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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불교·죽음

[玄覺 스님] 碧眼佛子가 본 한국 조계종의 민낯… 아직도 '祈福信仰'

잠용(潛蓉) 2016. 8. 1. 15:17

“외국인 스님은 장식품”…

현각 스님 “한국불교 떠나겠다"  
매일종교신문ㅣ2016/07/31 [22:25]  
[글/ 문윤홍 논설위원]      
 
하버드대 출신 엘리트 미국인 현각 스님

한국 불교 기복 종교로 돌아가… 슬퍼"

베스트셀러 <만행―하버드에서 화계사까지>의 저자로 잘 알려진 미국인 현각(玄覺 52·사진) 스님이 "외국 스님들은 오로지 조계종의 데코레이션(장식품)"이라며 "한국 불교의 좁은 정신으로부터 떠나겠다"고 선언했다. 현재 그리스에 머물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 그는 7월 27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이같이 밝혔다. 현각 스님은 한국 불교를 떠나는 이유로 유교적 관습, 남녀·국적 차별, 형식주의, 기복(祈福)주의, 스님과 신도의 차등 등을 들었다. 그는 "한국 선(禪) 불교를 전세계에 전파했던, 누구나 자기 본성품을 볼 수 있는 열린 그 자리는 그냥 기복종교로 돌아갔다"며 "기복=$(돈). 참 슬픈 일"이라고 적었다.
 
그는 <서울대에 왔던 외국인 교수들, 줄줄이 떠난다>는 제목의 7월 26일자 <조선일보> 기사를 인용하며 "이 사람들 마음을 100% 이해하고 동감한다"며 "8월 중순에 한국을 마지막으로 공식 방문한다. 화계사로 가서 은사(崇山) 스님의 부도탑 참배, 지방 행사 참석 그리고 사요나라(작별) 준비"라고 적었다. "환속은 안 하지만 유럽·미국에서 활동할 것"이라고도 했다.

 

 

현각 스님의 조계종 비판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그는 지난 3월에도 "한국 불교는 나 같은 외국인이 보기에 너무 배타적"이라며 "나는 한국 불교로 출가한 지 27년이 됐지만. 여전히 인종차별이 있던 시대에 흑인들이 당했던 것처럼 '버스 뒷자리로 가라'는 말을 듣는 느낌"이라고 했었다. 현각 스님은 이번 페이스북 글에서도 "숭산 스님께서 45년 전에 한국 불교를 위해서 새 문을 열었고, 나와 100명 외국인 출가자들이 그 포용하는 대문으로 들어왔다"며 "그런데 (조계)종단이 그 문을 자꾸자꾸 좁게 만든다"고 말했다. 1960년대 이후 서구 지식인을 대상으로 포교 활동을 폈던 숭산(崇山·1927~2004) 스님은 외국인 제자들이 한국 불교에 정착하도록 보살핀 '큰 우산'이었다. 현각 스님은 숭산 스님 입적 이후 한국을 떠나 독일 등 유럽에서 지냈으며 다른 외국인 제자들은 계룡산 무상사(無常寺)를 거점으로 활동하고 있다.
 
현각 스님의 이번 발언을 놓고 불교계 안팎에서는 여러 해석들이 나오고 있다. 조계종의 한 관계자는 “한국 불교의 수행 문화와 전통이 서양 출신의 현각 스님에게는 권위적으로 느껴진 것 같다”며 “문화적 차이로 인해 불만이 생겼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현각 스님의 은사이자 한국 불교의 세계화를 이끌었던 숭산 스님의 가르침이 해외에 비해 국내에서는 제대로 조명을 받지 못하고 있어 이를 서운하게 생각했을 것이라는 견해도 있다. 이번 일을 계기로 한국 불교의 세계화와 해외 포교의 문제점을 짚어보고 대책 마련에 나서야 한다는 목소리도 힘을 얻고 있다. 무엇보다 해외에 잘 알려져 있지 않은 한국 불교의 위상과 가치를 제대로 알리고 체계적인 해외 포교를 위한 전문 교육기관 설립 등이 시급하다는 지적이다.
 
