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촛불국민혁명

[시국선언] '주권자의 이름으로 박근혜 퇴진을 명한다'

잠용(潛蓉) 2016. 10. 27. 10:47

[강경희 칼럼] 1979년, 1997년, 그리고 2016년의 박근혜 대통령
조선일보 | 강경희 논설위원 | 입력 2016.10.27. 03:19 | 수정 2016.10.27. 08:57

 

 

'원칙의 정치인'이던 朴대통령, 국민의 분노가 증폭돼
더 큰 위기 가져오기 전에 원로에게 백방으로 지혜 구하고
여야 협치에 도움 청하면서 백의종군 심정으로 수습 나서야

엊그제 오후 박근혜 대통령이 TV 화면 앞에 섰다. 비선 실세로 알려진 최순실씨 파문과 관련해 대국민 사과를 하는 모습을 보면서 19년 전이 떠올랐다. 1997년 11월 바닥난 달러 곳간을 정부가 시인하고 IMF 구제금융을 신청한다고 경제부총리가 발표하던 장면이다. 그 순간 대통령 리더십은 바닥으로 곤두박질쳤다. 지난 40년간 대한민국에 근 20년 간격으로 심각한 리더십 공백이 닥쳤다. 박근혜 대통령만큼 국가적 위기 국면과 인생 궤적이 맞물린 인물도 드물다. 1979년 박정희 대통령이 서거한 이후 만 스물일곱에 세상에서 단절돼 긴 칩거에 들어갔다. 그를 정치 무대로 끌어낸 것이 18년 만인 1997년 IMF 외환 위기였다. '달러 부도'로 초유의 경제 위기를 맞은 나라를 위해 봉사하겠다며 정치에 입문해 대통령 자리까지 오른 그가 19년 만인 지금 '통치력 부도'를 내고 국가 위기를 가중시키고 있다.

 

박 대통령은 단아하고, 검소하며, 약속은 지킨다는 이미지로 지지층에게 각인돼 있었다. 아버지가 물려준 정치적 유산에, 모진 세월을 인내하며 지켜온 절제와 품위 덕분에 보수층의 지지를 받아 오늘의 자리에 올랐다. 노련한 국정 운영은 못 했어도 반칙이 횡행하는 우리 사회에 최소한 원칙을 세우는 개혁 정도는 추진하리라는 기대가 있었다. 그런데 형제자매까지 멀리하며 지켜온 '원칙의 정치인'이라는 정치적 자산이 '반칙 대마왕'인 최측근에게 의존하고 휘둘린 상황이 드러나면서 공중분해되고 말았다.

 

요 얼마 동안 국민이 보도를 통해 접한 비선 실세 최순실씨의 천박한 행태는 길 가다 마주치기도 싫은 인간형이다. "학교 결석하지 말라"고 지적하는 딸아이 선생님한테 돈 봉투와 쇼핑백 들고 쫓아가질 않나, 대학 지도교수 찾아가 "이런 뭐 같은 게 다 있냐"고 막말하질 않나, 그것도 모자라 권력형 치맛바람으로 130년 역사의 명문 사학인 이화여대를 쑥대밭 만들었다. 그 딸은 "능력 없으면 너희 부모를 원망해. 돈도 실력이야" 하면서 또래들을 마구 무시했다. 대통령 '빽' 믿고 비호감 모녀가 오만방자하게 굴었으니 국민 전체가 그들한테 농락당한 기분이다. 이 엽기 모녀의 대형 사고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나랏일 한다는 명분 내세워 기업들 팔 비틀어 수백억짜리 재단 만들어놓고, 그 돈으로 입에 올리기 민망한 탈선을 한 딸 독일에 빼돌려 뒷바라지할 자금 파이프라인까지 만들어놨다. 청와대에서 최순실 본 사람 없다지만, 강남에 끼리끼리 아는 사람 몇 불러다 놓고 국정 논의하고 청와대 자료며 인사 파일까지 보고받았다니 기가 찰 따름이다. 청와대 참모진이며 정부 부처는 허수아비이고, '최순실에 의한, 최순실을 위한, 최순실의' 정부가 되어가는 걸 박 대통령은 정말 몰랐을까?

