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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문학·설화

[단편] '옛우물' (1994) - 오정희(吳貞姬) 지음

잠용(潛蓉) 2013. 10. 5. 00:41

[단편] '옛우물' (1994) /오정희 지음

 

 

(전남 완도군 군외면 대창리에 있는 폐우물)

 

마흔 다섯살이

된 생일 아침, 나는 여느 날과 마찬가지로 여섯시에 맞춘 괘종시계 소리에 눈을 떴다. 겨울 지나면서 해는 발돋움질하듯 조금씩 길어지고 매일매일 한 겹씩 엷어지는 어둠 속에 섬세하게 깃들인 새벽빛, 친숙하고 익숙한 습관과 사물들 사이에서 잠을 깨었다.

 

여기저기, 가장 적합하다고 여겨진 자리에 의심없이 놓여진 전기 밥솥, 가스 레인지, 프라이팬과 낡고 늙어 부쩍 모터 소리가 요란해진 냉장고 따위의 가운데서 움직이며 나는, 태어났을 때 사십오 년 후의 이러한 내 모습을 결코 상상하지 않았으리라는 생각을 잠깐 해본 것이 다르다면 다른 일이었을 것이다.

 

어느 해 이른봄 오늘과 별로 다를 것 없는 어느 날 나는 스물세 살부터 십 년에 걸쳐 해 거름러 아이 낳기를 한 서른세살의, 아마 그녀로서는 마지막 출산이기를 바랐을 여자의 자궁에서 벗어나 시간의 그물에 걸려들었다. 

 

어머니는 그뒤로도 십 년 가까이 아이를 낳았다. 내가 여덟 살이 되었을 때 낳은 사내아이를 끝으로 자궁은 말린 오얏처럼 쭈그러들었다. 내가 태어난 날임을 상기시키는 아무런 특별함은 없다. 그해 봄날 바람이 불었는지 비가 내렸는지 맑았는지 흐렸는지, 이제는 층계를 오르는 일조차 잊어버린 치매 상태의 노모에게 묻는 것은 의미 없는 일이리라. 다산의 축복을 받은 농경민의 마지막 후예인 그녀에게 아이를 낳는 것은, 밤송이가 벌어 저절로 알밤이 툭 떨어지는 것, 봉숭아 여문 씨들이 바람에 화르르 흐트러지는 것처럼 자연스럽고 범상한 일이었을 것이다. 

 

나는 막내동생이 태어나던 때를 기억하고 있다. 깨끗한 바가지에 쌀을 담고 그 위에 마른 미역을 한 잎 걸쳐 안방 시렁에 얹어 삼신에게 바친 다음 할머니는 깨끗한 짚을 한 다발 안방으로 들여갔다. 사람도 짐승처럼 짚북데기 깔갯짚에서 아기를 낳나? 누구에게도 물을 수 없었던 마음속의 의문으로 안방 쪽으로 가는 눈길이 자꾸 은밀하고 유심해졌다. 할머니는 아궁이가 미어지게 나무를 처넣어 부엌의 무쇠솥에 물을 끓였다.

 

저녁 내내 어둡고 웅숭깊은 부엌에는 설설 물 끓는 소리와 더운 김이 가득 서렸다. 특별히 누군가 말해준 적은 없지만 아이들은 무언가 분주하고 소란스럽고 조심스런 쉬쉬함으로 어머니가 아기를 낳으려 한다는 눈치를 채게 마련이다. 

 

할머니는 언니에게, 해지기 전에 옛우물에서 물을 길어와 독을 채워놓으라고 말했다. 머리카락 빠뜨리지 마라. 쓸데없이 수다 떨다 침 떨구지 마라. 부정탄다. 할머니는 엄하게 덧붙였다. 열다섯 살 큰언니는 물 뜨러 다니는 것을 부끄러워해서 물길러 갈 때마다 입을 한 발이나 내밀었지만 불평 없이 물초롱을 찾아들고 나는 두레박을 챙겨 따라 나섰다. 정자나무 지나 먼 옛우물까지 가는 동안 언니는 한번도 입을 열지 않았다. 물을 떠오면 하러미는 검불이나 먼지가 떴는지 살핀 뒤 먼저 흰 사발에 담아 장독대로 돌아갔다. 다음에는 부뚜막의 조왕 각시 사발에 채웠다. 아버지는 보이지 않았다. 마실이나 갔다 오게. 아이야 여자가 낳는 거지. 할머니가 손사래를 쳐서 내보냈다. 남자야 아이를 만드는 데나 소용있는 거지 하는 뜻이었을 게다.

 

우리들은 불길이 잘 들지 않아 써늘한 윗방에 모여 재미도 없는 놀이에 열중하는 체하지만 귀는 온통 어머니의 신음 소리가 새어나오는 안방에 쏠려 있었다. 실뜨기도 공깃돌 놀이도 재미없었다. 우리들이 모이면 으레 아웅다웅 벌이는 싸움질도 하지 않았다. 이슬이 비친다거나 양수가 터졌다거나 문이 덜 열렸다거나 아아직 멀었다, 하는 할머니의 목소리에 섞여 아이고 어머니 아이고 어머니, 고통에 찬 외침이 들릴 때마다 언니는 어깨를 움찔움찔 떨고 조그만 얼굴이 굳어지며 말했다. 난 시집 안 가. 아이를 안 낳을 거야. 나는 작은오빠에게 머리를 쥐어박히고 훌쩍훌쩍 울었다. 정옥이의 엄마, 염쟁이 마누라가 아기를 낳다가 아기와 함께 죽었다는 말을 했기 때문이었다. 밤 깊도록 불 켜진 안방의 수런거림과 산고의 신음에 불안하게 귀 기울이다가 옷을 입은 채로 가로세로 쓰러져 잠이 들었지만 아침 일찍 저절로 눈이 떠졌다.

 

햇살이 퍼지지 않았는데도 문 창호지가 밤새 눈 내린 아침처럼 환했다. 한바탕 큰일이 지나간 것처럼 평온함이 감돌았다. 기름이 뜬 미역국과 흐니밥으로 차려진 밥상을 보며 우리는 우리가 잠든 사이 어머니가 아기를 낳았다는 것을 알았다. 안방에 건너가면 윗목에 한아름 꿍쳐 있는 수상쩍은 피빨래와 짚더미. 아기는 우리가 차례로 입었던 배냇저고리를 우리가 막 벗어난, 혹은 지나온 작은 생처럼 물려 입고 밤을 지샌 고통, 피와 땀과 젖 냄새가 비릿하고 후덥덥하게 뒤섞인 공기를 마시며 잠들어 있었다. 

 

할머니는 뒤란으로 돌아가 피 묻은 짚과 태를 태웠다. 우리가 떠나온 세계는 시커먼 연기와 검댕이로 피어올라 할머니가 장독대에 떠놓은 정화수 흰 대접, 옛날의 우물물에 날아 앉고 그렇게 우리는 영원한 암호, 비밀일 수밖에 없는 한 세계와 결별한다. 마당은 어느새 깨긋이 쓸려 있고 아버지는 새끼를 꼬아 숯과 고추를 끼워 대문에 금줄을 쳤다. 우리들은 싸리비 자국이 선명한, 아직 아무도 밟지 않은 마당에 작은 발자국을 만들며 학교로 갔다. 길에서 만나는 아이들에게마다 비밀 얘기 하듯 소곤소곤 말했다. 우리 엄마가 아기를 낳았어. 동생이 생겼어. 사내아기야. 

 

거기에는, 새 아기가 태어난 풍경에는 밝음과 고즈넉함, 슬픔같은 것이 어려 있다. 우리는 누구나 가엾은 한 여자의 가랑이에서 피투성이가 되어 태어난다. 그리고 익히 알고 있는 길을 걸어가듯 생애 속으로 한 걸음씩 옮겨놓는다. 삶에 대한 상상력이란 대개의 경우 지나치게 황당하거나 안일하다. 묘지에 갔을 때 사람의 생애란 묘비에 적힌 생몰 연대 이상이라거나 그 이상이 아니라는 상반된 느낌들이 동시에 고개를 들지만 간단한 생몰 연대에 비해 그의 생애와 업적을 적은 비문은 구차한 변명이나 췌사로 보여질 수도 있으리라. 

 

한 사람의 생애에 있어서 사십오 년이란 무엇일까. 그것은 부자도 가난뱅이도 될 수 있고, 대통령도 마술사도 될 수 있는 시간일 뿐더러 이미 죽어서 물과 불과 먼지와 바람으로 흩어져 산하에 분분히 내리기에도 충분한 시간이다. 

 

나는 창세기 이래 진화의 표본을 찾아 적도 밑 일천 킬로미터의 바다를 건너 갈라파고스 제도로 갈 수도, 아프리카에 가서 사랑의 의술을 펼칠 수도 있었으리라. 무인도의 로빈슨 크루소도, 광야에서 외치는 선지자도 될 수 있었으리라. 피는 꽃과 지는 잎의 섭리를 노래하는 근사한 한 권의 책을 쓸 수도 있었을 테고 맨발로 춤추는 풀밭의 무회도 될 수 있었으리라. 질량 불변의 법칙과 영혼의 문제, 환생과 윤회에 대한 책을 쓸 수도 있었을 것이다. 납과 쇠를 금으로 만드는 연금술사도 될 수 있었고 밤하늘의 별을 보고 나의 가야 할 바를 알았을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나는 지금 작은 지방 도시에서, 만성적인 편두통과 임신중의 변비로 인한 치질에 시달리는 중년의 주부로 살아가고 있다. 유행하는 시와 에세이를 읽고 티브이의 뉴스를 보고 보수적인 것과 진보적인 것으로 알려진 두 가지의 일간지를 동시에 구독해 읽는 것으로 세상을 보는 창구로 삼고있다. 한 달에 한 번씩 아들의 학교 자모회에 참석하고 일주일에 두 번 장을 보고 똑같은 거리와 골목을 지나 일주일에 한 번 쑥탕에 가고 매주 목요일 재활센터에서 지체 부자유자들의 물리 치료를 돕는 자원 봉사의 일을 하고 있다. 잦은 일은 아니지만 이름난 악단이나 연주자의 순회 공연이 있을때면 남편과 함께 정장을 하고 밤 외출을 하기도 한다. 

 

갈라파고스를 떠올린 것도 엊그제, 벌써 한 주일 이상이나 화재가 계속되어 희귀 생물의 희생이 걱정된다는 티브이 뉴스에 비친 광경이 의식의 표면에 남긴 잔상 같은 것일 테고 더 먼저는 아들이, 자신이 사용하는 물건들에 붙여놓은, '도도'라는 말에서 비롯된 것일 수도 있다. 도도가 무엇인가를 묻자 아들은 4백년 전에 사라진, 나는 기능을 잃어 멸종된 새였다고 말했다. 누구나 젊은 한 시절 자신을 전설 속의, 멸종된 종으로 여기지 않겠는가. 관습과 제도 속으로 들어가야 하는 두려움과 항거를 그렇게 나타내지 않겠는가. 

 

우리 삶의 풍속은 그만큼 빈약한 상상력에 기대의 부박한다. 삶이 나에게 도태시킨 가능성에 대해 별반 아쉬움도 없이 잠깐 생각해본 것은 내가 새로 보태어진 나이테에 잠깐 발이 걸렸다는 뜻일 게다. 그러나 나는 이제 혼례에나 장례에 꼭 같은 한 가지 옷으로 각각 알맞은 역할을 연출할 줄 알고 내 손으로 질서 지워주는 일들에 자부심을 갖고 있다. 마늘과 생강이 어우러져 내는 맛을 알고 행주와 걸레의 질서를 사랑하지만 종종 무질서 속으로 피신하는 것도 한 방법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

 

남편과 아들이 서둘러 아침 식사를 하고 각각 일터와 학교로 간 뒤 화장실 청소를 하려다가 나는 픽 웃었다. 깔끔한 성격의 남편은 그답지 않게 자주 변기의 물을 내리는 일을 잊는다. 나는 한번도 그 점을 지적한 적이 없다. 비교적 성공한 봉급 생활자인, 이제 머리가 벗어지기 시작하고 몸이 붇기 시작하는 장년의, 일자리나 술자리, 잠자리에서까지 능숙하고 세련된 그에게 어린 날을 떠올리게 하는 것은 거의 없다. 내게서 어린 날의 심한 허기와 도벽, 노란 거품을 게워내던 횟배앓이의 흔적을 찾을 수 없는 것처럼.

 

그러나 나는 사타구니에 손을 넣고 모로 누워 웅크리고 자는 그의 모습을 볼 때, 채 물 내리는 것을 잊은 변기 속의, 천진하게 제 모양을 지니고 물에 잠겨있는 똥을 볼 때 커다란, 늙어가는 그의 속에 변치 않은 모습으로 씨앗처럼 깊이 들어있는 작은 그를, 똥을 누고 나서 자신이 눈 똥을 신기하고 이상해하는 눈으로 물끄러미 바라보는 어린아이, 유년기의 가난의 흔적을 본다. 

