제가 먼저 달려온 것입니다. 세존이시여, 암소와 세 상인과는 무슨 인연이 있었을까요?” 그 때 괴이한 사건에 대해 부처님의 법문을 듣고자 왕사성의 왕과 대신과 백성들이 부처님을 찾아왔다. 부처님은 잔잔한 미소 속에서 두 눈을 지그시 감고 잠시 선정에 들어 세 상인과 암소의 전생을 살폈다. 임금과 질문한 젊은이, 그 외 사부대중은 모두 부처님 앞에 모여 설법을 듣는 자세로 앉아 부처님을 우러렀다. 이윽고 부처님은 자비스런 미소 속에 말씀하셨다. “비명횡사(非命橫死)한 세 상인의 전생을 살펴보니 전생에 세 상인은 한 패가 되어 시골장을 돌아다니며 장사를 하는 마음씨 나쁜 불한당이었다.” 부처님의 말씀은 다음과 같았다. 어느 날, 세 상인은 장사를 다니다가 날이 저물어 여관과 주막을 찾아보았으나 보이지 않았다. 그러다 어떤 노파의 집을 방문하여 노파에게 애걸복걸하면서 간청했다. ‘할머니, 하룻밤만 숙식하게 해주시면 숙박비를 후하게 처드리겠어요.” 하면서. 노파는 집도 좁고 누추하고 양식도 여유가 없어 사양했지만 그들의 사정이 딱하고, 무엇보다 숙박비를 후하게 주겠다는 말에 욕심이 생겨 그들을 방안으로 안내하고, 동네방네 이집저집 돌아다니면서 음식을 구해 그들을 극진히 대접했다. 세 상인은 노파에게 숙식을 잘 대접받고서 다음날 아침, 노파가 잠시 자리를 비운 틈을 노려서 약속한 숙박비를 주지 않고 그대로 뺑소니를 치고 말았다. 노파는 분을 참지 못하고 세 상인의 행방을 수소문하며 기를 쓰고 좇아가 드디어 찾아내고는 성이 나서 따졌다. 그렇게 애써서 대접을 했는데 어떻게 숙박비도 내지 않고... 더구나 인사도 없이 뺑소니를 칠 수 있느냐는 것이었다. 그러나 세 상인은 오히려 거짓 흉계를 꾸며 노파에게 눈을 부라리고 금방 주먹질이라도 할 것처럼 윽박지르면서 사납게 말했다. “이 노파가 망령이 들었나? 우리가 떠날 때 노파가 하도 불쌍해서 후한 숙박비로 1인당 30냥씩 주고 인사까지 하고 나왔는데, 그동안 벌써 까먹고 또 돈을 내라구? 거짓말을 계속한다면 당장 한 주먹으로 죽여버릴꺼야. 알겠어?” 노파는 억울한 심정에 분심이 하늘까지 치솟고 가슴에 핏덩어리가 입 밖으로 분출할 지경이었다. 그러나 불한당 같은 세 상인의 폭력을 이길 수는 없다는 판단 아래 분심에 길길이 날뛰면서 거품을 뿜고 세 상인을 저주했다. “이놈들아, 잘 먹고 잘 살아보아라. 그러나 나는 너희들을 절대 용서하지 않을 것이다. 금생(今生)이 아니면 내생, 내후생에라도 아니면, 짐승의 몸으로 태어나서라도 네놈들의 원수를 꼭 갚고야 말 것이다.” 부처님은 끝으로 노파에 대해 이렇게 말씀했다. “그 후, 노파는 세 상인을 저주하는 마음에서 살다가 홧병이 들어 죽었다. 노파는 죽어서도 반드시 원수를 갚겠다는 저주의 마음을 품었기 때문에 죽은 뒤 마침내 소원대로 암소로 태어나서 오늘 세 상인에게 생전의 원한을 다 풀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인과(因果)는 삼세의 영원한 진리라는 것을 깨달아야 할 것이다.” “그 때 부처님의 설법을 들은 임금과 사부대중은 인과의 무서움 때문에 가슴 속에 전률을 느끼면서 깨달음을 얻었다는 게야.” 묘주는 인과응보에 대한 복수의 이야기를 마치면서 소리내어 이런 게송을 읊어 주었다. 