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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문학·설화

[명시감상] '귀촉도' (歸蜀途, 1934) - 서정주 지음

잠용(潛蓉) 2013. 10. 5. 16:16

 


‘서역 삼만리 구도의 길’(nicointhebus)

 

'귀촉도' (歸蜀途 1934) - 求道의 길 떠나신 님을 그리며
- 未堂 徐廷柱 作詩 - 


 

[作家 原註]
= 육날 메투리는, 신 중에서는 으뜸인 메투리 중에서도 가장 아름다운 조선의 신발이였느니라.

귀촉도는, 항용 우리들이 두견이라고도 하고 솟작새라고도 하고 접동새라고도 하고

子規라고도 하는 새가, 귀촉도… 귀촉도… 그런 發音으로서 우는 것이라고

地下에 도라간 우리들의 祖上의 때부터 들어온 데서 생긴 말슴이니라. =

(위 그림: 蕙園 申潤福 작 '미인도')

 


(귀촉도 - 서정주 작시, 김두수 노래)

 


 

[시작 의도]
“인간의 원색적인 욕망 문제를 다룬 서구 상징주의 시적 영향에서 출발한 서정주의 시는 시 <귀촉도> 에 와서 동양적인 전통과 한국적 한과 슬픔의 미학을 제시하게 된다. 이 시를 출발점으로 서정주는 한국의 사상 및 신라의 불교정신까지 폭을 확대·심화시킨다. 서정주가 불교사상을 밑바탕에 깔게 된 것도 이 작품이 처음이다. 시 <귀촉도>는 내용상으로 중국 설화에 바탕을 두었으나, 정서적 흐름이나 전통적 심상은 우리 것을 바탕으로 삼고 있다. 이 작품을 통해 한국의 비극적 세계관과 전통시와의 맥락이 어떻게 연결되었는가를 찾아볼 수 있다. 제 1연에서는 임과의 영원한 이별, 즉 임의 죽음을, 제 2연에서는 임의 부재(不在)에서 오는 슬픔과 못다한 사랑의 회한을, 제 3연에서는 애절한 정한(情恨)과 영원한 사랑 그리고 가신 임에 대한 그리움을 표현하고 있다.” (출전: <춘추> 32호 1943. 10.)

[어구 풀이]
◇ 제 1연은 임과의 영원한 이별, 즉 임의 죽음을 한스러워 하고 있다. 그러나 임이 간 곳은 슬픈 곳이 아닌 부처님이 계신 서방 정토이다. 그래서 꽃비 내리는 서역 삼만 리이다.그렇지만 다시 만나기 전까지는 돌아오지 못하는 서촉 삼만 리가 되어 아내의 마음은 애타고 슬프기만 하다.