 

남편의 선배 중에 경상도 시골에서 과수원을 하는 사람이 있었다. 남편과 내가 찾아갔을 때, 그와 그의 아내는 똥과 풀을 섞어 두엄자리를 만들고 있었다. 그의 아내가 냄새 풍기는 것이 미안했던지 내게 말했다. 똥이 썩을 때의 빛깔은 얼마나 형형색색으로 예쁜지 몰라요. 사람들이 제가 눈 똥을 보지 않게 되면서부터 본질을 잃어가는 게 아닌가 싶다고 나는 대꾸했었다. 그들 부부는 오래 전 통일 이전의 독일 유학생으로 각각 독일 문학과 교육학의 박사과정을 마쳐갈 즈음 모종의 사건에 연루되어 소환되었다. 재판을 받고 일 년간 복역한 후 풀려났지만 남편의 선배는 원거리 공포증이라는 이상한 병을 얻었다. 자신이 있는 곳으로부터 이 킬로미터 반경을 벗어나면 심장이 뛰고 불안해서 안절부절 못한다는 것이었다. 고향인 시골로 돌아왔을 때도 한동안 검은 수건으로 눈을 가리고 자신이 이제부터 살아가야 할 생활 반경을 익혀야 했었노라고 했다. 버스 터미널까지 자동차를 운전해서 우리를 데려다준 것도 그의 아내였다. 방랑이 꿈이었는데 인생이 참 아이러니컬하지요. 자랑스런 영농후계자로 뽑혔다는 그는 사과꽃이 만발한 과수원에서 우리와 작별하며 헛헛하게 웃었다. 

 

집 안을 치우고 나니 한결 호젓하고 조용한 것 같다. 찻물 주전자를 불에 얹고 나는 부엌 벽에 걸린 전화기의 송수화기를 떼어들었다. 지역 번호를 누른 뒤 빠르고 센 힘으로 번호판을 꾹꾹 눌렀다. 아득한 공간 속으로 신호음이 울렸다. 열 번, 열다섯 번, 스무 번, 송수화기를 제자리에 걸고 나는 더운물을 부은 찻잔을 천천히 휘둘렀다.

 

시는 강을 경계로 해서 남과 북으로 갈리고 농사를 짓는 북쪽과 소비 지역인 남쪽의 생활권을 이어주는 다릿목께에 상설 야채시장이 선다. 남편과 아들이 녹즙을 마시기 시작하면서부터 나는 값도 비교적 싸고 무엇보다 싱싱하다는 이유로 이 시장을 자주 이용해왔다.

 

이른 아침에 시장에 나오면 이슬 맺힌 채로의, 아직 가지런히 땅에 뿌리내리고 있는 듯한 연상을 불러일으키는 채소들, 푸른 잎과 구근들을 만난다. 그것들은 또한 내가 해 뜰 무렵 이슬에 발목 적시며 푸른 식물들 사이에 서 있는 듯한 만족감을 주기도 했다. 내 손으로 가꿀 수 있는 작은 밭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보는 것도 그때였다. 대부분 햇빛과 바람, 비에 의한 것이 아닌, 알맞은 온도와 습도, 빛을 인위적으로 조절한 비닐 하우스에서 재배한 것이라는 것을, 시든 푸성귀에 흠뻑 물을 뿌려 푸릇푸릇 살아나게 하여 갓 뽑은 것 같은 속임수를 쓰기도 한다는 것을 알게 된 뒤에도 그랬다.

 

신선초와 케일, 컴푸리 따위로 채워진 커다란 비닐 주머니를 양손에 무겁게 들고 시장을 벗어나며 나는 잠깐, 여름이 오기 전에 운전면허를 따야 하지 않겠는가를 생각했다. 진작 운전을 시작한 이웃 사람들이나 친구들로부터 운전을 하면 생활 형태와 감각이 달라진다는, 얼마나 기능적이고 자유스러워지는가 하는 얘기를 듣고 있는 터였다. 그러나 운전에 대한 생각은 다릿목에 이르러 지워져버렸다. 차들이 꼼짝 않고 늘어져 있었다. 다리가 끝나는 곳에 시가지로 진입하는 세 갈래 길이 부챗살처럼 뻗어 있어 병목 현상을 일으켜 평소 교통 체증이 심한 곳이긴 해도 이처럼 끝간데 없이 차들이 뒤엉켜 움직이지 않는 것은 드문 일이었다.

 

파마 머리를 봉두 난발로 불불이 세우고 두터운 겨울 코트를 입은 한 여자가 입에 불 붙이지 않은 담배를 서너 개비 한꺼번에 물고 길 가운데 서서 두 팔을 내두르며 교통 정리를 하고 있었다. 길 가던 사람들이 피식피식 웃어대고 자동차들은 신경질적으로 경적을 울려대었다. 나는 그때 늘어선 차 중에서 낯익은 감청색 승용차를 보았다. 남편의 차였다. 뒷좌석과 옆에 동승한 남자들이 있었다. 다리 건너 횟집에서 점심 식사를 하고 오는 길이리라 짐작되었다. 은행의 부장직에 있는 남편으로서는 고객과의 식사 자리도 중요한 업무일 것이었다. 핸들에 손을 얹고 있는 남편의, 그의 동승자들에게는 보이지 않을 얼굴은 피곤하고 권태로운 표정을 담고 있었다. 뒷자리의 남자들은 창을 내리고 고개를 빼어 그 여자를 보며 웃고 있었다. 

 

나는 나 자신도 모르게 조금 남편의 시야에서 비껴 섰다. 남편은 나를 보지 못한 것 같았다. 똑바로 앞만 바라보고 있었다. 아침에 입고 나간 그대로의 차림인데도 집 밖에서 보는 남편은 낯설었다. 나는 순간적인 내 태도와 감정에 당황했다. 내가 조금 더 그를 바라보았거나 아주 작은 소리로라도 불렀다면 그는 알아차렸을 만큼 가까운 거리였다. 미친 여자의 교통정리는 상습적인 것인 듯 그녀는 경찰에게 어깨를 잡혀 순순히 끌려가며 물방개 떼처럼 까맣게 밀린 차들을 향해 손을 흔들어주는 여유까지 보였다. 차들이 움직이기 시작하고 감청색 승용차도 그 속에 섞여들어 어느결에 시야에서 사라졌다. 그 차가 안 보일 때까지 눈으로 좇다가 나는 천천히 걸음을 떼어놓았다. 

 

몇 대의 버스를 보내고도 나는 그 자리에 우두커니 서 있었다. 버스비로 꺼내 쥔 몇 낱의 동전에 축축이 땀이 찼다. 버스를 타기에는 짐이 무겁다고 속으로 말했다. 아직 세시, 집에 들어가서 서둘러 해야 할 일은 없다고, 저녁밥을 지을 때까지는 아직 시간이 많이 남아 있노라고 왠지 변명하는 기분으로 말했다. 신호등이 파란불로 바뀌어도 건널 염이 없이 비스듬히 맞바라다 보이는 건물을 바라보고 서서 뜨거운 커피를 한잔 마시고 싶다고 목쉰 소리로 조그맣게 말해보았다. 택시는 쉽게 잡히지 않았다. 어쩌다 빈 택시가 지나가기도 했지만 미처 손을 들기 전에 지나가버렸다. 반대 방향으로 가는 빈 택시는 자주 눈에 띄었다. 조금 돌더라도 건너가서 타는 게 낫겠다고 작정을 하고 길을 건넜다. 택시 정류장의 표지판을 찾아 망설이듯 느릿느릿 걷다가 옛날로부터 홀연히 나타난, 낯익은 찻집의 문 앞에서 문득 멈춰섰다. 

 

문득, 이라고 말하는 것은 옳지 않다. 나는 집으로부터 이곳까지의 먼 길이 여러 해에 걸친 우회라는 것을 부인할 수 없다. 찻집의 유리창에 바짝 붙어서서 뚫고 들어갈 듯 이마를 대었다. 오래 전 내가 앉았던 자리, 강이 맞바로 내다보이는 창가의 탁자 위에 담뱃갑과 반쯤 마시다 만 찻잔, 몇 개의 열쇠가 매달려 있는 열쇠고리가 무심히 놓여 있었다. 그리고 재떨이에 걸쳐진 담배에서 피어오르는 연기. 의자는 텅 비어 있었다. 유리 창 밖의 내 모습이 유령처럼 그 물상 위로 비비적대며 어른거렸다.

 

나는 훅 숨을 들이마시며 눈을 부릅떴다. 그것은 텅 빈 공허, 사라짐의 공포였을까. 그곳은 사과가 떨어져도 ‘툭’ 소리가 나지 않는 저편의 세계. 내가 때때로 송수화기를 통해 듣게 되는, 어둠의 심부로 한없이 빨려가 사라지는 신호음. 이제는 영원히 과거 시제로 말해질 수밖에 없는 비인칭 명제. 그러나 나로서는 간신히 온힘을 다해 ‘그’라고 부르는. 연인들이 저물도록 강물을 바라보다가 돌아가는 찻집이었다. 내가 무거운 나무문을 밀자 그것은 ‘여러 해 만에’ 비로소 비익 녹슨 소리를 내며 열렸다.

 

한낮인 탓에 찻집 안은 손님이 하나도 없이 조용했다. 그 언젠가와 꼭 같았다. 연극 무대에서 흔히 사용하는 방법, 추억을 상기시키는 하나의 장치처럼 모든 것이 그대로였다. 상아빛 와이셔츠에 커프스가 단정한 주인 남자가 이제는 수염을 기르고 있는 것만이 달랐을 뿐이다. 모든 것이 그대로인 채 조금씩 낡아가고 가라앉아가고 있었다. 나는 제일 안쪽 자리를 잡고 앉았다. 찻잔이 놓인 탁자가 마주보이는 자리였다. 그 자리에 앉았었을 남자는 카운터 옆의 공중전화 박스에서 이켠에 등을 보이고 서서 전화를 걸고 있었다. 유리 칸막이가 되어 있어 말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완연한 봄이군요. 가죽 덮개 씌운 메뉴 책을 가져온 주인 남자의 말에 여러 해 전의 내가, 스스로에게도 이상하게 들리는 낮고 쉰 목소리로 ‘블루마운틴’ 커피를 주문했다. 그와 함께였다면 찻집 남자는 그때처럼, 강물빛이 좋지요라고 말했을 것이다. 정말 그렇군요라고 그가 대답하면 찻집 남자는 이 고장에는 봄, 가을이 없어요. 봄인가 하면 여름이 되고 가을이 오면 곧 눈이 내리지요라고 덧붙일 것이다. 찻집 남자는 그가 혼잡한 대도시에서 왔음을 알아채었다. 이 고장 사람이라면 강물빛이 좋군요 따위의 말은 하지 않는다. 그것은 스쳐지나가는, 잠시 머물고 영원히 떠나가는 나그네의 말이다. 담배 한 대를 피울 동안, 차 한잔을 마실 동안, 한 컵의 맥주를 마실 동안만 내 눈빛에 머무는.

 

재떨이에 걸쳐진 담배는 더 이상 푸르스름한 연기를 피워올리지 않고 위태롭게 구부러진 흰 재가 어느 순간 소리없이 무너졌다. 나는 그가 내 어깨 너머로 바라보던 강과 강물 위에 떠 있는 갈대숲 우거진 작은 섬을 바라보았다. 

 

반백의 남자가 전화 박스에서 나와 자리에 털썩 주저앉았다. 담배를 물고 불을 붙였다. 찻집 남자가 커피를 가져왔다. 진하고 뜨거운 커피 냄새가 가라앉은 공기 속을 섬세하게 떨며 실핏줄처럼 퍼져가는 것을 느꼈다. 그 향기를 감지했던가, 맞은편 탁자의 남자가 고개를 들어 이켠을 바라보았고 잠깐 허공에서 시선이 부딪쳤다. 어딘가 몽롱하고 불안해하는 눈빛이었다. 나는 찻잔에 설탕과 크림을 넣어 천천히 휘저으며 그에게서 눈을 떼지 않았다. 나는 찻집 주인이 손수 뽑아내는 커피 맛이 일품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고 또한 그가 남색가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이 작은 도시에서는 무엇이든 감추어지는 것이 없었다. 아직 늙지 않은 그의, 가짜로 만들어 붙인 듯 풍성한 턱수염 따위는 허세에 지나지 않을 따름일 것이다. 

 

베토벤의 석고 데스마스크는 옛날처럼 벽 위 높직이 그 자리에 붙어 있었다. 나는 마주앉은 그에게, 중학교 미술 시간에 석고로 마스크 뜨던 얘기를 했을 것이다. 콧구멍을 막고 눈을 꼭 감고 되게 갠 석고 반죽을 얼굴에 바를 때의, 화면이 사라지듯 어둡고 차가워지던 느낌을, 아마 죽음이 그럴 거라고 말했을 것이다. 오직 내 어깨 너머로 아득히 가 있는 그의 눈길을 잡으려는 필사적인 노력으로 더듬거리며 감히 죽음을 말했을 것이다. 

