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핵으로 뜬 박근혜, 탄핵으로 질 위기에
중앙일보ㅣ손국희ㅣ입력 2016.12.09 16:13 수정 2016.12.09 17:03 댓글 1574개
◇ 9일 탄핵안이 가결되면서 박근혜 대통령은 헌법재판소 심판 전까지 모든 직무에서 손을 떼야하는 처지가 됐다. 이로써 탄핵은 박 대통령의 정치 경력에서 뗄레야 뗄 수 없는 요소가 됐다. 앞서 박 대통령을 정치권 전면에 화려하게 등장시킨 것도, 이번에 그를 벼랑 끝으로 몰아 넣은 것도 바로 탄핵이기 때문이다.
↑ 1998년 4월 2일 대구시 달성 보궐선거에서 당선돼 지지자들의 축하를 받고 있는 한나라당 박근혜 후보
/사진=중앙포토
박근혜 대통령은 1998년 정계에 입문했다. 하지만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에 대한 탄핵 사태 이전엔 별다른 두각을 나타내지 못했다. 2002년 4월 당시 이회창 한나라당 총재의 당 운영 방식이 “제왕적”이라며 탈당하고 한국미래연합을 창당하기도 했다. 하지만 불과 8개월 만에 대선을 앞두고 복당하는 등 '존재감이 약하다'는 평가를 받았다.
하지만 2004년 3월 12일 노 전 대통령 탄핵안이 국회에서 가결되면서 ‘정치인 박근혜’의 인생에 반전이 일어난다. 탄핵에 반대하는 시민들이 거리로 나와 촛불을 드는 등 '탄핵 역풍'이 거세게 불었기 때문이다. 탄핵 직후 이뤄진 중앙일보 여론조사에서 한나라당의 정당 지지율은 10%(열린우리당 34%, 민주당 6%)까지 추락했다. 한나라당이 4월 국회의원 총선거에서 50석도 얻지 못할 수 있다는 비관론도 나왔다. 최병렬 당시 한나라당 대표는 이런 탄핵 역풍을 맞고 대표직에서 물러났다.절체절명의 위기에 한나라당을 구한 '구원 투수'가 박 대통령이었다. 박 대통령은 임시 전당대회에서 홍사덕 의원을 누르고 당 대표로 선출되며 정계의 전면에 등장했다. 대표 선출 직후 “지금 여의도 당사로는 들어가지 않겠다. 필요하면 천막이라도 쳐서 그곳으로 들어가겠다”고 배수 진을 쳤다.
↑ 2004년 3월 24일 여의도에 천막당사를 차린 박근혜 신임 대표가 기자회견을 위해 천막 회의실을 나서고 있다. /사진=중앙포토
박 대표는 실제 다음날 국회 앞 한나라당 당사의 현판을 내리고 여의도 공원에 천막과 컨테이너를 설치하는 것으로 대표 일정을 시작했다. 전기·수도시설도 제대로 갖춰지지 않은 천막당사에서 풍찬노숙을 한 박 대통령은 동정여론을 얻었다. 일부 “정치 쇼” “이미지 정치”라는 비판도 있었다. 한나라당에 대한 반감 정서가 치솟은 상황에서 총선 참패로 대표 임기를 채우지 못할 것이란 관측도 있었다. 하지만 4월 15일 열린 총선에서 한나라당은 이런 우려를 불식시키며 기사회생했다. 제1당을 열린우리당(152석)에 내줬지만 121석을 얻으며 개헌저지선(100석)을 확보했다. 덩달아 박 대표의 정치적 위상도 급등했다. 소위 ‘박풍(朴風)’ 신드롬을 일으키며 잠재적 대권 주자로 떠올랐다. 같은해 7월에 열린 한나라당 전당대회에서 압도적 재신임을 얻으며 정치적 입지를 다졌고, 8년 뒤인 2012년 대통령 선거에서 새누리당 후보로 출마해 당선됐다.
11월 29일 대국민 3차담화를 위해 청와대 브리핑룸으로 입장하고 있는 박근혜 대통령 [사진=중앙포토]12년 뒤, 박 대통령은 아이러니하게도 탄핵안 가결로 벼랑 끝에 서게됐다. 2004년 노 전 대통령 탄핵 때와 비교하면 상황이 더 나쁘다. 당시엔 각종 여론조사에서 탄핵에 반대하는 여론이 70%에 달했다. 국회가 민의(民意)를 거슬렀다는 평이 많았다. 반면 박 대통령 지지율은 최근 4~5% 수준까지 추락했다. 지난 3일 열린 6차 촛불집회 참석자는 전국 총 232만명(주최 측 추산, 경찰 추산 43만명)으로 사상 최대 기록을 갱신했다.
