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원파 "대통령과 비서실장은 종교 탄압 말라"
MBN | 입력 2014.05.15 20:03 | 수정 2014.05.15 20:28
【 앵커멘트 】구원파는 박근혜 대통령과 김기춘 비서실장까지 언급하며 종교 탄압을 즉각 중단하라고 요구했습니다. 더는 물러날 곳이 없다며 강력한 투쟁 의지를 시사했습니다. 김준형 기자가 보도합니다.
【 기자 】구원파는 이번 수사가 박근혜 대통령의 지시에 의한 불공정 수사라고 주장했습니다. 또, "구원파에게 화살을 돌린다고 국민의 분노가 그치지 않는다"며 종교 탄압을 중단하라고 요구했습니다.
▶ 인터뷰 : 조계웅 / 기독교복음침례회 대변인
- "국가의 통합과 화해를 파괴하는 사람의 계획이 박 대통령 당신을 위험하게 만들고 있음을 다시 한 번 생각해 보아 주십시오."
김기춘 비서실장에 대해서도 언급했습니다. 1991년 오대양 사건 당시 법무부장관으로 불공정한 법집행을 했던 김기춘 실장이 또다시 자신들을 궁지에 몰아넣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 인터뷰 : 이정순 / 기독교복음침례회 신도
- "김기춘 비서실장님께 요청합니다. 1991년 상황이 재현되지 않게 해주십시오."
그러면서, 공권력이 투입될 경우 자신들은 유병언 전 회장을 보호할 수밖에 없다고 강조했습니다.
▶ 인터뷰 : 조계웅 / 기독교복음침례회 대변인
- "공권력을 이 안에 투입하신다고 하면 저희는 그 부분에 대한 것들은 저항할 수밖에 없는 게 현실인 것 같습니다."
내일(16일) 검찰에 소환 통보를 받은 유병언 전 회장을 출두시키지 않겠다는 의지로 풀이됩니다. MBN뉴스 김준형입니다. [영상취재 : 유용규 기자 영상편집 : 윤 진]
"죽음도 불사" 강력 반발하는 구원파 신도들... 속내는?
JTBC | 백종훈 | 입력 2014.05.15 22:38
[앵커] 내일(16일) 오전 10시가 검찰이 유병언 전 세모그룹 회장에게 통보한 '출석시한'입니다. 이를 하루 앞두고 기독교복음침례회, 소위 구원파가 검찰의 금수원 조사 시도에 강하게 반발한 배경, 조금 더 짚어 보겠습니다. 사회부 백종훈 기자가 이 문제를 지속적으로 취재해 왔는데요. 지금 제 옆에 나와 있습니다. 지금 상황으로 봐선 자칫 장기화할 가능성도 좀 커 보이네요. 내일 또 출석하면 모르겠습니다마는, 전반적으로는 출석하지 않지 않겠느냐는 우려도 나오고 있습니다. 구원파 반발의 명분은 '검찰 수사가 종교탄압이다'는 내용이죠?
[기자] 네, 그렇습니다. 청해진해운, 나아가 세모 계열사와 교회는 관련이 없고 이에 따라 경기도 안성 금수원에 검찰이 들어가 조사하려는 시도 자체가 것은 종교탄압이란 주장입니다. 하지만 검찰은 금수원의 안성교회를 수사하겠다는 것이 아니라 유 전 회장이 금수원에 머물 가능성이 있어 신병 확보를 하겠다는 입장입니다. 유 전 회장이 청해진해운 등에서 벌어들인 수익을 다른 곳으로 빼돌려, 선박 안전이나 인력관리 등에 필요한 투자를 게을리해서 이번 세월호 사고가 일어난 게 아니냐, 이런 추궁입니다. 그래서 수사로 확인된 유 전 회장의 경영 책임을 신병 확보를 통해서 묻겠다는 것이 검찰의 입장입니다.
[앵커] 오늘 구원파의 기자회견 내용을 보면 정부가 자신들이 잘못해놓고, 즉 대응을 부실하게 해놓고 그것을 왜 구원파에게 뒤집어씌우려고 하는 것이냐, 이런 내용이 주가 되고 있더군요.
[기자] 네, 콕 찍어서 '해경의 무능, 무책임한 대응' 이런 것이 문제가 있다, 이렇게 기자회견을 했고요. 나아가서 청와대, 대통령까지도 거론을 했습니다. 하지만 검찰은 유 전 회장이 청해진해운을 경영할 때 증축이나 과적 등에 직간접적으로 관여한 정황이 발견됐다는 입장입니다. 오히려 유 전 회장이 신도들을 동원해 이 사이에 숨어 교회를 이용해서 정당한 수사를 피하려는 의도가 아니냐, 이렇게 의심을 하고 있습니다. 특히 지금 머무르고 있는 것으로 의심되는, 구원파의 본산 격인 금수원이 굉장히 넣은 곳인데요. 여의도의 절반 크기 정도 됩니다. 그래서 많은 신도를 동원하고, 창고도 10여 곳 있어 장기간 버티기에 유리한 환경, 이런 것들을 고려해서 거기에 숨어든 게 아니냐고 의심하고 있습니다.
[앵커] 의심이라고 표현했지만 사실 유병언 전 회장이 있는지 없는지 모르는 거잖아요?
[기자] 네, 그렇습니다. 장남 대균 씨도 한번 실패를 했기 때문에..
[앵커] 아무튼 내일 10시가 기점이 될 것 같네요. 만일 출석을 한다면 또 이야기가 달라지겠지만 말이죠. 오늘 기자회견 내용 중에 눈에 띄는 것이 이른바 오대양 사건과 관련해서 김기춘 청와대 비서실장을 크게 거론하면서 플래카드에는 '갈 데까지 가보자' 이렇게까지 쓰여있던데, 어떤 뜻으로 볼 수 있을까요?