 

담배를 다 피우고 난 남자는 일어나 다시 전화 박스로 들어갔다. 나는 눈길을 돌렸다. 강은 완연히 봄빛을 띠고 있었다. 먼 산은 아직 잎 피지 않은 부드러운 갈색으로 아득하지만 강둑을 따라 늘어선 버드나무 가지에는 연둣빛 기운이 안개처럼 어려 있었다. 다리의 중간쯤에서 한 여자가 허리를 깊이 굽히고 강물을 내려다보는 것이 보였다. 다리에서는 종종 자살 사건이 일어났다. 그것은 신병 비관, 생활고, 실연 등의 제목을 달고 지방 신문의 하단 일단 기사로 보도되었다. 다리의 중간 지점을 받친 기둥 아래는 물살이 믿을 수 없이 빠르게 소용돌이치기 때문에 깊이 빨려들어간 익사체는 오랜 후에야 물의 흐름이 느려지는 강의 하류에서 천천히 떠오른다고 했다.

 

어릴 때 내게 죽음은 흰 봉투였다. 가끔 학교에서 돌아올 때나 아침에 집을 나설 때 대문과 문설주 사이에 반으로 접혀 꽂힌 흰 봉투를 보곤 했었다. 집안 식구들 중 아무도 누가 언제 그것을 끼워넣었는지 알지 못했다. 어른들은 그것이 부고(訃告)라는 것을 알려주지 않았지만 아이들은 함부로 만지거나 열어보면 안 되는 불길하고 부정한 그 무엇이라는 것을 저절로 알았다. 아무것도 씌어지지 않은 흰 봉투에 넣어져 아무도 알아차리지 못하는 순간에 살짝 문틈에 끼워진 죽음은 두렵고 낯선 비밀이었다. 

 

한여름 청청히 물오르는 계절에도, 죽음의 자리에 누운 아버지는 자꾸 뚝뚝 나뭇가지 부러지는 소리가 들린다고 말했다. 저승으로 열린 귀는 셀로판지처럼 얇고 투명해져 다른 사람들은 볼 수 없는, 오직 이미지 속에서반 존재하는 또 다른 세계의 소리를 듣고 있었다. 죽음을 앞둔 사람의 환청이라 귀담아듣지 않으면서도 임종을 지키기 위해 모여든 가족들은 자주 밖을 내다보는 시늉을 하고 아버지를 안심시켰다. 우리는 그것이 죽음의 소리라는 것을 몰랐다. 우리는 죽음을 알아보기에는 너무 젊었던 것이다.

 

참 깨끗이 곱게 가셨다. 입관을 하기 전 어머니가 자부심을 가지고 말했으나 그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아버지는 냄새를 풍기기 시작했다. 온몸을 흔들며 웃던 평소의 습관처럼 전신으로 냄새를 풍겼다. 어머니는 그러한 말을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몰랐다. 오래된 미신이라 하더라도 옛사람들이 옳았다. 그들은 죽음에 위엄을 부여할 줄 알았다. 죽은 자에 대해 말하는 것은 금기였다. 야삼경 지붕 위에 올라가 망자의 흰 저고리를 흔들며 캄캄한 천공에 외치는 초혼제를 지낼 때 나의 어린 아들은 아주 커다랗고 하얀 새가 날개를 펄럭이며 어두운 하늘로 날아가는 것을 보았다고 말했다. 

 

그가 죽은 후 오랫동안 나를 괴롭히던 귀울음은 나았다. 한없이 귀가 부풀어오르는 느낌, 세상의 온갖 소리들이 종잡을 수 없이 웅웅대며 끓어올라 뇌 속을 파고드는 고통을 호소하자 이비인후과의 젊은 의사는 아마 달팽이관에 이상이 생긴 듯하다는 자신없는 진단을 내렸다. 이제 범상히 살아가는 내게 그의 흔적은 없다. 밥을 먹고 잠을 자고 혼자 있는 시간에 뜻 없이 내뱉는 탄식처럼 짧고 습관적인 성교를 한다. 그러나 모든 죽은 사람들이, 그들에 대한 기억이 소멸한 뒤에도 그들이 남긴 살아 있는 사람들의 유전자 속에 깃들이듯 그는 나의 사소한 몸짓과 습관 속에 남아 있다. 예기치 않았던 날, 누구나 이용할 수 있는 신문의 부고란에서 그의 죽음을 보았을 때부터 내게는, 그의 떠도는 전화번호를 불러내어 꾹꾹 눌러대는 버릇이 생겼다. 어둠의 심부를 향해 신호음을 울리며 이제 그가 사용할 수 없는 일련의 숫자들은 캄캄한 공허 속으로 끝없이 퍼져갔다. 그가 왜, 어떻게 죽었는가를 묻는 것은 의미 없는 일이리라.

 

그가 죽은 뒤 한동안 내게는 모든 사람들이 시체처럼 보였다. 먹고 마시고 너털웃음치는 시체, 걸어다니는 시체, 쾌락을 느끼거나 고통을 느끼는 시체. 어릴 때 동무 정옥이의 아버지가 옳았는지도 모른다. 술주정뱅이 염쟁이인 정옥의 아버지는 밤마다 관속에 들어가 잔다고 했다. 

 

전화 박스를 나오는 남자의 시선이 다리 위에 가 있는 내 눈길을 끌어당겼다. 남자가 여자를 바라보는 것이 아닌, 어딘가 혼란에 빠진 눈길이었다. 해가 갈수록 나는 낯선 남자의 눈길을 받을 때 그것이 남자가 여자를 바라보는 눈길이 아님을 느끼게 되었다. 유리알처럼 무의미하고 건조하게 스쳐가는, 혹은 자신의 내부를 들여다보는 눈빛의 투사. 그것은 내가 더 이상 젊은 여자가 아니라는 의미이리라. 

 

나는 똑바로 그 남자를 바라보았다. 그 남자는 가지런히 빗긴 머리를 공연히 쓸어보고 얼굴을 문지르며 흐트러진 눈빛으로 허둥대었다. 실내에 갇힌 만져질 듯 단단한 고요함을 견디지 못한 찻집 주인이 턴테이블에 판을 걸었다. 재킷에서 디스크를 꺼내어 조심스레 먼지를 닦아내고 바늘을 올리는 번거로움과 수고, 옛방식을 그는 즐기고 있는 듯싶었다. 지익지익 바늘 긁히는 소리에 이어 라벨의 볼레로가 흘러나왔다. 

 

그 남자는 힘겹게 내 시선을 걷어내며 신문을 펴들었다. 그러나 나는 그의 얼굴을 가린 신문지 너머에서 여전히 나를 바라보는 눈과 조금씩 거북해지고 가빠지는 숨결을 느낄 수 있었다. 그는 심한 혼란에 빠진 것에 틀림없었다. 내가 젊고 아름다운 여자였다면 그가 그토록 당황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저 여자가 누구일까. 왜 나를 뚫어지게 바라보는 것일까. 뒤죽박죽 헝클어진 기억의 창고를 헤집어 그가 알았던 여자, 안았던 여자, 버렸던 여자들의 희미한 얼굴을 떠올리며 진땀을 흘릴 것이다. 점차적으로 빨라지는 캐스터네츠의 소리들이 가까스로 끓어올린 실마리들을 흩어버려 그는 점점 더 미로 속을 헤매게 될 것이다.

 

그가 마침내 신문을 탁자에 내려놓으며 결심한 듯 몸을 일으켰다. 내 쪽을 향한 몸이 순간 기우뚱하며 탁자를 치고 찻잔이 바닥에 떨어져 날카로운 파열음으로 부서졋다. 그는 이제 극도로 당황한다. 막바지로 치닫는 볼레로의 8분음표와 16분음표의 숨 가쁜 원무를 헤치고 주인 남자가 다가왔다. 당황한 몸짓으로 허리를 굽혀 깨진 조각들을 주우려는 그를 만류했다. 그는 이제 절대로 내 쪽을 보지 않았다. 완강히 등을 돌린 자세로 빈 담뱃갑을 구겨버리고 열쇠고리를 집어넣고 계산을 치른 뒤 밖으로 나갔다.

 

넓은 유리창을 통해 어딘가 불안정한 걸음걸이로 횡단보도를 건너는 그의 모습이 보였다. 그는 담배 가게에서 담배를 사고 손수건을 꺼내 얼굴을 문질렀다. 나는 찻집을 나왔다. 분명히 설명할 수 없는 조바심으로 종종걸음을 치며 그의 발자취를 충실히 따라 횡단보도를 건너 강둑길로 올라섰다.

 

그는 강둑, 마른 풀들이 깔린 펀펀한 땅에서 버드나무를 짚고 서 있었다. 왼손으로 가슴을 문지르고 애써 심호흡을 했다. 토하려는, 어쩌면 뭔가 자신 속에서 치밀어오르는 억누를 수 없는 힘과 싸우는 듯도 했다. 낯빛이 무섭게 창백했다. 그가 나를 바라보았던가 알 수 없었다. 미간을 모아 찌푸린 눈길이 힐끗 나를 거쳐 벌써 이울기 시작하는 해를 바라보았다. 

 

그는 신경질적이고 불안한 손놀림으로 넥타이를 풀었다. 목을 매려는가보다고 나는 순간적으로 생각했지만 그는 넥타이를 주머니에 넣고 양복 상의를 벗어 개었다. 그리고는 개어놓은 윗도리를 베고 반듯하게 누웠다. 그는 이제 눈에 띄게 헐떡이고 있었다. 바지 주머니에서 손수건을 꺼내 얼굴을 덮으며 그는 으으윽, 억눌린 비명과 함께 몸을 뒤틀었다. 흰 와이셔츠와 엷은 색 바지는 이내 마른 풀과 흙으로 더렵혀졌다. 전혀 예기치 않은 돌연한 사태에 나는 왜, 왜 그래요, 어디 아픈가요. 목 질린 소리를 내뱉으며 물러섰다. 강둑 아래 선착장에서 배를 기다리던 사람들과 노점을 펼쳐놓고 있던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그들은 경찰을 부르거나 병원으로 옮겨야 하지 않겠느냐는 다급한 내 말을 간단히 묵살했다. 간질이라고, 발작이 와서 넘어지면 뇌진탕을 일으킬까봐 자신이 미리 알고 대비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리고는 이렇게 호젓한 자리를 잡아 옷을 벗어놓고 누운 것을 보니 병이 골수에 박여 발작이 잦은 사람인 게라고, 곧 멀쩡해져서 일어날 테니 걱정할 게 없다고 덧붙였다.

 

그는 죽어가는 개구리처럼 끊임없이 사지를 비틀고 떨어대었다. 흰 손수건 밑의 얼굴 윤곽이 젖은 형태로 드러났다. 둘러선 사람들은 간질이 내림병이라거니 아니라거니, 맞선 보는 자리에서 발작을 일으킨 얘기, 결혼 첫날밤에 발작을 일으켜 색시가 놀라 달아났다는 등 보거나 들은 얘기들을 나누며 발밑에서 몸부림치는 그가 어떤 모습으로 일어날까를 기다렸다. 그것은 뭔가 허구적이고 비현실적인 느낌을 주는 광경이었다. 나 역시 유수한 기업체의 입사 시험에서 합격한 후 마지막 코스인 면접 시험장에서 발작을 일으킨 얘기를, 사랑하는 여자의 마음을 어렵게 사로잡은 순간 발작을 일으킨 사람들의 얘기를 알고 있었다.

 

오 분? 십 분? 몸의 경련이 차츰 느려지고 어느 순간 그는 부르르 진저리를 치며 길게 휘파람 같은 한숨을 내쉬었다. 이제 다됐어. 누군가의 말을 받듯 불룩하게 치솟은 바지 앞섶이 펑 젖어들었다. 그것은 점차 짙은 빛깔의 얼룩으로 걷잡을 수 없이 번져갔다. 

 

그가 일어났다. 돌연히 감지되는 침묵과 둘러선 사람들을 묵살하고 그는 옷의 흙을 털고 머리를 매만졌다. 양복 상의를 집어들고 발길을 돌리는 순간 잠깐 나와 눈이 마주쳤던가. 나는 그 고독하고 허전한 눈빛을 결코 잊지 못할 것이다.

 

저녁 식탁에서 남편은 오늘은 아주 더웠다고, 여름 양복을 손질해놓았느냐고 물었다. 나는 아무리 그래도 지금은 봄이고 봄 날씨는 예측할 수 없다고 대꾸했다. 남편은 여름의 휴가는 바캉스 시기를 피해 6월쯤 조용한 숲속의 콘도에서 보내고 싶다고 말했다. 아들이 대학에 들어가서 집을 떠나 대도시로 가게 되면 우리도 함께 외국 여행을 가자고 말하기도 했다. 식사를 마치고 신문을 보던 남편이 더러운 물과 공기는 우리가 스스로에게 가하는 무서운 폭력이라고 하는 말에 나는 동의한다. 신문에는 썩어가는 식수원과 지렁이가 나오는 수돗물에 항의하는 시민들의 사진이 실려있다. 