현각 스님이 "한국 불교 떠나겠다" 공식 선언한 배경은? 
‘푸른 눈의 수행자’ 현각 스님이 자신의 페이스북에 조계종의 행태를 신랄하게 비판하며 한국을 떠나겠다는 글을 올리자 현각 스님에 대한 네티즌들의 관심이 뜨겁다. 한국 불교와 절연(絶緣)을 선언한 현각 스님의 본명은 폴 뮌젠(Paul Muenzen, 미국 뉴저지 주 라흐웨이 출신)으로, 가톨릭 집안에서 태어났다. 1964년 미국 뉴저지에서 9형제 중 7번째 아들로 태어난 현각 스님은 1983년 예일대에 입학해 서양 철학을 전공했다. 하지만 서양 종교와 철학에서 만족을 얻지 못하던 중 1990년 우연히 숭산 스님의 설법을 듣고 크게 감동해 불교에 입문하게 됐다.   

 

 

현각 스님은 그 이후 현정사 주지, 화계사 국제선원 선원장 등을 지내며 한국 불교를 세계에 알리는 데 힘써왔다. 하지만 7월27일 본인의 페이스북을 통해 “이번 해는 승려 생활을 한 지 25년째인데 주한 외국인 스님은 오로지 조계종의 데커레이션(장식품)일 뿐이다. 이게 내 25년간 경험이다. 나도 자연스럽게 떠날 수밖에 없다”고 밝혔다. 이날 현각 스님은 “8월 한국을 마지막으로 공식 방문해 화계사로 가서 은사 스님(숭산) 부도탑 참배, 지방 행사 참석, 그리고 이별 준비를 할 것”이라며 “환속은 안 하지만 현대인들이 참다운 화두선(話頭禪) 공부를 할 수 있도록 유럽이나 미국에서 활동할 것”이라고 말했다. 
 
눈물 글썽인 현각 스님 "한국 불교, 다양한 知的 DNA 수용해야 할 때"

"아직도 배타적인 한국불교… 세계화 한다지만 '100인 공사' 토론회에

외국스님 단 한명도 안 불러"   
“한국 불교는 좋은 전통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우리가 최고'라는 생각을 버리고 외부의 지적(知的) DNA(intellectual DNA)를 받아들여야 합니다." 하버드대 출신의 현각 스님은 흥분했다. 지난 겨울 석 달간 조계산 송광사에서 동안거(冬安居)를 마치고 3월7일 독일로 떠나기에 앞서 국내 언론과의 인터뷰를 가졌다. 다음은 인터뷰 내용을 정리한 것이다.  

 

▲  현재 독일에서 한국 선불교를 알리고 있는 미국인 현각스님     
 

- "'토킹 헤드(talking head), 말만 많은 텅 빈 대가리'가 되는 것 같다"며 2008년 말 독일로 떠났다. 독일에서의 생활은?  
"뮌헨과 인근 레겐스부르크를 오가며 선(禪)수행을 지도하고 있다. 한국에서 책(『만행-하버드에서 화계사까지』) 때문에 너무 유명해졌다. 스타 연예인 같았다. 실수였다. 좀 외롭고 싶었다. 나를 따라다니는 그림자를 없애기 위해 독일로 갔다. 2015년 가을 레겐스부르크에 40평 정도의 수행 공간을 마련하고 '불이선원(不二禪院)'이라 이름 붙였다. 독일로 돌아가면 출가자, 재가자 가리지 않고 진정한 사부대중 수행공동체를 만들려고 한다."
 
-'불이(不二)'라고 선원 이름을 지은 이유는?  
"여러 이유가 있다. 불교적으로 나와 너, 세상 만물이 둘이 아닌 것과 한국의 통일을 바라는 마음이 담겼다. 나는 육신의 부모와 정신적 아버지가 모두 분단국 출신이다. 아버지는 동서로 나뉜 독일계이고 어머니는 남북으로 갈린 아일랜드계이다, 숭산 스님은 북한 출신이다. 독일은 통일됐고, 아일랜드도 평화롭다. 그러나 한국은 아직 그렇지 못하다. 우리는 서해, 남해, 동해로 나누지만 본질은 모두 물, H2O다."
 
-유럽인들의 참선에 대한 반응은? 
"지난 가을 집중 수행 기간에 한 30대 독일 여성이 찾아왔다. '남동생은 자살했고, 어머니는 세 번이나 자살을 시도했다. 남자 친구와도 헤어졌다'며 울었다. '호흡하는 나'에 집중할 것을 권했다. 이틀이 지나자 미소가 돌아왔다. 그리고 '이제 창밖의 새소리를 들을 수 있다'며 눈물을 흘렸다. 환희의 눈물이었다. 내가 지금 생각해도 눈물 나도록 고마운 스승님의 가르침이 바로 그것이다. 본래의 성품을 바로 보게 해주신 것이다.
 