[기자] 구원파 신도들은 오대양이란 말만 나오면 굉장히 반발하는 경향이 있는데요. 1987년도에 오대양이란 한 공장에서 32명이 집단 자살로 발견된 사건입니다. 당시 유병언 전 회장과 구원파 측이, 이들이 구원파 측의 옛 신도였기 때문에 관련 혐의를 받았었는데요. 검찰에서 무혐의 처분을 받았습니다. 당시 법무부 장관이 김기춘 현 청와대 비서실장이었기 때문에 '표적수사를 하는 게 아니냐' 이렇게 신도들은 주장하고 있습니다. 검찰은 전혀 사실무근이라고 선을 긋고 있습니다.
[앵커] 당시 사건은 사회적 파장이 엄청나게 컸습니다. 모두가 기억하는 것처럼. 집단 자살이냐 타살이냐 여러 가지 이야기가 나오다, 결국 경찰 수사 결과는 집단 자살로 나온 바가 있었고요. 근데 아까 잠깐 보니까 '죽음도 불사한다' 이런 표현까지 나오고, 굉장히 격앙돼있는 것 같은데, 이런 대치상황이 수사에 어떤 영향을 줄까요?
[기자] 검찰은 종교자유 보장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수차례 강조했습니다. 지난달 서울 삼각지 교회 압수수색을 한 바 있는데요. 구원파 측에 교회의 물품은 다 돌려줬고, 수사도 기업경영에 관련된 것을 보기 위한 것이었다 이렇게 설명했습니다. 그리고 유 전 회장이 그렇게 당당하다면 빨리 나타나서 검찰 조사를 받으라고 촉구했습니다. 하지만 금수원 등에 모여있는 구원파 신도들은 '마녀사냥식의 종교탄압이다' 이런 입장을 굽히지 않고 있고요. 따라서 내일 유 전 회장이 전격적으로 검찰에 자진 출석하지 않는 한 금수원 등지에서 수사팀과 신도 간의 물리적 충돌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는 상황입니다.
[앵커] 불상사는 일어나지 않기를 바랍니다. 백종훈 기자였습니다. 수고했습니다.
[단독] 세월호 침몰, 청와대보다 국정원에 가장 먼저 보고됐다
경향신문 | 박병률·박준철 기자 | 입력 2014.05.15 06:01 | 수정 2014.05.15 07:37
‘해양사고 보고 계통도’ 1차 보고 대상 명시 확인
지난달 16일 침몰한 세월호는 사고가 났을 때 국가정보원에 최우선적으로 1차 보고를 하도록 돼 있던 것으로 확인됐다. 실제 세월호는 침몰하면서 해양경찰에 앞서 국정원에 먼저 보고했다. 14일 경향신문이 입수한 세월호 운항관리규정의 '해양사고 보고 계통도'를 보면 세월호는 사고가 나면 가장 먼저 국정원 제주지부와 인천지부, 해운조합에 보고하도록 명시돼 있다. 해양경찰, 인천지방해양항만청, 국토해양부(현 해양수산부)는 그 다음 순서이다. 계통도에는 국정원 제주·인천지부의 전화번호까지 적혀 있다. 세월호 운항관리규정은 지난해 2월25일 청해진해운이 작성했고, 해경은 이를 심사해 승인했다.
세월호 운항관리규정의 '해양사고 보고 계통도'. 세월호 선박과 국정원 제주지부 및 인천지부가 바로 연결돼 있다. 계통도에는 국정원 지부의 전화번호, 세월호가 사용하는 조난비상 통신주파수(VHF 채널16, 11) 등도 표시돼 있다.
계통도에 따라 김한식 청해진해운 사장 등은 사고 직후인 지난달 16일 오전 9시10분쯤 국정원에 문자메시지로 사고 사실을 보고했다. 국정원이 초기부터 사고를 알고 있었다는 의미이다. 청해진해운 관계자는 "해경에 따로 연락하지 않은 것은 제주VTS(해상교통관제센터)와 진도VTS에서 사고를 먼저 인지하고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라며 "다만 해당부서가 사고로 정신이 없을 것 같아 혹시 (국정원 보고가) 누락됐을까봐 알려준 것"이라고 말했다.
민간회사가 국정원에 직접 사고 사실을 보고토록 한 것은 상식에 벗어난 것이라는 지적이 많다. 승객 구조에 한시가 시급한 상황에서 구난구호와 큰 관계가 없는 정보기관에 먼저 보고한다는 것이 납득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해운업계 관계자는 "국정원이 대테러업무 때문에 부두나 공항에 직원을 상주시키고 있지만 해난사고 때도 다른 곳에 앞서 1차 보고를 하도록 명시한 것은 이해하기 힘들다"고 말했다.
반면 인천~제주를 오가는 또 다른 6000t급 여객선인 오하마나호는 국정원 보고 규정이 없는 것으로 확인됐다. 청해진해운이 작성한 '오하마나호 운항관리규정'을 보면 사고 시 해운조합, 청해진해운 제주본점, 인천VTS와 해군2함대 상황실에 보고토록 돼 있다. 구난구호와 직접 관련된 조직에 우선 보고토록 한 것이다. 이 규정은 지난 2월7일 작성됐다. 청해진해운 관계자는 "왜 세월호는 국정원에 보고하는데 오하마나호는 그러지 않아도 되도록 운항관리규정을 작성했는지 모르겠다"며 "다만 해경이 심의를 했고, 문제가 없다고 하니 매뉴얼로 사용한 것"이라고 말했다.
국정원이 세월호 사고 상황을 우선 보고받도록 한 것은 세월호가 전시에 군수물자와 피란민 수송을 위해 동원되는 '국가보호장비'로 지정돼 있기 때문이라는 분석도 있다. 하지만 국가보호장비 지정은 2000t급 이상 배에 공통적으로 적용되는 것으로 평시에 국가가 별도로 관리하지는 않는다. 해수부 관계자는 "국가보호장비 지정 여부는 대외비여서 알려줄 수 없다"고 말했다. <박병률·박준철 기자 mypark@kyunghyang.com>
탈출 선원들 "구조순서 밀릴라"… 승객대피 안 시켜
[연합뉴스] 2014/05/15 18:29
[사진] 지난달 16일 세월호 침몰 직전 해양경찰이 구조 작업을 벌이는 모습.