 

조용한 휴가와 깨끗한 물과 공기에 대해, 연금과 전원주택에 대해 나누는 대화에서 나는 우리가 늙어가고 있다는 것을 느낀다. 남편은 ‘베드로’라는 영세명을 받은, 십대 후반부터 냉담중인 천주교인이지만 은퇴 후에는 종교 활동을 통해 이웃과 사회에 봉사하는 생활로 평화로운 노년을 보내고 싶다고 말한다. 그것은 꿈이라기보다 계획이라고 해야 옳을 것이다. 사람의 생애나 내일은 예측할 수 없는 것이긴 하지만 우리가 이제껏 살아온 것처럼 별달리 모험을 하려 하지 않는다면 남편과 나는 아마 그러한 노년을 누리게 될 것이다. 남편은 욕심 없이 깨끗하고 점잖게 늙고 싶어하고 그러한 마음이 내게 신뢰를 준다. 나는 우연히 그가 종교 단체에서 벌이는 운동에 동참해서 사후의 장기 기증을 약속했다는 것을 알았다. 그것을 내게 말하지 않은 것은 나의 선택권에 대한 존중으로 여겨진다. 나의 정서로서는 아직 나의 죽은 몸이 채 식어지기 전 벌겨벗겨져 낯선 손에 의해 열린다는 것, 내용물을 뽑아낸 텅 빈 자루가 되어 땅에 묻힌다는 것을 받아들이기 어렵다. 만약 남편이 먼저 죽는다면 나는 아마 그의 박제를 매장하게 될 것이다. 

 

남편과 아들은 지구 온난화 현상과 기상 이변에 대해서, 나라 밖 전쟁과 핵 보유 문제에 대해, 새로 발견된 명왕성보다 더 먼 별에 대해 이야기를 하고 나는 그들이 나누는, 나로서는 잘 알 수 없는 얘기를 듣는 일이 즐겁다. 그것은 우리가 다른, 새로운 세상에 살고 있음을 깨닫게 하고 약간의 두려움과 자부심을 동시에 느끼게 해준다. 

 

인도 바람은 한물간 것 같은데 명상이 대유행이에요. 고도의 경지에 이르면 뭐든지 가능하대. 가만히 혼자 앉아서 섹스도 가능하고 오르가슴까지도 느낀대. 그거야 마스터베이션과 뭐가 달라요? 나는 신문에 끼여 온 명상 센터 광고지를 보며 남편에게 말했다. 생산적이진 않겠지. 남편이 대답했다. 우리의 생활에서 더 이상 생산적인 것은 있는 것일까. 우리의 삶의 내용을 이루는 것들. 그와 나, 합법적인 관계에서 태어난 아들을 나날이 싱싱하게 자라는 나무처럼 바라보며 소망과 걱정을 나누고 자잘한 생활의 문제, 음식과 성을 나눈다.

 

물론 배반과 환멸과 분노의 몫도 있을 것이다. 그릇에 담긴 물의 평화와, 고약한 항변처럼 끓어오르는 장 항아리의 곰팡이가 있고 무엇보다도 이 모든 것들을 싸안는 충실한 관습, 질서가 있다. 기나긴 습관의 미덕에 기대어 약간의 불면과 무력한 고통의 기억을 잠재운다. 언제부터인가 우리는 나란히 누워 잠들지만 각각 꾸었던 지난밤의 꿈에 대해 이야기하지 않는다. 당신은 나를 어떻게 견디나. 나는 때때로 마음속으로 그에게 물음을 던지지만 그것은 똑같이 나 자신에게도 유효한 물음이기도 할 것이다. 그러나 나는 한번도 그러한 말을 한 적이 없다. 잠수에 자신이 없는 사람은 어떤 경우에나 수면 아래로 내려가면 안 될 것이었다. 익사의 위험이 따르므로. 그러나 우리의 관계를 단순히 관습이라거나 시간의 길들임이라고 말하는 것은 정직하지 않다. 남의 환심을 사기 위해 짐짓 해보는, 자신에 대한 능멸처럼 비겁하고 위선적이다. 그렇게 말할 수만은 없는 무엇인가가 분명히 있다. 

 

남편과 그는 같은 해에 태어났다. 각각 동서로 나뉘는 다른 고장에서 자랐지만 전쟁중에 태어나서 폐허 속에서 성장한 공유의 경험이 있다. 점심이 없던 봄과 여름 긴긴 오후의 허기와 쓸쓸함을, 그 쓸쓸함을 달래주던, 무딘 손칼이나 생철 조각으로 무른 흙을 헤집어 캐먹던 메뿌리의 맛을 알고 있다. 춥고 긴 겨울 밤 까닭 모를 슬픔으로 잠 못 이루고 뒤척이게 하던 야경꾼의 딱딱이 소리와 석양 무렵 오후의 늦은 잠에서 깨어났을 때의 서러운 혼미, 상이군인의 쇠갈고리 손의 공포, 고달픈 부모의 매질과 욕설을 알고 있다. 구구단과 연대기, 우리의 맹세와 혁명 공약을 외우며 자란 작은 아이들. 

 

열일곱 살인 아들을 보면 내가 아직 알지 못했던, 그맘 나이 때의 남편의 모습이 보이고 매번 인간의 유전자 속에 들어 있는 끔찍한 복제 욕망에 새삼스레 놀란다.

 

남편은 낮의 다릿목에서 있었던 교통 체증에 대해 말하며 좁은 길과 앞을 내다보지 못하는 도시 행정을 비난했다. 이어 이사철이 지나기 전 작은 아파트를 팔아야 하지 않겠는가고 말했다. 나는 내일 부동산업자에게 집을 내놓겠노라고 순순히 대답했다. 저녁 설거지를 마치고 나서야 나는 다릿목 시장에서 산 채소를 찻집에 그대로 두고 왔다는 것을 기억해냈다. 

 

내가 살고 있는 고층 아파트 앞 아카시아 덤불과 잡목이 우거진 야산을 넘어가면 우리 가족이 편의상 ‘작은집’ 이라고 부르는 예성 아파트가 있다. 그리고 그 아파트로 가는 길에 연당집이 있다. 예성 아파트로 가려면 우리가 사는 아파트의 진입로에서 연결된 찻길로 나와 아파트 단지의 담을 끼고 빙 돌아야 하지만 나는 대개의 경우 길도 나 있지 않은 야산을 넘어 작은집으로 간다. 지름길인 탓도 있지만 용케도 둥치 굵은 나무들이 이루는 숲이 남아 있기 때문에 나는 개인 소유의 땅이므로 다른 사람들의 출입을 금한다는 푯말을 무시한 채 철망 울타리의 개구멍으로 기어들어가곤 했다. 그곳에는 소나무와 참나무, 커다란 오동나무까지 있어 예성 아파트를 오갈 때마다 나는 그 작은 숲 가운데서 저절로 발길이 멈추어지곤 햇다. 잎을 모두 떨구고 앙상한 나목일 때에도 밤이 깃들일 무렵 그 아래에 서면 왠지 현자가 된 듯한 느낌이 들어 오랫동안 숨을 가다듬으며 피어오르는 어둠을 응시하기도 했다. 

 

산비탈의 경사가 끝나는 곳에서 연당집의 나무 울타리는 시작되었다. 산자락이 싸안은 북쪽을 빼고는 모두 웬만한 집 서까래 굵기의 통나무를 어른 키 높이로 가지런히 잘라 굵은 철사로 촘촘히 엮어 울타리를 두른 것이다. 그러나 봄으로 접어들면서 그 울타리가 동쪽부터 헐려나가기 시작했다. 오래된 집을 헐고 향어회와 송어회를 파는 음식점을 할 거라는 소문이 떠돌았다.

 

예성 아파트로 가기 위해 연당집 앞을 지나다가 나는 문득 눈을 치떴다. 대문 옆 울타리에 눈에 익은 애 스카프가 매어져 있었던 것이다. 벌서 여러 날 전 내가 ‘바보’의 다리 상처에 묶어주었던 것으로 나는 그 동안 스카프 따위는 까맣게 잊고 있었다. 오래된 물건으로 색깔이 낡고 올이 해져, 버리려고 내놓았다가 그날 목에 두르고 나갔던 것이다. 엉뚱한 장소에 놓인, 붉은 무늬가 요란한 낡은 스카프는 이물스럽고 부끄러웠다. 내게 익숙하고 내 몸에 걸쳤던 것이기 때문일 것이다.

 

어제까지도 종일 울타리를 뽑고 있던 바보는 보이지 않았다. 나는 다른 사람들이 그러하듯 그를 바보라고 부른다. 그는 이미 이름이 불릴 나이를 지났을 것이다. 그를 바보라고 부를 때 (물론 마음속에서지만) 나는 하등 미안하거나 불편함을 느끼지 않는다. 모르는 사람의 이름이 다만 자음과 모음의 어울림이듯 단지 바보라는 두 글자 외에 어떤 느낌도 없다. 서른? 마흔? 나이를 가늠해보기도 하지만 종잡기 어려웠다. 

 

며칠 전 나는 바보가 울타리를 뽑는 것을 보고 있었다. 바보는 작은 톱으로 울타리를 엮은 철사를 끊으려고 애쓰고 있었다. 톱이 아닌 펜치를 사용해야 한다고 말하는 것은 부질없는 짓이었다. 일을 시작하면 바보는 누구의 말도 듣지 않았다. 언제나처럼 바보의 주위에는 유치원에도 학교에도 가지 않는 동네 아이들이 모여 있었다. 아이들은 바보의 행동 하나하나에 따라 바보가 담배를 피운다, 바보가 오줌을 눈다, 바보가 웃는다, 라고 일일이 말했다.

 

끊기지 않는 쇠줄을 끊으려 온 힘을 다해 애쓰던 그가 다리를 싸쥐고 주저앉았다. 더러운 트레이닝 바지에 피가 배어나왔다. 톱이 동강이 나면서 무릎을 찔렀던 것이다. 바보가 쥐어짜듯 온 얼굴을 찡그리며 어헝어헝 울었다. 집 안에서는 아무런 기척이 없었다. 피는 점점 더 짙고 붉게 번지고 나는 바보에게 바지를 걷도록 한 뒤 스카프를 풀어 피 흐르는 상처를 동여매었다. 피 흐르는 푼수치고는 상처가 그리 깊지 않았다. 바지 자락이 자꾸 흘러내려 나는 무릎 위로 버쩍 올려주었다. 근육질의 단단한 살 위로 내 손이 닿자 바보는 간지럼을 타듯 움찔움찔 몸을 비틀었다. 바보도 털이 난다, 우리 아빠처럼. 어린아이들이 바보의 다리를 가리키며 떠들어대고 울음을 그친 바보는 잔뜩 찡그린 얼굴에 자랑스런 표정을 떠올렸다. 나는 그가 알아들으리라 믿지 않으면서도 꼭 소독을 하고 약을 발라야 한다고 일러주었다. 바보라서 아무것도 몰라요. 바보는 히죽 웃고 아이들이 대신 대답했다. 바보는 아마 내게 돌려주기 위해 스카프를 울타리에 묶어놓는 기교를 부렸는지도 몰랐다. 나는 엷은 수치심 비슷한 느낌에 스카프에서 눈을 돌리고 예성 아파트로 향했다. 

 

아무런 기대도 생각도 없이 다만 내 소유의 아파트 번호가 적혀 있다는 이유로 열어보게 되는 우편함에서 언제나 기본 요금에 머무는 수도와 전기 요금 청구서를 뽑아들고 층계를 올라갈 때 반장일을 맡아보는 3층 여자를 만났다. 오랜만이라고, 통 만날 수가 없다는 그녀의 말에서 나는 그녀가 몇 차례 나를 찾아왔었다는 것, 정식 입주인이 아닌 나를 못마땅해하고 있다는 것을 동시에 느꼈다. 아파트 공동의 궂은일과 심부름을 도맡아 해야 하는 반장의 처지에서 보자면 나처럼 빈집에 이름만 걸어두고 층계 청소부터 연판장 서명, 때로 떼지어 시청에 달려가 민원을 호소하거나 궐기 대회에 나가는 일 따위에 일절 참여하지 않는 사람은 난처하기도 할 것이었다. 내가 집을 비워두고 있다는 것은 그녀가 잘못 알고 있는 일이다. 드나드는 시간이 일정치 않았던 것 뿐이다. 반장은 내게 밀린 반 회비며 그 밖에도 몇가지 자질구레한 명목의 돈을 요구했고 나는 곧 내겠노라고 약속했다. 집을 팔 작정이니 마땅한 매도인을 찾아달라고 부탁하면 반가워할 것이라는 생각이 스쳤으나 나는 간단한 인사로 그녀와 엇비껴 층계를 올라갔다. 

