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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대참사

[세월호 1주기] 아직도 차디찬 물속에 잠겨있는 희생자들... 그들에게 정부와 정치가 있는가?

잠용(潛蓉) 2015. 4. 16. 07:43

차디찬 물속에 아직도 잠겨있는 세월호... 참사 후 1년
MBC | 손령 기자  | 입력 2015.04.16 06:30 | 수정 2015.04.16 06:36   

 

 

[뉴스투데이]

[앵커] 1년이 됐지만 세월호 참사는 아직 정리되지 못하고 여전히 논란 속에 진행 중입니다. 사고 이후 1년을 손령 기자가 정리했습니다.
[리포트] 2014년 4월 16일 아침. 배가 침몰하고 있다는 신고전화가 119에 걸려왔습니다.


[119 최초 신고 전화 녹취] "여기 배…. 배인데, 배가 침몰된 것 같아요."
정부와 해경이 허둥대는 동안 배는 304명과 함께 가라앉았습니다.

사고 다음날, 원인 규명을 위해 역대 최대규모의 합동수사본부가 꾸려졌습니다.

승객을 두고 탈출한 이준석 선장의 구속을 시작으로 세월호 실소유주인 유병언 일가까지, 399명이 입건돼 154명이 구속됐습니다.


구조를 제대로 하지 못한 책임을 물어 해경은 해체됐습니다.

검찰은 무리한 구조변경과 화물 과적 등을 사고 원인으로 결론 내렸습니다.

하지만 수사결과를 납득하지 못한 유가족과 일부 시민단체들은 거리로 나섰습니다.

우여곡절 끝에 진상규명을 위한 세월호 특별법이 국회를 통과했습니다. 두 계절이 지났습니다. 바닷속에서 295명의 시신을 찾는 동안 2명의 잠수사가 목숨을 잃었습니다. 수온은 점점 낮아졌고, 수중 수색은 중단됐습니다. 그러는 사이 세월호 문제는 이른바 '진영 논리'에 함몰되기도 하고, 유가족들의 단식 투쟁을 놓고도 극단의 해석이 나오는 등 분열도 커졌습니다.

세월호 특별법 시행령안은 거부당했습니다.
"(시행령을) 폐기하라! 폐기하라! 폐기하라!"
보상 기준이 마련됐고, 선체 인양도 가능하다는 정부의 검토 결과가 나왔습니다.


어느새 다시 그날.
해가 바뀌었지만 세월호는 우리 사회에서 뜨겁게 진행 중입니다.
그리고 아직, 9구의 시신이 차디찬 물속에 잠들어 있습니다. MBC뉴스 손령입니다.

(손령 기자 right@mbc.co.kr)


[사람 속으로] "저 바다 속에 아직 우리 아이가 있어요"
YTN | 입력 2015.04.16 06:57

 

 

[앵커] 세월호가 가라앉은 바다에 아직도 실종자 9명이 남아 있습니다. 딸을 찾지 못한 부모에게 이제 남은 소원은 유해라도 찾아 '유가족'이 되는 것 뿐입니다. 사람을 통해 세상을 보는 YTN 연속기획 '사람 속으로', 나연수 기자가 실종된 단원고 학생 허다윤 양 가족을 만나고 왔습니다.

[기자] 2014년 4월 16일, 가족들의 시간은 멈춰 섰습니다. 왜 이런 일이 벌어진 건지, 천 번, 만 번을 생각해봐도 알 수가 없습니다. 선체를 인양해 실종자를 찾아달라고, 엄마는 매일 1인 시위를 합니다.

[인터뷰:박은미, 세월호 실종자 허다윤 양 어머니]
"'실종자가 아직도 있어?' 그렇게 말해요. '그거 마무리 된 거 아니야? 아직도 마무리가 안 됐어?' 이렇게 이야기해요. 1년이라는 시간이 참…."
다리에서 힘이 빠져 엄마는 몇 번이나 주저앉습니다.


[인터뷰:박은미, 세월호 실종자 허다윤 양 어머니]
"내 자식, 내 부모, 내 남편 찾아달라는 그거 외에 우리가 뭘 바라겠어요. 유가족이 되게 해달라고 하는 게, 이게 너무 기가 막히는 거야."