(목포=연합뉴스) 특별취재팀 = 세월호 승무원들이 구조 순서에서 밀리는 것을 우려해 승객 대피 조치를 하지 않았다고 검경 합동수사본부가 판단한 것으로 15일 확인됐다. 선원들은 해경 경비정만 침몰 현장에 도착한 상황에서 승객들이 한꺼번에 퇴선할 경우 구조 의무가 있는 자신들은 뒷순위로 밀릴 것을 인식했던 것으로 수사본부는 보고 있다. 선원들은 탈출 직전 진도 해상교통관제센터(VTS)와의 교신, 육안 등으로 경비정이 오고 있다는 사실을 파악했다.
진도 VTS와의 교신에서 등장하는 둘라에이스호는 인근에 있었지만 직접 구조가 어려운 상황이었고 다른 어선 등은 도착 전이었다. 선원들이 구조 당시 근무복이 아닌 평상복을 입고 있었던 점도 선원 신분이 드러날 경우 바로 퇴선하지 못하고 승객들을 구조해야 하는 상황을 피하려 했다는 추측을 뒷받침하고 있다. 일부 선원은 옷을 갈아입은 이유에 대해 "구명조끼를 입기에 편할 것 같아서"라고 말했다고 수사본부 관계자는 전했다.
<그래픽> 세월호 내부도·비상탈출 경로
수사본부는 승객들의 사망 가능성에 대한 인식을 넘어 자신들의 생존을 위해 승객이 사망해도 어쩔 수 없다는 의사로 선원 신분을 감추고 배에서 빠져나온 것으로 판단했다. 수사본부는 미필적 살인의 고의를 판단한 그 밖의 근거로 침몰 사실을 알고도 여객부에 알리지 않고 선내 대기 방송을 지시하고 진도 VTS의 승객대피·탈출안내 지시를 묵살한 점, 복원력 부재와 고박 부실·과적 등으로 전복 위험성을 알고 있었던 점 등을 제시했다. [sangwon700@yna.co.kr]
<세월호참사> 선원·승객 생사 가른 '4·16 09:37'
[연합뉴스] 2014/05/15 17:25 송고
[사진] 전남도 어업지도선이 지난달 29일 공개한 세월호 침몰 당시 승객들의 구조장면. 기울어진 세월호로 구조헬기와 보트가 접근하고 있다.
선원들 탈출 시작…"무서워, 가만히만 있으래" 승객들은 공포에 질려
10:17 마지막 메세지 "지금 더 기울어"
(목포=연합뉴스) 특별취재팀 = 세월호 침몰 순간의 조각들이 하나씩 맞춰질수록 안타까움과 분노의 깊이가 더해지고 있다. 세월호에서 보낸 마지막 신호가 된 카카오톡 메시지가 발신된 지난달 16일 오전 10시 17분 배의 기울기는 108.1도인 것으로 조사됐다. 배 옆면이 바다에 닿아 전복이 진행되는 상황이었다. 구속된 선원 15명이 탈출하기 시작한 오전 9시 37분은 선원들과 승객의 생사가 갈린 시각이 됐다.
이 시각 전 선원들의 비정한 행태와 이 시각 후 승객들의 처절한 기다림의 뚜렷한 대비는 검경 합동수사본부가 선장 등 4명에게 살인 혐의를 적용한 배경을 수긍하게 한다. 인명 구호 의무가 있는 선원들이 승객들을 쉽게 구할 수 있었고, 승객 사망을 예상하고도 탈출한 점으로 미뤄 '미필적 고의'도 있다고 봐 살인 혐의를 적용했다고 검경 합동수사본부는 설명했다. 다만 재판에서는 살인의 미필적 고의가 있었는지, 피해자를 사망자 전원으로 볼 수 있을지 등 핵심 쟁점을 놓고 치열한 법리 공방이 이루질 것으로 보인다.
◇ 4월 16일 오전 9시 37분 전 선원들은...
오전 8시 48분 전남 진도군 병풍도 해상에서 19노트(최고 속력 21노트)로 운항하던 세월호는 급격히 왼쪽으로 기울었다. 조타수가 오른쪽 변침을 시도하다가 뜻대로 되지 않자 당황해 크게 조타기를 돌린 게 원인이었다.
[사진] 지난달 16일 침몰한 세월호 조타실에서 선원들이 해양경찰의 안내를 받으며 비교적 손쉽게 탈출하고 있다.
조타수는 지난해 12월에도 실수를 해 입출항 시 조타를 금지당할 만큼 미숙했다. 맹골수도 운항 경력이 없는 3등 항해사는 레이더만 보고 1차 140도, 2차 145도로 변침하도록 조타수에게 지시했다. 선장은 미숙한 3등 항해사와 조타수에게 국내에서 물살이 두번째로 세다는 맹골수도 운항을 맡기고 침실에 있었다. 배는 엔진정지와 조류의 영향에 오른쪽으로 타원형을 그리며 흘러가다가 오전 8시 52분 왼쪽으로 30도가량 기운 채 멈춰 섰다. 단원고 2학년 최덕하(사망)군이 119에 처음으로 신고한 시각이다.
각자 선실에 있던 선원 6명은 조타실에 모였다. 1등 항해사는 복원성 문제를 알고 오전 8시 55분 제주 해상교통관제센터(VTS)에 구조를 요청했다. 선장은 8시 58분 2등 항해사에게 "구명조끼를 입고 선내에 대기하라"는 방송을 지시하고 2등 항해사는 방송시스템 전원 버튼을 누르고 방송을 시도했지만, 비상 버튼을 누르지 않아 선내 방송은 이뤄지지 않았다. 2등 항해사는 사무장, 매니저에게 침몰 상황은 알리지 않은 채 '선내 대기' 방송을 하도록 했다. 조타실에 있던 선원들은 오전 9시 제주 VTS로부터 퇴선 준비를 하라는 교신을 듣고도 승객들에게 준비 안내를 하지 않았다.