* 귀촉도(歸蜀途): 1) 옛날 중국 촉(蜀)나라 망제(望帝)가 쫓겨나 촉나라를 그리워하다가 죽어 새가 되었다 한다. 그래서 “촉나라로 돌아가겠다”고 울어 그 새를 ‘귀촉도’라고 부른다는 전설이 있다. 2) 불경을 구하러 서역으로 떠난 남자가 3년이 넘도록 소식이 없었다. 이에 석 삼 년을 기다리던 그의 연인이 죽어 두견새가 되었다는 중국의 전설이 있다. <귀촉도>는 2)의 전설을 바탕으로 한 작품이라 하겠다.
* 눈물과 피리: 이별의 슬픔을 나타낸다.
* 진달래: 1) 한자어로‘두견화(杜鵑花)’. 이 시의 소재인 두견새와 연관된다. 2) 임에 대한 시적 자아의 ‘한과 사랑’을 뜻한다.
* 꽃비 오는 서역: 불교의 우화서(雨花瑞, 꽃비)를 상징한다. 법화경에는 부처님께서 영축산에서 법을 다 설한 후 가부좌를 틀고 무량 삼매(三昧)에 드니 하늘에서 만다라꽃, 마하만다라꽃, 만수사꽃, 마하만수사꽃을 비오듯이 쏟아 내려 부처님과 모든 사부대중 위에 흩뿌렸다. 또 부처님이 보리수나무 아래에 앉아 있을 때도 하늘에서 각가지 꽃을 비처럼 내리니 1백 유순이나 쌓이기도 했다. 그리고 또 향기로운 바람이불어와 시든 꽃은 날려버리고 새로운 꽃을 뿌렸다. 이런 일들이 끝이 없었으니 10소겁 동안 부처님께 공양하고 또 멸도(滅度)할 때까지 언제나 하늘에서 꽃비가 내렸다. 이것은 법화경(法華經) <서품>과 <화성유품>에 나오는 내용이다. 이와같이 부처님께서 설법을 마치고 삼매에 들 때나 깨우침을 얻었을 때는 언제나 하늘에서 축복의 꽃비를 내리는데 이런 상서(祥瑞)를 ‘우화서(雨花瑞), 즉 ‘꽃비의 상서’라 한다.
* 서역(西域): 옛날 중국에서 그들의 서쪽에 인접해 있는 나라들을 일컫던 말. 넓게는 지금의 중앙 아시아·서부 아시아· 인도 등을 포함하나, 좁게는 지금의 신장성 톈산 남로에 해당하는 동 투르키스탄의 나라를 가리킨다. 그러나 여기서는 서방정토, 즉 불교의 극락세계를 뜻한다.
* 삼만 리: 삼만 리는 죽은 자와 산 자의 거리감을 나타내는, 시인의 정감의 깊이를 표현하는 상징적 숫자일 뿐이다.
* 흰 옷깃: 죽은 사람에게 입히는 수의(壽衣)를 상징한다.
* 다시 오진 못하는 파촉 삼만 리: 한번 가면 돌아올 수 없는 저승 세계, 부처님 계신 극락세계를 뜻한다.

◇ 제 2연은 자기 몸의 일부분인 머리카락을 잘라내어 저승으로 가는 임이 신고 갈 여섯날 메투리를 만들어 주지 못한 것을 한탄한다. 이것은 여성 심리인 매저키즘(masochism)적 반응이라고 하겠다. 이와 같은 심리적 반응은 소월의 시 <진달래꽃> 제 3연에서도 나타나 있다.

* 신이나 삼아줄 걸: 실제로 신을 삼아 주지 못한 것을 후회하는 심경을 드러내고 있다.
* 슬픈 사연: 사랑의 아픔이 담긴 내용.
* 육날 메투리: 날을 여섯 개로 한 삼이나 노끈 따위로 엮어 삼은 신. 짚신처럼 생겼다. 미투리.망혜(芒鞋). 옛날에 사람이 죽었을 때 그 부인이 자기 머리털을 섞어 엮어서 망자(亡者)의 무덤에 넣어 주었다. 망자는 저승으로 갈 때 그 신발을 신고 간다고 한다. 사랑하는 사람을 남겨두고 홀로 떠나는 망자의 원혼을 달래는 의미도 있다. 임을 향한 애절하고도 절대적인 사랑의 상징으로 머리털로 미투리를 삼아주는 행위는 생에 관한 비관적인 인식, 비극적 세계관, 즉 생사를 초월한 영원한 사랑의 표현이고 불교의 산화공덕(散花功德)을 연상케 하는 표현이다.
* 은장도(銀粧刀): 옛날 사대부 집안의 부녀자들이 스스로 정절을 지키기 위해 옷고름에 차던 장도칼로,호신용으로 사용하였다. 보통 은장도는 대대로 시어머니가 며느리에게 전수하였다.
* 이냥: 이 모양대로, 이대로 내처. 미련 없이.
* 부질없는: 임이 안계신 마당에 겉치레는 모두 쓸데없다는 의미이다. 임이 죽은 마당에 스스로 자신의 존재 의의를 부정하고 있는 것이다.

◇ 제 3연에서는 애절한 정한과 영원한 사랑, 그리고 가신 임에 대한 그리움을 표현하고 있다. 부질없음을 잘 알고 있지만, 아내는 밤마다 초롱불 켜 놓고 하염없이 님을 기다린다. 밤하늘도 지칠 때까지. 그리고 아내의 그리움은 귀촉도가 대신 목이 젖도록 애처로이 울고 있다. 끝내 나를 홀로 이승에 남겨놓고 자기만 떠나가버린 무정한 임을 밤 하늘을 바라보며 눈물 짓는다.