희귀병인 신경섬유종을 앓고 있는 다윤 엄마. 수술도 받지 않고 거리에서 피켓을 들고 있는 사이 몸이 너무 쇠약해졌습니다. 4월의 바다, 며칠 망설이다, 엄마는 팽목항으로 돌아왔습니다.


[인터뷰:박은미, 세월호 실종자 허다윤 양 어머니]
"바다가 무섭고 정말 바다 보기 싫거든요. 근데 바닷물을 한번 만져봤는데 제 딸이 아직 바다 속에 있다는, 그것 때문에 딸을 만지는 거 같은 느낌…."


[인터뷰:박은미, 세월호 실종자 허다윤 양 어머니]
"다윤이가 꿈에 나타났는데, 제가 부엌에 이렇게 설거지를 하고 있는데 제 등 뒤에서 '엄마'하고 부르더라고, 다윤이가. 뒤돌아서 봤는데, '다윤아, 수학여행 갔는데 어떻게 왔어?' 이랬더니 그냥 눈물만 흘리더라고…."
저 차가운 바다, 그 밑에 아직 아홉 사람이 남아 있습니다. 그리고 팽목항에는 사랑하는 아들, 딸, 남편, 아내, 부모를 잃어버린 가족들이 있습니다. YTN 나연수[ysna@ytn.co.kr]입니다.


'세월호 참사' 안전불감증... 세월이 지나도 그대로였다
매일경제 | 입력 2015.04.16 04:03


한달에 두번꼴 대형 사고/
지하철 들이받고 환풍구 무너지고…세월호 이후 90명 죽고 816명 다쳐
국민 절반이 불안감 호소/
`人災가 가장 불안` 3배 넘게 불어나…국가안보·범죄보다 불안감 더 느껴
컨트롤타워는 `우왕좌왕`/
국민안전처 사고수습에는 뒷짐만…수사인력 오히려 줄고 법안은 낮잠

세월호 참사 1년을 맞았지만 우리 사회 눈물은 마르지 않았다. 안전불감증이라는 세월호 망령을 떨치지 못하면서 지난 1년간 하늘·땅·바다에서 한 달에 두 번꼴로 대형 인명사고가 발생했다. 일상적으로 오가는 도로·집, 인명구조 헬기는 물론 가족들끼리 쉬러 간 캠핑장에서도 연달아 인재(人災)가 터지며 귀한 목숨이 쓰러졌다.

정부는 '국가 대개조'까지 내걸며 대대적인 안전 개혁작업을 벌였지만 인재 불안에 떠는 국민은 세월호 이후 거꾸로 세 배가 늘었다. 백화점식 안전대책이 쏟아졌지만 이를 시행할 관련법이 국회에 묶여 있고, 국민안전처 등 재난 컨트롤타워도 명확한 존재감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안전 유관단체 관리 부실과 국민 안전의식 부재 역시 세월호의 그림자를 길게 만들고 있다. 이원호 광운대 건축공학과 교수는 "세월호 사건 이후로도 각종 재난이 계속되고 있다"며 "안전을 꼼꼼하게 챙기는 문화 정착을 위해 더 노력해야 하는 단계임이 드러났다"고 꼬집었다.


우리 사회 치부를 적나라하게 드러낸 세월호 비극에서 배운 교훈이 없다는 게 최대 문제다. 사고 직후 하루이틀 반짝 경각심만 높아질 뿐 언제 그랬냐는 듯 안전불감증은 안전 당국과 국민들 사이에서 스멀스멀 일어섰다.

세월호 이후 이달까지 사회적 파장이 컸던 주요 인명 사고는 20건이다. 한 달에 두 번꼴로 대형 참사가 터졌다. 이로 인해 총 906명의 사상자가 발생했다. 대부분 안전불감증으로 인한 전형적인 인재다. 세월호 비극이 터진 지 보름 만에 서울 지하철 2호선에서 전동차가 신호 오류로 앞차를 들이받는 초유의 사고가 발생해 388명이 다쳤고, 한 달 뒤에는 경기 고양종합터미널에서 대형 화재가 나 8명이 숨지고 58명이 부상을 입었다.