오전 9시 13분, 21분, 23분 인근에 구조 선박들이 대기하고 있다는 교신도, 24분 "승객들에게 구명동의와 두꺼운 옷을 입도록 조치하라"는 교신도, 25분 "선장이 판단해서 인명 탈출 시키라"는 교신도 묵살했다.
[사진] 전남도 어업지도선이 지난달 29일 공개한 세월호 침몰 당시 승객들의 구조장면. 왼쪽으로 완전히 기운 선체 난간에 매달린 승객, 바다에 몸이 잠긴 채 선체 구조물을 잡고 머리만 내놓은 승객, 구명조끼조차 입지 않고 바다에 빠진 승객 등 침몰당시 승객들의 구조장면이 적나라하게 담겨있다.
오전 9시 34분 세월호의 침수한계선인 D데크(1층)까지 물이 차오르자 선원들은 3분 뒤 교신을 끊었다. 탈출 시점으로 수사본부는 보고 있다. 그 사이 5층 조타실, 3층 기관부 선실, 가장 아래층인 선저의 기관실에 있던 선원들은 일사불란하게 움직여 구조를 기다리다가 해경 123함에 오전 9시 39분과 46분 나눠 탔다.
◇ 오전 10시 17분까지 승객들은...
세월호는 오전 8시 52분 30도가량, 9시 21분 45도 이상, 34분 52.2도, 40분 55.3도, 46분 61.2도, 10시 9분 73.8도로 기울다가 17분에는 90도를 넘어 108.1도로 기울어 전복이 진행됐다. 오전 8시 52분부터 한 시간동안 승객들은 모두 7차례의 '선내 대기' 방송만 들었다. 사고 상황이나 대피 요령 등에 대한 안내는 없었다. 선원들이 떠난 뒤 승객들은 공포에 휩싸였다.
선체가 55.4도 기울었던 오전 9시 41분 한 승객은 "아 진짜 보고싶어 ㅜㅜ 엄마 ㅜㅜ, 진짜 무서워 ㅜㅜㅜ, 창문 바로 앞에 컨테이너 떠내려가고 있어, 방송도 안해줘, 걍(그냥)가만히만 있으래"라고 카카오톡 메시지를 보냈다. 오전 9시 42분 휴대전화 배터리가 닳는 것을 걱정하는 메시지도 있었다. 또 다른 승객은 "아빠가 속보 떴다고, 배터리 닳는다고, 지피에스 켜놓고…"라는 메시지를 보냈다. 선원이 아닌 가족과의 연락으로 침몰 상황을 들었던 것으로 보인다. 마지막 메시지는 오전 10시 17분 "지금 더 기울어"라는 내용이었다. [sangwon700@yna.co.kr]
"살아야겠다고만 생각했다"… 승무원들 제 살 도리만(종합)
[연힙뉴스] 2014/05/15 16:48 송고
[사진] 지난달 16일 침몰한 세월호 선원들이 해경 경비정으로 탈출하고 있는 모습.
<세월호참사> "살아야겠다고만 생각했다"…승무원들 제 살 도리만(종합)
수사본부 "물 차오르는 사실 알고 탈출하기로 결심"
구조 쉽도록 소방호스 연결하고 기다려
(목포=연합뉴스) 특별취재팀 = "살아야겠다는 생각만 했다."
수많은 승객과 다친 동료를 외면하고 침몰하는 세월호에서 가장 먼저 탈출한 승무원들의 변명이다. 배를 버리고 달아나면 수백명의 승객이 숨질 수 있다는 점을 알고서도 이들이 탈출을 감행한 것으로 15일 검경 합동수사본부는 판단했다.
승무원들이 차분하게 구조를 기다리는 사이에 수백명의 승객들과 동료 승무원들은 "대기하라"는 지시를 받고 침몰하는 배에 머무르다가 결국 빠져나오지 못했다. 승무원들은 신분을 숨기기 위해 옷까지 바꿔입었고 사고 발생 후 행태가 드러난 뒤에도 변명에만 열을 올렸다.
◇ "물 차오르기 전에 탈출하자"
지난달 16일 오전 8시 30분 세월호가 급변침 후 왼쪽으로 급격히 기울기 시작하자 선장 이준석(69)씨와 기관장 박모(54)씨, 승무원 7명은 조타실로 모였다. 이들은 침수 한계선(배의 2층 높이)까지 물이 차오르는 사실을 알고 탈출을 결심했다. 침수 한계선을 넘으면 침수가 급격하게 진행돼 탈출이 어려워진다. 침수가 시작되면 대부분 여닫이 문인 선실의 문들이 수압으로 열리지 않을 것을 우려한 때문이다. 선장 이준석(69)씨는 사고 발생 전 10여분 간 침실에 갔다가 조타실로 복귀했다.
[사진] 세월호 선장 이준석(69)씨, 3등 항해사 박모(25·여)씨, 조타수 조모(55)씨가 지난달 27일 오후 검찰로 송치되고 있다. 사진 오른쪽 첫번째부터 이준석 선장, 조모씨, 박모씨.
국내에서 물살이 두번째로 세다는 맹골수도 운항을 지휘해야 했지만 3등 항해사에게 맡기고 자리를 비웠다.
기관장 박씨도 기관실에 있는 기관부원에게 탈출을 지시하고 조타실을 떠났다. 오전 9시 6분 진도 해상교통관제센터(VTS)에 구조 요청을 하는 사이에 기관장 박씨와 기관부원 6명은 전용 통로를 이용, 3층 승무원실 앞 복도에 일사불란하게 모였다.
배가 50도 이상 기울었을 당시 기관부원들은 오전 9시 36분 가장 먼저 도착한 해경 구조정에 올라탔고 이어 오전 9시 48분 조타실에 있던 선장 등 승무원 8명도 경비정에 올라타고 탈출을 완료했다. 진도 해상교통관제센터(VTS)에서 상황을 물었지만 대답하는 승무원은 없었다. 이들은 조타실과 승무원실을 오가며 승객들에게 퇴선 명령을 내리지 않았다. 선체 곳곳에 방송 설비, 전화기, 비상벨, 무전기가 있었지만 어느 장비 하나도 사용하지 않았다.
