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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민속·역사

[고전 예법] '차례상에 복숭아를?

잠용(潛蓉) 2016. 10. 17. 14:07

<사백마흔여덟 번째 이야기>

차례상에 복숭아를?

 

 

번역문

 

내가 어느 집에 갔더니 마당에 잘 익은 복숭아가 있었다. 마침 명절인지라 주인이 물었다.
   “복숭아도 사당에 올릴 수 있습니까?”
내가 말했다.
   “『공자가어(孔子家語)』에 실려 있는 공자의 말씀에 ‘과일의 종류가 여섯인데 복숭아가 가장 흔하므로 제사에 쓰지 않는다.’라고 하였다. 하지만 옛날 천자와 제후는 대추, 밤, 복숭아, 마른 매실, 개암 열매를 사당에 올렸다. 복숭아를 제사에 쓰는 것은 오랜 예법인데 『공자가어』에 이렇게 말한 이유를 모르겠다.


   마름, 연밥, 밤, 포 역시 제사에 올리는 음식이다. 굴도(屈到)라는 사람이 마름을 좋아하여 자기가 죽으면 제사에 마름을 올리라고 하였는데, 아들 굴건(屈建)은 예법에 맞지 않는다며 올리지 않았다. 이것도 초(楚)나라가 제정한 예법이 그러한 듯하니, 선왕(先王)의 예법에 쓰지 말라고 한 것은 아니다.
   복숭아 역시 노(魯)나라에서만 올리지 않았던 것인데 당시 사람들이 귀한 기장으로 복숭아를 닦았기 때문에 공자께서 당시 풍속을 거론하며 말한 듯하다. 다시 말해 ‘지금 제사에도 올리지 않는 흔한 복숭아를 도리어 귀한 기장쌀로 닦는구나.’라고 말한 것뿐이다.


   『시경(詩經)』 「주송(周頌)」에 ‘피라미, 자가사리, 메기, 잉어로 제사를 지낸다.’ 하였다. 그런데 당(唐)나라 사람은 잉어[鯉]가 황실의 성씨 이(李)와 음이 같다는 이유로 잉어를 적혼공(赤鯶公)이라 부르고, 잡아먹는 자에게는 곤장 60대를 쳤다. 후세에 이것이 풍속이 되어 제사에 쓰지 않게 된 것이다.
   이런 것들을 어찌 전부 따를 수 있겠는가. 지금 사람들이 심는 복숭아는 과일 중에서도 좋은 것이니, 제사에 올려도 되는 것이 의심할 것 없다.”

원문

余嘗至人家外桃熟, 時當俗節, 主人問曰: “桃亦可薦廟乎?” 余謂: “家語孔子言, 果品有六, 桃爲下, 祭祀不用. 然饋食之籩, 棗栗桃乾橑榛實, 則桃爲祭用, 古禮然也, 家語之說未可曉. 又加籩之實, 蔆芡栗脯, 蔆者芰也. 而屈到嗜之, 遺言薦祭, 其子建以爲非禮而去之. 意者楚國之定禮有然者, 非謂先王之典亦不用也. 桃亦魯國之所不薦, 而以黍雪桃, 故聖人擧時俗爲言, 其意蓋曰, 今也祭享之所不薦, 而反以貴雪賤云爾. 又如周頌鰷鱨鰋鯉以享以祀, 唐人以國姓同音謂鯉爲赤鯶公, 食者杖六十, 後人因成俗不以薦. 此類何可悉遵? 今人所種桃, 卽果之美品, 可薦無疑.

 

-이익(李瀷, 1681~1763), 『성호사설(星湖僿說)』 권12, 「복숭아를 사당에 올리는 문제에 대하여[薦桃]」

 

[해 설]

  춘추시대 노나라 애공(哀公)이 공자를 초청하여 다과를 대접했다. 다과상에는 복숭아와 기장이 올려져 있었다. 기장은 복숭아를 깨끗이 문질러 닦는 데 쓰는 것이었다. 그런데 공자는 기장부터 깨끗이 먹어치운 다음에 복숭아를 먹었다. 옆에 있던 사람들이 입을 가리고 웃었다. 애공이 말했다.
   “기장은 먹는 게 아니라 복숭아를 닦는 데 쓰는 것입니다.”
그러자 공자가 대답했다.
   “저도 알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기장은 오곡의 으뜸으로 제사에 올리는 것입니다. 반면 복숭아는 여섯 가지 과일 중에 가장 흔한 것으로 제사에 올리지 않습니다. 오곡 중에 가장 귀한 기장으로 과일 중에 가장 흔한 복숭아를 닦을 수는 없습니다.”