* 초롱에 불빛: 청사초롱에 불을 켜 들고 밤마다 임을 기다리는 모습.
* 굽이굽이: 시각적으로는 은하수가 흐르는 모습을 나타내고, 청각적으로는 귀촉도의 울음소리를 그리고 있다.
* 은하ㅅ물: 은하의 물, ㅅ은 고어에서 소유격을 나타내는사이시옷이다. 슬픔의 깊이가 공간으로 확대되고 있다.
* 차마 아니 솟는 가락: 한과 슬픔에 지쳐 가락이 제대로 나오지 않는 상태를 말함.
* 피: ‘한· 사랑· 본능· 생명’의 의미를 함축하고 있다.
* 귀촉도: ‘두견(杜鵑)· 자규(子規)· 불여귀(不如歸)· 접동새’ 등 다양한 이름을 가지고 있으며, 전통적으로 부정적 정한(情恨)인 한과 슬픔, 고독을 표상하는 새이다.
* 그대 하늘 끝 호올로 가신 님아: 님을 좇아가지 못한 설움이 피맺히게 남은 표현이다.


이 시는 세 연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제 1연에서는 임의 떠남, 제 2연에서는 못다한 사랑의 회한, 제 3연에서는 귀촉도의 한맺힌 울음을 제시하고 있다. 임이 가신 ‘서역 삼만 리’나 ‘파촉 삼만 리’는 한번 가면 다시 돌아올 수 없는 죽음의 세계를 뜻한다. 이승과 저승의 거리는 먼 것이어서 ‘삼만 리’로 표현되었을 터인데, 이것은 실제의 거리라기보다는 정서적인 거리감을 나타낸다고 보아야 하겠다.

임의 죽음에 대한 여인의 회한은 제 2연에서 잘 드러나 있다. 화자가 여인이라는 점은 ‘은장도’로서 짐작이 간다. 그러나 ‘은장도’는 화자가 여성이라는 사실을 암시하는 데 그치지 않고, 임에 대한 정절의 표현이기도 하다. 화자는 그 은장도로 ‘부질없는 이 머리털’을 베어서 먼 길을 가는 임의 신이나 삼아드릴 걸 그랬다고 후회한다. 머리털이 ‘부질없는’ 것이라는 말은 임이 죽은 지금 누구에게 더 이상 예쁘게 보일 필요가 없다는 뜻이 담겨 있다. 치렁치렁한 머리털은 여인에게는 생명처럼 소중한 것이다. 옛날에 간음한 여자의 머리털을 잘라버리는 풍습도 이에 근거한 것일 터이다. 마지막에서 그토록 사랑하던 임이 귀촉도가 되어 그 울음으로 되살아 온다. 귀촉도는 동양시에서 흔히 등장하는 이미지로서, 임을 그리워하다 죽은 넋[魂]으로 이해된다.

[감상과 해설]
머언 옛날 중국 촉(蜀) 나라의 임금이던 망제(望帝)는 자신이 목숨을 구해준 별령(鼈靈)이라는 사람에게 배신을 당해 자기 나라에서 쫓겨나게 된다. 일순간 나라를 빼앗기고 돌아갈 수도 없는 처지가 된 망제는 원통함을 참을 수 없어 끝내는 죽어서 두견새가 된다. 새가 된 망제는 밤마다 불여귀(不如歸), 불여귀(不如歸)를 부르짖으며 목에서 피가 나오도록 울부짖었다. 그래서 사람들은 망제의 혼이 담긴 그 새를 두견새, 소쩍새 혹은 귀촉도라고 불렀다. 이처럼 귀촉도는 슬픈 사연을 안고 있는 새다. 미당(未堂)은 이러한 귀촉도의 슬픈 사연을 임과 이별한 여인의 마음에 빗대어 노래한 것이다.

하염없이 눈물 흘리며 임을 그리워하고 있는 여인이 있다. 그녀가 사랑하는 임은 ‘진달래 꽃비 오는 서역 삼만 리’ 먼길을 떠났다. 흰 옷깃을 여미며 떠난 길, 아아, 다시는 돌아오지 못할 죽음의 강을 건너버린 것이다. 그녀는 자신의 긴 머리칼을 잘라 임에게 신을 삼아주지 못한 것을 두고두고 후회한다. 우리 전통의 장례풍습에는 입관하기 전에 발에 신발을 신겨주는 의식이 있는데 저승 가는 길에 신으라는 것이다. 그녀는 머리카락으로나마 남편의 마지막 길을 함께하지 못한 것을 후회하고 미안함을 표하고 있다.