구조정 도착을 잘 알 수 있는 조타실과 복도에서 기다리던 이들 승무원은 기운 선체에서 쉽게 빠져나가기 위해 소방호스까지 몸에 묶고 대기하고 있었다. 신분을 감추기 위해 승무원실로 다시 돌아가 제복을 벗고 다른 옷으로 갈아입는 여유까지 부렸다. 탈출하면서 바로 옆에는 구명벌이 놓여 있었지만 눈길도 주지 않았다.
[사진] 세월호 침몰 사고 당일 목포해경 대원들이 세월호 승객을 구조하는 모습.
기관부원들은 동료 승무원인 조리원 2명이 다쳐 움직이지 못하는 것을 목격하고도 외면한 것으로 드러났다. 조리원 모두 실종 상태다. 구조정을 타고 육지에 닿을 때까지 해경에게 구호 조치를 취해달라는 요청도 거의 하지 않은 것으로 밝혀졌다.
◇ 구호 조치 없이 회사에 보고만… 최소한의 안전 의식도 없어
승무원들은 사고를 감지하고 탈출하기까지 휴대전화로 선사인 청해진해운과 6차례 통화했다. 1등 항해사 강모(42)씨는 선사와 5차례 통화했고, 선장 이씨도 35초간 통화하며 사고 사실을 알렸다. 이들은 선사에 보고하면서도 구호 조치는 전혀 하지 않았다.
이들은 매니저 강모(33)씨에게 "그 자리에 대기하라"는 방송을 내보내도록 지시하고 다른 조치 없이 배를 먼저 떠났다. 승무원들은 출항 전 인천항 운항관리실에 '배 안전에 문제가 없다'는 요지의 안전 점검 보고서를 허위로 제출했다. 보고서에는 화물 적재, 구명장비, 평형수 상태가 모두 양호한 것으로 기재됐다.
[사진] 전남도 어업지도선이 지난달 29일 공개한 세월호 침몰 당시 승객들의 구조장면.
짙은 안개로 사고 전날인 15일 오후 9시 출항했지만 실제와 다른 오후 6시 30분으로 기재됐다. 여객 명부도 첨부되지 않아 정확한 승선 인원조차 파악하기 힘든 상태였다. 승무원들은 안전 교육조차 제대로 받은 적이 없는 것으로 드러났다.
◇ 승객과 동료 승무원 "그대로 있어라" 지시만 믿고 기다려
선내에는 승무원들의 지시로 "그 자리에 대기하라"는 방송이 흘러나오고 있었고 승객들은 침몰하는 배에서 구조만을 기다렸다. 오전 9시 38분 한 승객이 "해경이 왔다. 움직이면 안 된다. (언론에)속보 떴다"는 카카오톡 메시지를 보낸 사실이 확인됐다.
승객들은 오전 10시 17분 배가 90도 이상 기울 때까지 그대로 머무르다가 결국 빠져나오지 못했다.
승무원들은 퇴선 명령을 내리지 않고 가장 먼저 도착한 구조정에 올라타고 탈출을 완료했다.
승무원들의 지시로 승객과 함께 배에 머무른 서비스직 승무원들은 승객들을 구하려다가 대부분 숨지거나 실종됐다.
[사진] 전남도 어업지도선이 공개한 영상에 왼쪽으로 완전히 기운 선체 난간에 매달린 승객, 바다에 몸이 잠긴 채 선체 구조물을 잡고 머리만 내놓은 승객, 구명조끼조차 입지 않고 바다에 빠진 승객 등 침몰당시 승객들의 구조 모습이 담겨 있다.
탑승한 승무원 33명 가운데 선박직원 8명을 포함한 주요 승무원 15명은 모두 생존했다. 서비스직 승무원 18명 중 8명만 구조됐고 6명은 숨졌으며 4명은 실종 상태다.
◇ 변명에 책임 회피, 수사관 집과 모텔에 함께 머무르기도
팬티 차림으로 먼저 탈출한 선장 이씨는 "승객들에게 퇴선 명령을 내렸다. 먼저 내리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1등 기관사 손모(57)씨는 "먼저 탈출하려고 하지 않았다. 방송을 듣고 대기하다가 배가 침수되고 완전히 넘어가기 직전 상황을 판단하기 위해 내려갔다가 탈출했다"고 해명했다. 1등 항해사 신모(34)씨와 2등 항해사 김모(47)씨는 퇴선 명령을 내렸다고 주장했다.
신씨와 조타수 조모(55)씨는 "조타기가 평소보다 많이 돌았다. 조타기가 고장났을 수도 있다"고 해명했지만 기기 고장은 없는 것으로 밝혀졌다. 선장 이씨는 피의자 신분으로 유치장이 아닌 수사관 직원의 아파트에서 머물렀다. 다른 승무원들은 수사 당국이 신병을 확보하기까지 한 모텔에서 함께 머문 것으로 확인됐다. 수사가 본격적으로 시작되면서 주요 질문에는 대답을 회피하고 비슷한 답변을 늘어놔 '입을 맞췄다'는 의혹을 받았다. [cbebop@yna.co.kr]
부작위 살인죄 인정될까.. 과거 판례는?
한국일보 | 정재호기자 | 입력 2014.05.16 03:39
1970년 남영호, 살인 기소 불구 과실치사만 적용
아이 방치 사망 후 적극 은폐엔 살인 고의성 인정
선원 4명의 방치 결심을 객관적으로 증명해야
검찰이 세월호 선장 이준석(69)씨 등 주요 선원 4명에게 적용한 살인죄가 과연 법원에서 인정될까. 검ㆍ경 합동수사본부의 수사를 통해 드러난 이들의 사고 이후 행적은 '그들은 악마였다'는 비난이 나올 정도로 충격적이지만, 재판에서 살인죄, 특히 부작위(不作爲)에 의한 살인죄를 의심의 여지가 없을 정도로 입증하는 것이 그리 쉽지는 않다.