 

맨 위층인 5층 끄트머리의 초록빛 철제 현관문을 열고 들어서며 나는 아마 빈집의 잠긴 문을 열고 들어갈 때의 그 이상하게 호젓하면서도 충만한 느낌 때문에 별반 쓰일 일도 없는 이 집을 처분하지 않는가보다고 잠깐 생각했다. 남편은 한 가구가 집 두 채를 갖는 것에 따른 불리함을 말하며 팔도록 했지만 나는 전혀 믿는 바가 아니면서도, 이곳 사람들이 크게 기대를 걸고 있는 재개발에 대해, 그럴 경우 우리가 얻을 이익을 말하며 차일피일 미루고 있었다. 솔직히 말하자면 나는 나 혼자만의 공간이 필요했던 것이리라. 

 

아주 오래 전에 지은 열한 평짜리 서민 아파트였다. 방바닥에 불기는 느껴졌지만 사람이 살지 않는 집의 서늘한 기운, 삭막함이 엷게 깔린 먼지와 함께 고여 있었다. 이태 전 우리 가족은 이곳에서 석 달을 살았다. 새로 분양받은 아파트의 입주 전, 이사철을 놓치지 않으려고 살던 집을 팔고 임시로 거처할 셋집을 찾다가 싼값에 이 집을 사고 들었다. 전셋돈이나 매입금에 차이가 없었던 것이다. 석 달을 살고 새 아파트로 입주를 하며 세를 놓았는데 지난 겨울 그들이 이사를 나간 뒤로 다시 비어 있게 되었다. 

 

집은 세들었던 사람들이 나갈 때 그대로였다. 나는 한차례 쓸고 닦은 것 외에 아무것도 달리 손대지 않았다. 경우가 바르고 분명한 젊은 부부는 자신들이 쓰던 물건은 허드레 걸레 조각 하나 남기지 않고 떠났기 때문에 일은 훨씬 쉬웠다. 단 하나, 부엌 찬장 서랍 안쪽에 넣어두었던 노트 외에는. 아마 잊고 간 것이리라. 얇은 노트의 위쪽에 송곳으로 구멍을 내고 고무줄을 꿰어 볼펜을 달아놓아 그것은 구멍가게의 외상 장부처럼 보이기도 했다. 가계부러 썼던가보았다. 두부 한 모, 꽁치 세 마리, 시금치 한 단 등의 세목이 날짜와 함께 꼼꼼히 적혀 있었다. 미니 카, 바나나 1킬로그램, 콘돔 한 박스... 그리고 틈틈히 시구인지 유행가 가사인지 알 수 없는 글들이 적혀 있었다. 아이를 때리고 남편을 미워하는 마음에 대한 반성이 적힌 곳도 있었다... 그 역시 착하고 가엾은 사람이다. 이해하려고 노력해야 한다. 가난이 우리를 메마르게 한다. 사랑의 말과 눈빛을 잊게 한다. 오늘은 특히나 내가 참을 수 없이 싫어지고 우울하다. 비가 오기 때문일까. 어디론가 훌쩍 떠나고 싶은 마음뿐... 능숙하지 않은 글씨체로 담긴 젊은 부부의 생활을 보며 나는 미소지었다. 선뜻 쓰레기통에 던져버릴 수가 없어 언제든 우연히 마주칠 일이 있으면 돌려주리라는 생각에 찬장 위칸에 넣어두었다. 

 

지난 겨울 내내 거의 매일 나는 연탄 보일러의 불이 꺼지면 온수 파이프가 얼어 터질 것이라는 구실로 이 집에 왔다. 빗자루와 쓰레받기 그리고 그들이 잊고 간 노트 외에 이 집에는 아무것도 없다. 아, 벽에는 장롱이 놓이고 액자가 걸렸던 자리의, 빛에 바랜 다른 벽지에 비해 조금 짙은 색깔로 남아 있는, 정사각형 혹은 직사각형의 흔적이 있다. 사라진 뒤에야 비로소 드러나는 존재의 흔적. 나는 이곳에서 낮잠을 자기도 하고 창밖을 내다보기도 하면서 아무런 하는 일이 없이 시간을 보낸다. 세탁소 배달차에서 흘러나오는 「소녀의 기도」나 트럭 행상인의 외침 그리고 어디선가 들리는, 내가 이제는 잊어버린, 어린아이의 울음소리에 귀를 기울이기도 한다. 서향의 창으로 해가 들 무렵이면 으레 우리 가족이 이곳에서 살았던 짧은 동안의 시간들이 곧 스러질 금빛 햇살 속에 환각처럼 살아나 슬픔이 차오르곤 했다. 

 

창을 열면 눈 아래에 연당집이 빤히 내려다보였다. 이 동네 사람들은 이백 년도 넘었으리라는 커다랗고 낡은 기와집을 진사집 혹은 바보네 집, 연당집이라고 부른다. 앞마당의, 여름이 되면 수련이 장관을 이룬다는 연못때문에 그렇게 부르는 것이리라. 누대로 당상관을 지낸 이가 다섯 명이 넘고 아홉 명의 바보가 태어났다는 것, 교사와 공무원, 장사꾼으로 풀린 자손들은 각지로 흩어져 뿔뿔히 제 살림들을 살고 있고 노모만이 남아 있는 커다란 집에 장가 못 간 바보 아들이 허드렛일꾼으로 집안일을 하고 있다는 것 따위는 모두 아파트 초입의 구멍가게 주인에게서 들은 얘기였다.

 

이 동네에서 태어나 육십 년을 살아왔다는 그는 연당집에 대해 모르는 것이 없었다. 고층 아파트로 이어지는 야산이 연당집 소유라는 것과 원래 예성 아파트와 내가 살고 있는 고층 아파트 자리도 그 집 땅이었는데 떡 잘라 먹듯 야금야금 팔아먹었다는 것, 제삿날에나 모여드는 자손들의 재산 싸움이 볼 만하다는 것, 귀신이 나올 것처럼 퇴락해가기만 할 뿐인 집을 헐고 ‘가든’을 할 거라는 것도 그에게서 들은 얘기였다. 세상이 달라졌다는 걸. 돈 버는 게 제일이지 까짓 족보 끼고 가문 내세우며 백년을 살아보라지. 땡전 한 닢 생기나. 그가 연당집을 비껴 보며 덧붙인 말이었다. 

 

연단집, 엄장하게 엎드린 기와 지붕 틈새로 드문드문 돋아난 시든 풀들이 이따금 생각난 듯 바람에 흔들렸다. 후원에 헝클어진 개나리가 노랗게 피어나고 진달래는 불긋불긋 꽃봉오리를 내비치고 있었다. 봄볕이 지천으로 흐르고 있었다. 집을 멀찌감치 둘러친 해묵은 나무들도, 연당가의 살구나무, 배나무 들도 곧 잎틀 듯 불그레 살찐 눈을 부풀렸다. 이젠 채마밭으로 변해버렸지만 터를 넓게 잡아 후원과 앞뜰이 넉넉하고 연당과 누각과 정자를 갖춘 집은 화사한 봄볕 속에서 세월을 털어내며 재처럼 조용히 삭아가고 있었다. 어느 자손이라도 이 집을 감당할 수 없었으리라.

 

기척 없이 조용한 집 안에서 바보가 나왔다. 마당의 수돗가에서 세수를 하고 삽을 집어들고는 휑하게 터진 동쪽 울타리 쪽으로 갔다. 울타리 뽑는 일을 하려는가보았다. 톱으로 상처를 입은 바보는 아마 다시는 톱을 만지지 않을 것이다. 휑하니 열린 대문 옆 울타리에는 아직도 내 낡은 스카프가 불그죽죽한 빛깔로 매어져 있었다. 바보는 힘이 세다. 쉴새없이 울타리 나무를 쑥쑥 뽑아 던지는 모습은 춤을 추는 것같이 보이기도 했다. 바보는 보이지 않는 끈에 메어 있는 것처럼 언제나 집 주위를 맴돌며 일을 하고 있었다. 그래서 창밖, 내가 바라보는 풍경 속에는, 바람 속에는 언제나 바보가 있었다. 

 

수증기가 가득한 사우나실에는 벽을 따라 좁다란 붙박이 의자가 붙어 있고 벌거벗은 여자들이 수건으로 입을 막고 고통스러운 얼굴로 말없이 앉아 있다. 아우슈비츠에서 사람들은 이렇게 죽어 갔으리라. 그러나 땀구멍이 한껏 열리고 복숭아빛으로 익은 몸들은 활짝 핀 꽃처럼 보인다. 사우나실 안에는 여기저기 쑥 타래가 걸려 있어 진짜 쑥탕을 하고 있다는 만족감을 준다. 찬 물수건으로 입을 막고 백까지 세어본다. 처음에는 스무 번 세는 것도 힘이 들었지만 이제 백을 세는 일은 어렵지 않다.

 

사우나실에서 나와 미지근한 물로 땀을 닦아낸다. 동네 목욕탕 치고는 시설이 좋고 물이 깨끗해서 사람이 항상 많았다. 젊은 처녀들로부터 둥글고 기름진 몸매의 중년 여자, 만삭의 임부, 다산의 주름이 겹겹이 늘어진 노파들이 열심히 때를 밀고 비누질을 하고 마사지를 한다. 남편이 지난해 가을 러시아 여행에서 민속 인형을 사왔다. 얇은 나무로 만든 것으로 볼이 붉은 처녀의 얼굴이 그려지고 민속 의상의 무늬와 채색을 입힌, 얼핏 오뚝이처럼 단순한 모양이었지만 그 안에는 똑같은 모양의 인형들이 크기의 차례대로 겹겹이 들어 있었다. 그것은 내게 인생의 중첩된 이미지로 받아들여졌다. 앙상한 뼈 위로 남루하고 커다란 덧옷을 걸친 듯 살가죽이 늘어진 한 늙은 여자 속에 얼마나 많은 여자들이 들어 있는 것일까. 

 

보다 덜 늙은 여자, 늙어가는 여자, 젊은 여자, 파괴기의 소녀, 이윽고 누군가, 무엇인가가 눈 틔워주기를 기다리는 씨앗으로, 열매의 비밀로 조그맣게 존재하는 어린 여자 아이. 

 

옆자리에서 배가 붕긋이 부른 젊은 여자가 아이를 씻기고 있었다. 제 엄마에게 몸을 맡기고 있는 네댓 살 된 여자 아이는 끊임없이 플라스틱 인형의 몸을 씻기고 있었다. 여자에게 모성이란 생래적인 본능인가. 결혼을 하자 나는 재빨리 모성의 자리로 옮겨앉았다. 마치 방과 방 사이의 마루를 의심없이 건너듯. 오늘 아침 나는 서둘러 현관문을 나서는 아들을 보며 까닭 모르게 가슴이 서늘해졌다. 얼결에 이름을 불러 세웠지만 아들이 고개를 돌려 나를 바라보자 아무것도 아니라고 웃으며 손을 내저었다. 문득 그토록 강하게 가슴을 치고 지나간 것이 그애에게서 뿜어져 나오는 순수한 성(性), 무 싹 같은 동정(童貞)이었다는 것을 깨달은 것은 문을 잠그고 돌아서서였다. 아이를 낳은 뒤로 나는 이전에 그토록 빈번하게 꾸던 꿈, 날거나 추락하는 꿈을 꾸지 않는다. 아주 조그맣고 조그마해져서 어디론가 숨어드는 꿈을 꾸지 않는다. 

 

아이 엄마가 비누 거품으로 뒤덮인 아이의 몸에 맑은 물을 끼얹었다. 앗 뜨거, 쌍년. 물이 뜨거웠는지 아이가 공처럼 튀어오르며 비명을 내질렀다. 아이의 느닷없이 날랑한 욕설은 방자하고 통쾌했다. 말없이 몸을 씻던 사람들이 쿡 웃으며 돌아보았다. 아이 엄마는 당혹한 표정으로 손을 멈칫하며 주위를 둘러보았다. 반사적으로 얼결에 욕설을 내뱉은 아이는 어쩔 줄 몰라 으앙 울음을 터뜨렸다. 엄마 미안해, 엄마인 줄 모르고 그랬어. 아이의 새된 울음 소리가 휑뎅그레 비어 높은 천장에 부딪혀 울렸다. 

 

샤워 꼭지 밑에서 쏟아지는 더운 물줄기에 몸을 맡기고 섰다가 섬뜩 놀랐다. 거울 속에 내가 없다. 수증기 탓에 거울이 흐려졌기 때문이라고 알면서도 반드시 있으리라는 것이 없다는 것은 두렵다. 나는 샤워기의 물을 잠그고도 한참을 그대로 거울을 보며 서 있었다. 차츰 수증기가 걷히고 맑아지는 거울 면에 아주 먼 곳으로부터 다가오듯 천천히 얼굴 윤곽이 살아났다. 잘못 당겨진 천처럼 얼굴 좌우 대칭이 깨진 얼굴. 그가 죽은 뒤 내게 미미하게 나타난 변화.