박 대통령을 포함해 국정농단 사태에 연루된 주요 인물들에 대한 전방위적인 특검도 진행 중이다. 헌법재판소의 탄핵 기각 결정으로 화려하게 직무에 복귀한 노 전 대통령과 달리 박 대통령의 미래가 밝지 않다는 전망이 나오는 이유다. 박 대통령의 퇴진이 확정될 경우 특검 결과에 따라 구속 및 기소절차가 진행될 수도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탄핵으로 떠올랐다가 탄핵으로 질 위기에 몰린 박 대통령의 정치적 운명은 이제 헌법재판소의 손에 달렸다. 헌재 심판은 앞으로 180일 내에 판가름 난다. [손국희 기자 9key@joongang.co.kr]
박 대통령 ‘권한 정지’…남은 절차는?
KBS NEWSㅣ2016. 12. 9.
[앵커멘트] 탄핵소추안 의결 후 소추 의결서 전달과 함께, 박근혜 대통령은 직무 정지가 상태가 되고, 황교안 국무총리가 대통령 직무를 대행하고 있습니다. 앞으로 남은 절차를 신지혜 기자가 설명합니다.
[리포트] 오후 4시 10분, 탄핵소추안 의결 직후 정세균 국회의장은 탄핵소추의결서 원본과 사본에 각각 서명했습니다. 4시 55분, 검사 역할을 맡는 탄핵소추위원인 권성동 국회 법제사법위원장이 의결서 원본을 들고 헌법재판소로 출발했고, 1시간 뒤 헌재에 의결서를 제출하면서 탄핵소추 심판 절차가 시작됐습니다. 심사 기한은 최대 180일 이내, 헌법재판소는 2017년 6월 6일까지 박근혜 대통령의 탄핵 여부를 최종 결정해야 합니다.
[녹취] 권성동(국회 법제사법위원장) : "헌법재판소가 이 심판 절차를 가능한 한 앞당겨야 한다는 것이 저의 생각입니다." 헌재가 탄핵 결정을 선고하면 60일 이내에 새 대통령을 뽑아야 합니다. 반면 탄핵 청구가 기각되면 박 대통령은 다시 국정에 복귀합니다. 의결서 사본은 오후 7시3분 청와대에 전달됐습니다. 청와대가 의결서를 수령하면서 박근혜 대통령의 직무가 정지됐고, 동시에 황교안 총리가 대통령 권한 대행을 맡게 됐습니다. 이로써 박 대통령은 헌법이 부여한 국가원수와 행정부 수반으로서의 권한을 행사할 수 없게 됐습니다. KBS 뉴스 신지혜입니다.
<탄핵가결> 폭죽 터지는 청와대 앞
얀합뉴스ㅣ2016.12.09 21:22 댓글 387개
(서울=연합뉴스) 최재구 기자 =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국회 탄핵 표결이 가결된 9일 밤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행진을 시작한 촛불집회 참가 시민들이 청와대와 근접한 청운동 주민센터 앞에서 폭죽을 터뜨리고 있다. [jjaeck9@yna.co.kr]
[밀착취재] "중국에선 상상도 못할 일"..'촛불탄핵' 지켜본 외국인들
세계일보ㅣ이창수 기자ㅣ입력 2016.12.09 20:52 댓글 1338개
"시진핑 탄핵? 중국에선 상상조차 못할 일"
닉슨 대통령 하야한 미 '워터게이트' 떠올리기도
'헬조선' 양극화 현상이 방아쇠 당겼단 평가
“의미는 알아듣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마치 노래를 부르는 것 같았어요.” 대통령 탄핵소추안이 12년만에 국회를 통과한 9일 서울의 한 대학에서 만난 로번 피에르(22·멕시코)씨는 민주주의를 강조하는 한국인들의 모습을 무척 놀라워했다. ‘촛불집회를 아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그는 “평소 상상하던 시위와 전혀 다른 모습이었다”며 “참가자들이 노래를 부르고 있는 것 같았다”고 떠올렸다. 그동안 한국에서 일어난 일들을 지켜본 그는 “시민들의 저항이 무척 인상적이었다”며 “대통령을 쫓아낸다는 건 멕시코에서 상상도 못할 일”이라고 말했다.
↑ 9일 서울의 한 대학에서 만난 로번 피에르(22·멕시코)씨는 ‘노래를 부르는 것 같았다’고 촛불집회를 떠올리며 “대통령을 쫓아낸다는 건 멕시코에서 상상도 못할 일”이라고 말했다.
6년 임기 대통령제인 멕시코에서도 지난 8월 시민사회를 중심으로 탄핵 운동이 진행됐다. 엔리케 페냐 니에토(50) 대통령의 학위논문 표절과 대통령 부인의 부동산 비리 등 각종 의혹이 언론을 통해 드러나서다. 온라인을 중심으로 400만명 이상이 탄핵 촉구 서명을 했지만, 실제 의안으로 이어지지는 않았다. 현재 니에코 대통령의 지지율은 1995년 이후 최저 수준인 20%선으로 추락한 상태다. 교환학생 마르코 마틴 캄포(23·멕시코)씨도 “(한국의 문화는) 정치 관심도도 낮고 부패가 심한 멕시코와 비교된다”며 “한국인들이 주권을 찾기 위해 거리를 나오는 것은 대단히 바람직한 행동”이라고 평가했다.