서양 사람들은 그런 점에서 불교를 '테크놀로지'로 받아들인다. '종교'가 나 외의 다른 존재를 믿는 것이라면, 불교는 수행을 통해 나의 본래 모습을 볼 수 있게 해준다는 것이다. 불교의 가르침은 원수들과 같은 자리에 있어도 '헤이 주드'(비틀스 노래)가 들리면 모두 함께 어깨를 들썩이는 것과 같은 것이다."- 평소 한국에 대한 지극한 사랑을 말해왔다. "어릴 때부터 '왜 어떤 나라의 어린이들은 전쟁과 기근에 시달리고 나는 이렇게 편하게 살까?'와 같은 고민이 있었다. 그런 고민 때문에 여러 종교의 문을 두드렸는데 숭산 스님이 마음의 열쇠를 열어줬다. 그 가르침이 좋아서 출가했는데 그곳이 한국이었고, 결과적으로 한국도 좋아하게 된 것이다. 그러나 한국 불교는 나 같은 외국인이 보기엔 아직 너무 배타적이다." 
 
-어떤 점에서 그런가? 
"예를 들어 조계종은 작년(2015년) '사부대중 100인공사'를 열었다. 출가자와 재가자가 한자리에서 토론하는 자리였다. 좋은 시도이다. 그런데 거기에 외국인은 단 한 사람도 없었다. 인종차별이 있던 1960년대 미국에서 흑인은 버스 뒷자리에 앉아야 했다. 나는 한국 불교로 출가한 지 27년 됐지만, 여전히 '뒷자리로 가라'는 말을 듣는 것 같은 느낌이다. 한국 불교가 세계화, 국제화한다고 하는데 왜 이미 한국 불교가 좋아서 온 사람들의 경험을 활용하지 않나? 답답하다." 

-어떻게 바뀌어야 한다고 보는가?  
"한국 스님들은 '독일엔 신도가 몇이나 있느냐?'고 묻는다. 나는 '제로(0)'라고 말한다. 그 대신 '공부하고 싶어 하는 사람은 몇 명이다'고 답한다. '무슨 화두를 들고 있냐?'고도 묻는다. 부처님과 육조 혜능 스님 이후에 나온 것이 1700공안(公案), 화두이다. 부처님과 혜능 스님이 1700개 중 어떤 화두로 깨쳤나? 매일 신문 1면부터 더 큰 화두가 외치고 있다. 숭산 스님은 내가 한국말이 늘어도 '어, 현각이 한국사람 다 됐네'라고 말씀하신 적이 없다. 전통만 고집하기보다는 다른 문화 전통에서 온 사람들의 다양한 경험과 지적 DNA를 수용해야 한다."
 
현각 스님은 7월28일 자신의 페이스북에서 ‘절망’을 토해냈다. 그는 “8월 중순이 한국에 대한 마지막 공식 방문”이라며 한국 불교와의 인연에 대해 분명하게 선을 그었다. 현각 스님이 울분을 표출한 데는 오랜 세월 애를 써도 뚫리지 않았던 ‘조계종의 장벽’이 있기 때문이다. 현각 스님은 “2014년 겨울에 외국인 행자가 한 명 없어졌다”고 했다. 출가를 위해 머리를 깎았다가 중간에 도망간 것이다. 그는 “이번 주에도 한 명, 내가 올라오기 직전에도 외국인 행자가 한 명 사라졌다”며 눈물을 글썽였다. 그건 분노와 아쉬움이 범벅된, 그런 눈물이었다. 오늘의 이 사태를 예견한 얘기였다. 
 
- 일이 힘들어서 그런가? 
“외국인이 멀리 한국까지 와서 왜 머리를 깎겠나? ‘참 나’를 찾기 위해서다. 그것을 위해서 우리는 바다를 건너왔다. 그런데 조계종 스님이 되는 것은 너무 어렵다. 외국인 행자에게는 아예 ‘포기’를 강요하는 것과 같다. 그건 절집 일이 힘들어서가 아니다.”
 