身語意業不造惡 (신어의업불조악) 몸과 입과 마음으로 악을 짓지 말라 不惱世間諸有情 (불뇌세간제유정) 세간의 모든 중생 괴롭히지 말라 正念現前欲色空 (정념현전욕색공) 바로 현전에 욕심과 색이 공한줄 생각하면 無益之苦常遠離 (무익지고상원리) 무익한 고통을 마땅히 멀리 여의게 되리라. 묘인과 묘관은 법문에 대한 감사의 표시로 정좌하여 가슴에 합장하고 사형에게 정중히 고개 숙여 인사를 하면서 나직히 말했다. “원한과 복수는 무서운 거예요...” 묘주는 미소 속에 고개를 끄덕이면서 두 사제에게 단호하고 자신 있게 말했다. “인자무적(仁者無敵)이라는 말처럼 착하게 사는 우리에게는 적이 있을 수 없고. 원한과 복수는 있을 수 없는 거야. 알았지?” 그녀들은 침묵 속으로 다시 돌아와 모두 호롱불을 응시하고 있었다. 이때 칠흑 같은 어둠이 깔린 방문 밖은 번갯불이 번쩍이면서 천둥소리가 다가오고, 이어서 폭우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비바람에 대나무 숲은 서로 부비면서 귀신들이 아우성을 치는 듯한 소리를 내고 있었다. 그러나, 그녀들이 ‘복수’의 이야기를 나눌 때, 방문 밖에서는 비를 흠벅 맞아가며 길수동무가 쥐를 노리는 쪽제비처럼 소리 죽여 다가와 그녀들의 대화를 엿듣고 있다는 것을 그녀들은 모르고 있었다. 심지어 길수동무는 묘주가 “인자무적”이라는 말을 할 때는 입가에 냉혹한 비웃음까지 띠고 있었다. 세 비구니가 잠시 침묵 속에 호롱불을 응시하고 있는 그 무렵, 길수동무는 대나무 숲 쪽으로 전등 신호를 세 번 깜박였다. 대나무 숲 속에는 6∼7명의 공비들이 손에손에 죽창과 총을 들고 은신해 있었다. 어둠 속에서 대장이 나직하고 싸늘하게 말했다. “동무들, 영용한 우리 인민군은 미국놈들 때문에 북으로 쫓겨가고 있어요. 우리도 인민군을 따라 북상해야 하는데…. 길이 막혀 버렸소. 날로 국방군과 경찰이 지리산으로 처들어오고, 우리는 어찌해야 할 디…. 당장 먹을 것이 떨어져 굶어죽게 생겼고…. 오늘은, 동암에서 식량을 충분히 확보해야 하오. 알겠오?” 어둠 속에서 목쉰 소리가 나직히 대꾸했다. “대장동무, 걱정하지 마십시요. 절간에는 언제나 곡식이 떨어지는 법이 없으니까요. 사실 식량확보를 위해서는 오늘 밤, 큰절도 습격해야 하는 건데…” “큰절은 안되오. 낮에 보니 경찰들이 보이는 것 같고…. 남자 승려들의 숫자가 너무 많은 것 같소. 여승뿐인 이 동암이 우리가 기습하기는 최적이오.” “신호가 보입니다. 대장동무” 그들은 우루루 빗 속을 뚫고 동암으로 진입해 들어갔다. 그들은 세 비구니의 방안으로 전광석화처럼 뛰어 들어갔다. 침묵 속에 호롱불만 응시하고 있던 세 비구니는 상상치 못한 갑작스런 재난에 놀래 입만 딱 벌리고 비명조차 지르지 못하고 있는데 죽창이 세 비구니의 목을 찌르기 직전이었다. 공비들은 죽창으로 위협하며 세 비구니들을 구석에 몰아놓고, 사납게 말했다. “식량이 어딨어? 바른대로 말 안하면 당장에 죽일꺼야.” 잠시 후, 공비들은 식량 한 톨 남기지 않았고, 반찬 등 먹거리를 모두 확보했다. 목쉰 사내가 보고했다. “대장 동무, 생각보다 쌀이 많이 있구먼요. 모두 챙겼으니 떠나시지요.” 이때, 길수동무가 음탕한 눈빛으로 세 비구니를 보면서 음침하게 말했다. “대장동무, 우리는 조국통일 전선에서 헐벗고 굶주리며 목숨걸고 투쟁하는데, 이 반동아들은 인과니 뭐니 하면서 허튼소리나 하며 감동을 나누고 있더구먼요. 