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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대사 피격] 가해자 '김기종'이 의사(義士)? 약력과 관련 동영상

잠용(潛蓉) 2015. 3. 7. 10:12

김기종(金基宗 1959~ )

 

(아래 문서는 최근의 사건에 대한 것으로, 사건이 나아간 상태에 따라 내용이 바뀔 수 있습니다. 따라서 정확한 내용이고 신뢰할 수 있는 출처에 기초하였는지 충분히 검토하고 편집해 주시기 바랍니다 - 위키백과)

 

(김기종이 운영하는 우리마당 카페 사이트)

 

김기종(金基宗, 1959년 ~ )은 문화운동단체인 '우리마당' 대표이다. 1959년 전라남도 강진군 군동면 쌍덕리에서 태어나 광주광역시에서 성장했다. 1978년 금호고등학교, 1984년 성균관대학교 법률학과를 졸업하고, 숭실대학교 통일정책대학원에서 남한사회 통일문화운동의 과제로 석사논문을 썼다. 1997년부터 2007년까지 성공회대학교 교양학부의 외래교수를 지냈다.

 

1980년대에 국악모임 ‘한가락’, 극회 ‘벽돌’ 등을 창립하며 문화계에서 활동했다. 그가 소속된 우리마당은 1982년 당시 성균관대 법대 재학 중이던 김기종의 주도로 6개 소모임이 <7천만이 '우리'되어 전 반도를 '마당'으로 만들자>는 뜻으로 꾸려졌다. 1983년 10월에 <우리마당>이라는 이름으로 공식 활동을 시작했고 1984년 3월에 서울 서대문구 창천동에 사무실 공간을 마련했다.

 

이후 연극 공연, 국악 강좌, 탈춤·풍물 교실, 문예 심포지엄을 주최하는 등 문화 활동을 이어가면서 정당 점거, 주한 미국대사관 성조기 소각 사건 등을 벌이는 시국 사건에도 개입했다. 이들은 1984년 서울대학교, 고려대학교 등 5개 대학 총학생회 집행부와 연대해서 민정당 당사를 점거했다. 1985년 8월에는 회원 등 내부 조직을 결성, 미국 대사관의 성조기를 불태우기도 했다. <우리마당>은 홈페이지에서 "1986∼1987년 군사정권의 호헌에 맞서 직선제 개헌운동의 중심 역할을 수행하며 소위 '6월 항쟁'의 참호가 됐다"며 박종철 열사의 49제,100일제 등을 주관 집행하였다"고 소개하고 있다.[2] 1988년 8월 18일 새벽, 4인조 괴한이 <우리마당> 사무실에 침입해 회원들을 폭행하는 사건이 벌어졌다.[3]

 

김기종은 김대중 정부에서 노무현 정부에 걸쳐 2001년부터 2007년까지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자문위원을 지냈다. 김기종은 김대중 정부 시절인 2001년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자문위원으로 위촉되었고 2005년 5월 노무현 정부로부터 임기 2년의 통일교육 위원으로 위촉되었다. 임기를 마친 뒤 2007년 4월 다시 위촉되어 2009년 4월까지 4년간 통일부 통일교육 위원으로 활동했다.[4] 김기종은 <민족화합운동연합>이라는 단체의 일원으로 2006년부터 2007년까지 총 8회 북한에 들어갔다.[5]

 

김기종은 2006년 <독도지킴이>를 창립하였고 이어 그해 5월에는 4주 동안 일본대사관에서 1인 시위를 주도하고, 독도 수호와 관련 성명서를 전달했으며 또 정신대 대책협의회와 공동으로 일본정부 사과를 요구하는 성명을 발표했다.[6] 2006년에는 독도를 지키겠다며 동료 6명과 주소를 독도로 옮겼다.[7] 이어서 김기종은 2009년 1월 민주노동당이 주최한 용산참사 추모집회에 참석해 자유 발언을 했다.

 

그는 이 자리에서 "80년대부터 여러 철거민 동지, 노동자 동지와 꾸준히 투쟁한 활동가"라고 자신을 소개했다. 특히 그는 "용산참사는 우리 사회가 진정으로 더불어 사는 사회가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할지 훌륭한 교훈을 남겼다"며 "투쟁을 영원토록 함께 하자"고 강조했다. 아울러 2006년에는 민주노동당이 주도한 <한미 FTA 저지 서대문구 운동본부> 대표자 회의에도 참석하는 등 진보정당과 가까운 거리에서 활동했다.[8]

 

김기종이 소장으로 있는 <우리마당 통일문화연구소>는 2010년 천안함에 대해 남북공동조사를 하자고 주장하기도 했다.[9] 2011년 12월 북한 김정일이 죽었을 때 서울 도심에 김정일 국방위원장 분향소 설치를 시도하여 보수단체와 충돌하기도 했다.[10] 김기종은 2013년 5월 9일 서울시청 홈페이지에 올린 글에서 한겨레 신문 25주년 행사에 참가 예정인 박원순 서울시장을 상대로 “행사에 오시면 저에게 혼납니다”라고 위협했다. 김씨는 본인이 한겨레 신문 창간을 가장 말없이 준비했다면서 박시장이 한겨레 신문 창간 당시 전혀 다른 일을 하고 있었으며, 군사정권시대 검사를 지낸 박시장은 행사에 참가할 자격이 없다는 취지의 글을 올렸다.[11]

