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K지역 '정치적 섬' 경주시… 등돌린 민심은?
데일리안 l 2012/02/20 07:00:45 수정 2016.01.06 08:31:21
↑ 경주는 전통적으로 새누리당 (옛 한나라당) 강세지역이다. 정수성 현 의원을 비롯해 김석기 전 서울지방경찰청장, 손동진 전 동국대 경주캠퍼스 총장, 정종복 전 의원 등 쟁쟁한 새누리당 예비후보들이 본선티켓을 향해 전력 질주하고 있다. 하지만 바닥 민심은 아직까지 미지근하기만 하다. 사진은 경주의 대표적인 재래시장인 40년 전통의 성동시장. /주간한국 자료사진
총선 격전지 르포 - 경북 경주시
정종복·정수성·손동진·김석기 '빅4' 등 9명 치열한 경쟁
축전만 보내는 의원 실망감… 후보들 이구동성 "문제 해결"
공천심사가 본격화 되면서 총선열기가 한층 달아오르고 있다. 이와 동시에 각 지역의 예비후보들 간의 경쟁도 치열해지는 상황이다. 전국 각지에서 총선과 관련한 다양한 소식이 전해지는 가운데 TK(대구ㆍ경북)의 대표적 보수지역인 고도(古都) 경주의 심상치 않은 변화가 관심을 끈다.
경주는 종래 방사성 폐기물처리장, 한국수력원자력(한수원) 등 여러 이슈가 겹친 지역인데다 이번 총선에서 '정치적 섬'으로 인식되면서 총선 결과가 주목된다. TK 지역이 새누리당 (옛 한나라당)의 텃밭으로 공천이 바로 당선의 절대적 요소이지만 경주는 예외일 수 있다는 것이다. 지난번 총선에선 무소속 정수성 후보가 당선됐다. 특히 한수원 본사 이전문제와 관련해서는 사안이 예비후보들과 연계돼 복잡 미묘하게 진행되고 있고 후보들에게 미치는 영향이 각기 달라 총선의 중요한 변수가 되고 있다.
◇ 축전만 달랑 '축전 정치인'
현 정권에 대한 경주의 민심은 그야말로 흉흉했다. 경주 시민들은 이번 정권이 들어설 때만 해도 관광지라는 특성을 살려 경주의 발전을 도모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했다. 하지만 예상은 빗나갔다. 국회의원과 시장의 의견대립, 정치적 갈림 현상 등으로 시민들에게 혼란만 가중시켰을 뿐 발전은 고사하고 오히려 퇴보했다는 게 시민들의 일반적 평가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현 정권에 대한 전반적인 불신이 팽배하고 있다. 정치권에서는 친박계의 공천을 받으면 경주 지역에서 당선을 보장받을 수 있다는 인식이 퍼져있지만 현지 사정은 전혀 다르다. 경주역 앞 재래시장인 성동시장에서 만난 한 상인은 "이번 정권이 들어설 때 기대를 많이 했지만 정작 정권 말기에 이르러 보니 경주가 이렇게 최악의 경기를 겪었던 적이 없다"며 "경주 시내 곳곳을 살펴보면 대부분의 건물이 낙후돼 당장 무너져도 이상할 게 없을 정도"라고 울분을 토했다.
또 다른 상인도 현 정권에 불만을 표시하기는 마찬가지다. 이 시장에서 30년 넘게 장사를 해온 상인은 "정치인이 천년고도 경주를 이 모양으로 만들어놨다"며 "지난 해 1,000만명의 관광객이 경주를 찾았지만 경주 경제는 여전히 최악이다. 그 이유를 아는 사람은 다 안다"고 말했다. 경주는 친이계 정종복 의원과 최근 친박계로 들어간 정수성 의원이 차례로 당선됐다. 하지만 이들의 역할은 미미했다는 게 경주시민들의 평가다. 경주 시내에서 만난 한 택시기사는 두 의원들에 대해 한마디로 '무능했다'고 평가한다.
그는 "두 사람 모두 경주출신으로 경주를 위해 발로 뛰겠다고 약속했지만 당선되자 바로 얼굴을 바꾸었다"며 "두 의원 모두 서울 중앙정치로 진입하더니 경주에 거의 내려오지 않았다. 특히 정수성 의원은 이른바 '축전정치'를 했다는 비난을 사고 있다"고 말했다. 정 의원이 경주에서 주요행사가 있을 때 직접 경주를 찾는 대신 축전만 달랑 보내기 일쑤여서 경주 시민들로부터'축전 정치인'라는 별명을 얻었다는 것이다.
◇ '공천이 곧 당선'은 옛말
경주를 돌아보면 도시 전체가 박물관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곳곳에 문화유적이 있지만 정작 관리도 제대로 안 되고 있는 것은 물론 심하게 훼손된 곳도 한 두 군데가 아니다. 시내도 마찬가지다. 경주는 고도제한으로 대부분의 건물이 6층 이하로 작고, 대부분 빌딩들이 낡아서 페인트칠이 다 벗겨져 있다. 건물주들은 이런 빌딩을 왜 그대로 방치하고 있는 것일까?
