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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권·국회

[볼만한 총선전] '원조친박 vs 친박'의 여성 대결

잠용(潛蓉) 2016. 1. 27. 11:25

[서울 서초갑]

두 여성 '원조친박 vs 친박'의 대결
주간경향ㅣ1162호ㅣ2016.02.02


이혜훈 전 의원과 조윤선 전 청와대 정무수석 양자 구도
“(예비후보들이) 인사하고 명함 돌리는 게 슬슬 눈에 띄니까 ‘아, 이제 선거철이 왔나보다’ 하는 거죠. 어차피 누가 돼도 될 거라면 최대한 나한테 득이 되는 쪽은 누군지 따져보긴 해야죠.” 서울 서초구 방배1동에 사는 주부 권세희씨(34)는 ‘실리’를 강조했다. “딱히 지지하는 당도 없고 투표 안 할 때도 있고 그런데, 집안 분위기 때문에 새누리당 쪽에 가깝긴 하죠. 어차피 이 동네에선 새누리당 사람이 될 확률이 높으니까, 그럼 그 중에서는 누가 나은가를 놓고 고민하는 정도?” 어린 자녀를 키우고 있으니 보육지원에 대한 공약이 좋거나, 지역의 교통체증 문제 같은 생활 현안에 관심 갖는 쪽을 지지하겠다는 것이다.


서울 서초구 갑 선거구는 흔히 새누리당의 ‘텃밭’이라 불리는 ‘강남벨트’에 묶인 선거구 중 하나다. 박찬종 전 의원이 1988년과 1992년 13·14대 총선에서 각각 무소속과 신정치개혁당 소속으로 당선된 이후 15대 총선부터는 단 한 번도 신한국당-한나라당-새누리당으로 이어지는 보수정당이 의석을 뺏긴 일이 없는 선거구다. 오는 20대 총선도 큰 이변이 없는 한 새누리당의 공천을 받은 후보가 당선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현역 의원인 새누리당 김회선 의원이 불출마를 선언하면서 새누리당 공천을 두고 이혜훈 전 의원과 조윤선 전 청와대 정무수석, 그리고 최양오 현대경제연구원 고문이 치열한 경쟁을 벌이고 있다.



↑ 서울 서초구 반포동 고속터미널과 신반포 아파트단지 일대의 모습. / 김태훈 기자


‘강남벨트’에 묶인 새누리당의 ‘텃밭’
특히 ‘원조 친박’과 ‘친박’의 대결로 주목을 끄는 두 여성 예비후보 간의 경쟁이 치열하다. 지난해 12월 20일 국회 정론관에서 20대 총선 서초 갑 출마 선언을 하며 두 예비후보는 15분 간격을 두고 차례로 단상에 올랐다. 긴 대화 없이 굳은 악수를 나눌 때부터 둘 사이에는 불꽃이 튀었다. 당내 공천룰이 확정되면서 두 사람은 여성 가산점도 똑같이 10%씩 받게 됐다. 아직까지는 누가 공천을 받게 될지 아무도 예측할 수 없는 상황이다.


하지만 불꽃 튀는 경쟁에 비하면 지역구 유권자들의 반응은 미지근한 편이었다. 고속터미널 주변 상가에서 만난 주민들은 선뜻 어느 후보를 선호하거나 지지한다고 말하길 꺼렸다. “(이혜훈, 조윤선) 두 사람 다 인상은 강한데, 내가 정치에 관심이 없어서 그런가 무슨 업적이 있는지는 잘 모르겠어.” 상가에서 만난 자영업자 신용일씨(62)는 “그나마 이혜훈씨는 여기 지역구 의원을 했으니까 그런가 보다 싶은데, 조윤선씨는 TV에서 자주 본 것 외에는 딱히 내세울 게 있나 싶다”고 말했다. 함께 있던 박준모씨(62)도 “그나마 조씨는 얼굴이 좀 새로우니까 눈이 가는 점은 있고, 그것 말고는 별 감흥이 없다”고 말했다.


