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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문학·설화

[명시감상] '가을날' (Herbsttag 1902) - 라이너 마리아 릴케

잠용(潛蓉) 2013. 8. 22. 12:11



'Herbsttag' (가을날 1902)
Rainer Maria Rilke (1875~1926 독일) 

 

 

Herr es ist Zeit.
Der Sommer war sehr groß.

Leg deinen Schatten
auf die Sonnenuhren,
und auf den Fluren
lass die Winde los.
주여, 때가 왔습니다
여름은 참으로 길었습니다
해시계 위에
당신의 그림자를 얹으십시오,
그리고 들에다
많은 바람을 놓으십시오.

Befiehl den letzten Früchten voll zu sein;
gib ihnen noch zwei südlichere Tage,
dränge sie zur Vollendung
hin und jage die letzte Süße
in den schweren Wein.
마지막 과실을 익게 하시고
이틀만 더 남국의 햇볕을 주시어
그들을 완성시켜, 마지막 단맛이
짙은 포도주 속에
스미게 하십시오.

Wer jetzt kein Haus hat,
baut sich keines mehr.
Wer jetzt allein ist,
wird es lange bleiben,
wird wachen, lesen,
lange Briefe schreiben.
지금 집이 없는 사람은
이제 집을 짓지 않습니다.
지금 고독한 사람은
이후로도 오래 고독하게 살아
잠자지 않고, 독서하고,
그리고 긴 편지를 쓸 것입니다.


und
wird in den Alleen
hin und her unruhig wandern,
wenn die Blätter treiben.
그리고
바람에 불려 나뭇잎이 날릴 때,
불안스러이 이리저리
가로수 길을 헤맬 것입니다.
 

Rainer Maria Rilke (1875~1926 독일) 

 


 

◇  릴케의 시 '가을날'은 종교적 형이상학에 기초한 낭만적·신비적 서정시이다. 《형상시집(形象詩集) Das Buch der Bilder》(1902)에 실려 있다. 제재는 가을 또는 가을의 정감이며, 가을에 느끼는 서정으로 신의 섭리와 인간의 실존 깊숙이 자리잡은 근원적 고독에 대한 성찰을 주제로 다루었다. 기도조로 일관된 표현은 경건한 분위기를 조성하며, 신과 시인이 서로 대화하는 듯한 시풍은 신비감을 자아낸다. 빛과 어둠, 원숙함과 고독 등이 어우러져 이루어낸 아주 독특한 '가을'의 교향시이다.

제 1연에서는 자연의 섭리를 이끄는 창조주에 의해 결실의 가을이 찾아옴에 대한 시인의 경건한 마음가짐이 느껴진다. 제 2연에서는 모든 생물체의 성숙을 기원하며, 제 3연에서는 동면의 겨울을 예감하고, 자연의 원숙함과 화려함에 비해 성숙하지 못한 자신의 모습에 불안을 느끼고 방황한다.

인간의 내면적 방황과 고독이 강하게 느껴진다. 그러나, 이것이 신의 섭리라는 사실을 제 1연부터 은연 중에 드러내고 있으며, 방황의 숙명성을 관조하면서 가을을 맞이한다. 따라서 가을을 맞아 더욱 풍성해지고 원숙해진 자연, 즉 외적 세계에 비해 상대적으로 성숙하지 못한 인간의 한계와 내적 세계의 고독을 노래한 철학적 사색이 느껴지는 작품이다.

라이너 마리아 릴케는 인간의 근원적 고독에 대한 성찰로 실존주의적인 현대시의 선구를 이룬 독일의 신낭만주의 시인으로서 한국의 시문학에도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저서에는 시집 《나의 축일에》(1899), 《형상시집》(1902), 《신시집》(1907), 《두이노의 비가》(1922), 《오르페우스에게 부치는 소네트》(1922) 등과, 소설집 《말테의 수기》(1910)와 산문집 《젊은 시인에게 보내는 편지》(1929) 등이 있다. (위키백과)


(Shlomo Mintz violin with Zubin Mehta and the Israel Philharmonic Orchestra)
안토니오 비발디 4계중 '가을' 1악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