-무엇이 그토록 절망적인가? 
“머리 깎은 행자가 스님이 되려면 우선 사미계를 받아야 한다. 그걸 받으려면 ‘한국어 능력시험(TOPIK)’ 1급을 취득해야 한다. 그게 없으면 규정상 사미·사미니계 수계 교육을 받을 수가 없다. 또 비구가 되기 위한 승가고시는 한국어로 출제되는 필기시험이다. 똑같은 내용의 시험을 외국어로는 볼 수가 없다.”
 
- 한국어 능력시험 1급을 따기가 힘든가? 
“행자 생활은 새벽 3시부터 밤 10시까지 계속된다. 낮에 동국대나 중앙승가대, 아니면 전통강원을 다녀도 숙제할 시간이 아예 없다. 절집에서 온갖 일과 심부름을 해야 한다. 그런데 낯선 한국어를 어떻게 익히겠나? 그러니 시험을 봐도 계속 낙방, 낙방, 낙방한다. 그러다 결국 승복을 벗고 도망간다. 비현실적인 제도가 ‘출가의 꿈’ 을 가로막고 있다.”
 
현각 스님이 출가했을 때도 그랬다. 스승인 숭산 스님은 그에게 “한국어를 배우지 말라”고 했다. 화계사에서 생활하던 그는 스승을 졸랐다. 겨우 설득한 끝에 연세대학교 어학당을 오가며 한국어를 익혔다. 스승의 배려가 있어 가능한 일이었다. 현각 스님은 종립기본선원을 거쳐 1992년 비구계를 받고 조계종 승려가 됐다.  외국인 출가자에게 ‘한국어 능력시험 1급’을 의무사항으로 못 박은 것은 가혹하다. 현각 스님은 “무식한 대책”이라고 일갈했다. 외국인 출가자들 중 상당수가 미국이나 유럽, 아시아 등지의 대학에서 이미 4년 이상 교육을 받은 엘리트들이다. 영어 외에도 스페인어ㆍ프랑스어 등 제2, 제3 외국어에 능통한 이들도 꽤 있다.

 

조계종이 지향하는 ‘한국불교 세계화’를 위해서도 없어서는 안 될 인재들이다. 그런데도 조계종은 “외국인도 스님이 되면 목탁을 치며 염불을 해야 한다. 불교 의식을 집행해야 한다. 그럼 한국어를 알아야 한다”며 결과적으로 이들을 내치고 있다. 한문 원전으로 진행되는 불교 경전 교육도 외국인에게는 큰 부담이다. 조계종 총무원은 “외국인에게 유리한 시험 조건을 만들면 ‘형평성’에도 문제가 있다”고 해명하지만 궁색하기 짝이 없다. 숭산 스님은 이런 이유로 외국인 제자들을 위해 ‘관음선종’이란 별도의 종단을 만들었다. 현각 스님은 조계종단 소속이지만 숭산 스님의 제자인 계룡산 무상사의 외국인 스님들은 대부분 관음선종 소속이다. 현각 스님은 조계종단을 향해 “우물 안 개구리”라고 지적했다.
 
현각 스님은 독일로 간 이후 매년 겨울마다 한국에 들어와 송광사 등에서 동안거에 참여했다. 앞으로는 한동안 쉽지 않을 전망이다. 이 기간에 독일 사람들을 대상으로 10일짜리, 20일짜리 참선 프로그램을 운영해야 하기 때문이다. 숭산 스님은 그에게 “한국말 배우지 마!”라며 “한국말 배우면 신도들이 자꾸자꾸 찾아와 네 마음을 복잡하게 만든다. 오직 ‘참 나’를 찾는데 집중하라”고 했다. 마주 앉은 현각 스님은 열반하신 스승을 떠올리며 눈물을 글썽였다. “숭산 스님께서는 당신네 절집 문화보다 ‘저의 화두’를 더 중요하게 여기셨다. 그러한 스승이 그립다. 나는 지금 울고 있다.”
 
현각 스님은 누구?…

1990년 하버드대 숭산 스님과 운명적 만남 후 불교입문' 
현각 스님이 자신의 페이스북에 조계종의 행태를 신랄하게 비판하며 한국을 떠나겠다는 글을 올리자 현각 스님에 대한 네티즌들의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한국 불교와 절연을 선언한 현각 스님의 본명은 폴 뮌젠으로, 가톨릭 집안에서 태어났다. 1964년 미국 뉴저지에서 9형제 중 7번째 아들로 태어난 현각 스님은 1983년 예일대에 입학해 서양 철학을 전공했다.

