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년이가도 잊지 않겠습니다. 님들의 고운 얼굴”
'세월호 1주년' 시위대-경찰 도심서 충돌... 100명 연행
연합뉴스 | 입력 2015.04.18 23:49 | 수정 2015.04.19 00:09
경찰, 차벽·안전펜스 6겹으로 설치… 캡사이신·물대포 분사
(서울=연합뉴스) 김은경 기자 = '세월호 1주년' 이후 첫 주말인 18일 저녁 '세월호참사 범국민대회' 참가자 수천명이 광화문 북측 광장에서 경찰과 격렬하게 충돌했다. 범국민대회 참가자들은 서울 광장에서 집회가 끝난 후 광화문 광장에 모여 세월호 유가족들이 있는 광화문 누각으로 향했고, 경찰이 저지하자 차벽으로 사용된 차량을 흔들고 부수는 등 거세게 저항했다. 경찰은 캡사이신 최루액과 물대포를 대량으로 살포하고 유가족과 시민 등 100명을 연행했다.
↑ 시위대 향해 물대포 (서울=연합뉴스) 박동주 기자 = '세월호 1주년' 이후 첫 주말을 맞은 18일 오후 '세월호참사 범국민대회' 참가자들이 광화문 광장 북쪽으로 이동하려 하자 경찰이 물대포를 쏘고 있다. 2015.4.18 pdj6635@yna.co.kr
↑ (서울=연합뉴스) 박동주 기자 = 18일 오후 서울광장이 '세월호참사 범국민대회' 참석자들로 가득하다.
↑ 경찰과 대치 중인 시위대 (서울=연합뉴스) 이승민 기자 = 세월호 1주기 이후 첫 주말인 18일 오후 '세월호 참사 범국민 대회'에 참여한 시민들이 서울 광화문 앞에서 경찰과 대치하고 있다. 2015.4.18 logos@yna.co.kr
경찰은 이날 경력 1만 3천700여명과 차벽트럭 18대를 비롯해 차량 470여대, 안전펜스 등을 동원해 경복궁 앞, 광화문 북측 광장, 세종대왕 앞, 세종로 사거리, 파이낸셜빌딩 등에 6겹으로 저지선을 쳤다. 또 경찰버스와 경력을 청계광장에서 광교 넘어서까지 청계천 북쪽 길가에 길게 늘여 세워 우회로까지 막아섰다. 이에 따라 이날 오후 4시 30분께 서울광장에서 범국민대회를 마친 유가족과 시민 등 참가자 1만여명(경찰 추산)은 광화문 광장으로 바로 가지 못하고 청계천변을 따라 걸어간 뒤 낙원상가 방면으로 좌회전해 안국역에서 광화문 쪽으로 이동을 시도했다. 그러나 종로경찰서 앞 차로도 경찰에 막히자 집회 참가자들은 흩어져 지하철 등을 타고 광화문 광장 쪽으로 이동했다.
오후 6시20분께 광화문 광장에 모인 집회 참가자 6천여명은 광화문 누각 쪽으로 가려고 세종대왕상 인근 경찰 저지선을 뚫는 과정에서 경찰과 몸싸움을 벌였다. 참가자들이 세종문화회관 인도 쪽을 통해 광화문 광장 북쪽으로 이동하자 경찰은 캡사이신을 분사하고 물대포를 쏘며 이를 저지했다. 광화문 북측 광장에 모인 시위대 일부는 경찰 차량을 부수고 차량 안의 분말 소화기를 꺼내 뿌리거나 경찰 보호장구를 빼앗아 차벽 너머로 던졌다. 또 스프레이로 경찰 차량에 낙서하고, 경찰 차량에 올라가 깃발을 흔들기도 했다. 시위대 중 일부는 광화문 광장 북쪽 차벽을 뚫고 광화문 누각 근처까지 접근했으나 누각 바로 앞의 차벽에 막혀 더 전진하지 못했다.
