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Premature Burial'
(생매장 1850)
by Edgar Allan Poe
[Part 1]
THERE are certain themes of which the interest is all-absorbing, but which are too entirely horrible for the purposes of legitimate fiction. These the mere romanticist must eschew, if he do not wish to offend or to disgust.
소설 중에는 흥미는 모조리 포기해버리고 오로지 합리적인 가설을 위한 목적으로 완벽한 공포로만 이루어진 테마가 있다. 이런 테마는 그가 독자들의 감정을 상하게 하거나, 지긋지긋하게 하기를 원치 않는다면 단순한 낭만주의는 피해야 한다.
They are with propriety handled only when the severity and majesty of Truth sanctify and sustain them. We thrill, for example, with the most intense of "pleasurable pain" over the accounts of the Passage of the Beresina, of the Earthquake at Lisbon, of the Plague at London, of the Massacre of St. Bartholomew, or of the stifling of the hundred and twenty-three prisoners in the Black Hole at Calcutta.
그런 테마는, 엄격하고 신성한 진리를 가지고 그들을 떠받칠 때만 적절한 처리가 되는 것이다. 예를 들면, 우리는 성 바톨로뮤의 대학살에 대해, 런던의 전염병에 대해, 리스본의 지진에 대해, 베레자나의 통로의 사건(1812년 베레지나 강에서 나폴레옹의 러시아원정 실패에 대한 사건)을 통해 "즐거운 고통"의 가장 강렬함으로 전률한다. 또는 캘커타의 블랙 홀에서 일어난 123명의 죄수들의 질식사에 대헤서도.
But in these accounts it is the fact -- it is the reality -- it is the history which excites. As inventions, we should regard them with simple abhorrence.
그러나 이런 사건들 중에서 독자를 흥분시키는 것은 바로 그 사실이고 -- 진실성이고 -- 그 역사성이다. 발명가와 같이 우리는 단순한 혐오감으로도 그들을 존경해야만 한다.
I have mentioned some few of the more prominent and august calamities on record; but in these it is the extent, not less than the character of the calamity, which so vividly impresses the fancy. I need not remind the reader that, from the long and weird catalogue of human miseries, I might have selected many individual instances more replete with essential suffering than any of these vast generalities of disaster.
나는 역사기록 중에서 특별히 더 눈에 띄고 지긋지긋한 재난의 일부에 대해서만 언급했다; 그러나 이들 중에서 그 상상만으로 생생한 영향을 주는 것은 그 재앙의 성격에 못지 않게 그 그 재앙의 정도(범위)이다. 나는 독자에게 생각나게 할 필요를 느끼지 않는다. 인간 불행의 길고 불가사의한 카탈로그에서, 나는 재난의 막연한 보편성보다 중요한 고통을 더 많이 구비한 개별적인 사례를 얼마든지 고를 수가 있기 때문이다.
The true wretchedness, indeed -- the ultimate woe -- is particular, not diffuse. That the ghastly extremes of agony are endured by man the unit, and never by man the mass -- for this let us thank a merciful God! To be buried while alive is, beyond question, the most terrific of these extremes which has ever fallen to the lot of mere mortality.
참으로 진정으로 비참한 것은, - 궁극적인 재앙은 - 특별함이지 널리 퍼뜨림이 아니다. 고집, 확산하지. 고통의 무시 무시한 극단적는 결코 남자 질량, 사람 단위로 영속되는 -이 점에서 우리는 자비로운 하나님께 감사드리자! 살아 있는채로 매장되는 것은 의문의 여지 없이, 여러가지 죽을 운명에 빠진 극단 중에서도 가장 소름끼치는 일이다.
That it has frequently, very frequently, so fallen will scarcely be denied by those who think. The boundaries which divide Life from Death are at best shadowy and vague. Who shall say where the one ends, and where the other begins? We know that there are diseases in which occur total cessations of all the apparent functions of vitality, and yet in which these cessations are merely suspensions, properly so called.
그런 것을 생각하는 생각하는 사람들이 아무도 부정하지 않을 만큼 그것은 자주 일어나는, 매우 자주 일어나는 일이다. 삶과 죽음을 나누는 경계선은 기껏해야 그림자와 모호함이다. 누구가 각각의 끝이 어디라고 말할 수 있는가? 그리고 어디가 시작이라고? 우리는 어떤 질병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 병은 모든 생명력이 외견상 기능들은 중지(中止)가 일어나지만, 그러나 이런 중지는 소위 말하는 단순히 "알맞게 정지(停止)"했다는 것이다.
They are only temporary pauses in the incomprehensible mechanism. A certain period elapses, and some unseen mysterious principle again sets in motion the magic pinions and the wizard wheels. The silver cord was not for ever loosed, nor the golden bowl irreparably broken. But where, meantime, was the soul?
그들은 단지 이해할 수 없는 메커니즘에 의해 일시적으로 중지한 것 뿐이다. 일정 기간이 경과하면, 어떤 보이지 않는 신비한 원리가 다시 마법의 톱니바퀴를 움지이게 하고 마법사의 수래바퀴는 돌아가게 된다. 실버코드(은줄, 모자 사이의 생명의 유대)는 결코 느슨해지지도 않았고, 황금그릇은 복구할 수 없을 정도로 깨어지지도 않았다. 그러나 한편, 영혼은 어디에 있었는가?
Apart, however, from the inevitable conclusion, a priori that such causes must produce such effects --that the well-known occurrence of such cases of suspended animation must naturally give rise, now and then, to premature interments --apart from this consideration, we have the direct testimony of medical and ordinary experience to prove that a vast number of such interments have actually taken place.
그러나, 그런 원인에서는 반드시 그런 결과를 초래한다는 이전의 불가피한 결론과는 별도로 즉 -- 잘 알려진 인사불성 경우의 발생은 생매장에서 때때로 자연스럽게 일어날 수 있다. 이러한 생각과는 별도로 우리는 그런 매장이 실제로 일어난다는 것을 입증하는 방대한 수의 의료적 및 일반적 경험의 직접 증거들을 가지고 있다.
I might refer at once, if necessary to a hundred well authenticated instances. one of very remarkable character, and of which the circumstances may be fresh in the memory of some of my readers, occurred, not very long ago, in the neighboring city of Baltimore, where it occasioned a painful, intense, and widely-extended excitement.만일 충분히 많은 사람등의 확증된 사례가 필요하다면, 나는 즉시 언급할 수 있다. 매우 주목할만한 성격의 사건 하나를, 그리고 그 사건의 상황에 대해서, 나의 일부 애독자들은 자신의 기억에 신선함을 줄 수가 있을 것이다. 그 사건은 별로 오래 되지 않아서 볼티모어 시의 이웃 마을에서 일어났다. 그것은 고통스럽고, 강렬하게, 그리고 광범위한 흥분을 야기시켰다. [2부에 계속]
Rain and thund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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