 

김기종은 문화운동 단체인 <우리마당> 대표로 일본의 집단적 자위권 행사와 한미 군사훈련 규탄 등의 시위활동을 해왔다. 그리고 한미 키리졸브연습에 반대하며 "평양 점령 상정한 쌍룡훈련을 중단하라"라는 피켓을 들고 시위하기도 했다. 새누리당은 김기종이 2014년 12월 19일 위헌정당으로서 해산된 통합진보당과 관련된 <전쟁반대평화실현국민행동>의 일원이라고 밝혔다.[12]

 

[우리마당 습격사건 항의분신] 2007년 김기종은 1988년에 발생한 '우리마당 습격사건'의 진상 규명을 요구하며 청와대 앞에서 1인 시위를 벌이던 도중 휘발유로 분신을 시도하여, 전신에 심각한 화상을 입기도 했다.[13] '우리마당 습격사건'은 당시 서울 서대문구 창천동에 있었던 <우리마당> 사무실에 괴한 4명이 습격해 사무실에 있던 직원 2명을 폭행하고 달아난 사건이다. 당시 평민당은 제보를 토대로 이 사건이 군 정보사령부의 소행이라고 주장했지만 경찰은 제보에 나온 인물들의 신원을 확인 결과 이들이 가공의 인물일 가능성이 큰 것으로 보고 제보의 신빙성이 떨어지는 것으로 판단했고, 군 정보사령부는 제보에 나온 인물들이 가공의 인물이라 해명했다.[14][15][16][17]

 

[반미 활동] 김기종은 미국 대사 테러를 벌이기 전부터 한미 군사훈련을 반대하는 등 반미활동을 해왔다. 그는 2015년 3월 2일 밤 11시 47분 자신의 페이스북에 올린 글에서 “오늘부터 시작하는 ‘키리졸브·독수리 훈련’의 문제점은 심각하다”며 “일단 남북 서로가 신년사에서 밝혔던 대화 분위기가 얼어붙었다. 훈련이 끝나는 4월 말까지 대화가 이뤄질 수 없는 분위기”라고 밝혔다. 그는 이번 테러사건을 저지른 이유를 한미 군사훈련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2015년 2월 24일 미국 대사관 앞에서 “남북대화 가로막는 전쟁훈련 이제 그만”이라는 손피켓을 들고 시위하는 사진을 게재하기도 했다. 그는 2015년 3월 3일 자신의 블로그에 올린 글에서도 설날 이산가족 상봉이 무산된 이유는 키리졸브 연습과 독수리훈련 탓”이라고 주장했다.[18]

 

[일본대사 습격] 김기종은 2010년 7월 7일 서울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특별강연회 도중 시게이에 도시노리(重家俊範) 당시 일본 대사에게 지름 약 10㎝와 7㎝인 시멘트 덩어리 2개를 던진 혐의 등으로 구속 기소됐다. 이후 김씨는 법원에서 징역 2년 집행유예 3년형을 선고받았다.[20]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은 2010년 8월 24일 대남선전용 웹 사이트 '우리민족끼리'에서 대한민국 정부가 그에게 '부당한 탄압'을 하고 있다고 주장하며 김기종의 테러 행위를 옹호했다.[21] 일본 대사 테러와 관련해 김기종은 온라인 카페 ‘우리마당 독도지킴이’에 “테러를 하려했다면 쇠뭉치를 던져야했다”, “빨간약만 바르면 될 상처에 4주 진단을 받을 것은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글을 남기며 반성의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또한 "김장훈이 영치금이라도 줬으면 좋았을 것"이라는 글도 남긴 바 있다.[22]

 

[공무집행 방해] 2015년 1월 30일 서울 서대문구 현대백화점 신촌점 앞에서 열린 그룹 '엑소(EXO)'의 공연 행사에서 팬클럽 회원들과 시비가 붙었다. 김기종은 아이돌 팬클럽이 행사를 위해 붙여 놓은 전단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며 소동을 부리다가 행사 점검차 인근에 있던 서대문구청 공무원과 승강이를 벌이던 중 이들을 폭행하고, 도로로 뛰어들어 운행하던 시내버스를 막아서기도 했다. 결국 서대문경찰서는 김기종을 공무집행 방해와 업무방해 혐의로 불구속 입건, 2015년 2월 17일 사건을 서울서부지검으로 송치했다.[23]

 

[미국대사 습격] 김기종은 2015년 3월 5일 오전 7시 40분 경 서울 세종문화회관 세종홀에서 열린 ‘민족화해협력범국민협의회’(민화협) 주최 조찬강연회에서 메인 테이블에 앉아 강연을 준비 중이던 마크 리퍼트 주한 미국대사에게 다가가 25cm 길이의 과일 칼로 왼쪽 새끼손가락 신경과 오른쪽 얼굴에 11cm 가량의 자상을 입혔다.[24] 김기종은 범행직후 현장에서 제지하는 요원들에게 깔린 채 "유인물을 나눠주십시오. 제가 3월 2일 만든 유인물입니다. 훈련 반대해서 만든 유인물입니다."라면서 유인물 배포를 외쳤다. 유인물에는 '남북대화 가로막는 전쟁훈련 중단하라! 우리나라에게 전시작전 통제권을 환수시켜라!'는 문구가 굵은 글씨로 적혀 있었다.[25]