오후 10시20분께 누각에 있던 유가족들이 북측 광장에 있는 시위대에 합류해 정리 집회를 하고 이날 행사를 마무리했다. 경찰은 수차례 해산 명령을 내리고 광화문 광장에서만 79명을 연행했다. 앞서 오후 3∼5시 누각 앞과 북측 광장에서 검거된 21명을 더하면 이날 연행된 시민과 유가족 등은 모두 100명이다. 이중 '유민아빠' 김영오씨 등 유가족은 20명이고, 학생 5명은 훈방 조치됐다.
이들은 금천, 성동, 마포 등 일선 경찰서 11곳으로 분산 호송돼 조사를 받았다. 집회 참가자와 경찰 간 몸싸움으로 유가족과 시민 등 9명, 의경 2명 등 모두 11명이 탈진 또는 부상해 병원으로 이송됐다. 이 중 한 남성이 경찰과 뒤엉키면서 넘어져 복부 부분에 부상을, 의경 1명은 오른 귀 뒷부분이 찢어지는 상처를 입은 것으로 알려졌다. 앞서 서울역 광장에서는 '엄마의 노란손수건' 등 21개 단체의 모임인 '대한민국 엄마들' 주최로 세월호 참사의 진실규명 등을 촉구하는 집회가, 광화문 광장에서는 '청소년공동체 희망'의 주최로 '세월호 1주기 416인 청소년 선언 기자회견'이 열렸다. [kamja@yna.co.kr]
세월호 집회 참가자·경찰 곳곳서 충돌... 유족등 90여명 연행
뉴시스 | 변해정 | 입력 2015.04.18 22:26
연행자에 휠체어 탄 장애인도 포함돼
'유족 연행 반발' 범국민대회 결국 중단
경찰, 최루액에 물대포까지 수차례 난사
【서울=뉴시스】변해정 나운채 기자 = '세월호 1주기' 이후 첫 주말을 맞은 18일 서울 시청광장에서 열린 '세월호참사 범국민대회'에 참가한 유가족·시민들과 경찰 사이에 충돌이 잇따랐다. 그 과정에서 유가족을 포함해 90여 명이 무더기 연행됐다. 이중에는 휄체어는 탄 장애인도 포함된 것으로 전해졌다. 416 연대와 세월호국민대책회의 주최로 이날 오후 3시20분부터 서울광장에서 세월호참사 범국민대회가 열렸다. 이날 모인 인원만 주최 측 추산 3만여명, 경찰 추산 8000여명이다.
↑ 【서울=뉴시스】조성봉 기자 = 18일 오후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 앞에서 경찰이 청와대로 행진하려는 세월호 1주기 범국민대회 참가자들을 연행하고 있다. 2015.04.18. suncho21@newsis.com
↑ 【서울=뉴시스】조성봉 기자 = 18일 오후 서울 중구 시청 서울광장에서 세월호 참사 1주기 범국민대회를 마친 시민들이 청와대 인간띠잇기를 위해 청와대방향으로 행진하자 경찰이 물대포를 쏘고 있다. 2015.04.18. suncho21@newsis.com
↑ 【서울=뉴시스】조성봉 기자 = 18일 오후 서울 중구 시청 서울광장에서 열린 세월호 참사 1주기 범국민대회 및 청와대 인간띠잇기 행사에서 참석자들이 '정부시행령안 폐기, 세월호 인양'을 촉구하고 있다. 2015.04.18. suncho21@newsis.com
범국민대회에 앞서 오후 1시45분께 광화문광장 누각 앞에서 연좌농성 중인 유족 등 11명이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 위반 혐의로 연행돼 금천경찰서로 호송됐다. 뒤이어 범국민대회에 대비해 차벽을 치는 경찰에 항의하고 버스 위에 올라가 시위하던 '유민아빠' 김영오씨 등 5명이 추가 연행됐다. 오후 2시30분께는 광화문광장에서 충돌한 유족 '동진 엄마' 김경녀씨와 의경 1명이 부상을 입었다. 의경은 현장에서 응급처치를 받은 뒤 병원으로 옮겨졌다. 유족 연행 소식을 전해들은 참가자들은 급기야 오후 4시30분께 범국민대회 중단을 선언하고, 유족들이 연좌농성을 벌이고 있는 광화문광장으로 이동했다.