▲ 현각 스님이 한국 불교계를 떠나겠다는 입장을 밝히면서 

스님에 대한 네티즌들의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현각 스님은 졸업 후 영어 및 독일어 강사, 법률사무소 직원 등으로 근무하다 1989년 로마 가톨릭의 신부가 되기 위해 하버드대 신학대학원 비교종교학과에 진학했다. 하지만 서양 종교와 철학에서 만족을 얻지 못하던 중에 1990년 우연히 숭산 스님의 설법을 듣고 크게 감동해 불교에 입문하게 됐다. 1992년 중국 조계산 남화사에서 계를 받고 출가한 현각 스님은 1996년 비구계를 받았으며 2001년 숭산 스님으로 부터 공식 인가를 받았다. 이후 현정사 주지, 화계사 국제선원 선원장 등을 지내며 한국 불교를 세계에 알리는 데 힘써왔다. 현각 스님은 페이스북 글에서 “오는 8월 중순에 한국을 마지막으로 공식 방문한다”며 “화계사(서울 강북구)로 가서 은사 스님인 숭산 스님의 부도탑에 참배하고 지방 행사에 참석한 뒤 한국을 떠날 준비를 하겠다. 물론 환속(출가자가 속세로 돌아가는 것)은 안 하지만 현대인들이 참다운 화두선 공부를 할 수 있도록 유럽이나 미국에서 활동할 것”이라고 말했다. <수암(守岩) 문윤홍·칼럼니스트· moon4758@naver.com

 

[사설] 현각스님이 한국 종교에 던진 화두
민중의소리ㅣ2016-08-01 07:30:06 수정 2016-08-01 07:30:06

 

현각 스님의 “한국불교를 떠나겠다”는 발언에 많은 이들이 충격에 빠졌다. 현각 스님은 페이스북에 올린 글을 통해 “숭산 스님이 세운 혁명적인 화계사 국제선원을 완전히 해체시켰다”며 “한국 선불교를 전 세계에 전파했던, 누구나 자기 본 성품을 볼 수 있는 열린 그 자리를 기복 종교로 만들었다. 왜냐하면 ‘기복 = $(돈)’. 참 슬픈 일이다”라고 비판했다. 올 초 화계사 외국인 행자교육원이 문을 닫게 된 사태를 거론한 것이다. 그가 한국불교를 떠나는 이유로 밝힌 ‘기복’과 관련한 비판은 불교뿐만 아니라 한국 종교 전체에 무거운 화두로 다가왔다.

 

기복신앙’은 자신의 복을 신에게 비는 것을 의미한다. 신에게 무엇을 비는 것이 무슨 큰 잘못이냐고 말할 수 있겠지만 문제는 많은 종교들이 그런 신도들의 욕망을 채워주며 돈을 제물로 성장을 거듭했다는 데 있다. 결국 ‘신’은 사라지고, ‘돈’이 종교의 최고 가치가 됐다. ‘사찰’과 ‘교회’는 ‘부처’와 ‘예수’의 ‘종’이 아니라 ‘돈’과 ‘권력’의 ‘종’으로 전락했다. 그리고 성공을 남들에게 과시라도 하듯 엄청난 돈을 들여 경쟁적으로 ‘사찰’과 ‘교회’를 크고 화려하게 치장했다. 화려하면 화려할수록 더 많은 이들이 모여들면서 ‘욕망’의 탑은 높아만 갔다. 하지만 높아지는 욕망에 가려져 그 아래에서 신음하는 사람들의 아픔은 외면됐다.

 

2014년 개봉한 영화 ‘쿼바디스’는 물신화된 한국 개신교를 비판하면서 “그리스도의 몸 된 교회는 그리스로 가서 철학이 되었고, 로마로 가서 제도가 되었다. 유럽으로 옮겨가서 문화가 되었고, 미국으로 가서 교회는 우려 기업이 되었다. 그리고 마침내 한국에 왔을 때 교회는 대기업이 되었다”고 꼬집은 바 있다. 그리고 이런 상황은 앞선 현각 스님의 비판처럼 불교 등 나머지 종교도 크게 다르지 않은 상황이다.