허구헌날 쌀밥을 배불리 먹으면서 허튼소리나 하며 행복하게 살고 있으니, 살이 토실토실 쪘구요. 인물도 이쁘고. 흐흐흐...” 목쉰 사내가 또 다른 대원들을 둘러보며 동의를 구하는듯한 표정을 지으면서 말했다. “대장동무, 여승들이 예쁘구먼요. 우리 같은 조국통일의 전사들을 위해 자신의 몸을 헌신하는 기회를 주면 어떨까요? 동무들은 어떻게 생각합니까?” 길수동무가 외쳤다. “세 여승에게도 영광일거요 !” 대장동무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들은 움흉한 범죄에 순간적으로 모두 동의했다. 순식간에 집승이 되어 세 비구니에게 덤벼 들었다. 그들은 죽기를 한하고 저항하는 비구니들을 주먹과 발길질로 마구 폭행하고 승복을 갈기갈기 찢어발기고, 강제로 성폭행을 자행했다. 세 비구니들이 죽기를 각오하고 소리치며 저항했지만... 하늘에서는 무서운 천둥과 번갯불만 연속으로 몰아치고 무섭게 폭우만 쏟아질 뿐이었다. 비바람에 서로 부비는 대나무 숲의 소리가 세 비구니의 비명소리를 잠재워버렸다. 공비들이 차례로 세 비구니를 윤간하며 성적 욕구를 채우고 난 후, 대장은 비정하게 명령했다. “동무들, 저것들을 살려두면 입을 놀릴거고 그러면 우리가 매도되기 십상이오. 영원히 입을 봉해버립시다.” 대장동무의 명령이 하달되자 그들은 아귀 나찰처럼 죽창을 들어 세 비구니의 목과 심장을 마구 찌르고 또 찔러 숨통을 끊어버렸다. 그리고, 그들은 식량자루를 어깨에 둘러메고 하나씩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세 비구니의 몸에서는 계속 분출되는 선혈이 방안을 벌겋게 물들이고 있었다. 그들은 죽어가면서도 세상은 때로는 인자무적도 소용 없다는 것을 절실히 깨닫고 있었지만, 때는 이미 늦었다. 지리산의 선녀같은... 죄없이 착한 세 비구니는 이렇게 억울하고 비참하게 죽어갔다... 다음 날, 하늘은 언제 비바람과 폭우와 뇌성번개가 있었느냐는 듯 쾌청했다. 이때 멀리서 점점 우렁찬 군가의 합창소리가 동암 쪽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이윽고 무장한 국군 공비토벌대가 장교의 인솔하에 보무도 당당히 우렁찬 군가소리와 함께 동암 마당으로 들어왔다. 그들의 군가소리는 산골짜기를 쩌렁쩌렁 뒤흔들며 메아리쳤다. 어제 동암에 왔던 소대장이 부하들과 함께 세 비구니를 찾았다. 신발은 보이는데 대답이 없는 것을 이상하게 생각하고 벌컥 방문을 열어보았다. 국군장교는 무참히 살해된 세 명의 비구니들 시신을 보고 저간의 사정을 십분 짐작하고는 주먹으로 절간 기둥을 힘껏 치면서 애통해 했다. 장교는 부하들에게 세 비구니의 시신을 거두게 하고, 그는 눈에 불을 켠 눈을 하고서 완전무장하여 도열해 서있는 토벌대원들에게 피를 토하듯 분노의 연설을 쏟아냈다. 그 날, 오후부터 동암 뒷산에는 치열한 전투가 시작되었다. 피아 간에 콩볶듯하는 총소리가 끝난 이튿날 오전 무렵, 장교는 다리에 총상을 입은 길수동무를 생포하고, 사로잡힌 길수동무는 철저히 동암사건을 조사 받았다. 대장동무와 나머지는 전투중에 모두 사살되었다. 마침내 지리산 골짜기에서 전쟁이 끝나고 평화가 찾아왔다... 