세월호 유족 50여명과 시민 등 70여명이 이날 광화문 누각 앞에서 연좌 농성을 벌이고 있었다. 이재근 국민대책회의 공동상황실장은 "경찰이 농성장에 있던 유가족 10여명을 연행한 데 이어 전원을 불법집회라는 이유로 연행하겠다고 통보해 와 이를 항의하러 가기 위해 행사 중단을 결정했다"고 전했다. 참가자들은 광화문광장으로 이동하려다 경찰 차벽에 가로막히자 우회 행진했거나 지하철 등을 타고 이동했다. 그 과정에서 일부는 차벽에 빨간색 스프레이를 칠하거나 경찰관에 계란을 던지는 등 과격한 행동을 보이며 경찰과 몸싸움을 벌였다.
행진 중 경찰 차벽과 건물 곳곳에는 진보단체 '청년좌파'의 유인물이 붙여지거나 뿌려지기도 했다. 이 유인물에는 '대한민국 정부의 도덕적·정치적 파산을 선고한다', '남미순방 안녕히 가세요. 돌아오지 않으셔도 됩니다' 등의 글이 적혀 있었는데, 이는 지난 16일 국회와 코엑스 일대에 살포된 전단과 동일한 것이다. 경찰은 오후 5시20분께 종로경찰서 앞에서 '캡사이신 최루액(최루액)'을 발사했고, 1시간10여 분 후인 오후 6시34분께 세종문화회관 인근에는 최루액과 함께 물대포까지 쏘았다. 당시 집회 참가자는 주최 측 추산 8000여명, 경찰 추산 6000여명이 운집해 있었다. 날이 저물면서 최루액과 물대포 발사 횟수는 계속 늘었고, 오후 9시57분 기준 경찰에 연행된 인원만 90여명으로 확인됐다. 이들은 성동·마포·강남·서초·송파 등 7개 경찰서로 분산돼 연행된 것으로 전해졌다.
경찰 관계자는 "도로를 점거하고 차벽을 밀어 경찰관에 위해를 가하는 등 불법행위를 해 경고 및 해산 명령에 내렸지만 불응해 연행했다"면서 "(위법 행위가 계속되고 있어) 연행자는 더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고 전했다. 이에 대해 연행자 정보를 취합 중인 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주노총) 곽이경 국장은 "7개 경찰서에 연행된 인원 중에는 휠체어를 탄 장애인도 연행된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경찰은 이날 행사 관리를 위해 150여 개 중대 1만3000여명의 경력을 투입했다. 경찰 버스도 20여대 동원해 서울광장과 광화문 일대에 차벽을 설치했다. 경찰은 연행자에 대한 조사를 마치는대로 구속영장 신청 등 신병 처리 여부를 결정할 방침이다.
서울광장에서 광화문까지 7시간... 시민·유족 등 100여명 연행
미디어오늘 | 입력 2015.04.19 00:36
유족 연행으로 세월호 참사 1주기 범국민대회 중단…
행진자 향해 물대포·최루액·소화기 사용
[미디어오늘장슬기 기자] 18일 오후 세월호 참사 1주기 범국민대회에 참여한 시민과 지난 16일 밤부터 광화문 누각 앞에 고립됐던 유족 100여명이 경찰에 연행됐다. 경찰은 차벽과 폴리스라인을 통해 시민들의 행진을 막아섰고 이 과정에서 물대포·최루액·소화기 등을 사용했다. 고발뉴스 이상호 기자는 물대포를 쏘는 경찰에게 '소방서 물 훔쳐쓰지 말라'고 항의하다 연행됐다.
18일 오후 3시 4월16일의약속국민연대(4·16연대)는 세월호 참사 1주기 범국민대회를 개최해 세월호 진상규명과 선체인양 등을 요구할 예정이었다. 하지만 이날 오후 1시30분경부터 유족들이 연행되고 있다는 소식에 행사가 중단됐고, 서울광장에 참여했던 3만여명의 시민들과 민주노총 조합원 등은 유족들이 고립돼 있는 광화문 누각 앞으로 향했다.