 

박 대통령이 아버지 서거 이후 쓴 일기에 이런 구절이 나온다. '지금 상냥하고 친절했던 사람이 나중에 보니 이(利)에 기가 막히게 밝은 사람이 아니라고 누가 장담할 수 있을까… 덧없는 인간사이다.'(1981년 3월 2일 일기) '열 길 물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 속은 모른다는 말이 있다. 몇 번 만나만 보아도 그 됨됨이를 알 수 있는 것이 사람이지만 몇 년을 보아와도 그 진짜 모습을 모를 수도 있는 것이 또한 사람이다. 어수룩한 체하면서 속으로는 딴마음을 먹고, 뒤로는 음모를 꾸미고 음흉했던 사람을 기억하게 된다.'(1989년 1월 13일 일기)

 

서른 나이에도 알았던 세상사 이치를 왜 유독 최순실 일가한테서는 살펴보지 않았을까. 40년 전에도, 대통령이 된 지난 3년여 동안에도 크고 작게 경고 사이렌이 울렸는데도 말이다. 덧없는 게 인간사이고, 알 수 없는 게 사람이니 대통령 되어서는 사적 친분에 의존하지 말고, 공적 관계에서 일 잘한다는 사람들 두루두루 추천받아 받아들이겠다는 아량만 가졌어도 오늘날 이 엄청난 '최순실 게이트'로 리더십이 붕괴하는 악재는 초래하지 않았을 것이다. 부모 잃고 세상과 단절됐던 박 대통령을 가장 크게 지배한 것이 '배신의 트라우마'라는데, 결과적으로 국민과는 불통하고 몇 안 되는 인연하고만 소통하는 바람에 박 대통령 스스로가 국민을 배신한 상황이 되고 말았다.

 

엊그제 1분 40초의 짤막한 사과문을 발표한 뒤, 박 대통령과 청와대는 침묵하고 있다. 1997년 외환 위기를 보면서 자서전에 '흔들리는 나라 경제를 바라보며 느낀 위기감에 속이 시커멓게 타들어가는 심정이었다'고 했던 박 대통령이다. 지금은 어떨까. 자신으로 인한 이 위기를 얼마만큼의 강도로 감지하는 걸까. 국민 분노가 증폭돼 더 큰 위기를 가져오기 전에 너무, 너무 늦긴 했어도 원로들에게 백방으로 지혜를 구하고 여야 협치에 도움을 청하면서 '백의종군'하는 심정으로, 그리고 국민이 납득할 수 있는 수준으로 수습에 나서길 바란다.

 

대학가 시국선언, "주권자의 이름으로 박근혜 퇴진을 명한다...

더는 학교의 이름을 더럽히지 말라" 27일도 시국선언 잇따라

조선일보ㅣ2016.10.27 09:57

 


현 정권의 '비선 실세' 의혹을 받고 있는 최순실 씨가 국정 전반에 관여했다는 정황이 언론 보도를 통해 드러나자 이를 규탄하는 대학가의 시국선언이 확산되고 있다. /TV조선 뉴스화면 캡처
 
현 정권의 '비선 실세' 의혹을 받고 있는 최순실 씨가 국정 전반에 관여했다는 정황이 언론 보도를 통해 드러나자 이를 규탄하는 대학가의 시국선언이 확산되고 있다. 한국외대, 고려대, 한양대, 성균관대 학생들은 박근혜 대통령의 사과 및 진상규명을 촉구하는 시국선언을 한다고 27일 밝혔다. 성균관대 교수들도 이날 오전 교내 교수회관에서 시국선언을 한다. 이들은 박 대통령이 최 씨로부터 극비 사항인 외교와 국방 등의 현안뿐만 아니라 인사 문제까지 개입한 각종 의혹 보도를 접한 뒤 의견을 수렴해 시국선언에 나섰다고 밝혔다.

 

지난 26일에는 이화여대와 박 대통령의 모교인 서강대 학생들이 시국선언에 나섰다. 이화여대 총학생회는 "국민의 신임을 배신하고 최순실에게 국정을 넘긴 대통령은 국기문란 사태와 앞으로 밝혀질 진상에 책임지고, 국민이 자격을 인정할 수 없다면 대통령 자리에서 물러나야 한다"며 박 대통령의 하야를 촉구했다. 서강대 학생들도 '최순실 게이트 해결을 바라는 서강인 일동' 명의로 선언문을 내고 "최순실 게이트를 통해 드러난 적나라한 박근혜 선배님의 비참한 현실에 모든 국민과 서강인은 충격을 금할 길이 없었다"며 "선배님께서는 더는 서강의 이름을 더럽히지 말라"고 밝혔다.

 

경희대 총학생회도 이날 성명서를 통해 "지금까지 드러난 의혹이 사실로 밝혀진다면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헌법 1조를, 그 자신이 헌법기관인 대통령이 정면으로 위배하게 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앞으로 대학생들의 시국선언이 더욱 확산될 것으로 보이는 가운데, 서울대학교 총학생회도 26일 밤 "주권자의 이름으로, 정권에 퇴진을 명한다"며 시국선언문을 발표했다. [양지혜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