그런데 그 무렵부터 아, 적막한 이 동암에는 원귀들이 나타난다는 소문이 돌기 시작했다. 비가 오는 밤이면, 텅 빈 법당 쪽에서 죽은 세 비구니들이 애통하게 흐느끼며 사악한 인간들을 원망하고 저주하는 울음소리가 들려온다는 것이다. “우리는 부처님의 말씀대로... 자비를 실천해왔어요. 동암을 찾아온 사람들은 귀천을 가리지 않고, 차와 과일과 숙식을 무료로 대접하고, 충분하지는 않지만, 여비도 마련해 드렸어요. 그런데, 우리들 선행의 결과는 원통한 죽음뿐이었어요. 너무도 억울하고 원통해요. 너무도 원통해요....” 비구니들이 죽고 난 뒤 큰절에서는 남자 비구승을 동암의 암주(庵主)로 임명했다. 그 날 새로온 동암의 암주스님이 깊은 밤에 막 잠이 들려고 하는데 비몽사몽(非夢似夢) 간에 세 비구니가 나타나 슬프게 흐느끼면서 원망하는 소리를 하였다. 암주스님은 혼비백산해서 엉겁결에 물었다. “누, 누구시오?” 세 비구니는 합창하듯 말했다. “우리는 자비를 실천하며 살아왔는데, 억울하고 비참하게 죽었어요...” 암주스님은 비명을 지르며 정신없이 엎어지고 자빠지며 달아나 다시는 돌아오지 않았다. 암주를 따라온 상좌도 새벽에 목탁을 치며 도량석을 돌다가 혼령들을 보고 목닥을 내던지고 비명을 지르며 엎어지고 자빠지며 달아나 역시 돌아오지 않았다. 저녁밥을 짓던 공양주도, 장작불을 지피던 부목처사도 혼령을 보고는 역시 엎어지고 자빠지며 정신 없이 달아나서 다시는 돌아오지 않았다. 동암에서 고시공부를 위해 호젓한 방을 빌려 공부하던 어떤 청년은 비오는 날 밤중에 법학서적을 보고 있는데, 비몽사몽간에 세 명의 혼령들이 나타났다. “우리는 억울하고 비참하게 죽었습니다...” 라고 하더니 애통하게 흐느끼는 것이었다. 그 청년은 기절초풍하여 법학서적을 팽개치고 정신 없이 엎어지고 자빠지며 달아나 다시는 돌아오지 않았다. 어느덧, 동암은 아무도 살 수 없는 폐사가 되어갔고 있었다. 큰절에서도 더이상 다른 승려를 파견하지 못했다. 승속(僧俗)을 막론하고 ‘동암’이라는 말만 나오면 기겁을 하고 피하는 폐사가 되어갔다. 그리고 동암에서 사람이 살지 않는 것을 알았는지 뒷산 칡넝쿨이 하루가 다르게 암자로 밀고들어와 기둥을 휘감아 돌았고, 마당에는 쑥대밭이 무성해졌다. 불당 안에는 거미들이 진을 치고 있었고 비라도 부슬부슬 내리는 날이면 어김없이 한낮인데도 처마 끝에 능구렁이가 음산한 소리를 내지르고 있었다. 어디선가 쥐떼들이 몰려와 천정과 방 사이에서 찍찍 소리를 내어 몰려 다니고, 쥐를 노리고 쪽제비가 동에 번쩍 서에 번쩍 설치고 다녔다. 축축한 마당 풀숲에서는 큰 구렁이들이 길게 엎드려 있거나 또아리를 틀고 있었다. 아마 인근 산에서 살다 동암에서 인적이 끊긴 것을 눈치채고 슬그머니 처자권속(妻子眷屬)을 다 데리고 동암을 장악해버린 것 같다. 가끔 마당에서는 큰 구렁이와 쪽제비가 사생결투를 벌이는 모습도 보였다. 밤에는 부엉이들이 동암의 지붕과 고목에 앉아 소리를 내질러 쓸쓸한 분위기를 더욱 귀기(鬼氣) 어리게 조성했다. 그러는 가운데 비내리는 밤이면, 어김없이 세 비구니의 애통한 울음소리가 들려오는 것이었다. ------- 이렇게 조실스님은 연신 탄식을 섞어가면서 동암에 대한 긴 이야기를 마치고 정색을 하면서 나에게 말했다. “큰절에서는 세 비구니의 원혼을 위해 천도재(遷度齋)을 성대히 해 주었다네. 