▲ 18일 오후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경찰병력이 '세월호 1주기 범국민 대회' 참가자들을 향해 물대포를 쏘며 진압을 시도하고 있다.ⓒ노컷뉴스
참가자들은 경찰이 미리 쳐놓은 경찰차벽과 폴리스라인으로 길이 막히자 청계광장 쪽으로 우회해 행진을 계속하거나 지하철을 통해 광화문 광장으로 이동했다. 광화문 광장에는 다시 경찰차벽과 폴리스라인이 설치돼 있었다. 고립된 유족들이 있는 광화문 누각 앞으로 가기위해 시민들은 경찰 벽을 다시 뚫기 시작했고, 경찰은 오후 6시30분경부터 물대포와 최루액, 소화기 등을 사용해 시민들을 제압하기 시작했다. 광화문 광장에서 광화문 누각 앞까지 설치된 세겹의 경찰벽을 뚫고 행진 참가자 5000여명(주최측 추산)은 오후 10시30분경 유족들을 만났다.
4·16연대는 이날 하루 경찰에 연행된 시민과 유가족은 100여명이고 연행된 시민 중에는 휠체어를 탄 장애인도 있다고 밝혔다. 연행된 이들은 서울과 경기의 경찰서로 연행돼 조사를 받고 있다고 전했고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민변) 변호사들이 다 파견돼 도움을 주고 있다고 밝혔다.단원고 서동진 엄마 김경녀씨가 부상으로 구급차에 실려 병원에 실려가기도 했다.
▲ 18일 오후 서울광장에서 열린 '세월호 1주기 범국민 대회' 참가자들이 청와대 방향으로 행진 중 세종로를 둘러싼 경찰차벽에 막혀 경찰병력과 대치하고 있다.
▲ 사진=김도연 기자Copyrights ⓒ 미디어오늘.
오후 11시경 경찰벽을 뚫고 만난 시민과 유족들은 마무리 집회를 열고 이날 행사를 마쳤다. 4·16가족협의회 전명선 위원장은 "오늘 희망을 보았다. 두드리면 언젠가 답이 나올 것이다. 두드려서라도 안 열리면 국민들과 가족이 함께 안전하고 인간의 존엄 지켜지는 사회 만들 것"이라고 말했다. 4·16연대 박래군 상임운영위원은 "오늘 여기까지 오기가지 앞에서 길을 터줬던 누구보다 앞장섰던 민주노총 동지를 비롯해 시민, 학생들 정말 고맙다"며 "유가족과 시민이 힘을 합하면 못 이룰 것이 없다는 것을 확인한 아름다운 밤"이라고 말했다. 4·16연대는 오는 4월 24일과 25일도 집회가 있을 예정이고 시민들의 많은 참여를 부탁드린다고 밝혔다.
[세월호 1년] 유가족들 거리로 나설 때까지 정치는 무엇을 했나?
경향신문 | 송윤경 기자 | 입력 2015.04.18 16:14
"여러분, 우리는 시위를 하는 것이 아닙니다"
지난해 5월8일 밤, 세월호 가족들은 아들·딸의 영정을 가슴에 안고 청와대로 향하고 있었다. 세월호 참사를 '교통사고'에 비유한 KBS 김시곤 보도국장에게 항의하러 갔다 만나지 못하고 청와대로 발길을 돌린 터였다. 유가족은 종로 효자동에서 다시 경찰에 가로막혔다. 그 순간에도 그들은 말했다. "우리는 시위하러 온 게 아니고 대통령을 뵈러 왔어요."
당시 가족들은 왜 '시위'라는 규정을 피하려 했던 것일까. 지난해 4월20일, 팽목항에 있던 세월호 가족들이 처음으로 서울을 향해 나섰다가 진도대교에서 경찰에게 제지당하는 사건이 있었다. 보수언론엔 "전문시위꾼", "선동"이라는 단어가 등장했다. 가족들은 자신들의 외침이 한국사회의 이념지형에 갇혀 시민들에게 공감을 얻지 못할까봐 우려했다.