 

마른 빨래를 개키면서 건성 눈길을 주었던 신문의 부고란에서 그의 이름을 보았을 때, 괄호 속에 박힌 직장과 전화번호를 재차 확인 후 내가 제일 먼저 한 일은 거울을 본 것이었다. 왜 그랬는지 어떤 심리가 나를 거울 앞으로 이끌었는지 나 자신도 알 수 없었다. 거의 무의식적으로 다가간 거울에 조각조각 균열된 얼굴이 비쳤다. 갑자기 눈에 띄는 주름살도, 처음의 놀람처럼 거울이 깨진 것도 아니었다. 오랜 세월 길들여진 관습과 관행이 한 순간에 깨진 얼굴이었다. 아, 내 안의 비명이 새어나오기도 전에 깨진 얼굴은 스러지고 익히 알고 있는 얼굴이 나타났다.

 

자신의 것이면서도 거울이나 사진이라는 방법을 통하지 않고는 알 수 없는. 거울 앞을 떠난 나는 빨래를 마저 개키고 낮에 절여둔 배추를 버무려 김치를 담갔다. 하던 일을 계속하는 것말고 달리 내가 무엇을 할 수 있었을까. 아들의 도시락 반찬을 만들고 남편과 티브이를 보며 농담을 나누고 방충망의 허술한 틈새로 비비적대며 들어와 절박하고 불안한 날갯짓으로 등 주위를 맴도는 나방을 내보내었다. 그의 죽음은 내게 전혀 비개인적인 방법으로 그렇게 심상히 통보되었다. 존재하던 한 사람이, 그가, 이 세상에서 영영 사라졌다는 기미는 어디에도 없는, 여느 날과 다름없이 예사롭고 평온한 저녁 시간은 느릿느릿 흘러갔다. 

 

그가 죽고 내 안의 무엇인가가 죽었다. 그것이 무엇인지 나는 알지 못한다. 아마 알고자 하는 소망조차 없는 건지도 모른다. 내게는 문득 걸음을 멈추고 상점의 진열창에, 슈퍼마켓의 거울에, 물 위에 비치는 내 얼굴을 물끄러미 바라보는 습관이 생겼다. 저녁쌀을 씻다가 문득 눈을 들어 어두워지는 숲이나 낙조를 바라보는 시선 속에, 물에 떨어진 한 방울 피의 사소한 풀림처럼 습관 속에 은은히 녹아 있는 그의 존재와 부재. 원근법이 모범적으로 구사된 그림의, 점점 멀어져가는 풍경의 끝, 시야 밖으로 사라진 까마득한 소실점으로 그는 존재한다. 지금의 나는 지나간 나날들이 그러했던 것처럼 가끔 행복하고 가끔 불행감을 느낀다. 나는 그렇게 늙어갈 것이다. 다른 사람들과 다르지 않은, 공평하게 공인된 늙음의 모습으로.

 

목욕을 마치고 집에 돌아와 거실 긴 의자에 누워 깊이 잠이 들었다. 꿈속에서 나는 조그만 계집애로 옛우물가에 서서 울고 있었다. 두레박을 빠뜨린 것이다. 까치발을 하고 가슴팍까지 닿는 우물턱에 매달려 내려다보지만 까마득히 깊은 우물 속에서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빠뜨린 두레박도, 아무도 없는 밤이면 슬며시 떠오르기도 한다는 금빛 잉어도 보이지 않았다. 잠을 깨어서도 꿈속에서의 막막하기만 하던 기분은 사라지지 않았다. 이즈음 나는 가끔 옛우물의 꿈을 꾼다. 내용은 언제나 비슷했다. 두레박을 빠뜨려 울고 있거나 어릴 때 죽은 동무 정옥이와 함께 가없이 둥그렇고 적막하게 가라앉은 우물 속을 들여다보는 것. 우물 치는 광경 따위였다. 

 

내게 오래된 옛우물과 그 속에 사는 금빛 잉어에 대해 말해준 사람은 증조할머니였을 것이다. 어릴 때 살던 동네 가운데에 큰 우물이 있었다. 물맛이 달아 단샘, 커다랗다고 해서 한우물이라고도 했지만 사람들은 옛부터의 습관대로 ‘옛우물’이라고 불렀다. 아주 옛날부터 있어온 우물이라는 뜻이었을 것이다. 우물은 물이 깊고 물맛이 좋았다.

 

증조할머니는 내게 말했다.

옛우물에는 금빛 잉어가 살고 있단다. 천년이 지나면 이무기가 되고 또 천년이 지나면 뇌성벽력 치는 밤 용이 되어 하늘에 올라가지. 아흔 살이 넘은 할머니에게서 검은 머리털이 돋아나고 텅 빈 입에 누에씨 같은 희고 깨끗한 이가 돋아나자 어머니는 그것을 불길한 징조로 여겼다. 노망이 들었다고 말했다. 할머니에게 대꾸도 하지 않았고 바로 보지도 않았고 밥도 조금씩밖에 주지 않았다. 노망든 노인네들은 오래 산다는 속설을 두려워했다. 그러나 할머니는 고양이 혼이 씌어 밤마다 고양이 울음 소리를 내며 쥐를 잡으러 다니는 광자네 할머니 같지는 않았다. 오돌이네 할아버지처럼 자기가 싼 똥을 주워먹지도 않았다. 

 

달빛 가득한 우물을 들여다보면 금빛 잉어가 슬몃슬몃 물 속에서 움직이는 소리가 들리는 듯도 했다. 계집아이들은 학교에서 오전 수업을 마치고 돌아오면 해지기 전까지 물을 길어놓아야 했다. 두레박을 빠뜨리면 매를 맞거나 밥을 굶었지만 아이들은 늘 두레박을 빠뜨리고 저물 때까지 우물가에서 무력하고 절망적이고 공포에 찬 울음을 울곤 했다. 방심은 언제나 용서받지 못할 악덕이었다. 계모가 낳은 아기를 업고 물을 길러 나오던 염쟁이의 딸 정옥이는 자주 두레박을 빠뜨렸다.

 

정옥이의 집에는 어엿이 ‘동해 장의사’라는 간판이 걸려 있었지만 동네 사람들은 정옥이 아버지를 염쟁이라고 불렀다. 밤이면 가게에 쌓아놓은 관 속에 들어가 잔다는 말도 떠돌았다. 그럴지도 몰랐다. 사람들은 그다지 자주 죽지 않았기에 할 일이 없는 염쟁이는 거의 늘 술에 취해 있었다. 계모는 시장에서 떡 장사를 했기 때문에 정옥이는 밥을 하고 빨래를 하고, 그래서 손은 늘 커다랗고 물에 불어 있었다. 등에 언제나 아기가 달려 있었지만 신이 많고 흥이 많은 정옥이를 막을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무섭고 이상한 냄새가 나는 듯한 정옥이의 집까지 찾아가 불러낼 필요가 없었다. 집에서 아기를 보고 있으라고 아무리 야단을 쳐도 계모가 나가면 대여섯 발짝 뒤에서 아기를 들쳐업은 정옥이가 싱긋이 웃으며 나타났기 때문이었다. 아기를 업은 채 줄넘기를 하다가 아기가 혀를 깨물린 뒤로는 전봇대에 포대기째 매어놓고 술래잡기, 줄넘기를 했다. 숨바꼭질을 하다가 아기를 달아놓은 것을 잊어버려 저물도록 아기가 보따리처럼 전봇대에 매달려 잠든 적도 있었다. 두레박을 빠뜨리면 정옥이는 빈 초롱을 들고 집에서 쫓겨났다. 종종 해질 때까지 우물가에 서서 울었다. 물을 길러 나온 아주머니나 동네 큰 언니들은 정옥이의 덜렁대는 버릇을 한바탕 나무란 뒤 ‘이것도 빠뜨리면 네가 우물 속에 들어가서 건져와야 해’ 경고하듯 선심 쓰듯 두레박을 빌려주었다.

 

물이 가득찬 두레박을 힘겹게 끌어올리다 보면 어느결에 우물 속에서 끌어당기는 아귀 센 힘이 따라올라왔다. 아앗 놀라라 하는 순간 줄이 긴장된 손아귀에서 미끄럽게 빠져나가거나 두레박에 단단히 묶었던 줄이 스르르 풀려 빈 줄만 허전하게 올라오기도 했다. 아이들은 우물 속에 금빛 잉어가 산다는 내 말을 아무도 믿지 않았고 거짓말쟁이, 허풍쟁이라고 했지만 정옥이는 내 말을 믿어 주었다. 게다가 ‘소원을 들어주는 잉어’일 거라고 덧붙였다.

 

그해 여름 장마가 지나고 우물을 쳤다. 물맛이 뒤집혔기 때문이었다. 가뭄이나 큰 홍수 따위 큰일이나 나라의 변고가 있을라치면 우물이 뒤집히고 장맛이 변한다고 어른들은 믿었다. 그해의 장마는 대단했다. 아이들은 모두 강으로 달려갔다. 어른들은 긴 장대와 망태를 들고 집을 나섰다. 학교는 휴교였다. 수재민들의 숙소가 되었기 때문이었다. 강 건너 섬에는 포플러 가지들만이 비죽비죽 솟아 있고 그 위에 커다란 새들이 날아와 앉았다. 누런 물이 범람하는 강은 벌판 같았다. 어른들은 강이 범람하여 둑을 무너뜨릴까봐 밤새 잠을 이루지 못하였다. 그러면서도 아침이면 장대를 들고 강으로 나갔다.

 

아이들은 강가에서 노래를 불렀다. 장마통에 똥 덩어리가 제 이름 부르며 흘러가더라. 동동동동 똥똥똥똥. 마지막 후렴은 목소리를 모아 악을 쓰듯 질러대었다. 비바람에 새파래진 얼굴과 입술로. 강에는 없는 것이 없었다. 호박과 장롱과 양은 솥, 우리에 든 채인 닭과 토끼가 사나운 물살에 실려 떠내려왔다. 인자 아버지는 꽥꽥 비명을 지르며 떠내려오는 돼지를 잡으려다가 물살에 휩쓸려 죽을 뻔했다. 

 

동네 어른들은 우물 속에 차오르던 황톳물이 가라앉기를 기다려 날을 잡아 떡과 돼지머리, 과일을 차려놓고 고사를 지냈다. 고사를 지낸 뒤 남자들이 물을 퍼냈다. 그리고는 제대 군인 순옥이 삼촌이 양말과 신발을 벗고 우물 밑으로 내려갔다. 아이들은 순옥이 삼촌이 까무룩히 아래로 내려가는 덧을 불안하게 바라보았다. 한없이 깊고 어두운 동그라미 속으로 빨려들어가는 것 같았다. 푸른 이끼 자라는 우물의 돌 틈에서 손톱만한 개구리들이 팔짝팔짝 뛰어오르고 빈 우물이 우우웅 웅숭깊은 소리로 울었다. 바닥을 긁는 소리, 그리고 올리어어! 라는 순옥이 삼촌의 소리가 땅 밑으로부터 벽에 부딪혀 몇 바퀴 돌아나오면 우물가의 남자들이 줄을 당겼다. 삼태기에는 바닥의 흙이며 녹슨 두레박과 두레박 건지는 갈쿠리, 삭아버린 고무신 한 짝, 썩은 나무토막, 사금파리 따위들이 한없이 실려 올라왔다. 위에서 내려다보면 까마득히 깊은 우물 속에서 허리를 굽히고 그 안의 것들을 퍼담은 순옥이 삼촌은 난쟁이처럼 납작해 보였다.

 

삼태기가 올라올 때마다 모두들 유심히 그것들을 살펴보았다. 아무도 내려가본 적이 없는 깊은 우물 속에는 우리가 알지 못했던 무엇인가 굉장한 것들이 있으리라는 기대였을까. 삼태기에 고운 모래흙만 담겨 올라오자 일은 끝났다. 마지막으로 순옥이 삼촌이 한 오백 살이나 나이 먹은 얼굴로 삼태기를 타고 올라왔다. 빛에 눈이 부신지 한동안 낯선 눈길로 주위를 둘러보다가 으허허 영문 모를 웃음을 터뜨렸다. 

 

순옥이 삼촌과 우물 치던 남자들은 술을 마시러 갔고 아이들은 우물 턱에 조롱조롱 매달려 아무것도 없이 텅 빈 우물 속을 말없이 들여다보았다. 우물 속에 금빛 잉어는 없었다. 그래도 나는 맑은 물이 그득 고이면 금빛 잉어가 살리라는 생각을 버릴 수 없었다. 정옥이는, 금빛 잉어는 사람들 눈에 띄면 안 되니까 샘이 솟는 깊은 구멍으로 잠시 숨어버렸을 거라고, 맑은 물이 고이면 다시 돌아올 거라고 말했다.