참사 반년 뒤에는 경기도 판교에서 환풍구가 무너지며 16명이 사망해 국민들을 경악시켰고, 지난 2월에는 안개 속 안전장치 부실로 인해 인천 영종대교에서 106중 사상 최악 추돌사고가 났다. 하늘도 결코 안전지대가 아니다. 지난달 13일에는 착륙장 설비 미비로 응급환자 이송을 위해 출동하던 해경 헬기가 추락해 4명이 숨지는 안타까운 사고가 일어났다. 세월호 여진 속 국민 불안감은 최악으로 떨어졌다. 15일 매일경제가 최근 6년간 통계청 사회안전조사 내역을 분석한 결과 우리 사회를 불안하게 여기는 국민이 절반을 넘어섰다. 불안감을 호소한 국민은 50.9%로 세월호 사건 이전 조사(2012년) 때보다 13.6%포인트 불어났다.


[도표] 국민불안감과 그 요인 


불안요인 1순위는 단연 '인재'(21.0%)다. 세월호 전까지만 해도 인재를 불안하게 여긴 국민은 6~7%에 불과했지만 참사 이후 세 배 넘게 불어났다. 자연재해나 환경오염을 불안히 여긴 국민은 4~5%에 그쳤다. 시민 안전의식 근간이 되는 준법의식도 이율배반적인 것으로 조사됐다. 통계청 준법수준 조사(2014년)에 따르면 다른 사람이 평소 법을 잘 지키는지에 대한 물음에 국민 34.7%만이 '법을 준수한다'고 응답했지만, 스스로 준법의식에 대해서는 이보다 두 배(67.0%) 많은 국민들이 법을 지킨다고 답변했다. 자기가 법을 안 지킨다고 보는 국민은 1.9%에 불과했다. 스스로 준법의식은 높게 평가하면서 타인의 준법의식은 낮게 보는 모순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는 것이다.

허창덕 영남대 사회학과 교수는 "아무리 효율성이 중요하고 조직 목표를 달성하는 게 중요해도 사람의 생명을 담보로 한 효율성은 안 된다는 윤리의식 회복이 절실하다"고 말했다. 세월호 이후 재난 컨트롤타워인 안전처 통솔력에 대한 의구심은 여전하다. 옛 안전행정부 안전본부, 소방방재청, 해양경찰청이 합쳐져 정원 1만명의 거대 조직으로 탄생했지만, 잇단 대형 재난 앞에 큰 존재감을 드러내지 못했다. 안전처 측은 "재난 예방 시스템 전반 관리가 안전처 역할"이라며 "개별 사고를 수습하는 것은 소관 부처 일"이라며 뒷짐만 지고 있다. 안전처는 지난달에 안전산업 육성 계획을 야심 차게 밝혔지만 국내 산업 전반에 대한 통계조차 들고 있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재난관리에 기동성 있게 대처할 수 있을지도 미지수다. 조직 개편 과정에서 안전처 일반직은 121명 늘었지만, 수사인력은 오히려 205명이 줄었다. 안전처 관계자는 "베테랑 수사 인력이 200명 넘게 빠지면 사고 예방을 위한 수사는 사실상 어렵다"고 말했다. 세월호 참사 1년이 지나도록 국회에서 잠만 자는 법안도 많다. 수상구조사 자격을 신설하고 심해잠수 훈련시설을 설치하는 내용을 담은 수난구호법 개정안은 국회 안전행정위원회에 계류됐고, 유람선과 연락선 선령을 제한하는 법안은 유예기간 1년이 물려 있다. [김정환 기자 / 문재용 기자]

 

1년전 떠난 친구들 합동 조문한 단원고 학생들 '울음바다'
연합뉴스 | 입력 2015.04.16 11:29 | 수정 2015.04.16 11:36 
 
(안산=연합뉴스) 이영주 기자 = 세월호 1주년인 16일 오전 9시 30분. 작년 이맘때쯤 여객선 세월호에서 친구들과 아침을 맞은 안산 단원고 3학년 학생들을 비롯한 전교생이 학교 운동장에 모였다. "합동분향소로 이동하겠다"는 교내방송에 맞춰 두 줄로 선 800여명의 학생들은 담임교사들의 지도에 따라 하나 둘 교문을 나섰다. 가슴팍에 노란 리본 배지를 단 학생들은 친구와 맞잡은 손을 꼭 쥐거나 손수 준비한 꽃다발과 편지를 손에 들고 분향소로 향한 벚꽃길을 차분히 걸었다.