과거 부작위에 의한 살인죄로 기소된 사건 중 세월호 참사와 상황이 유사한 사건은 찾기 어렵다. 결국 기존 판례들에서 일부를 추출해 참고하고, 검찰이 여러 상황을 가정해 면밀한 입증을 해야 한다는 조언이 나오고 있다. 1970년 기상악화 상황에서 발생한 남영호 침몰 사고(321명 사망, 선장 등 13명 구조) 당시 선장이 살인죄로 기소됐으나 법원은 과실치사상죄만 인정해 징역 2년 6월을 선고했다. 법원은 과적으로 인해 살인을 의도했다는 공소사실에 대해 "선장이 죽음을 무릅쓰고 사고 발생을 예견하면서까지 과적 운항을 했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살인죄 성립의 주요 요건인 '고의성'을 인정하지 않은 것이다.
세월호 참사의 경우 남영호 사건처럼 사고 원인이 아니라 사고 이후 승객들 구호 조치를 하지 않고 탈출한 것에 대해 살인죄를 적용했기 때문에 법원의 판단은 다를 수 있다. 사고 이후 추가적인 은폐 행위를 '고의성'의 주요 증거로 채택한 판례도 참고할 만하다. 서울고법은 2006년 치료비를 걱정해 호흡곤란 증세의 6세 아이를 방치해 숨지게 한 혐의로 기소된 최모(49)씨에 대해 "피해자의 사망 이후 친지나 자원봉사자에게 이를 알리지 않고 오히려 적극적으로 피해자의 소재를 감춘 행위 등을 봤을 때 살인의 고의성이 넉넉히 인정된다"며 유죄를 선고했다.
마땅히 해야 할 행위를 하는 '작위 의무'의 범위에 대해서도 법원의 판단은 엄격하다. 인천지법은 2003년 과거 내연관계였던 여성이 독극물을 마시는 것을 방치해 숨지게 해 살인죄로 기소된 박모(58)씨에게 유기치사죄만 적용해 징역 3년을 선고했다. 당시 재판부는 "부작위 살인죄가 적용되기 위해선 단순히 도덕상 종교상의 의무로 작위의무를 판단하는 것이 아니라, 법적인 의무가 있는지 여부를 살펴봐야 한다"고 밝혔다.
법학계에선 고의성을 인정하려면 '사망에 이를 수 있다는 상황을 인식하는 것'에서 더 나가 당시 상황을 그대로 내버려두기로 '결심'했다는 점이 객관적으로 증명돼야 한다고 보고 있다. 한 형사합의부 부장판사는 "이번 재판의 유무죄는 검찰이 이 선장 등의 행위와 고의적인 결심을 어떻게 효과적이고 객관적으로 연결하느냐 여부에 달려있다"라며 "선장 등이 '나도 죽을 수 있는 상황이라 아무 생각이 없었다'고 적극적으로 주장할 경우에 대비해 검찰이 여러 반박 카드를 준비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조언했다.
검찰 고위간부 출신의 변호사는 "사고 직후 스스로 배 밖으로 나와 구조된 승객들이 있는 점을 고려하면, 사망자 가운데 탈출을 시도하는 과정에서 다른 요인으로 숨진 사람도 있었을 것으로 예상된다"며 "어렵겠지만 검찰이 이런 추가 행동으로 숨진 희생자들을 제외하고 이 선장 등의 행위로 직접 사망했다고 추정되는 인원을 정확히 특정해야만 재판부의 유죄 선고를 이끌어 낼 수 있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정재호기자 next88@hk.co.kr]
사고 31일째..잊혀질까 두려운 실종자 가족
뉴시스 | 변해정 | 입력 2014.05.16 11:36 | 수정 2014.05.16 11:55
진도=뉴시스】변해정 기자 = 세월호 침몰사고 31일째인 16일 오전 실종자 가족이 머무는 팽목항은 적막감마저 감돈다. 희생자 수습 작업이 거듭되면서 사고 발생 초기 1000명을 넘어섰던 직계 가족이 40여명도 채 남지 않은 상태다. 스승의 날이었던 전날(15일) 시신 3구가 추가 수습된 터라 이날 이른 아침 팽목항을 떠날 채비를 하는 희생자 가족들의 모습이 눈에 띄기도 했다.
자원봉사자 수도 가장 많이 방문했던 지난달 20일(2350명)과 견줘 6분의 1 수준으로 급감했다. 지난 15일 진도 실내체육관과 팽목항에서 봉사활동에 나선 자원봉사자는 386명이었다. 사고 이후 한 달이 넘도록 피붙이를 찾지 못해 하염없는 기다림을 반복하는 실종자 가족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무관심'이다. 사회의 관심에서 멀어지게 되면 탐탁지 않았던 정부의 지원마저 끊길 수 있다고 생각해서다.
지난 15일 정부 측이 진도 실내체육관을 비우고 팽목항으로 옮길 것을 제안했다가 실종자 가족들의 거센 항의를 받았고, 오후에는 사고 해역에서 작업 중이던 바지선 '미래호'가 철수했지만 16일 오전까지 대체 인력이 투입되지 않아 공분을 사고 있다. 일부 실종자 가족들은 미래호 철수에 반발, 진도군청 항의 방문을 위해 이날 오전 10시께 팽목항을 떠났다.
한 아버지는 "이곳(팽목항)과 체육관이라도 지키고 있으니깐 그나마 관심받고 있는 것이다. 우리 아이들을 돈과 맞바꿀 생각이 아니라면 수색 작업에 공백을 둬선 안된다"고 성토했다. 또다른 아버지는 "어제(15일) 오후 가족 브리핑때 참석한 이주영 해양수산부 장관도 바지선 철수에 관한 사전 설명은 전혀 하지 않았다"고 불만을 표했다. 김익한 명지대 교수는 "피해자 가족들이 제일 두려워하는 것은 잊혀지는 것"이라고 전했다.