 

정옥이는 그해 늦가을 우물에 빠져 죽었다. 해가 퍼지기 전 물을 길러 간 사람이 우물가에서 빈 초롱과 우물 속에 떠 있는 정옥이를 발견했다. 동네 누구도 해진 뒤 물을 긷는 것을 금기로 알았기에 정옥의 죽음은 밤중이리라 했다. 정옥의 계모는 밤중에 물을 길러 내보낸 적이 없다고 말했지만 정옥이는 밤중에 물을 길러 나간 것이 틀림없었다. 어른들은 그 어린것이 무엇엔가 홀린 것이 틀림없다고 수군거렸다. 일찍 죽은 제 어미가 불러간 것이리라고도, 우물 치는 일에 부정이 끼여들었기 때문이라고도 말했다.

 

우물은 메워졌다. 하룻동안 굿을 하고 흙으로 메워 물귀신을 꽝꽝 묻어버렸다. 아이들은 대낮에도 우물가에 얼씬거리지 않았고 한밤중에 오줌을 쌌다. 죽은 정옥이가 우수수 바람 부는 밤, 창호지 문에 비치는 검고 비죽비죽한 나무 그림자로 찾아와 물에 불어 커다란 손을 내저으며 자꾸자꾸 불러대었기 때문이었다. 정옥이는 금빛 잉어를 보기 위해 한밤중 옛우물로 간 것이 아니었을까. 

 

늙은이들은 옛우물의 차고 단 물맛을 그리워했지만 자라나는 아이들은 죽은 동무와 매몰된 우물의 두려움을 쉽게 잊었다. 집집이 펌프를 박아 물을 길러 다니지 않아도, 두레박을 빠뜨려 매를 맞을 일도 없어졌기 때문이었다. 남편이 낚시를 다니기 시작할 무렵 나는 잉어가 흐리고 더러운 물, 썩은 수초와 이끼 속에 산다는 것을 알았다. 잡아온 물고기를 손질하는 것은 늘 내 몫이었다. 

 

밀봉된 것을 뜯을 때의 모독감과 긴장으로, 살아 있는 물고기의 배를 가를 때면, 피융 하는 약한 소리가 났다. 우리와 마찬가지로 창조되고 봉안된 그리고 아무도 볼 수 없었던 내부가 드러났다. 밀폐된 공간의 어둠이 있고 최초의 빛의 순간이 있었다. 갑작스런 외기에 놀란 붉고 푸른 내장들이 푸르르 경련하고, 찬피 동물의 어둡고 축축한 몸 속에서, 의지하고 있는 세계의 무너짐을 감지한 더 작은 생물체들이 고래 뱃속에 들어간 요나처럼 고통의 몸부림으로 흩어졌다.

 

아파트로 이사오기 전 주택에 살 때는 손질하고 난 나머지, 내장과 머리를 마당 화단에 묻었다. 좋은 비료가 되리라는 생각에서였다. 그러면 밤새 그것을 탐하는 쥐떼가 끓었다. 화단 밑에 쥐구멍이 숱한 공동을 만들며 맥없이 발이 빠졌다. 쥐덫을 놓으면 덫에 걸린 살찐 쥐들이 밤 내내 쥐덫을 끌고 맴돌며 단말마의 비명을 질러대었다.

 

추억이란 물 속에서 건져낸 돌과 같은 것인지도 모른다. 물 속에서 갖가지 빛깔로 아름답던 것들도 물에서 건져내면 평범한 무늬와 결을 내보이며 삭막하게 말라가는 하나의 돌일 뿐. 우리가 종내 무덤 속의 흰 뼈로 남듯. 돌에게 찬란한 무늬를 입히는 것은 물과 시간의 흐름일 뿐이라는 것을 안다. 그러나 나는 종종 이즈음에도 옛우물과 금빛 잉어의 꿈을 꾼다. 

 

봄 가뭄이 계속되고 있었다. 수은주가 섭씨 삼십 도를 웃도는 이상 기온이다. 연당집은 하룻밤 새 목련이 활짝 피고 동쪽부터 뽑기 시작한 울타리는 대문에 이르기까지 거의 다 사라졌다. 서쪽에만 남아 있어 집은 반벌거숭이 꼴이 되었다. 대문 옆 울타리에 매어져있던 내 스카프는 연당가의 늙은 살구나무 가지에 높직이 걸려 있었다. 바보가 장난을 치나? 쓴 웃음이 나왔다. 누구의 것인지는 이미 기억에서 지워졌지만 꼭 돌려주어야 한다는 일념만은 남아 있는 건지도 몰랐다. 

 

바보는 가뭄 때문에 푸석푸석 메말라 보이는 채마밭에 물을 주고 있었다. 수도에 연결한 호스로 물을 뿌려대는 것이다. 그러다가는 문득 울타리가 없어져 휑하니 내다보이는 길을 보며 불안하게 고개를 갸웃거렸다. 마당 한쪽에 차곡차곡 쌓여 있던 울타리 나무들은 트럭에 실려나갔다. 평소 사람의 기척이 없이 조용하던 집이 갑작스레 활기를 띠고 있었다. 허드레 작업복을 입거나 예비군복, 청바지 차림의 남자들이 때없이 드나들고 양복을 갖춰 입은 중년 남자도 있었다. 옷차림이나 무람없이 방문을 들락거리는 것으로 보아 따로 나가 사는 맏아들쯤 되는 게 아닌가 싶었다. 마당에는 은색의 중형 승용차가 늘 머물렀다. 마당에 시멘트 포대와 모래를 쌓는 것으로 보아 횟집을 할 거라는 소문은 사실인 모양이었다. 

 

나는 예성 아파트에 머무는 대부분의 시간을, 창을 통해 연당집을 내려다보는 것으로 보냈다. 어제는 구멍가게에 내려가 화장지를 사며 지나가는 말처럼 넌지시 연당집이 정말 헐릴 것인가를 묻기도 했다. 워낙 좋은 옛날 재목을 써서 지은 집이라 탐내는 사람이 많다는 것, 어느 부자가 이 집 재목을 그대로 옮겨 써서 산속에 근사한 한식 별장을 짓기로 했기에 대들보와 서까래 문짝까지 비싼 값으로 진작 팔아먹었다는 것이 그의 대답이었다. 짓기가 어렵지 무너뜨리는 건 한 순간이야. 그가 덧붙여 말했다. 

 

나는 연당집에 대한 집요한 관심을 스스로도 이해할 수 없어 다만 달리 할 일이 없기 때문이라고, 창을 열면 바로 보이는 것이 그뿐이라고, 오래된 아름다운 집이 사라지는 것이 안타깝기 때문이라고 자신에게 말하기도 했다. 바보가 물 흐르는 호스를 내려놓고 쭈그리고 앉았다. 그리고는 하염없이 흙을 들여다보았다. 호스에서 콸콸 쏟아져나오는 물이 발을 적시고 도랑을 지어 흐르는 것도 모른 채 땅에 박은 눈길을 돌리지 않았다. 간혹 손가락으로 무언가 파헤치는 시늉도 했다. 무엇을 열심히 찾고 있는 것도 같았다.

 

날은 점점 더워지고 봄빛을 이기지 못한 꽃들이 아우성치듯 피어올랐다. 집 주위를 둘러친 나무들은 시시각각 잎을 피워 푸르러가고 바보는 더욱 분주해졌다. 본채 옆의 사랑채가 없어지고 다음날에는 헛간처럼 보이던 작은 기와집이 밤새 헐려 깨진 기와 조각과 흙덩이로 내려앉아 빈자리로 남았다. 연당집은 나날이 제 자리와 모양을 지워가고 있었다. 

 

울타리가 있던 자리를 따라 서너 명의 인부들이 벽돌 담을 쌓기 시작했다. 마당 안쪽에서는 시멘트를 개는 작업이 한창이었다. 한낮, 해는 높직이 떠서 발밑에서 짧게 뭉게진 그들의 그림자 위로 시멘트 가루와 모래 먼지가 간단없이 부옇게 피어올랐다. 채마밭을 뒤엎어 평평히 고르고 한 뼘만큼씩 파랗게 자라오르던 배추들은 흙과 뒤섞여 묻혀버렸다.

 

바보는 이제 집 뒤켠의 나무 베는 일을 하고 있었다. 벌목꾼처럼 도끼를 휘둘러 해묵은 나무의 밑동을 찍고 쓰러뜨리며 힘이 좋은 바보는 종일 쉴 짬이 없었다. 누군가의 지시에 충실히 따르고 있는 것이리라. 그럼에도 불구하고 바보는 몹시 허둥대는 것 같았다. 소나무를 베다 말고 무엇을 잊은 듯 허둥지둥 뛰어가 산수유나무의 둥치를 끌어안고 뽑아내려 용을 쓰기도 하고 땀을 닦는 사이사이, 도끼를 놓고 허리를 두드리는 사이사이 문득 집 주위를 돌아보며 이상하다는 둣 고개를 흔들기도 했다. 그가 태어나 살았고 유일하게 깃들였던 한 세계, 그것의 변모, 사라짐에 불안해하는 것일까. 

 

불안은 전염성이 있는 모양이다. 나는 파를 썰거나 두부 모를 자르는 하찮은 칼질에서도 자주 손을 베고 유리 컵을 깨뜨린다. 더위 탓이라고, 두통 탓이라고 변명하지만 봄이 되면 심해지는 두통은 새삼스러운 것이 아니다. 남편은 작은 아파트를 복덕방에 내놓았는가고, 여름이 오기 전에 팔아야 한다고 다시 말하고 나는 애매하게 고개를 끄덕였지만 집을 팔기 위한 어떤 시도도 하고 있지 않다. 

 

나는 이즈음 더욱 자주 야산을 넘어 이 아파트에 온다. 식구들이 잠든 한밤중에 몰래 빠져나올 때도 있다. 이제 제법 잎이 무성해진 나무들 사이에 서면 이상하게 머리가 맑아졌다. 작은 아파트에서 보내는 시간이 많아지자 남편은 어딜 외출했었는가고, 연락할 일이 있었는데 하루종일 통화를 할 수 없었다고 내가 집을 비운 것에 대해 종종 힐난했다. 남편으로서는 내가 그 빈집에서 아무런 하는 일 없이 하루를 보낸다는 것에 생각이 미칠 수 없을 것이다.

 

오토바이가 한 대 털털대며 마당으로 들어선다. 옆구리에 함석 가방을 끼고 있는 것으로 보아 중국집에서 음식 배달을 온 모양이었다. 일을 하던 사람들이 일손을 털고 일어나 수돗가로 몰려갔다. 그들 중의 하나가 아직도 둥치 굵은 나무를 끌어안고 힘을 쓰는 바보를 소리쳐 불렀다. 연당집 앞길로 노란색 포크레인이 들어서고 요란한 캐터필러 소리는 바보를 부르는 목소리를 삼켜버렸다.

 

방안 가득 붉은 기운이 어려 있었다. 잠이 들었었나? 후닥닥 일어났다. 열린 채로인 창밖 하늘이 불을 지른 듯 붉었다. 베개도 없이 방바닥에 그대로 누워 잠이 들었던 모양이었다. 나는 일어나 앉아 우두커니 노을빛이 짙은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해가 질 때, 그리고 떠오를 때 우리들은 그들을 기억하리라’ 일차 대전에서 죽은 무명 용사들의 묘비문. 사람들은 그렇게 살아 있음을 변명한다. 왜 장엄한 황혼을 볼 때면 열패감을 느끼게 되는 것일까. 어릴 때 해가 지고 노을이 물들 무렵이면 몹시 울었다. 계집애가 사위스럽게 청승을 떤다고 매를 맞으면서도 까닭없이 서러워 목놓아 울게 하던 것은 어찌해볼 수 없는 운명, 어쩌면 비겁하고 허약할 수밖에 없는 인간으로서의 열패감, 두려움 때문이 아니었을까. 

 

그 여름, 나를 찾아온 그의 전화를 받았을 때 나는 아이에게 젖을 먹이고 있었다. 허둥대는 어미의 기색을 본능적으로 느낀 아이는 필사적으로 젖꼭지를 물고 놓지 않았다. 진저리를 치며 물어뜯었다. 이가 돋기 시작한 아이의 무는 힘은 무서웠다. 아앗, 나도 모르게 비명을 지르며 아이의 뺨을 후려쳤다. 불에 덴 듯 울어대는 아이를 떼어놓자 젖꼭지가 잘려나간 듯한 아픔과 함게 피가 흘러내렸다. 아이의 입에도 피가 묻어 있었다. 브래지어 속에 거즈를 넣어 흐르는 피를 막으며 나는 절박한 불안에 우는 아이를 이웃집에 맡기고 그에게 달려나갔다. 그와 함께 강을 건너 깊은 계곡을 타고 오래된 절을 찾아갔다.

 

여름 한낮, 천년의 세월로 퇴락한 절 마당에는 연산홍꽃들이 만개해 있었다. 연산홍 붉은빛은 지옥까지 가 닿는다고, 꽃빛에 눈부셔하며 그가 말했다. 지옥까지 가겠노라고, 빛과 소리와 어둠의 끝까지 가보겠노라고 나는 마음속으로 대답했을 것이다. 절에서 배 터까지 내려오는 계곡에는 행락객들로 끓었다. 강가에는 음료수와 술을 파는 장사치들의 차일이 늘비했다.

