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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문학·설화

[가을에 쓴 詩] '가을의 노래' - 이해인 작

잠용(潛蓉) 2014. 9. 24. 09:41


 

'가을의 노래' / 이해인


가을엔 이 되고 싶어요
소리를 내면 비어 오는
사랑한다는 말을
흐르며 속삭이는 물이 되고 싶어요.

 

가을엔 바람이고 싶어요
서걱이는 풀잎의 의미를 쓰다듬다
깔깔대는 꽃 웃음에 취해도 보는
연한 바람으로 살고 싶어요.

 

가을엔 풀벌레이고 싶어요
별빛을 등에 업고
푸른 목청 뽑아 노래하는
숨은 풀벌레로 살고 싶어요.

 

가을엔이 되고 싶어요
가지 끝에 매달린 그리움 익혀
당신의 것으로 바쳐 드리는
불을 먹은 감이 되고 싶어요. 

 

 

'가을 노래' / 이해인

 

하늘은 높아가고
마음은 깊어가네
 
꽃이 진 자리마다
열매를 키워 행복한
나무여, 바람이여
 
슬프지 않아도
안으로 고여오는 눈물은

그리움 때문인가 

 

가을이 오면 
어머니의 목소리가 가까이 들리고
멀리 있는 친구가 보고싶고 
죄 없이 눈이 맑았던
어린 시절의 나를 만나고 싶네.
 
친구여, 너와 나의 사이에도
말보다는 소리없이 강이 흐르게
이제는 우리
더욱 고독해져야겠구나
 
남은 시간 아껴 쓰며
언젠가 떠날 채비를
서서히 해야겠구나
 
잎이 질 때마다
한 움큼의 시(詩)들을 쏟아내는

나무여, 바람이여

영원을 향한 그리움이
어느새 감기기운처럼 스며드는 가을
 
하늘은 높아가고 
기도는 깊어가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