[사진] 지난해 4월20일 새벽 세월호 침몰 사건으로 실종된 승객의 가족들이 구조 당국의 말바꾸기와 작업 지연에 대한 의견을 전달하기 위해 청와대를 목표로 이동 계획을 세운 후 차편을 구할 수 없어 임시 숙소가 차려진 전남 진도 실내체육관을 출발해 진도대교 방면으로 약 15㎞의 길을 밤새워 걷고 있다. /홍도은 기자
1년이 흐른 지금, 가족들의 바람은 실현되지 못했다. 소셜네트워크 분석업체인 '다음소프트'에 따르면 트위터·블로그에서 올해 3월12일부터 약 한달간 '정치적'이라는 말과 함께 가장 많이 쓰인 단어는 '세월호'(3736건)였다. '정치적'이라는 표현은 '정치가 다루어야할 의제'에 대해 쓰기도 하지만 '어떤 이슈가 특정 진영의 이해관계에 활용된다'는 뜻으로 더 많이 쓰인다. "(세월호) 대책위는 그동안 유족들을 대변하는 게 아니라 좌파를 대변한다는 이미지를 스스로 자초했다"(하태경 새누리당 의원·지난해 9월29일)는 발언이 정치인 입에서 나온 점을 고려하면, 세월호를 부정적 차원에서 '정치적'이라고 보고 있는 이들이 적지 않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미디어에선 가족들이 거리에서 1인시위를 하거나 머리에 띠를 두르고 정부를 향해 요구사항을 외치는 모습이 중계된다. 서울에서 직장생활을 하는 김모씨(33)는 "가족들의 말에 공감하는 편이지만 자꾸 격렬하게 투쟁하는 모습만 드러나니까 안 좋게 비쳐진다"고 했다. 서복경 서강대 현대정치연구소 선임연구위원은 "유족들을 중심에 서게 만든 것은 사태를 책임지고 다뤘어야 할 사람들의 무책임 때문"이라면서 "유권자들이 접하지 못하는 깊이있는 정보를 해석하고 제도적 해법을 내놓았어야 할 정치권에 그 책임이 있다"고 말했다.
갈등조정·해법제시에 지속적으로 실패하는 한국정치의 후진성이 가족들을 '무대'에 서게 만든 셈이다. 세월호 가족이 이념전쟁의 구도에 휘말리면서 고립되고, 또 대의정치를 통하지 못하고 정부를 향해 '직접' 나서게 된 배경엔 정치권의 무능이 자리하고 있다. 여당은 정부가 책임추궁을 당할수록 '이념'을 끌어들였고 새정치민주연합은 이 전략이 힘을 발휘하는 데 빌미를 제공했다.
[사진] 4·16가족협의회가 지난 2일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정부를 규탄하는 기자회견 후 가진 세월호 가족 결의 의식에서 희생자와 실종자 가족들이 삭발을 하고 있다. 앞서 기자회견에서 가족협의회는 "정부가 희생자와 피해가족을 돈으로 능욕했다"며 규탄하고 배·보상 절차 전면 중단과 정부 시행령안 폐기, 세월호 선체 인양을 촉구했다. /강윤중 기자
지난해 4월16일은 여·야가 6·4 지방선거를 준비하고 있던 때 각 당은 세월호 문제로 구설에 오르지 않도록 '경계령'부터 내렸다. 추모 물결이 달아오르기 시작한 지난해 5월과 6월, 세월호 가족들이 특별법 제정 범국민 서명운동을 시작하는 사이 여당은 침묵했다. "순수유가족"(민경욱 청와대 대변인·지난해 5월9일), "(청와대 안보실은) 재난 컨트롤 타워가 아니다"(김장수 전 청와대 국가안보실장·4월23일) 등의 청와대 문제 발언에 여당은 이견을 내놓지 않았다. 당시 박 대통령의 지지율은 11%포인트 하락했다.