그래서 고향으로 돌아가지 못해 목에 피가 나도록 울부짖었던 망제와 같이 울고 또 운다. 이루지 못한 사랑에 대한 절절한 회한이 담긴 울음을 우는 새, 울다울다 지쳐 목이 젖어버린 새, 그것은 바로 떠난 임을 사무치게 그리워하는 그녀 자신이다. (권영민)

이 시를 요약하면 사별(死別)한 임을 향한 정한(情恨)과 슬픔을 처절하게 노래한 시로 보인다. 다시 돌아올 수 없는 머나먼 죽음의 길로 떠난 임에 대해 아내가 느끼는 회한과 슬픔이 애절히 표현되고 있다. 임이 떠나 버린 뒤에는 머리털(생명을 상징)마저 부질없는 것이 되어버렸다는 시적 자아의 진술을 통해 우리는 이 시가 지닌 정서의 깊이와 폭을 짐작할 수 있다. '임의 부재(不在)'를 드러내는 것은 우리 문학의 중요한 전통 중의 하나다. 이 작품이 '임의 부재'를 바탕으로 하고 있다는 점에서 '한(恨)'의 미학을 표현하는 우리 문학의 전통과 접맥되어 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 민족의 고유한 정서를 표출하려는 시인의 의도는 전통적 소재를 통해 구체화 되었다. 즉 '진달래', '육날 메투리', '은장도', '은하ㅅ물', '귀촉도' 등의 시어는 다같이 작품 전체의 분위기를 지배하면서 주제 의식을 직접 드러내고 있다.

[관련 고사]

촉(蜀, 지금의 四川省) 나라에 이름은 두우(杜宇)요, 제호(帝號)를 망제(望帝)라고 하는 왕이 있었다. 어느 날 망제가 문산 아래를 흐르는 강가에 나왔는데, 물에 빠져 죽은 시체 하나가 떠내려 오더니, 망제 앞에 와서 눈을 뜨고 살아 났다. 망제는 이상하게 생각하고 그를 데리고 와서 사연을 물어보았다.
“저는 형주 땅에 사는 별령(鼈靈)이라는 사람인데 강에 나왔다가 잘못해서 물에 빠져 죽었는데, 어떻게 흐르는 물을 거슬러 여기를 왔는지 모르겠습니다.”라고 대답하는 것이었다. 망제가 생각하기를, 이는 하늘이 나에게 어진 사람을 보내주신 것이라 여기고, 별령에게 집을 주고 장가를 들게 하고 정승으로 삼아 나라일도 맡겼다. 망제는 나이도 어리고 마음이 약한 군주였다.

이것을 본 별령은 은연 중 음흉한 마음을 품고 망제의 좌우에 있는 대신이며 하인까지도 모두 매수하여 자기 심복(心腹)으로 만들고 정권을 좌지우지 마음대로 휘둘렀다. 그 때 별령에게는 딸이 하나 있었는데, 얼굴이 천하의 절색이었다. 별령은 그 딸을 망제에게 바쳤다. 망제는 크게 기뻐하여 나라 일을 모두 장인 별령에게 맡겨버리고 밤낮으로 미인을 끼고 궁중에 깊이 묻혀 바깥 일은 전연 모르고 지냈다. 이런 중 별령은 마음 놓고 모든 공작을 다해 마침내 자기편 대신과 협력하여 망제를 국외로 몰아내고 스스로 왕이 되었다.