여성 유권자들의 반응은 그래도 비교적 뚜렷한 편이었다. 신반포 아파트단지 일대에서 만난 직장인과 주부 등 여성 중·장년 유권자들은 예비후보들에 대한 감상을 가감 없이 표현했다. 주부 박영욱씨(43)는 “조윤선씨가 똑똑하고 똑 부러지는 이미지라 좀 더 호감이 간다”며 “어차피 당도 같고 공약도 크게 다를 게 없을 텐데, 이왕이면 그래도 좀 젊고 새로운 사람이 하는 게 나을 것 같다”고 말했다. 반면 직장인 정모씨(42)는 “(조 전 수석이) 박근혜 대통령과 아주 가까운 사이라는 걸 강조하는 게 거부감이 든다”며 “나도 보수적이지만 박 대통령 정치하는 모습이 별로 곱게 보이진 않던데, 대통령 마케팅하는 게 그리 효과가 있을까 싶다”고 말했다.


김무성 대표 처남 최양오 예비후보 가세
아파트가 밀집해 있는 반포·잠원동 일대와는 달리 고급주택가에서부터 단독·다세대 주택까지 여러 형태의 주택가가 섞여 있는 방배동 주민들은 여당이 독식하는 선거 분위기에 대한 반감을 드러내기도 했다. 직장인 주성혁씨(39)는 “대통령과 가깝고 유명하기만 하면 당선이 유력한 선거구에 얼굴 들이밀 수 있고, 주민들도 집 가지고 있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무조건 밀어주는 분위기 때문에 이사 가고 싶은 심정”이라고 말했다. 주부 이희정씨(34)도 “선거기간조차도 세들어 사는 사람들에게는 제대로 된 공약 하나 안 내놓는 정치인들을 보고선 이제 별 기대를 안 걸고 있다”고 말했다.


서초 갑은 친박과 비박의 대결이라는 점과 두 유명 여성 예비후보 간의 대결이라는 점 외에도 경선과정에서의 흥행 여부가 전체 총선 판도에 영향을 줄 수 있어 더욱 눈길을 끄는 지역이다. 박빙의 승부가 이어지며 극적인 결과가 나타날수록 당 전체가 이목을 끌 수 있기 때문이다. 격전 선거구의 후보들이 새누리당의 신진 인재 영입 부진을 대신해 활약해야 할 형편이다.




하지만 우선 유권자 전체보다는 당내 경선을 좌우할 충성도 높은 새누리당 지지층의 마음을 사로잡아야 하는 예비후보들의 입장에서는 보수적 색채나 박 대통령과의 친분 등을 강조하는 것이 여러 전술 가운데 하나로 활용되고 있다. ‘동성애 반대’ 등 보수성향이 강하게 드러나는 문제에 대한 발언으로 주목을 끌고 있는 이 전 의원은 “아직 지역구 전반적으로는 선거 분위기가 달아오르지 않은 만큼 당내 경선과 공천과정에 관심이 클 지지층을 중심으로 유세 반경을 넓혀가고 있다”고 말했다.


조 전 수석은 초등학생 시절 구반포로 이사 온 뒤 서초구에서 40년 가까이 살았다는 점을 강조하며 ‘서초의 딸’이라는 점을 내세우고 있다. 조 전 수석은 18대에서 비례대표로 국회에 입성한 뒤 19대 총선에서는 서울 종로구 출마를 타진하다 당 지도부의 방침을 고려해 출마 의사를 접은 바 있어, 사실상 이번이 첫 번째 선거인 셈이다. 원내 진출 대신 대선 중앙선대위와 대통령 당선인 대변인을 역임하고, 정부 출범 이후 여성가족부 장관과 청와대 정무수석으로 일한 ‘친박근혜’ 경력을 전면에 부각시키고 있다.


두 여성 예비후보의 양자구도가 굳어지는 양상이지만 틈새를 노리는 최양오 예비후보는 아직 충분히 반전 가능성이 있다고 판단하고 있다. 최 예비후보는 그동안 지역구를 새누리당 의원이 독식해오는 동안 지역 내 소외계층의 입지는 ‘부자동네’라는 이미지와는 달리 점차 어려워지기만 했다는 점에 주목하고 있다고 밝혔다. 다른 지역에서 보는 인상과는 달리 부촌 내 소외지역·계층의 목소리는 다른 지역보다 오히려 덜 반영되고 있다는 것이다. 최 예비후보 측 관계자는 “지역 내 소외계층 문제 외에도 많은 서초 갑 주민들이 국회의원이 중앙정치에만 몰두해 지역을 등한시했다는 문제를 제기한다”고 말하며 “김무성 대표의 처남이라는 점 때문에 관심을 받고는 있지만 그 관계를 정치적으로 이용할 생각은 전혀 없다”고 밝혔다. <김태훈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