그러나 원통한 그녀들은 천도가 되지를 않고 계속 사람들에게 나타나는 거야. 우리는 마침내 대중공사를 통해 동암을 불태우기로 결론을 내렸다네. 귀신 나오는 암자가 있다는 소문이 나면 어느 신도가 불가에 시주를 하겠는가?” “큰스님, 꼭 유서 깊은 동암을 불태워야 할까요?” “아무도 살 수 없는 폐사를 그냥 놓아두면 불가의 큰 수치가 된다네.” “큰스님, 제가 오늘 밤 동암에서 하룻밤 지새워 보면 어떨까요?” “자네가…? 죽음이 두렵지 않은가?” “애통하게 죽은 비구니들의 원혼이 있다면 만나보고 싶습니다.” “안되네... 허락할 수가 없네.” “부처님의 제자인 비구니들입니다. 저를 해치지는 않을 것입니다.” “그래도 객기를 부리지 말게. 그들은 이제 원령이 되었어. 잘못되면 자네까지 죽게 되네.” 나는 그날 오후 늦게, 혼자서 동암을 찾았다. 과연 동암에는 거미줄, 칡넝쿨, 쑥대밭이 무성한 폐사가 되어 있었다. 나는 기다란 대나무로 풀숲에 숨은 뱀들을 쫓아내면서 법당 안으로 들어갔다. 불상과 탱화도 없는 텅 빈 법당은 천장과 구석구석에 거미줄만 가득했다. 거미들이 거미줄을 치고 먹이를 기다리듯... 원귀도 기다리고 있을까? 그러나 살아 생전 착하게만 살면서 수행정진한 세 비구니는 결코 나를 해치는 사악한 악령이 아닐 것이라고 굳게 믿어 의심치 않았다. (부여무량사 아미타여래삼존 소상) 이윽고 서서히 밤이 찾아오자 점점 어두워지는 동암 법당에서 나는 마치 살아있는 비구니 스님들을 대하여 말하듯 법당이 쩌렁쩌렁 울릴 정도로 큰 소리로 말했다. “전생의 인연따라 동진출가로 부처님께 귀의하여 수행과 자비봉사 속에서 착하게 사시든 세분 여스님의 억울하고 애통한 죽음의 사연을 듣고 가슴이 아파오고 목이 메이는 슬픔입니다. 나는 이제부터 세 분 여스님의 애통한 죽음에 애도의 마음으로 지성을 다해 천도와 위로의 염불을 해 드리고자 합니다. 그러나 부처님이 말씀하신 인과를 믿는 세 분 여스님이 어찌하여 원귀가 되어 부처님의 전법도량(傳法道場)인 동암이 폐사가 되게 하고, 무고한 사람들을 놀라게 하시는지요? 생사를 초월하는 수행자로서 저는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 오늘밤 나는 이곳 법당에서 하룻밤 유숙할까 합니다. 저에게 하시고 싶은 말씀이 있으면 예를 갖춰 꿈 속에서라도 나타나 말씀을 해주시기 바랍니다. ” 밤이 이슥해지자 폐사인 동암에 보슬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나는 법당 안에서 불상도 없는 불탁(佛卓) 위에 촛불을 밝혀놓고 마치 불상이 그 자리에 계시는듯 텅 빈 부처님의 좌대를 우러르면서 좌선자세로 단정히 앉았다. 진정 원귀들이 있다면 한번 만나서 이 유서깊은 동암을 폐사로 만든 사연을 들어보고 싶었다. 눈을 감고 좌선으로 날을 하얗게 밝혀볼 생각이었다. 나는 큰 소리로 천수경(千手經)과 반야심경(般若心經), 이어서 법성게(法性偈)를 연속해서 외우기 시작했다. 자정이 넘고 눈거풀이 점점 무거워지며 혼수(昏垂)가 쏟아지려고 할 무렵 비몽사몽 간에 피 비릿내와 함께 일진광풍(一陳狂風) 같은 찬바람이 불어오더니 촛불이 ‘탁’ 꺼져 버렸다. 그리고 탄식하며 원망하며 흐느끼는 소리와 앙칼진 소리들이 들려왔다. “우리는, 너무도 원통하게 죽었어요... 