 

 

↑ 꽃 들고 조문 순서 기다리는 단원고 학생들 (안산=연합뉴스) 신영근 기자 = 세월호 참사 1주년인 16일 오전 경기도 안산시 단원구 세월호 희생자 정부 공식 합동분향소를 찾은 단원고등학교 학생들이 조문 순서를 기다리며 울먹이고 있다. 2015.4.16 drops@yna.co.kr

 

 

↑ 눈물 흘리는 단원고 학생들 (안산=연합뉴스) 신영근 기자 = 세월호 참사 1주년인 16일 오전 경기도 안산시 단원구 세월호 희생자 정부 공식 합동분향소를 찾아 조문한 단원고등학교 학생들이 조문 후 눈물을 흘리며 분향소를 떠나고 있다. 2015.4.16 drops@yna.co.kr


20여분 걸어가자 정부합동분향소라고 적힌 하얀 천막에 다다랐고, 학생들의 눈가엔 눈물이 맺히기 시작했다.
노란 난으로 둘러싸인 희생 학생과 교사들의 영정 앞에 서자 학생들은 참아왔던 눈물을 쏟았다. 영정 앞 재단에 학생들이 내려놓은 하얀 국화가 쌓일수록 분향소 안을 채우는 울음소리는 커졌다. 거짓말처럼 1년이란 시간은 흘렀지만 영정 속 환한 표정을 한 친구들은 작년 모습 그대로였다. 그동안 전하고 싶었던 말 대신 눈물로 인사를 전한 학생들은 교사들의 부축을 받고 떨어지지 않는 발길을 겨우 옮겼다.

 

분향소 밖으로 나온 일부 생존학생은 흐르는 눈물을 주체하지 못하고 주저앉아 한참을 통곡했다. 탈진에 가까운 증상을 호소해 나머지 학생들이 모두 헌화를 마칠 때까지 한동안 분향소에 머물러 있어야 했다. 장동원 생존학생 학부모 대표는 "일부 학생들은 어젯밤 잠도 못자고 등교했다. 좋지 않은 기억이 떠올라 학교 가기 싫다는 학생들도 겨우 학교로 보냈다"며 "하루빨리 사고 진상 규명이 이뤄져 아이들도 정서적 안정을 찾을 수 있길 바란다"고 말했다.

 

이날 학생들의 합동조문을 이끈 추교영 단원고 교장은 "학생들은 명절이나 생일 때도 종종 친구들이 있는 분향소에 다녀왔다. 오늘은 1주년이다 보니 전교생이 한자리에서 희생자들의 넋을 기리기 위해 오게 된 것"이라고 말했다. 단원고는 이날 오후 7시 세월호 1주년 추모행사를 학교 운동장에서 비공개로 진행할 예정이다. 추모행사에서는 생존학생들이 부르는 가수 이선희의 '인연' 등 합창공연과 편지 낭독 등이 진행된다.

[young86@yna.co.kr]

 

세월호 가족 못 만난 朴대통령, 순방길도 우왕좌왕

뉴시스 | 김형섭  | 입력 2015.04.16 19:29 
 
[서울=뉴시스] 김형섭 기자 = 박근혜 대통령의 16일 세월호 1주기 추모 일정과 중남미 순방길은 말 그대로 우왕좌왕이었다. 세월호 희생자와 실종자 가족들이 정부의 미온적 태도에 항의해 분향소를 임시 폐쇄하고 현장을 떠나면서 유가족을 위로하는 모습을 보여준 뒤 중남미 순방에 나서겠다는 박 대통령의 스텝도 완전히 꼬여버린 것이다. 이 과정에서 박 대통령의 출국 시간이 이례적으로 두 차례나 변경됐으며 청와대는 제대로 된 설명을 내놓지 않아 혼란을 부추겼다.