 

그렇다면 종교의 참된 가치는 과연 무엇일까? 부처님께서는 “누구든지 나에게 돈 갖다 놓고 명과 복을 빌려 하지 말고, 너희가 참으로 나를 믿고 따른다면 내 가르침을 실천하라”고 했다. 예수께서는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여기 내 형제 중에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라고 했다. 종교의 참뜻은 자신의 복을 비는 것이 아니라 부처와 예수의 가르침을 실천하고 이웃에게 자비와 사랑을 베푸는 것이다. 삶을 절망한 이웃들이 스스로 목숨을 끊고, 미래를 찾지 못하는 젊음들이 눈물 흘리는 현실을 외면하고선 ‘구원’도 ‘해탈’도 있을 수 없다. 민중이 절망하는 현실에서 종교가 설 자리는 과연 어디일까? 현각 스님이 던진 화두를 한국 종교계는 뼈저리게 곱씹어봐야 할 것이다. [이 기사는 507번 공유됐습니다]


“한국 불교 떠나겠다” 현각스님의 충격 선언, 왜?    
시사위크ㅣ2016.07.30  16:33:28  

 

 

▲ 한국에서 25년째 수행 중인 현각 스님이 “주한 외국인 스님들은 오르지 조계종의 ‘데커레이션(장식품)’이었다”고 토로하며 “한국을 떠나겠다”고 전했다. <뉴시스>

 

[시사위크=김민성 기자] 대한불교조계종 소속의 ‘푸른 눈 수행자’. 하버드 대학원 출신 ‘미국인 스님’. ‘만행-하버드에서 화계사까지’의 저자. 바로 현각 스님을 표현하는 수식어다. 25년째 한국에서 수행 중인 현각 스님이 “한국을 떠나겠다”고 공표했다. 현재 그리스에 머물고 있는 현각 스님은 지난 28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오는 8월 중순에 한국을 마지막으로 공식 방문한다”면서 “화계사로 가서 은사 스님의 부도탑에 참배하고 지방 행사에 참석한 뒤 한국을 떠날 준비를 하겠다”고 밝혔다.

 

현각 스님은 한국 불교를 떠나는 가장 큰 이유로 ‘배타성’을 꼬집었다. 현각 스님은 은사인 숭산 스님이 45년 전 새 문을 열었던 당시를 떠올리며 “나와 100여 명 외국인 출가자들이 그 포용하는 큰 대문으로 들어왔다. 참 넓고 현대인들에게 딱 맞는 정신이었다”면서도 “종단이 그 문을 자꾸 좁게 만들어 지난 2∼3년간 7∼9명 외국인 승려들이 환속했고, 나도 요새는 내 유럽 상좌(제자)들에게 조계종 출가 생활을 절대로 권하지 못한다”고 설명했다.

 

앞서 현각 스님은 서울대가 영입한 외국인 교수들이 줄줄이 한국을 떠난다는 내용의 기사를 인용하며 “이 사람들의 마음을 100% 이해하고 동감한다. 나도 자연스럽게 떠날 수밖에 없다”면서 “주한 외국인 스님들은 오르지 조계종의 ‘데커레이션(장식품)’이었다. 이게 내 25년간 경험”이라고 토로했다. 이어 현각 스님은 “내가 어떻게 조선시대(에나) 어울리는 교육으로 합리주의 바탕에서 자랐던 서양 사람들을(특히 서양 여자들) 보낼 수 있을까?” 라고 반문하며 “(국제선원을 해체함으로써 종단이) 다시 조선시대로 인도했다!. 자기 본 성품을 볼 수 있는 그 자리는 그냥 기복=$(돈) 종교가 됐다”고 주장했다.

 

한편, 현각 스님은 하버드 대학원 재학 시절인 1990년 숭산 스님의 설법을 듣고 1992년 출가했다. 한국을 떠나지만 환속(속세로 돌아가는 것)할 생각은 없다. “현대인들이 참다운 화두선 공부를 할 수 있도록 유럽이나 미국에서 활동할 것”이라는 게 현각 스님의 계획이다. [김민성 기자  |  sisaweek@sisaweek.com
 
현각스님 "조계종 떠난다고 안해, 뉘앙스 오해"  
불교신문ㅣ 2016년 08월 01일 (월) 08:45:44 불교저널  budjn2009@gmail.com       

 