자비무적이라는 말씀을 가슴에 아로새겨 죄짓지 않고 살아온 우리를 사람들은 왜 무자비하게 유린하고, 죽창으로 우리의 목과 가슴을 무참히 찌르고 또 찔러 죽였을까요? 도대체 우리가 세상에서 무슨 죄를 지었나요? 우리의 원한을 짐작이나 하시겠어요? 우리처럼 죽어보세요!” 그녀들은 분을 이기지 못하는 말투로 푸념하더니 돌연 차가운 손들이 나의 목을 억세게 조여왔다. 갑자기 숨이 막혔다. 나는 비구니들이 원통한 마음 때문에 자비의 화신이 아닌 마(魔)로 변한 것이 아닌가 생각하면서 목이 죄여오는 가운데 황급히 정신을 수습하여 정좌(定坐)하면서 두 눈을 감고 천수천안 관세음보살(千手千眼 觀世音菩薩)님은 반드시 나를 가호(加護)하여 주시리라고 확신하고는, ‘나무관세음보살(南無觀世音菩薩)’을 소리높여 부르기 시작했다. 그러자 신기하게도 목을 죄던 손들이 어느덧 사라지고 마음이 편안해졌다. 나는 느낌에 그녀들이 내 주변에 둘러서서 나를 내려다보고 있는 것 같았다. 아직도 찬 기운이 나를 엄습하고 있었다. 나는 정면 쪽 칠흑같은 어둠 속을 응시하면서 힘차게 말했다. “나는 여러분의 죽음을 생각하면 통곡하여 애도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이미 엎질러진 물처럼 돌이킬 수 없는 불행한 사건입니다. 여러분은 부처님께서 싯달타 태자로 오시기 전, 과거의 무수한 생에 걸쳐 중생을 위해 몸을 바쳐왔다는 보살심에 대해 잘 아시겠지요? 부디, 세분 여스님들은 원한의 마음을 이제 비우시고 부처님께서 중생들을 위해 사신(捨身)한 것처럼 이제는 원한의 마음을 돌이켜주셨으면 바랍니다. 수행자가 죽어 원귀가 되어 부처님을 모신 사찰을 폐사로 만든다면 이것은 부처님 제자로서 씻을 수 없는 죄업을 짓는 것이요, 원귀로서 중생들을 놀라게 한다면 이 또한 씻을 수 없는 죄업이라 아니할 수 없습니다. 부디, 한 생각 돌이키시어 부처님 자비의 마음으로 돌아가 주세요.” 그러자 차가운 바람 속에 탄식하며 애원하듯 한 음성이 들려왔다. “우리는 동암을 폐사로 만들고, 사람을 해치고자 한 것이 절대 아니었어요. 우리는 오직 동암에 기거하는 사람에게 우리의 이 원통하고 슬픈 사연을 하소연하고 싶었을 뿐이예요. 그러나 사람들은 우리를 보고 이야기는 들으려고 하지 않고 귀신이라고 비명을 지르면서 도망을 쳐버렸지요.” “세 분 여스님의 하시고 싶은 이야기가 무엇입니까?” “우리의 억울하고 원통한 죽음을 세상에 알려서 사악한 인간들에 대한 귀감을 삼고자 할 뿐이에요.” “예, 제가 반드시 세상에 알려드릴 것을 약속하겠습니다. 그리고, 안타까운 일은 사흘 후에 그동안 여러분의 수행처였던 이 동암이 폐사로써 불태워 사라지게 된답니다. 세분 여스님은 장차 어떻게 되십니까?” “우리의 이야기를 들어주실 수 있는 좋은 스님을 만났으니 우리는 이제 동암을 떠나 갈 거예요. 이제 원한의 마음을 씻고, 신심 있는 신도의 딸로서 환생하여 다시 출가하고자 합니다. 장차 30년 후에 우리는 스님을 만날 수 있을 거예요.” 이렇게 하여 비몽사몽(非夢似夢) 간에 그녀들과의 대화는 모두 끝났다. 그동안 동암에 내리던 보슬비도 그쳐 있었고, 새벽이 밝아오고 있었다. 동암의 새벽은 이름 모을 산새들이 흥겹게 노래하고 있었다. 이틀 후, 드디어 동암은 큰절 승려들에 의해 불태워졌다. 