한편 실종자 가족들의 체류환경 개선을 위해 이동식 조립주택 10개동이 이날 오후께 설치될 예정이나 이를 두고도 뒷북지원이란 이야기가 많다.
현재 5개동이 도착한 상태로, 설치 장소를 놓고 정부 당국자와 가족들이 논의 중에 있다. 조립주택은 '3m×6m' 규모로, 내부에는 TV 등 간단한 편의시설이 지원된다. [hjpyun@newsis.com]
"어느덧 한 달... 나만 가족을 못 찾으면 어쩌죠..."
한겨레 | 입력 2014.05.16 11:10 | 수정 2014.05.16 20:20
[한겨레]르포 l 지치고 지친 '실종자 가족들'
며칠째 궂은 날씨다. 비가 오지 않으면 바람이 사정없이 불고, 때로는 비바람이 함께 몰아친다. 14일도 마찬가지였다. 기상청 일기예보에서는 분명 남부 지역에 초여름 더위가 찾아온다고 했는데, 전남 진도군 진도읍 동외리의 야산 기슭에 자리잡은 진도체육관 주변은 음산하기 짝이 없었다. 부슬부슬 흩뿌리는 빗방울이 기다리는 사람의 가슴에 시리게 맺혔다.
"내 아들 맞는 줄 알았는데…"
해질 무렵, 아침 일찍 진도군 임회면 팽목항으로 떠난 순환버스가 돌아왔다. 진도체육관 입구의 왼쪽과 오른쪽에서 비 구경을 하던 이들의 눈길이 일제히 버스 쪽으로 쏠렸다. 어두운 표정의 40~60대 남녀 10여명이 무거운 발걸음으로 말없이 버스에서 내렸다. 남아 있는 실종자 23명(15일 오후 현재 실종자는 20명)의 가족 가운데 일부다. 지켜보고 있던 한 남성은 "하아" 긴 한숨을 토해내며 등을 돌렸다.
"아들 맞는 줄 알았는데…. 이번에는 맞는 줄 알고 갔거든. 비슷하길래 봤더니 아니야…."
지난달 16일 침몰한 세월호에서 아직 아들을 찾지 못한 아버지 ㄱ씨는 금방이라도 울 것 같았다. 철 지난 겨울 점퍼에 가려진 그의 가슴이 왜소해보였다. 진도 앞바다에 가라앉은 세월호에는 경기도 안산 단원고 학생 325명이 타고 있었다. 사고 당시 목숨을 건진 학생은 75명이다. 234명은 숨진 채 가족의 품에 안겼다. 이날까지 여전히 생사를 알 수 없는 학생이 16명이다. 그 가운데 한 명이 ㄱ씨의 아들이다. 마침 이날 오전 세월호에서 주검 5구를 추가로 건져냈다는 소식에 ㄱ씨는 팽목항을 찾았더랬다. 또다른 실종자 가족 ㄴ씨가 옆에서 위로의 말을 건넸다.
진도체육관에는
술로 기다림의 고통을 잊기 전까지
잠 못드는 가족도 있다
ㄴ씨는 요즘 안주도 없이
하루에 소주 5병…
천막 덧댄 팽목항 숙소는
비가 새고 습기도 찬다
그런데도 20여명이 한 달째…
"좀더 가족과 함께 있는
기분을 느끼는 것 같습니다"
"기다려봐요, 곧 나오겠지..."
"같은 반 친구들은 다 찾았는데, 그 녀석만 안 나오니까 그러지."
"…."
15일로 세월호 침몰 사고 한달째를 맞았다. 제주도로 수학여행을 떠나던 단원고 학생 325명 등 모두 476명(잠정 집계)이 타고 있던 세월호가 침몰한 2014년 4월16일 오전. 희생자 가족의 시간은 거기서 멈췄다. 특히 사고 한달째가 되도록 주검으로도 나타나지 않고 있는 '실종자' 20명의 가족은 시간제한 없는 기다림과 사투를 벌이고 있다. 권오복(60)씨는 "살면서 그 무엇이든 이렇게 간절한 마음으로 기다려본 적은 절대 없다"고 말했다. 권씨는 '절대'라는 말을 두번 힘주어 반복했다.
권씨의 동생 재근(51)씨는 지난달 16일 부인 한윤지(29)씨와 아들 혁규(6)군, 딸 지연(5)양을 모두 데리고 제주도로 이사를 떠나던 중 사고를 당했다. 세월호 사고에서 살아남은 사람은 네 식구 가운데 지연이 혼자다. 지연이의 엄마 한씨는 지난달 23일 숨진 채 발견됐다. 권씨의 동생과 큰조카는 여전히 세월호와 함께 진도 앞바다에 가라앉아 있다. 권씨는 "나는 (동생과 조카) 다 찾아야 올라가니까, 걱정이 더 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14일 저녁 봄비를 피해 진도체육관 안으로 들어가던 그가 혼잣말처럼 읊조렸다.
"오늘 찾을까, 내일 찾을까 하며 기다리다보니 벌써 한달이 되어버렸네…."
잔인한 기다림이다. 내 아들, 딸은 반드시 살아서 나타나리라는 믿음도 사고 한달째에 접어들며 거의 사그라졌다. 팽목의 바다를 향해 함께 서러움을 토하던 동료 가족의 빈자리가 하나둘 늘어갈 때, 남겨진 자의 가슴에는 뻥뻥 구멍이 뚫렸다. 기적을 바라는 마음이 줄어드는 공간만큼, 혼자 남아 잊혀질지 모른다는 불안감이 똬리를 틀었다. 권씨는 "아무래도 내가 가장 마지막까지 남는 건 아닐까, 나만 가족을 찾지 못하는 건 아닐까, 이런 게 신경이 쓰인다"고 토로했다.
