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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치 올림픽] 한국 선수들은 왜 올림픽을 즐기지 못할까?

잠용(潛蓉) 2014. 2. 18. 18:11

왜 한국 선수들은 올림픽을 즐기지 못할까?
출처 SBS | 입력 2014.02.18 17:06 | 수정 2014.02.18 17:42

 

박승희 선수가... 3위로 결승선을 통과해 동메달을 차지했습니다
쇼트트랙의 에이스 심석희가 1500미터 은메달을 획득했습니다
모태범은 ...12위에 자리했습니다. 이규혁은 21위를 기록했습니다...ㅋ
-<SBS 올림픽 기사 중에서>

 

어느 순간부터였을까? 은메달도, 동메달도, 4위도, 12위도, 21위도, '그치거나 머무르진' 않게 됐다. '금메달 지상주의'에 대해 자성하면서 만들어진 SBS 보도국 내 일종의 내규다. 금메달을 따지 못했다고 "은메달에 그쳤다" "4위에 머물렀다"는 표현은, 가능하면 쓰지 말자는 것이다. 메달을 딴 것만으로도 훌륭하고 세계 유수의 선수와 겨뤄 달성한 기록과 순위 자체가 대단하다는 의미다.

 

 

 

 

 

 

 

SNS나 기사 댓글 등을 통해 엿볼 수 있는 여론도 대체로 그렇다. 은메달을 딴 심석희 선수가 방송 인터뷰에서 "죄송하다"고 말했더니, 왜 죄송하다고 말해야 하냐며 어린 선수가 그렇게 말하게 만든 사회 분위기를 질타하는 목소리가 높았다. "메달 색깔이 뭐가 중요하냐, 저는 동메달을 따서 정말 행복하다"는 박승희 선수의 발언은 어록 대우를 받고 있다. 밴쿠버 금메달에 비하면 뒤쳐지는 성적을 낸 모태범 선수도 기죽지 않고 당당하다. 이에 대한 반응도 대개 호의적이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금메달 가치가 떨어진 건 아니다. 금메달을 선호하고 중시하는 풍조가 달라지지도 않았다.


대회 11일째, 한국의 금메달은 스피드 스케이팅 이상화가 따낸 단 1개뿐. 심석희, 박승희의 은, 동메달도 하나씩 있긴 하지만 선수단도, 현지 취재팀 분위기도 가라 앉아있다. 한국 내에서의 올림픽 열기도 그런 듯하다.(여기에 우리 쇼트트랙 남자 팀과 극명하게 대조되는 빅토르 안의 메달 행진에 후폭풍을 세게 맞은 빙상연맹 상황까지 더해졌다.) 이전에도 썼듯(취재파일: 첫 금메달로 현재 한국은 9위... 타당한 순위일까) 금메달을 우선으로 집계하는 국가별 메달 순위가 대다수라는 점도 변하지 않았다. 18일 새벽 현재 금 1, 은 1, 동 1인 대한민국의 종합 순위는 17위다. 토리노올림픽 7위, 밴쿠버 5위였던 데 비하면 꽤 처지는 순위다. 애초 선수단의 목표였던 금 4개 이상, 종합순위 10위권 이내를 달성하긴 쉽지 않다.

 

포상금도 금메달 우선이다. 이전보다 줄었지만 그래도 올림픽 메달 색깔에 따른 연금 차이는 크다. 메달을 따지 못하면 점수가 급락한다. 올림픽 메달 연금점수는 금 90, 은 70, 동 40, 4위 8, 5위 4, 6위 2점, 20점 이상부터 연금 지급, 20점이면 월 30만원 연금을 지급하는데 30점까지는 10점에 월 15만원, 이후엔 월 7만 5천원이다. 90점이면 97만 5천원이 되는데 올림픽 금메달은 100만원을 지급한다. 다만 병역 혜택에서는, 올림픽에서만은 메달 색이 중요하지 않다. 올림픽은 금, 은, 동 모두 4주 군사 훈련만으로 병역을 면하는 혜택을 받는다. 아시안 게임은 금메달만 그렇다.

 

여전히 여러모로 금메달이 우선시되고 있지만, 다른 메달의 가치와 참가하는 의의도 중시하자는 분위기가 함께 마련된 그런 상황이다. 20년 전, 10년 전보다 한결 나아진 것이다. 금메달을 못 따면 죄송하다는 선수들에게 잘못했다고 말할 수만은 없다. 그들은 아직 그런 분위기가 더 익숙한 거다. 그렇기에 다만 참고했으면 하는 건 이런 거다.

 

이탈리아의 쇼트트랙 선수 아리아나 폰타나, 90년생으로 김연아와는 동갑, 박승희보다는 두 살, 심석희보단 7살 위다. 우연찮게도 박승희와 함께, 또 심석희와 같이 시상대에 섰다. 박승희가 동메달을 받을 땐 은메달을, 심석희가 은메달을 받을 땐 동메달을 수상했다. (이번 올림픽에선 경기 직후엔 꽃다발 세레모니를 하고 그날 저녁이나 다음날 저녁 메달 시상식을 따로 진행한다.)

 

폰타나의 이 표정, 이번 올림픽 시상식 중에 가장 인상적인 장면이었다. 특히 2월 13일, 중간에 잠깐 울컥해 눈물을 흘렸던 박승희(물론 다시 미소짓긴 했지만)와는 너무나 대조적이었다. 심석희와 함께 선 2월 15일도 마찬가지다. 아쉽게 금메달을 놓쳤던 심석희 선수는 아쉬운 마음이 남아서일까, 밝은 표정을 회복하긴 했지만 차분했다. 하지만 폰타나는 정말로 행복해보였다.

 

이번에 신설된 종목인 스노보드 슬로프스타일 시상식 사진이다. 금메달을 딴 건 약간 노홍철 같이 생긴 코첸버그였는데 혀를 낼름하는 정도에 그쳤지만 이 시상식의 주인공은 그옆 산드베크였다. 원래 장발이었던 산드베크는 시상식을 위한 닭벼슬 헤어스타일을 선보여 코첸버그를 제치고 이날의 주인공이 됐다.

 

시상대에 올라 춤을 추거나 물구나무를 서면서 메달을 딴 기쁨을 표현하는 선수들, 올림픽은 축제라면서 즐긴다고 하는데 이들은 온몸으로 행복하다고 외치고 있다. 하지만 유독 우리 선수들의 표정과 태도에선 축제를 즐기는 즐거움과 여유가 엿보이지 않는다. 6번째 올림픽에서 일찌감치 경기를 마치고 은퇴를 선언한 이규혁 선수나 올림픽 2연패를 달성한 이상화 선수에게서나 조금 보인다고 할까. 물론 선수들 책임만은 아니겠으나 일생에 한 번뿐일지도 모를 올림픽을 즐기는 자세가 좀 아쉽다.

 

'기껏해야 올림픽'인데.. 4년 뒤면 또 돌아오는데.. 우리 선수들에게 올림픽이 막중한 부담만이나 국가적 차원의 과제로 머물거나 그치지 않았으면 좋겠다. 4년에 한번 있는 전세계 스포츠인의 축제를 맘껏 즐기는 사람들 속에 우리 심석희나 박승희, 김보름, 이보나, 최서우, 최흥철, 서정화, 최재우, 김동현, 문지희, 황준호 등 많은 우리 선수들이 있었으면... 하고 바란다. [심영구 기자so5what@sb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