   『공자가어』라는 책에 나오는 이야기이다. 복숭아를 제사상에 올리지 않는 이유에 대한 문헌적 근거이다. 그런데 춘추시대 종주국 주나라의 예법을 집대성한 『주례(周禮)』를 보면, 복숭아는 분명 제사에 올리는 음식의 한 가지로 기록되어 있다. 그렇다면 주나라의 예법을 계승하였다고 자부한 노나라에서 무엇 때문에 복숭아를 제사에 올리지 않았던 것일까? 

 

   힌트는 ‘여섯 가지 과일 중에 복숭아가 가장 흔한 것’이라는 공자의 말에 있다. 노나라가 위치하였던 중국 허난성(河南省)은 지금도 복숭아가 흔한 편이다. 제사상에 복숭아를 올리지 않았던 것은 너무 흔하고 하찮은 과일이었기 때문이었다. 춘추시대 각국은 기후와 물산, 그리고 나름의 전통에 따라 제사상에 올리는 음식이 각기 달랐다. 종주국 주나라의 제사상에는 복숭아도 올리고 마름도 올렸지만, 노나라에서는 복숭아를, 초나라에서는 마름을 올리지 않았다. 그래서 성호는 복숭아를 제사에 올리지 않는 것이 노나라의 국지적인 풍습에 불과하다고 보았던 것이다. 

 

   물론 이보다 널리 알려진 이유가 있다. 귀신이 복숭아를 싫어하므로 제사상에 올리면 안 된다는 것이다. 복숭아가 귀신을 물리친다는 믿음이 오래된 것이기는 하지만, 그건 잡귀에게나 해당하는 것이다. 조상을 잡귀 취급하면 곤란하다. 조상이 잡귀에 불과하다면 제사 따위 지낼 필요가 없다. 혹시 조상님이 꿈에 나타나 꾸짖을까 무섭다고? 그렇다면 머리맡에 복숭아를 하나 놓고 자면 될 것이다. 잉어도 제사상에 올리면 안 되는 음식으로 알려져 있다. 신성한 동물이라서 그렇다는데, 이 역시 근거 없는 믿음이다. 잉어를 제사에 금기시한 것은 당나라에서 비롯된 풍속이다. 당나라는 잉어의 식용을 금지하였다. 잉어를 뜻하는 이(鯉)가 당나라의 국성(國城) 이(李)와 동음이의어였기 때문이다. 정말로 그런 법이 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당나라 단성식(段成式)의 『유양잡조(酉陽雜俎)』에 나오는 이야기다. 

 

  추석 차례상에 빠지지 않는 과일은 사과, 배, 감 따위이다. 품종에 따라 다르기는 하지만, 이 과일들의 제철은 추석이 아니다. 대개는 추석이 지나야 맛이 든다. 그렇지만 추석에 수요가 가장 많으므로 농가에서는 출하시기를 맞추려고 애쓴다. 화학비료와 촉진제를 쓰기도 한다. 추석의 제철 과일은 뭐니 뭐니 해도 복숭아이다. 그런데 제철을 맞아 가장 맛있는 복숭아는 귀신이 싫어한다는 이유로 올리지 않고, 아직 제대로 맛이 들지도 않은 과일을 기어이 비싼 값으로 구해서 올리곤 한다. 제사에는 반드시 올려야 하는 음식도 없고 절대 올리면 안 되는 음식도 없다. 원래 제사에는 그때그때 구하기 쉬운 제철 음식을 올리는 것이 전통이다. 복숭아도 잉어도 제사에 쓸 수 있다. 예학에 정통한 성호 선생의 말씀이니 믿어도 좋다.

 

<글: 장유승/ 단국대학교 동양학연구원 선임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