기다림이 길어질수록 깊어지는 불면의 밤도 남겨진 가족을 괴롭힌다. 15일 현재, 20여명의 실종자 가족이 숙식을 의지하고 있는 진도체육관은 자정 무렵 불을 끈다. 체육관 아래에서 관중석 쪽으로 향하는 일부 조명만 켜놓는다. 어둠이 내리고 밤이 깊어져도 두 다리 뻗고 편히 잘 수 있는 실종자 가족은 없다. 술로 기다림의 고통을 마취하기 전까지 잠들지 못하는 실종자 가족도 여럿이다.
깊어지는 불면의 밤
ㄴ씨는 요즘 안주도 거의 없이 하루에 소주 5병 넘게 폭음을 하는 경우가 잦아졌다. 그의 낯빛은 하루가 다르게 검게 변하고 있다. "잠이야 잠이 오면 자는 거죠. 술에 취해 여기저기 쓰러져 있으면 동료 가족이 데리고 들어가 재우기도 하고, 그렇습니다. 여기는 잠자고 일어나는 시간이 따로 정해져 있는 그런 곳이 아니에요." 지난 12일 오후 팽목항에서 만난 ㄴ씨는 똑바로 걷지 못했다. 한낮의 태양이 ㄴ씨의 뒷모습을 가만히 비췄다. ㄴ씨와 친한 권오복씨도 하루 평균 소주 1병 이상 마시지 않으면 잠을 이루지 못한다.
열악한 주거환경도 문제다. 냉난방 및 실내공기 순환 설비가 어느 정도 갖춰진 진도체육관은 팽목항 임시 숙소보다는 그나마 나은 편이다. 천막을 덧대어 지은 팽목항 숙소는 사람이 오래 머물기에는 적절하지 않다. 그런데도 20여명의 실종자 가족은 상대적으로 더 불편한 팽목항 숙소를 한달째 고집하고 있다. 15일 여전히 진도에 머물고 있는 실종자 가족 40여명의 절반에 해당한다. 사고 지점에서 조금이라도 더 가까운 곳에 머물고 싶다는 바람 때문이다.
"지내기야 체육관이 더 낫죠. 여기는 비도 새고 습기도 많이 올라와 불편하거든요. 비가 오지 않으면 너무 더우니까 쉽게 지치고요. 그래도 몇몇 가족은 팽목항 숙소에 있으면 좀더 가족과 함께 있는 기분을 느끼는 것 같습니다. 가족을 그리워하는 마음이 이쪽으로 끌어당기는 것이죠." 15일 오전 팽목항을 찾은 김형기 세월호 가족대책위원회(대책위) 부위원장이 말했다.
범정부 사고대책본부는 사고 한달째가 됐는데도 수색 작업의 끝이 보이지 않자 이곳 팽목항에 이동식 조립주택을 설치하겠다고 밝혔다. 대책본부는 15일 오전 진도군청에서 열린 정례 브리핑에서 "실종자 가족의 체류 환경 개선을 위해 가족들의 의견을 들어 팽목항에 이동식 조립주택을 설치하기로 했다"고 말했다. 정부는 20일까지 먼저 10개동의 조립주택을 설치한 뒤 이를 실종자 가족의 임시 숙소로 제공할 예정이다.
가족들이 원하는 건 오직 하나
빨리 만나고 싶다는 것
"바라는 건 다른 거 없다
첫째도 구조 소식
둘째도 구조,
셋째도 구조…"
"미친 XX, 여기는 뭣하러 찾아와"
세월호 사고와 관련한 정치권의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14일 국회에서는 세월호 참사 현안보고가 열렸고, 15일에는 6·4 지방선거 후보 등록이 시작됐다. 14일 오후 서울시장 선거에 뛰어든 박원순·정몽준 두 후보의 진도 방문을 시작으로 상당수 선거 출마자의 진도 방문이 이어질 것 같다. 같은 날 열린 국회 안전행정위원회의 세월호 현안보고에서는 여야 의원 모두 주무 부처인 안전행정부 비판에 힘을 모았다. 일부 여당 국회의원은 강병규 안전행정부 장관을 질타하며 자리를 박차고 나가는 모습을, 야당 의원은 세월호 참사와 관련한 정부의 무능한 대응을 되짚으며 울먹이는 장면을 보였다.
여당 의원의 장관 질타와 야당 의원의 눈물은 언론이 주목한 '뉴스'였지만, 남겨진 실종자 가족의 반응은 달랐다. 이날 진도체육관 바깥에 설치된 대형 티브이로 이 장면을 지켜보던 한 실종자 가족은 "선거용 쇼"라며 혀를 찼다. 말없이 지켜보던 다른 가족의 표정도 밝지 않았다.
세월호 실종자 가족이 바라는 건 당장의 편안한 잠자리와 눈에 띄는 일회성 관심이 아니다. 진도에 잊혀진 채 버려지지 않는 것, 그래서 빨리 가족을 되찾겠다는 것이 이들의 한결같은 바람이다. 이어지고 있는 정치인의 진도 방문에 대해 실종자 가족 ㄴ씨는 13일 "구체적인 재발 방지 대책 등 실종자 가족한테 실질적인 힘이 되는 메시지 없이, 그냥 잠깐씩 왔다 가는 방문에는 별로 관심이 없다"고 말했다.
세월호 사고 한달째를 맞은 15일 오후, 민관군 합동구조팀이 세월호 선체에서 주검 3구를 추가로 수습해 이제 남겨진 실종자 수는 20명으로 줄었다. 진도에 남겨진 실종자 가족도 그에 비례해 당연히 줄어들지 모른다. 이와 관련해 세월호 가족대책위원회는 이날 오전 팽목항 대합실에 마련된 세월호 가족지원실에서 회의를 열었다. 대책위는 회의 결과 수색 작업이 완전히 끝날 때까지 대책위 임원단 일부를 팽목항에 상주시키기로 했다. 회의에 참석한 한 실종자 가족은 "누가 마지막까지 남을지 모르는 상황이라, 임원단을 비롯한 모든 세월호 희생자가 남겨진 실종자 가족과 끝까지 함께하겠다는 뜻"이라고 말했다. [진도/최성진 기자csj@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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