 

저녁이 이울었지만 햇살이 뜨거웠다. 그와 나는 그 중의 한 곳으로 들어갔다. 바닥에 비닐을 깔고 서너 개의 상을 놓은 그곳에는 두 가족이 어울려 나온 것으로 보이는 남자와 여자, 아이들이 자리를 벌이고 있었다. 어린아이들이 잠들어 있고 접은 군용 담요 위에 화투짝들이 흐트러져 있는 것으로 보아 그들은 복잡한 계곡으로 들어가느니 아예 이곳에 자리잡고 놀기로 작정했던 듯 싶었다. 소주와 도토리묵을 가져온 주인 여자가 그에게 생색내는 어투로 오소리 간을 먹겠느냐고, 아저씨들에게 아주 좋은 거라고 말했다. 이거 아주 귀한 겁니다. 옆자리의 남자가 붉고 흐늘거리는 것을 한 점 집어올리며 거들었으나 그는 난처한 표정으로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주인 여자와 그들은 살아 있는 오소리를 통째로 넣어 담그는 술의 신묘한 효험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저녁해는 느릿느릿 이울었다. 해가 지고 강물 위 하늘에 짙은 노을이 드리울 때까지 그는 말없이 강물을 보며 소주 한 병을 천천히 비웠다. 가까이에서 본 강물은 더러웠다. 얕게 밀리며 끊임없이 더러운 쓰레기들을 우리들의 발밑에 밀어올렸다.

 

마지막 배가 몇 시에 뜨느냐고 묻는 내게 주인 여자는 요즘 같은 철에는 늦게까지 있다고, 위쪽으로 가면 방갈로도, 깨끗한 민박집도 있으니 걱정할 게 없다고 대답했다. 옆자리에 앉았던 사람들은 생포한 오소리를 사겠노라고 잠든 두 아이만을 남겨둔 채 함께 차일 밖으로 나갔다. 의좋은 내외분이시네요. 주인 여자가 발라맞추듯 말했지만 나는 그녀가 마음과는 다른 말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술기로 눈빛이 붉어진 그와 그 앞에 무릎을 싸안고 말없이 동그마니 앉아있는 나는 그녀의 눈에 수상쩍은, 그렇고 그런 남녀였다. 어디로든 사람 없는 곳에 가서 뒤엉키고 싶다는 갈망을 숨기는 일에 서툰. 진정 부부인 양 천연덕스러웠던 우리의 표정은 그녀의 말에서 일기 시작한, 서로의 마음속으로 느끼고 있는 거북스러움 때문이 아니었던가. 그 거북스러움은 단지 질서와 제도에서 비껴선 데 대한 것이었을까. 그것만은 아니었을 것이다. 그 거북스러움을 천연덕스런 표정으로 은폐할 수 있는 모든 관계들에 대한 역겨움이 아니었을까. 

 

나는 더러운 간이 화장실에서 오줌을 누고 브래지어 속을 열어 보았다. 피와 젖이 엉겨 달라붙은 거즈를 들치자 날카롭게 박힌 두 개의 잇자국이 선명했다. 나는 돌연 메스꺼움을 느끼며 헛구역질하는 시늉을 하였다. 잠에서 깬 아이들이 서럽디서러운 소리로 울기 시작했다. 살아있는 오소리를 사러 간 아이들의 부모는 아직 돌아오지 않았다. 먼저 울음을 그친, 누나인 듯한 계집애가 작은 아이를 달랬다. 신발을 신기고는 오소리의 피와 술 자국으로 더러운 차일을 벗어나 손을 잡고 강를 따라 걸어갔다. 아이들은 곧 보이지 않게 되었다. 짙은 노을을 치받으며 피어오르는 땅거미가 조그맣게 멀어져가는 아이들의 모습을 지웠다.

 

강물이 그렇게 더럽지만 않았다면, 그렇게 짙은 황혼이 아니었다면, 황혼과 어둠 속으로 조그맣게 지워져간 그 두 아이가 아니었다면 우리는 그토록 극력 감추고 있던 욕망의 본질을, 허위를 단번에 꿰뚫어보는 일은 없었으리라. 지옥까지 가겠노라는 행복감의 또 다른 얼굴을 보는 일은 없었을지도 모른다. 그와 나는 똑같은 생각을 동시에 하였음에 틀림없었다. 나는 나의 집과 아이를 생각하고 한번도 본 적이 없는 그의 가족과, 그를 맞아줄 저녁 식탁과 불빛을 생각했다. 그 역시 그러했을 것이다. 그가 시계를 보았다. 나는 마지막 배 시간이 많이 남아 있었음에도, 그와 함께 있는 시간을 조금이라도 늘려보려는, 그는 모를 필사적인 소망과 노력에도 불구하고 우리를 태우고 각자 떠나온 곳으로 안전하게 데려갈 배가 다가오는 것에 안도감을 느끼며 일어났다. 

 

창 아래 연당집이 사라졌다. 내가 꿈 없는 깊은 잠에 들었던 사이, 정오의 태양이 이우는 사이, 이백 년의 세월은 재처럼 내려앉았다. 장엄한 노을은 보랏빛으로 시들어 어둠이 차오르고 있었지만 집이 있던 자리, 폭삭 내려앉은 자리만은 이상하게 훤히 떠 보였다. 밤에도 공사를 계속할 모양이었다. 마당을 가로지른 줄에 몇 개의 알 전구가 때 이른 불을 밝히고 있었다. 바보는 무너진 집의 잔해를 헤집어보다가 그 주위를 황망하게 돌아다니기도 한다. 무엇인가 찾으려는 몸짓으로. 안타까운 목안엣소리를 지르며 아직 남아 있는 나무 둥치를 끓어안고 흔들기도 했다. 왜, 왜, 왜? 뭐였지? 뭐였지? 바보의 움직임은 커다란 의문 부호 같았다. 그러나 바보는 자신이 찾는 것이 무엇인지 알 수 없을 것이다. 익숙한 것의 사라짐, 그 낯섦을 이해 못할 것이다. 

 

나는 조금 울었던가. 아마 그랬을 것이다.
아파트의 문을 잠그고 계단을 내려오며 곧 집을 내놓으리라고 생각하기도 했을 것이다.
나는 연당집 울타리가 있던 길로 접어들다 발길을 돌려 아파트 입구의 공중전화 박스로 들어갔다. 동전을 넣고 번호판을 하나씩 힘주어 꾹꾹 눌렀다. 벨이 두 번 울리기도 전에 생소한 여자의 목소리가 들렸다. 잘못 걸렸나? 나는 할 말을 몰라 가만히 수화기를 내려놓았다. 동전을 넣고 다시 번호판을 꼼꼼히 눌렀다. 역시 벨이 두 번 울리기 전에 조금 전의 목소리가 받았다. 잘못 걸렸나보다고, 미안하다고 더듬더듬 말하는 내게 그 여자는 새로 바뀐 전화번호라고 상냥하게 대답했다.

 

나는 천천히 발길을 돌렸다. 그가 오랫동안 소유했던 그 일련의 숫자들이 이제는 다른 사람에 의해 쓰여진다는 것이 기이했다. 그 일련의 숫자들은 그를 기억할까. 그의 음성과 말버릇, 말 속에 담거나 숨겼던 무한히 복잡한 감정들을 기억할까. 어느 날 그들은 까마득한 지난날로부터 들려오는 귀익은 소리에 문득 놀라고 그게 누구였지? 기억을 더듬어보지 않을까. 내가 갈게. 여긴 비가 오는데 거긴 어때? 그냥 전화 했어요. 이젠 됐어요. 끊을게요...

 

어둠이 깃들이는 숲에 발걸음을 멈추고 서 있으면 현자(賢者)가 된 느낌이 든다. 나무의 몸체에 가만히 귀를 대어보기도 한다. 그러나 나는 나무의 말을 알아듣기에는 너무 나이를 먹었다. 나무의 몸에서 귀를 떼고 팔을 벌려 안아보았다. 따뜻한 기운이 느껴지는 것 같았다. 신을 벗고 나무 위로 기어올랐다. 거친 줄기의 속 깊이 흐르는 수액이 향기롭게 맡아졌다. 나무는 곧게 자라 자칫 주르르 미끄러지거나 떨어질 듯 긴장이 되었다. 나는 다리를 꼬아 힘껏 굵은 줄기를 휘감았다. 돌발적이고 불합리한 욕구로 몸이 뜨거워졌다. 나는 나무를 껴안고 감아 안은 다리에 힘을 주며 온 몸의 힘을 다해 비틀었다. 아아, 억눌린 비명이 터져나오고 나는 산산이 해체되어 흰빛의 다발로 흩어지는 듯한 짧은 희열을 느끼며 축 늘어졌다. 나는 조금 울었던가?

 

오동의 보랏빛 꽃이 어둠 속에서 나울나울 피고 있었다. 별과 꽃이 난만한 밤에 그는 죽었다. 내가 존재하지 않을 어느 시간대에도 이 나무에는 꽃이 피고 잎이 피고 새가 깃들이겠다. 나는 나의 생보다 오랠 산과 나무, 별들을 바라보았다. 비로소 먼 옛날 증조할머니가 내게 해준 말을 정확히 기억해내었다. 엣날 어느 각시가 옛우물에 금비녀를 빠뜨렸는데 각시는 상심해서 죽고 금비녀는

금빛 잉어로 변해...

<끝>

 

[출처: 네이버 지식in]

 


 ‘옛우물’
한국 문단을 대표하는 중견 작가 오정희의 [중단편선집]에 들어있다. 1968년 신춘문예에 <완구점 여인>으로 등단한 이래 지금까지 꾸준히 천착해 온 여성적 정체성이 그대로 집약되어 있는 작품이다. 표제작 <옛우물>을 비롯하여 <비어 있는 들> <저녁의 게임> <유년의 뜰> <동경> <중국인 거리> 등 한국 문학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할 저자의 주옥 같은 중단편 모음이다. 그중 표제작 <옛우물>은 45살의 생일을 맞은 주인공이 유년 시절의 자신과 현재에 이르는 자신의 삶을 반추해 보는 내용으로. 특히 이 작품은 여인 3대의 ’물 나르기’ 라는 행위를 통해 생명을 이어가는 여성들의 의식을 제의적 수준으로까지 끌어올린다. 자신만의 유려한 문체 미학을 완성하여 후배 여성 작가들에게 하나의 전범이 되어버린 작가의 대표작이다.
 

작가소개 오정희 (吳貞姬 1947~)

1947년 서울특별시 종로구에서 태어났다. 이화여자고등학교를 거쳐 1970년 서라벌예술대학 문예창작과를 졸업하였다. 초등학교 3학년 때 경기도 백일장에서 산문부 특선을 차지하면서 글을 쓰기 시작해, 대학 2학년 때인 1968년 [중앙일보] 신춘문예에 단편소설 <완구점 여인>이 당선되어 등단하였다. 주요 작품으로는 <산조><직녀>(1970), <번제>(1971), <미명><불의 강>(1977), <저녁의 게임><중국인 거리>(1979), <유년의 뜰>(1980), <별사>(1981),<동경 銅鏡)>(1982), <불망비>(1983), <파로호>(1989), <옛우물>(1994) 등 중편·단편소설이 있다.

 

초기에는 육체적 불구와 왜곡된 관능, 불완전한 성(性) 등을 주요 모티프로 삼아 타인들과 더불어 살지 못하고, 철저하게 단절되고 고립된 채 살아가는 인물들의 파괴 충동을 주로 그렸다. 그러다 1980년대 이후에는 중년 여성들을 주인공으로 내세워 사회적으로 규정된 여성의 존재보다는 본질적이고 근원적인 여성성을 찾는 작업에 주력하였다. 이러한 작품 경향은 낯설고 유배당한 듯한 고독감을 그린 <유년의 뜰>, 여성의 정체성을 찾으려 하지만 가족의 울타리를 벗어 날 수 없어 갈등하는 여성의 삶을 그린 <중국인 거리>, 여성 영혼의 복합 심리를 그린 <별사>, 신화와 생명의 공간인 우물을 통해 삶과 죽음, 있음과 없음, 빛과 어둠, 그리움과 사랑의 관계를 그린 <옛우물> 등에 잘 나타나 있다.

 

소설집으로는 《불의 강》(1977), 《저녁의 게임》(1979), 《유년의 뜰》(1981), 《바람의 넋》(1986), 《야회(夜會)》(1990), 《옛우물》(1994), 《불꽃놀이》(1995), 《새》(1996) 등이 있으며, 많은 작품이 영어· 독일어· 프랑스어 등으로 번역 출판되었다. 이상문학상(1979), 동인문학상(1982), 오영수문학상(1996), 동서문학상(1996) 등을 받았다. [출처 : 다음 지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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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ng From A Secret Garden - Violin & Pian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