망제는 하루 아침에 나라를 빼앗기고 쫓겨나오니 그 원통함을 참을 수가 없었다. 그리하여 그는 죽어서 두견새가 되어 밤마다 불여귀(不如歸)를 부르짖어 목구멍에서 피가 나도록 울고 또 울었다고 한다. 후세 사람들은 그를 원조(怨鳥), 두우(杜宇), 귀촉도(歸蜀途) 또는 망제혼(望帝魂)이라 하여 망제의 죽은 혼이 새가 된 것이라 말했다. (숲속의 빈터)

[시인 서정주(徐廷柱) 1915∼2000]더블클릭을 하시면 이미지를 수정할 수 있습니다

시인. 호는 미당(未堂), 궁발(窮髮). 전북 고창(高敞)에서 출생. 1936년 중앙불교전문학교를 졸업하고, 동국대학교 교수, 한국문인협회 이사장, 예술원 회원 등을 지냈다. 1936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시 <벽>이 당선되어 등단한 뒤 김광균(金光均)· 김달진(金達鎭)· 김동리(金東里) 등과 동인지 《시인부락》을 발간하면서 본격적인 작품활동을 시작하였다. 첫 시집 《화사집》에서 인간의 원죄의식과 전율· 통곡· 형벌· 비원(悲願) 등 운명적 업고를 시화하였는데, <문둥이> <자화상> <화사(花蛇)> 등이 대표작품이다. 이어 <만주에서> <살구꽃 필 때> <민들레꽃> <귀촉도(歸蜀道)> 등의 작품을 발표하였고, 제2시집 《귀촉도》를 간행하였다. 이 시기부터는 초기 원죄적 형벌과 방황에서 벗어나 동양사상으로 접근하여 화해를 주제로 삼았다. 1956년 간행된 《서정주시선》에서는 <풀리는 한강가에서> <상리과원(上里果園)> 등 한민족의 전통적 한과 자연의 화해를 읊었고, <학> <기도> 등에서는 원숙한 자기 통찰과 달관을 보여주고 있다. 이와 같은 달관적인 세계는 《신라초(新羅抄)》에 이르러 새로운 질서로 확립되었고 1968년에 나온 시집 《동천(冬天)》에서는 불교의 상징 세계에 대한 관심이 엿보인다. 이 밖의 저서로는 《한국의 현대시》 등이 있다.

1915년 전라북도 고창군 부안에서 출생
1929년 중앙 고보 입학
1931년 고창 고보에 편입학, 자퇴
1936년 동아일보 신춘 문예에 시 <벽>이 당선, 시 전문 동인지 [시인부락] 창간
1946년 조선청년문학가협회 결성, 시분과 위원장직을 맡음
1950년 종군 위문단 결성
1954년 예술원 종신위원으로 추천되어 문학분과 위원장 역임
1972년 한국 문인협회 부이사장, 한국 현대시인협회 회장 역임
1977년 한국 문인협회 이사장
시집 : [화사집](1941), [귀촉도](1948), [흑산호](1953), [신라초](1961), [동천](1969), [국화 옆에서](1975), [질마재 신화](1975), [노래](1984), [이런 나라를 아시나요](1987), [팔할이 바람](1988), [산시(山詩)](1991), [미당 서정주 시전집](1991), [늙은 떠돌이의 시](1993)

 

[ 시 歸蜀途의 배경이 된 巴蜀紀行 ]

그리움도 깊어지면 약이 된다든가? 시인 묵객들마다 서역으로 가는 길목에서 만나는 ‘파촉’을 그려내고 있다. 만해 한용운(卍海 韓龍雲)은 일찍이 님의 침묵 <군말>에서 “그리운 것은 모두 님이다”고 설명했다. 그렇다. 그리운 것은 다 님인 것이다. 서역(西域)도 그리운 곳이고 파촉(巴蜀)도 그리운 곳이다. 그곳은 내 그리운 님이 가신 곳이다. 나를 떠난 님이 가 계신 곳이다.

그래서 미당 서정주(未堂 徐廷柱 1915~2003)는 그의 시 <귀촉도>에서 님을 그리는 사람의 입을 빌어 울음우는 것이다.

눈물 아롱아롱
피리 불고 가신 님의 밟으신 길은
진달래 꽃비 오는 서역 삼만 리
흰 옷깃 염여염여 가옵신 님의
다시 오진 못하는 巴蜀 삼만 리

신이나 삼어 줄ㅅ걸 섧은 사연의
올올이 아로색인 육날 메투리.
銀粧刀 푸른 날로 이냥 베혀서
부즐없는 이 머리털 엮어 드릴ㅅ걸.

