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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정원 개혁

[이석기 사건] '순환논법의 모순'에 빠진 검찰 기소장

잠용(潛蓉) 2013. 9. 29. 18:13

[취재파일]

이석기 '내란음모' 기소가 남긴 것들, 그리고 지켜볼 것들
SBS | 박원경 기자 | 입력 2013.09.29 14:24


"이렇게 위험한 단체가 유사시에 명령을 내리면 수행하라고 하는데, 이게 내란음모가 아니면 우리나라에서 뭐가 내란음모입니까?"

이석기 의원 등 통합진보당 관계자들을 내란음모 등의 혐의로 기소한 검찰이 중간 수사결과를 발표를 하면서 한 말입니다. 이렇게 위험한 단체는 이른바 RO로 알려진 조직을 지칭합니다. 검찰이 RO라는 조직을 '위험한 단체'로 규정한 것은 상당부분 5월 12일 합정동 모임의 녹취록 자료에 근거한 겁니다.

 

 

 

◈ 발표 내용으로 혐의 입증 충분 vs 순환논리의 오류

이에 대해 통합진보당 변호인단은 이렇게 주장합니다. "실체도 없는 RO라는 조직을 위험한 단체로 규정한 근거가 녹취록에 따른 것인데, 녹취록 상에 나타난 발언을 근거로 내란을 음모했다고 하는 것은 순환 논리의 오류에 빠진 것이다."

 

순환논리의 오류에 빠졌다는 것은 해석하면 이렇습니다. RO라는 단체가 위험하다고 규정하기 위해서는 다른 증거가 필요한데, 그런 증거 없이 녹취록을 근거로 위험한 단체라고 주장을 하고, 또 그 녹취록 내용을 바탕으로 내란을 음모했다고 하는 것은 이해할 수 없다는 겁니다.

 

좀 더 뜯어보면 이렇습니다. 평소에 국가의 존립에 위험한 발언 등을 하고, 실제로 위험한 행동을 할 수도 있다고 추정되는 단체가 있습니다. 그런데 이 단체가 조직원을 모아서 폭동을 일으킬 것으로 모의를 했다면 실제로 내란을 음모했다고 생각할 수 있을 겁니다. 그런데 그런 전과가 없는 단체가 사람들을 모아서 국가 존립에 위험한 발언과 계획을 세웠다면 그것을 내란음모로 볼 수가 있겠느냐? 변호인단을 그럴 수 없다고 주장합니다.

 

소위 합정동 모임에서 이석기 의원 등이 그러한 발언 등을 했다면 그것은 해당 단체가 위험한 단체라고 판단할 수 있는 근거는 될 수 있겠지만, 그것을 가지고 내란을 음모했다고 보기는 힘들다는 겁니다. 그런데 검찰과 국정원은 해당 모임에서의 발언을 바탕으로 소위 RO를 위험한 단체로 규정을 하고, 또 그 발언으로 내란음모를 했다고 규정하는 건 순환논리의 오류에 빠졌다는 주장입니다.

 

◈ RO가 '위험한 단체'라고 증명할 다른 증거가 있나?

결국 관심의 초점은 검찰이 아직 수사 중인 사안이 많고, 획득한 증거물이 많다고 밝힌 만큼 향후 재판 과정에서 어떤 증거물들이 추가로 제시해 RO가 위험한 단체라고 증명할 수 있을지가 관심의 초점입니다. 하지만, 그 이전에 의문이 드는 부분이 있습니다. 검찰은 중간 수사 결과를 발표함에 있어서 RO가 어떤 조직이고 어떤 조직적 특성을 가지고 있는지에 많은 부분을 할애했습니다.

 

이는 당연한 일입니다. RO가 어떤 조직인지, 그리고 실제로 내란을 일으킬 만한 능력이 있는지가 입증이 되어야 내란을 음모했다고 적용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게 입증이 안 된다면 진보당에서 주장하는 것처럼 한낱 농담이 될 지도 모르기 때문입니다.

 

◈ 이석기 의원 등의 한심한 발언, 하지만…

녹취록에서 드러난 이석기 의원 등의 발언과 용어 사용은 한심하고 어이없습니다. 70, 80년대에 박제되어버린, 시대를 거스르려고 하는 사람들의 한심한 이야기입니다. 하지만 그들이 실제로 내란을 일으킬 수 있을만한 능력이 있는지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검증을 해 봐야할 겁니다. 청소년 백여 명이 모여서 녹취록에 등장하는 발언을 했을 때, 정신 차리라고 준엄하게 꾸짖어야겠지만, " 너희가 내란을 모의했구나"라고 말하기는 무리가 있을 테니까요.

 

이에 대해 검찰은 5월 12일 합정동 모임 뿐 아니라 다수의 모임 녹취록과 녹취파일을 확보했고, 영상자료도 확보가 되어 있기 때문에 내란 음모 혐의를 입증하는데 자신이 있다는 입장입니다.