▲ 현각 스님은 중앙일보에 보내 온 영문 e-메일에서 "조계종을 떠난다고 안했다"면서도 한국불교에 대해 쓴소리를 전했다. 사진은 2010년 3월 16일 본지와 중앙선원이 주최한 특별초청법회에서 법문하고 있는 현각 스님.(불교저널DB)

 

중앙일보 1일 영문 e-메일 내용 보도

한국불교를 떠나겠다고 자신의 페이스북에 글을 올렸던 숭산 스님의 미국인 제자 하버드 대 출신의 현각 스님이 “나는 조계종이나 한국불교를 떠난다고 한 적은 없다”며 “(자신의)말의 뉘앙스가 완전히 오해됐다”고 전했다. <중앙일보>는 1일 현각 스님이 어제(31일) 본지에 영문 e-메일을 보내 이렇게 밝혔다고 단독 보도했다. 자신이 게시글을 쓴 것은 “현재 종단의 상태에 대해 이미 오래전에 이뤄졌어야 할 토론을 자극”하고 앞으로 “한국에서의 교육 대신 서양에서의 명상에 큰 관심을 집중하겠다는 것을 알리고자 했다”고 전했다는 것이다.

 

현각 스님은 한국불교에 대해 쓴소리를 거두지는 않았다고 한다. 특히 교육과 관련된 부분이다. 현각 스님은 “내 스승(숭산 스님)은 한국에서 서양 수행자들의 역할이 조계종단을 개혁하고 현대화하는 대화지향적인 문화를 가져온다고 열정적으로 믿었다”며 “조계종의 교육은 달마의 가르침과 기술에 대한 독특하고 귀중한 그릇”이라고 밝혔다는 것이다. 현각 스님은 그러나 “불행히도 정치와 극단적으로 완고한 민족주의 때문에 현재 조계종의 방향은 그 기술을 세계에 전하는 귀한 기회를 놓치고 있다”고 비판했다. 또 “한국의 승려와 재가불자는 이 개혁을 스스로 이뤄야 할 필요가 있는데 순응의 문화가 이를 실행하는 걸 막고 있다”며 “과도한 순응(hyper-conformity)은 한국 승려의 독특한 질병”이라고 주장했다고 전했다.

 

<중앙일보>는 e-메일 내용을 전하는 기사에서 지난해 4월 가졌던 인터뷰 내용도 함께 언급했다. 이때도 현각 스님은 “외국인 수행자들이 ‘한국어 능력시험(TOPIK)1급’을 취득해야 스님이 될 수 있는 등 비현실적인 제도가 출가의 꿈을 가로막고 있다”며 “조계종은 우물 안 개구리”라고 격한 심경을 토로했다. 조계종은 외국인도 스님이 되면 불교의식을 집행해야 하니 한국어를 알아야 하고 외국인에게 유리한 시험조건을 만들면 형평성에 문제가 있다는 입장을 보여왔다는 것이다.

 

이는 외국인 출가자 중 상당수가 미국·유럽·아시아 등지의 대학에서 이미 4년 이상 교육을 받은 엘리트로 영어 외에도 스페인어·프랑스어 등 제2 제3 외국어에 능통한 경우가 많아 조계종이 지향하는 ‘한국불교의 세계화’를 위한 인적 자산을 놓치고 있다는 지적을 낳기도 했다는 것. 현각 스님은 지난달 27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서울대를 떠나는 외국인 교수 기사를 링크하며 “돈만 밝히는 기복신앙의 한국불교를 떠나겠다”는 내용의 게시글을 올렸었다.

[단독] 현각스님, "조계종과 한국 떠난다고 한 적 없다"
[중앙일보] 입력 2016.07.31 21:10 수정 2016.07.31 22:00 인쇄  

 

↑ 현각스님 [사진 중앙포토]

 

현각스님이 자신의 페이스북 게시글이 큰 파문을 일으킨 데 대해 "나는 결코 조계종을 떠난다고 한 적 없다" 고 밝혔다. 31일 중앙일보에 보내온 영문 e메일을 통해서다. 현재 유럽에 머물고 있는 현각 스님은 이 이메일에서 "내가 한국어로 쓰는 글은 대개 한국어를 하는 자원봉사자의 검토를 받지만 이 혹독하게 무더운 여름에는 편집과정 없이 그냥 올리기로 했다"며 "(자신의) 말의 뉘앙스가 완전히 오해됐다"고 전했다. 그는 "아마도 내 형편없는 한국어 실력을 탓해야 할 것"이라면서도 "상세히 읽어보면 (조계종이나 한국불교를 떠난다는) '결정'이 없다는 걸 알게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문제의 페이스북 게시글은 현재 삭제된 상태다.