초롱에 불빛, 지친 밤 하늘
구비구비 은하ㅅ물 목이 젖은 새,
참아 아니 솟는 가락 눈이 감겨서
제 피에 취한 새가 귀촉도 운다.
그대 하늘 끝 호올로 가신 님아
- 귀촉도(歸蜀途)

 

이 시 <귀촉도>는 한국이 낳은 국민시인 미당(未堂 徐廷柱 1915~ 2000)의 대표작 중의 한 편이다. 솥이 적다고 울어예는 소쩍새(접동새 또는 子規)는 가슴 절절한 울음소리로 이별의 슬픔을 토해내는 새로 알려져 있다. 동서 문명의 이별의 끝자락에 자리한 ‘서역 삼 만리’ 또는 ‘파촉 삼 만리’로 떠난 님은 좀처럼 돌아오지 않는다.

 

오지 않는 님을 위해 부즐없는 이 머리털을 은장도로 베어서 서러운 사연을 올올이 아로새긴 여섯날 메투리를 엮어드리지 못한 것을 한스러워하고 있다. 한번 떠나면 좀처럼 돌아오지 못하는 파촉 삼만 리의 머나먼 나그네길! 님을 여인 주인공은 귀촉도의 울음을 통해서 슬픔을 체념하고 있다.

파촉은 오랜 옛날 신라의 혜초(慧超)스님도 지나갔던 곳으로 바다를 건너 머나먼 육로의 끝자락에서 만나게 되는 분지지역이다. 천축국 인도와 서역으로 통하는 관문에 위치한 파촉은 1959년 티베트가 중국에 합병되기 이전까지만해도 동아시아 문명권의 서쪽 끝이었다. 사천성(四川省)과 중경시(重慶市)를 아우르는 이 지역은 수당(隋唐) 이래 신라와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었다. 그 때문에 인도(印度)와 접경지에 가까운 이곳을 지나던 시선 이백(詩仙 李白 701~762)도 파촉으로 가는 길의 감회를 험난[險難]하다고 이렇게 노래했다.

噫噓危乎高哉(희허위호고재) 아아 정말 험하고도 높구나.
蜀道之難(촉도지난) 파촉으로 가는 길은.
難於上靑天(난어상청천) 푸른 하늘에 오르는 것보다 더 어렵구나.
使人聽此凋朱顔(사인청차조주안) 듣기만 해도 사람들은 붉은 얼굴 찡그리고

連峰去天不盈尺(연봉거천불척) 연봉은 하도높아 하늘과 한 자도 안 되겠네.
古松到掛倚絶璧(고송도괘의절벽) 늙은 소나무는 절벽을 의지해 거꾸로 걸렸는데
側身西望長咨嗟(측신서망장자차) 몸을 옆으로 서쪽을 바라보며 장탄식 하네.
- 이백(李白) 촉도난(蜀道難) -

(구비구비 험준한 巴蜀之途)

 

산세가 매우 험하고 높은 파촉 길은 이백에게도 마찬가지였다. 그 때나 지금이나 듣기만 해도 얼굴이 찡그려질 정도로 높고 헌준한 고산준령(高山峻嶺)의 상징이었다. 그런데 동서문명의 접점인 이 파촉에는 예나 지금이나 장강(長江, 揚子江)이 흐르고 있다. 장강을 중심으로 민강(岷江), 타강(朶江), 가릉강(嘉陵江)을 낀 분지로 이루어진 사천성의 문명은 오래 전에 인류의 5대 문명발상지 중의 하나인 황하문명과 경쟁해 왔다. 즉 오랜 기간 중원이 황하문명의 용광로였다면, 사천은 장강문명의 요람이라고 말할 수 있다.

또한편 파촉은 인도의 불교문화가 중국으로 들어오는 관문에 위치하여 불교선법의 용광로였다. 조사선(祖師禪)의 시조로 일컫는 마조선사(馬祖禪師 709~788)와 그 이전의 무상(無相禪師 684~762)이 있었다. 마조 이후에는 선사의 선법이 제자들에 의해 전수되어 해동 신라에서는 칠산선문(七山禪門)의 개산조(開山祖)들에 의해 불교의 선법을 찬란히 꽃피웠다. (글: 고영섭/ 시인, 동국대 불교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