원귀들이 깃들일 수 있는 음습한 장소를 없앤다는 뜻에서였다. 큰절 스님들이 목탁과 요령에 맞춰 소전진언(燒錢眞言)을 반복하여 외울 때, 동암은 불길에 휩싸였다. 불길이 충천하듯 치솟을 때, 큰절 조실스님은 치솟는 불길을 향해 주장자(柱杖子)를 높이 들어 마치 그녀들에게 외치듯 말했다. “원한은 원한을 낳는다는 부처님의 말씀을 어찌 잊었던가? 그대들의 원한에 의해 천년 고찰인 이 암자를 불태워 사라지게 하도다. 만세에 전할 고해중생의 복전인 동암이 사라지는도다. 아아, 시주님들의 공덕이 애석하도다. 그대들이여, 부처님이 다생겁래(多生劫來)로 중생구제(衆生救濟)를 위해 목숨을 바친 것을 기억하고 있는가? 부처님의 전생인 저 인욕선인(忍欲仙人)은 우매한 중생으로부터 날카로운 칼로 할절신체(割切身體)를 당하는 고통을 받으면서도 오히려 고통을 주는 중생을 측은하게 생각하고, 자비를 베푼 소식을 어찌 외면하는가? 귀도망망(鬼途茫茫)한데, 참회하고, 참회할지어다 ! 부처님의 자비 품안으로 돌아올지어다 !” 나는 그 날, 동암이 완전히 불길 속에서 사라진 후, 잿더미 위에서 부처님께 그녀들의 왕생극락(往生極樂)을 기원하면서 그녀들의 정업(定業)을 ㅇㅇ하며 염불을 했다.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그리고 무심한 세월은 강물처럼 흘러갔다. 그동안 사람들의 입에서는 동암의 원귀에 대한 이야기도 모두다 사라졌다. 동암의 비극을 알고 있는 승려들도 이제는 거의 입적하신지 오래이다. 그러나, 나는 그녀들과의 약속을 생각하면서 이렇게 동암의 이야기를 적는다. 과연 그녀들은 마음을 돌려 부처님 마음으로 돌아왔을까? 과연 신심있는 신도의 집에 환생하였을까? 지금쯤 처녀로써 출가하여 오직 수행정진하는 비구니가 되었을까? 자비무적이라는 신념으로 중생들에게 자비봉사를 하고 있을까? 아아, 나는 환생한 그녀들을 해후(邂逅)할 수 있을런지? 그 날의 동암은 이제 흔적조차 찾을 길이 없다. 그대신 칡넝쿨과 쑥대, 잡초들만이 무성할 뿐이다. 독자 여러분이 굳이 호기심을 못이겨 예전의 동암 절터를 찾는다면, 암자를 에워싼 대밭과 무성한 잡초 사이에서 불길에 벌겋고 시커멓게 변해버린 주춧돌과 깨어진 몇 장의 기왓장을 찾을 수 있으리라. 나는 이 자리를 빌어서 여러분에게 권고한다. “폐사… 세상에는 폐사처럼 안타까움과 함께 공포감을 주는 곳도 없을 것이다. 만일 여러분이 산길에서 잡초로 무성한 어떤 폐사를 만나거든 큰 소리로 ‘나무관세음보살’의 주력을 반복 외우면서 피해서 가라. 복원되어야 마땅할 폐사 터에 뜻밖에 아직도 천도가 되지 못하고, 원한에 사무친 원귀들이 비가 오거나 눈이 내리는 음습한 날, 지박령(地縛靈: 땅속에 잡혀있는 혼령)의 신세가 되어 원한으로 사무친 저주와 탄식 속에 슬피 흐느끼면서 자신처럼 죽을 수 있는 사람을 오매불망 기다리고 있을지도 모른다. 원귀는 다른 사람이 자기처럼 죽어주어야 그곳을 떠나 환생할 수 있는 자유가 주어진다고 전해오기 때문이다. (2003년 6월 21일. 아침 法徹) (배경음악: 정수년 해금독주 "그 저녁 무렵부터 새벽이 오기까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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