 

범행 동기를 묻는 기자들의 질문에 김기종은 "전쟁훈련 반대합니다", "이산가족이 못 만나는 이유가 전쟁훈련 때문이라 그렇습니다", "전쟁훈련 중단합시다, 키리졸브…"라고 말했다.[26] 미국 국무부는 김기종의 테러사건 발생 직후 주한 미국대사관 등 현지 공관을 통해 사건경위와 마크 리퍼트 대사의 피격상태를 파악한 뒤 1시간 30여 분만에 논평을 통해 "우리는 리퍼트 대사가 한국시각으로 5일 오전, 강연을 하던 도중 피격을 당한 사실을 확인한다"며 "우리는 이같은 폭력행위를 강력히 규탄한다"고 밝혔다.[27]

 

민화협 행사의 참가자 명단에는 김기종이 없었다. 민화협 창립 초기에는 회원으로 가입했던 서울시민문화단체연석회의로 초대장이 발송되었다. <우리마당> 대표인 김기종은 별도의 참석 의사를 통보하지 않은 채 강연장에 온 것이다. 당시 현장 실무진이 회원 단체 대표이자 안면이 있던 김기종을 입장시키고 명찰을 배부했는데, 경찰 관계자가 김 씨의 참석을 문제삼자 민화협 관계자는 조치를 취하려던 중 사건이 발생했다고 말했다.[28]

 

북한은 신속한 논평을 통해 마크 리퍼트 대사의 피습 사건이 전쟁광 미국에 가해진 응당한 징벌이라고 주장했다. 북한의 조선중앙통신은 "남조선의 미국대사 마크 리퍼트가 한 강연회장에서 남조선 시민단체 성원으로부터 징벌을 받았다."며, "전쟁광 미국에 가해진 응당한 징벌"이라고 논평했다. 또한 김기종의 흉기 공격을 "정의의 칼 세례"로 미화하며 김씨를 적극 옹호했다.[29] 2015년 3월 6일 경찰은 리퍼트 미국대사에게 흉기를 휘두른 김기종에 대해 살인미수 혐의 등을 적용해 구속영장을 신청했다. 김기종의 사무실에 대한 압수수색에서 이적성이 의심되는 서적이 발견돼 경찰은 국가보안법 혐의 적용도 검토하고 있다.[30]

 

[최대 의문점] 김기종은 2001년부터 3년간, 2005년부터 2년간 총 5년에 걸쳐 민주평화통일 자문회의 자문위원으로 활동했다. 그런데 민주평화통일 자문회의는 대통령이 의장으로 있고 위촉장을 주는 헌법기관으로서 자문위원이 되려면 정당이나 국회의원 등의 추천을 받고 신원조회를 통과해야 한다. 그런데 민주평화통일 자문회의 관계자는 당시 자료가 다 파기돼 누가 김기종을 추천했는지 확인하기 어렵다는 입장을 밝혔다. 또한 김기종은 2005년부터 일반 국민을 상대로 통일교육을 하는 임기 2년의 통일부 교육위원으로 연이어 위촉되었다. 당시 통일교육원 서울협의회에서 김기종을 추천하자 통일부는 별다른 심사 없이 그대로 임명했다. 김씨가 6차례 방북한 시기도 바로 김기종이 통일부 교육위원으로 활동하던 시기였다.[31]

 

[학력]
1972년 광주 수창국민학교 졸업
1975년 전남중학교 졸업
1978년 광주 금호고등학교 졸업
1984년 성균관대학교 법률학과 졸업
1995년 숭실대학교 통일정책대학원 석사과정 수료 (1기)

 

[경력]
1984년: 우리마당 설립[32]
1997년: 서울시민문화단체연석회의 설립, 대표[33]
1997년~ 2007년 성공회대학교 교양학부 외래 교수[34]
1998년: 우리마당 통일문화연구소
2001년 7월~ 2003년 6월 : 민주평화통일 자문회의 자문위원[35]
2005년 5월~ 2007년 5월 : 통일부 통일교육위원
2006년 4월: 우리마당 독도지킴이 대표
2006년 11월~ 2007년 4월 : 정부 승인을 받고 8차례 방북
2005년 7월~ 2007년 6월 : 민주평화통일 자문회의 자문위원
2007년 5월~ 2009년 4월 : 통일부 통일교육위원

 

[같이 읽기]

  • 종북주의
  • 좌파 민족주의
  • 좌파 파시즘
  •  

    ※ 봄문 중간에 있는 각주를 보시려면 아래 출처를 클릭하여 원문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출처: http://ko.wikipedia.org/wiki/%EA%B9%80%EA%B8%B0%EC%A2%85 위키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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