 

현각스님 "조계종과 한국불교 떠난다고 한 적 없다"
이메일 통해 "부족한 한국어 실력 탓에 와전" 밝혀
종단과 한국불교계에는 쓴소리 "개혁·토론 자극 의도"

현각스님은 서울대 외국인 교수들이 떠난다는 보도에 대한 코멘트로 이 게시글을 썼다. e메일에서는 이를 두고 "현재 종단의 상태에 대해 이미 오래전에 이뤄졌어야할 토론을 자극"하고, 자신이 앞으로 "한국에서의 교육" 대신 "서양에서의 명상에 큰 관심을 집중하겠다는 것을 알리고자 했다"고 밝혔다. "앞으로 한국에서의 강의 요청을 거절하고 내 스승(숭산스님)의 일을 서양, 특히 유럽에서 이어가는데" 힘을 쏟겠다는 것이다.

 

이를 "조계종의 품 안"이 아니라 "독일에서 시작한 작은 선(禪) 공동체"에서 할 것이라는 점도 밝혔다. . 조계종과 한국 불교에 대한 쓴소리를 거두지는 않았다. 현각스님은 "내 스승은 한국에서 서양 수행자들의 역할이 조계종단을 개혁하고 현대화하는 대화지향적인 문화를 가져온다고 열정적으로 믿었다"며 "조계종의 교육은 달마의 가르침과 기술에 대한 독특하고 귀중한 그릇"이라고 e메일에 썼다.

 

하지만 "불행히도 정치와 극단적으로 완고한 민족주의 때문에 현재 조계종의 방향은 그 기술을 세계에 전하는 귀한 기회를 놓치고 있다"고 비판했다. 또 "한국의 승려와 재가불자는 이 개혁을 스스로 이뤄야 할 필요가 있다. 하지만 순응의 문화가 이를 실행하는 걸 막고 있다"며 "과도한 순응(hyper-conformity)은 한국 승려의 독특한 질병"이라고 표현했다. [백성호 기자 vangogh@joongang.co.kr]

 

하버드대 출신 미국인 현각스님 "한국 불교 떠나겠다"
위키트리| 2016.07.29 17:00

 

현각스님/ 뉴스1 

 

하버드대 출신 미국인 불자 현각스님이 페이스북으로 "실망스러운 한국 불교를 떠나겠다"고 밝혔다. 지난 27일 현각스님은 자신의 페이스북에 서툰 한국어로 "오는 8월 중순에 한국을 마지막으로 공식 방문한다"며 "화계사로 가서 은사 스님(숭산 스님) 부도탑에 참배하고 지방 행사에 참석한 뒤 떠날 준비를 하겠다"고 적었다. 현각 스님은 현재 그리스에 머물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대한불교조계종 소속으로 25년간 승려 생활을 한 현각스님은 이 글을 통해 한국불교의 상명하복식 유교적 관심, 국적·남녀 차별, 신도 무시, 기복신앙 등을 예로 들며 한국 불교의 문제점을 지적했다. 그는 '서울대 왔던 외국인 교수들, 줄줄이 떠난다'는 기사를 링크하며 "이 사람들 마음을 100% 이해하고 동감한다. 나도 이 좁은 정신(으로부터) 자연스럽게 떠날 수밖에 없다"고 했다.


또 "주한 외국인 스님들은 오로지 조계종의 '데커레이션'"이라며 "지난 2~3년간 7~9명의 외국인 승려들이 환속했고, 나도 요새는 내 유럽 상좌(제자)들에게 조계종 출가 생활을 절대로 권하지 못한다"고 덧붙였다. 한국 불교계에 실망한 현각스님은 "현대인들의 화두선 공부를 돕기 위해 유럽이나 미국에서 활동할 것"이라고 향후 계획을 전했다.


이 글은 29일 오후 4시 기준으로 60회 넘게 공유됐다. 한편 현각스님은 지난 1990년 하버드 대학원 재학 중 숭산 스님의 설법을 접했다. 이후 1992년 출가해 현정사 주지, 화계사 국제선원 선원장 등을 지냈다. [윤희정]

 

[장도리] 2016년 8월 1일 '현각스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