반면 새정치민주연합은 정부·여당의 '반대항'에 자신을 위치시키는 일에 집중했다. 6·4지방선거와 7·30재보선에서는 세월호 참사 추모물결에 기대 '정부심판론'을 내세웠다. 그러나 "세월호 사건이 노무현이나 김대중 정권 하에서 일어났다고 해서 이보다 나은 구조 성과가 있었으리라고는 믿기 어렵다. 그야말로 과거부터 켜켜이 쌓인 적폐의 부분이 실제로 분명히 존재하기 때문"(허경 한국근현대문화사상 연구소 공동대표)이라는 시선을 새정치민주연합은 외면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이 적극 수입한 신자유주의·노동 유연화, 노무현 정권 당시에도 계속된 성장중시 정책과 규제완화가 세월호 참사에 미친 영향을 솔직하게 드러내고 '대안세력'으로서 거듭나려는 태도를 취하는 '어려운 길'을 택하지 않은 것이다. 이 같은 태도는 87년 민주주의의 제도화를 이룬 후에도 새누리당과 보수세력을 '민주 대 반민주' 혹은 '선·악'의 구도에 끌어들이려는 습관에 기반을 두고 있다.
새정치연합이 대안세력으로서 자신을 드러내려는 대신 박근혜 정권 책임 추궁에만 열을 올릴수록 극우세력은 세월호 가족과 이들과 함께하려는 시민들을 "좌빨", "반정부세력", "세금도둑", "자식 팔아 한 몫 챙기려는 사람들" 나아가 "종북세력"으로까지 매도했다. 김윤철 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는 "정치권이 세월호를 다루는 과정에서 해방 이후 벗어던지지 못한 이념지형을 다시 한번 불러 들였다"면서 "세월호가 일종의 정치게임이 됐다"고 했다. 유가족은 고립돼 가기 시작했다. "한번만 도와달라"는 읍소전략으로 두 번의 선거에 승리한 여당은 국회 밖 극우세력이 만들어놓은 이념구도를 공개적으로 활용하면서 정부를 감쌌다.
새정치연합이 '대통령의 사라진 7시간'을 주요 프레임으로 띄운 것도 같은 맥락에서 비판이 나온다. 김 교수는 "세월호 참사는 대통령의 지난 행적을 가지고 인식공격해서 해결될 문제가 아니었다"면서 "왜 세월호 참사가 벌어졌는지를 제대로 드러낼 특별법을 만들고 '척결'을 유도해 가는 것, 즉 대안이 야당 발언의 중심이 됐어야 했다"고 했다. 새정치연합은 정부·여당을 최대한 특별법 제정 협상 테이블로 끌어와야 하는 과제를 안고 있었음에도 '7시간' 프레임은 기존 지지층만 결집시키는 결과를 낳았다.
[사진] 세월호 희생자 가족들이 세월호특별법 정부 시행령안 폐기를 요구하며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노숙농성을 벌이고 있다. /서성일 기자
세월호 이슈에서 '무책임한 정치권'의 문제는 현재진행형이다. 조사를 받아야할 고위공무원에게 조사를 맡기는 시행령안이 만들어지는 등 세월호특별법 취지가 무력화될 상황인데도 정작 법을 만든 국회는 조용하다. 유가족들만 단식을 하고 행진을 벌이며 절규하고 있다. 서복경 연구위원은 "모법(세월호 특별법)의 범위를 넘어서는 시행령을 만든 데 대해 국회의원들이 '잘못됐다. 새 법을 만들겠다' 등 강력하게 이의제기를 해야한다"고 말하지만 여당은 물론이고 야당도 그런 움직임은 보이지 않는다. <송윤경 기자 kyung@kyunghyang.com>
'세월호 대참사' 카테고리의 다른 글
[항소심 선고] 이준석 무기징역… 승무원 14명은 감형 (0) | 2015.04.28 |
---|---|
[국제엠네스티] 평화적 시위에 최루약물 사용한 한국정부 맹비난 (0) | 2015.04.19 |
[세상에서 가장 슬픈 도전] 희생자 위로 4160개 촛불 서울광장에 (0) | 2015.04.18 |
[세월호 1주기] '잊지 않겠습니다' (0) | 2015.04.16 |
[세월호 1주기] 아직도 차디찬 물속에 잠겨있는 희생자들... 그들에게 정부와 정치가 있는가? (0) | 2015.04.1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