부동산 사무실을 운영하고 있는 한 건물주는 "경제가 최악의 나락으로 떨어지면서 건물 세입자가 없다. 수입이 없는데 무슨 돈으로 건물을 꾸미겠나? 경주 시내 건물들 대부분 빚더미에 올라선 것들이 대부분"이라고 말했다. 이번 선거에 경주시민들은 큰 기대를 하지 않고 있다. 후보들 중 믿을 만한 사람이 없다는 게 그 이유다. 경주에는 현재 9명의 예비 후보들이 출사표를 던졌다. 이 중 여권의 정종복 전 의원, 정수성 의원과 손동진 전 동국대 총장, 김석기 전 서울경찰청장 등이 '빅4' 경쟁을 벌이고 있다.
그러나 현지 여론은 이들 후보들에게 냉랭하다. 정종복 전 의원은 경주 시민들의 인심을 상당히 잃은 것으로 비쳐지고, 정수성 의원은 지역발전에 기여한 바는 적고 '축전정치'만 했다는 소리가 무성하다. 김석기 전 청장은 용산참사 문제와 더불어 주로 서울과 해외에서 생활했기 때문에 경주 실정에 대해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는 평가를 듣고 있다. 손동진 전 총장의 경우 대체로 무난한 편이지만 정치를 제대로 모르는 학자이고 당선된다 해도 초선이기 때문에 경주의 발전을 기대하기 어렵다는 말이 나오고 있다.
그동안 "공천이 곧 당선" 이라는 공식은 경주에서도 통하는 것으로 알려졌지만 실상을 들여다보면 그렇지도 않다. 그래서 경주는 TK지역 가운데 <정치적 섬>으로 통한다. 이 때문에 이번 선거에서도 경주에서만은 새누리당의 공천이 큰 의미가 없을 것이라는 분석에 무게가 실린다. 이는 시민들의 행동에서 그대로 드러나고 있었다. 경주의 유명 고기집에 한 후보가 찾아 손님들에게 일일이 명함을 돌리고 인사를 했다. 그런데 시민들은 대부분 명함을 조용히 받아들고 같이 인사를 나눴다.
하지만 이 후보가 식당을 나서자 대부분의 손님들이 마치 약속이나 한 듯이 받았던 명함을 곧바로 쓰레기통에 버리며 한마디씩 했다. 손님 가운데 한 50대 여성은 "저런 뻔뻔한 사람이 어떻게 고개를 들고 다니며 뽑아 달라고 하는지 이해할 수 없다"며 "저 사람이 과거 한 행동을 생각하면 이번에는 제대로 된 사람을 뽑아야 할 텐데 뽑을 사람이 없다"고 탄식했다. 식당 주인도 명함을 버리며 "사람들이 자기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몰라서 출마하는 것인지 궁금하다"며 "경주 사람들을 다 바보로 아는 것도 아니고, 서울에서 정치만 하더니 경주 사람들 속 마음을 모르는 모양"이라고 일침을 놓았다. 이 같은 생각은 대부분의 경주 시민들이 공통적으로 갖고 있는 현실인 것 같았다.
◇ 모든 후보들 "내가 정답"
각 후보들에 대한 네거티브도 난무하고 있다. 특히 일부 예비후보들과 관련해 여러 비리의혹도 적지 않다. 한 예비후보의 경우 경주 도심 개발공사를 추진하는 과정에서 거액을 횡령한 의혹을 받고 있다. 또 다른 예비후보 는 부정축재 의혹으로 검찰이 내사중이라는 소문이 파다하다. 그러나 이에 대해 해당 예비후보들은 "사실무근이며 상대편의 음해공작"이라고 이구동성으로 주장하고 있다.
경주 시민의 불신에 대해 각 후보들은 역시 이구동성으로 "내가 바로 그 문제를 해결할 정답"이라고 주장했다.
김 전 청장은 "새누리당이 나에게 공천을 줄 것으로 확신한다"며 "나를 두고 용산참사를 자꾸 거론하지만 나는 용산참사에 대한 책임을 지고 물러났다. 경찰의 당시 진압방법은 문제가 있었는지 모른다. 하지만 진압을 했어야 했다는 데는 생각이 변함없다"고 강조했다. 이어 "상대편에선 나를 두고 용산참사의 원흉이라고 말하는데 경찰은 치안을 위해 불법시위를 진압해야 한다. 화염병으로 버스가 불타고 시민이 공포에 떠는데 먼발치서 구경만 했어야 옳은 것은 아니지 않나? 나는 공천을 못 받아도 무소속으로 경쟁할 것"이라고 말했다.
손 전 총장은 "모두 철새같은 후보들뿐이다. 경주에서 계속 살면서 시장 콩나물 값까지 알고 있는 사람은 나뿐이다"라며 "다른 후보들은 모두 초·중학교만 경주에서 다니고 선거를 위해 경주인이라고 나서고 있다. 이런 사람들이 경주를 망쳤다"고 말했다. 정 전 의원은 "경주를 위해 지난날 열심히 뛰었다. 내가 만든 일들이 많지만 시민들이 세세하게 알지 못할 뿐이다"라며 "이번 선거 결과가 어떻게 될지 모르지만 당은 나를 선택할 것"이라고 말했다. [윤지환 기자 jj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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