 

 

↑ 【진도=뉴시스】김영욱 기자 = 박근혜 대통령이 세월호참사 1주기를 맞은 16일 오후 전남 진도군 팽목항 방파제에서 대국민담화를 발표하고 있다. 2015.04.16. photo@newsis.com


박 대통령이 전남 진도 팽목항을 찾기로 했다는 사실이 기자단에 알려진 것은 이날 아침께다. 청와대는 막바지까지 서울 코엑스에서 열린 국민안전다짐대회와 경기 안산 정부합동분향소 방문 등의 선택지를 놓고 고민하다가 팽목항을 박 대통령의 행선지로 정했다. 전대미문의 참사였던 세월호 1주기를 맞아 국가 수장으로서 직접 희생자와 유가족을 위로하고 1년 전 이곳에서 일어났던 일을 절대 잊지 말자는 의미에서 팽목항을 찾기로 했다는 후문이다. 외교적 사정 때문이라지만 공교롭게도 중남미 4개국 순방을 위한 출국일과 세월호 1주기가 겹쳐 이날 꼭 출국해야 하느냐는 비판 여론도 박 대통령이 사고 현장에서 가까운 팽목항을 찾도록 한 것으로 보인다.

 

청와대는 팽목항을 행선지로 정하면서 박 대통령의 출국 시간을 오후 1시40분께로 잡았다. 팽목항으로 갔다가 광주공항을 통해 전용기편으로 출국하는 동선을 고려한 것이었다. 그런데 갑자기 박 대통령의 출국 시간은 오후 5시30분께로 약 4시간이나 연기됐다. 청와대는 이날 오후에 서울에서 행사가 하나 추가됐기 때문이라고만 설명하고 출국 시간이 연기된 자세한 배경이나 오후 행사의 내용 등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았다. 시간이 급히 연기되면서 오전 9시40분께 청와대 춘추관을 출발했던 기자단이 곧바로 복귀하는 해프닝도 벌어졌다.

 

청와대가 어떤 설명도 해주지 않는 사이 팽목항의 세월호 가족들이 철수한 사실이 전해지자 당초 현장에서 박 대통령이 밝히려던 메시지를 대국민담화 형식으로 청와대에서 발표하려는 것 아니냐는 추측이 돌기도 했다.

하지만 예정대로 박 대통령은 팽목항을 찾아 방파제 앞에서 세월호 선체 인양을 약속하는 대국민 메시지를 발표했다. 메시지 발표 전에는 분향소를 찾아 헌화와 분향을 하려고 했지만 분향소가 폐쇄돼 안으로 들어가지는 못하고 실종자 9명의 사진을 하나하나 바라보기만 했다. 세월호 가족들이 철수하면서 이들과의 만남도 성사되지 않았다. 당초 40분 간으로 예정돼 있던 팽목항 방문 시간도 20분으로 줄었다.

 

박 대통령은 청와대로 돌아와 15분간 수석비서관회의를 주재한 뒤 40분간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와 단독회동을 가졌다. 청와대가 밝힌 추가된 오후 일정이 바로 김 대표와의 회동이었다는 것은 만남이 시작되기 거의 직전에야 확인됐다. 이른바 '성완종 리스트' 파문이 정치권을 강타한 가운데 이뤄진 회동이어서 모종의 중대발표가 있는 것 아니냐는 관측도 나왔다. 특히 금품수수 의혹으로 이완구 국무총리에 대한 퇴진 요구가 야당에서 뿐만 아니라 여당 내에서까지 급속히 확산되고 있어 전격적인 총리 교체 가능성이 제기되기도 했다.

 

실제로 박 대통령은 이날 낮 12시께 이병기 대통령비서실장을 통해 청와대에서 만나자는 뜻을 김 대표에게 전달하는 등 급박하게 상황이 전개됐다. 그러나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중대발표는 없었다. 대신 박 대통령은 이번 파문과 관련한 특검 도입에 전향적인 입장을 취했으며 이 총리 거취와 관련해서는 "다녀와서 결정하겠다"는 말을 남겼다. 이 같은 일련의 과정 속에서 박 대통령의 출국 시간은 오후 4시40분으로 한 차례 더 변경됐다. 결국 박 대통령은 처음 계획했던 출국 시간보다 3시간 가량 뒤인 오후 4시45분께 전용기편을 통해 첫 순방지인 콜롬비아로 향했다. [ephites@newsi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