 

◈ 녹취록의 증거능력 인정 여부가 쟁점될 듯

하지만, 여전히 가장 핵심 증거가 될 것으로 보이는 5월 12일 합정동 모임의 녹취록이 증거로 인정될 수 있느냐가 문제가 될 것으로 보입니다. 변호인단은 합정동 모임의 녹취는 국정원과 검찰은 제보자, 이석기 의원 측은 프락치라고 칭하는 사람을 매수해서 녹취를 한 것이기 때문에 증거 능력이 없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예전 삼성 X파일 사건과 관련해 '독수독과론'이라는 게 회자 되었는데, 증거 능력이 없는 증거물에 근거한 사실이나 주장은 법적으로 인정되지 않는다는 주장을 변호인단은 펼 것으로 예상됩니다. 반면, 증거 능력과 관련해서는 검찰은 "모든 증거물은 법적으로 문제가 없다, 영장이 필요한 부분에 대해서는 법원에서 영장을 받았다"고 맞서고 있습니다. 결국 이 부분도 재판 과정을 통해서 드러날 수밖에 없는 상황입니다.

 

검찰과 변호인단이 대립하고 있는 쟁점은 크게 이 두 가지로 정리할 수 있을 겁니다. 하지만, 기자의 입장에서 조금 이해가 되지 않는 부분이 있습니다. 검찰이 RO라는 조직의 실체와 관련해 자신을 보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반국가단체 구성혐의는 왜 적용하지 않았냐는 겁니다.

 

◈ 반국가단체 구성 혐의도 누락… 수사 미진?

중간수사발표에서 검찰은 RO를 '위험한 조직'으로 규정했습니다. 그러면서 RO라는 조직은 김일성 주체사상을 따르고, 북한의 대남혁명노선에 동조하고 있다고 밝혔습니다. 또, RO라는 조직을 성격을 규정하기 위해서 어떤 식으로 조직이 운영되고 있는지, 그리고 이석기 의원의 경호팀까지 있다는 사실을 발표했습니다. 이렇게 위험한 단체라고 한다면 응당 반국가단체 구성혐의도 적용될 법 한데 기소 사실에 이 부분은 빠졌습니다.

 

때문에 일각에서는 3년 이상 내사를 해 왔고, 이석기 의원 등 4명을 구속 수사까지 했지만, 수사 성과가 없었던 것 아니냐는 의문을 제기하고 있습니다. 바꾸어 말하면 검찰이 RO라는 조직의 실재와 실체에 대해서 표면적으로는 자신하고 있지만, 실제로는 제대로 밝혀낸 게 없는 것 아니냐는 겁니다.

 

반국가단체 구성혐의를 적용하기 위해서는 RO라는 단체가 북한과 내통한 사실이 있는지를 밝혀내어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검찰이 이메일 압수수색, 계좌 추적을 벌이고 있는 것도 이메일을 통해서 RO 조직원이 북측 인사와 접촉한 사실이 있는지, 그리고 북한 쪽 자금이 RO라는 조직으로 들어왔는지를 보기 위해서입니다.

 

하지만, 중간수사발표에서 검찰은 이 부분은 발표하지 않았습니다. 해당 사실을 묻는 기자들의 질문에 검찰 관계자는 "현재 수사 중인 사안이다"고 짧게 언급했을 뿐입니다. 물론, 재판 과정에서 증거물로 제시하기 위한 전략일 수도 있고, 현재 진행되고 있는 수사 결과에 따라 추후 반국가단체 구성혐의가 추가될 수도 있을 겁니다. 하지만, RO가 위험한 단체라고 규정을 하고, 수사발표의 상당부분을 RO라는 조직의 성격에 할애하고도 반국가단체구성혐의를 적용하지 않은 것은 RO의 실체를 규명하는데 실패한 것 아니냐는 위한 의구심이 드는 부분입니다.

 

◈ '내란음모'여부 이제는 사법부 판단에

지난 수사결과와 함께 핵심 인물들이 재판에 넘겨지면서 이제 공은 사법부로 넘어갔습니다. 하지만, 이번 사건의 경우 사건 초기 너무 많은 내용들이 알려지면서 여론 재판은 이미 끝났습니다. 중간 중간 검찰은 공안당국 관계자라며 인용되는 보도가 잘못되었다거나 보도가 너무 앞서나간다고 주장하기는 했지만, 한편으로는 이런 여론재판이 진행되는 것을 방조한 부분이 있습니다.

 

수사상의 관례가 아니라고 하지만, 검찰이 인정하고 있는 것처럼 이번 사건은 초반부터 너무 많은 보도들이 나왔던 것을 감안하면 사실과 다른 부분 등에 대해서는 좀 더 명확히 검찰이 확인해 줬다면 좋았을 겁니다. 그랬다면 너무 앞서나간다, 확인되지 않은 보도가 나가고 있다는 검찰의 푸념은 없지 않았을까 합니다.

 

이석기 의원 등의 발언은 현실에서 이해되지도 않고, 용인될 수도 없는 내용들입니다. 몸은 21세기에 살면서 머리는 7,80년대에 있는 그들의 생각과 언어는 박물관으로 가야할 것은 자명합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한 발언과 그들의 행동이 내란음모를 구성할 수 있는지는 법과 사실에 근거해 촘촘하게 따져 봐야할 겁니다. 발언에 의한, 여론에 의한, 보도에 의한 심판이 이루어진다면 혹 과거에 경험한 사법 피해자가 발생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검찰이 기소했다는 것만으로 박수를 치는 정치인들이 나오고, 그런 망언을 했으니 결과는 보나마나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는 것은 우리 사회가 이석기 의원 등과 함께 과거로 가고 있는 것은 아닌지 우려해 볼 대목입니다. 때문에 여론 재판으로 1차 결론난 이석기 의원 등에 대한 심판이 법적으로는 어떻게 이뤄지는 현재 우리 시대가 어떠한지를 판단하는 하나의 바로미터가 될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박원경 기자seagull@sb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