매주 이어진 대규모 촛불집회와 대통령 탄핵 과정을 지켜본 국내 체류 외국인들은 대부분 ‘놀랍다’는 반응이었다. 무엇보다 다수의 시민들이 정치적 사안에 적극적으로 관심을 갖고 평화적인 방법으로 의지를 관철시킨 것이 인상적이란 평가다. ‘한국식 민주주의’를 곁에서 지켜본 외국인들은 “민주주의는 완벽하지 않다”며 민주주의에 대해 계속해 의문을 가질 것을 주문하기도 했다.
↑ 9일 한국을 찾은 그어카이치이(29·중국)씨는 ‘중국에서 시진핑 주석이 인민의 뜻으로 물러나는 모습을 상상할 수 있느냐’는 질문에 “절대 불가능하다. 99.9%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공산당 일당독재 국가인 중국에서 온 이들에게 매주 거리를 뒤덮는 한국의 시위문화는 무척 낯선 모습이었다. 이날 한국을 찾은 그어카이치이(29·중국)씨는 ‘대통령이 탄핵된 사실을 아느냐’는 물음에 “몰랐다. 안 그래도 식당과 길거리에서 국회모습만 비추고, 모두가 스마트폰을 들여다 보고 있었다”라며 “한국인들은 정치에 관심이 많은 것 같다. 중국에서 공공장소에서 정치를 얘기하는 것은 매우 드문 모습”이라고 말했다. 그는 ‘중국에서 시진핑 주석이 인민의 뜻으로 물러나는 모습을 상상할 수 있느냐’는 질문에는 “절대 불가능하다. 99.9% 불가능하다”며 싱긋 웃었다.
‘최순실게이트’를 지켜본 외국인들은 대통령의 불명예 퇴진으로 이어진 미국 ‘워터게이트’(1972)를 떠올리기도 했다. 당시 닉슨 대통령은 탄핵안이 상원을 통과할 것이 확실해지자, 1974년 8월8일 자진해서 대통령직에서 물러났다. 지난달 한국을 찾았다는 피터슨 존슨(34·미국)씨는 “거짓말로 신뢰를 잃은 리더는 결코 용납될 수 없다”며 “하야나 탄핵은 분명 불명예스러운 일이지만 (미국의 경우)워터게이트 이후 사회가 성숙해지는 계기가 됐다”고 말했다. 이어 “민주주의에서 사람들은 대통령을 뽑을 권리 뿐만 아니라 권력을 빼앗을 권리가 있다”고 거듭 강조했다.
↑ 한국 생활이 15년째인 앤더스 EK(67·스웨덴)씨는 “한국에서는 높은 지위의 사람들에게 너무나 큰 권력이 주어진다”면서 “박근혜 정권의 몰락이 한국의 수직적 문화를 바꾸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번 사태가 제왕적 대통령제가 만든 구조적 문제란 시선도 있었다. 한국 생활이 15년째인 앤더스 EK(67·스웨덴)씨가 지켜본 한국은 수직적인(vertical) 국가였다. 그는 “한국에서는 높은 지위의 사람들에게 너무나 큰 권력이 주어진다”면서 “스웨덴은 개방된 사회를 지향한다. 모든 사람이 누구나 자유롭게 자신의 의견을 제시하도록 돕는다”고 말했다. 이어 “박근혜 정권의 몰락이 한국의 수직적 문화를 바꾸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보았다. 덴마크에서 온 대학원생 스테판 바흐(27)씨도 ‘최순실 게이트’에 대해 “무당(shaman)이 등장하는 등 도저히 상상하기 어려운 이야기였다. 아마 드라마로 만들면 대단히 흥미로울 것”라면서도 “놀랍고 충격적인 일이지만 더 강한, 더 나은 민주주의가 만들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 덴마크에서 온 대학원생 스테판 바흐(27)씨는 최순실 게이트에 대해 “무당(shaman)이 등장하는 등 도저히 상상하기 어려운 이야기였다. 아마 드라마로 만들면 대단히 흥미로울 것”라고 말했다.
대통령 탄핵 소추안이 통과됐지만 한국사회에 남아 있는 과제도 적지 않다는 시선도 많았다. “헬조선”이란 단어를 또박또박 발음한 제레미 토마스(53·영국)씨는 “한국에 나타난 이번 현상(촛불집회, 탄핵 등)과 젊은이들의 분노가 연관성이 크다고 본다. 미국과 영국 모두 ‘브렉시트’와 ‘트럼프 현상’를 겪었는데 실업과 양극화 문제가 방아쇠를 당겼다”며 “여러 가지 중첩된 문제가 ‘박근혜’라는 부패와 악의 상징을 겨냥해 터진 것이라 생각한다”고 했다.
영국의 브렉시트에 반대했다는 그는 하지만 “국민투표로 결정한 것이고, 민주주의는 그것을 따르도록 한 제도”라며 “한국도 마찬가지로 탄핵이 되든 안 되든 그 결과를 감내해야할 것으로 본다”고 강조했다. 다만 그는 “민주주의는 완벽하지 않다. 우리는 계속해 민주주의에 대해 의문을 가지고 감시해야한다”고 덧붙였다.
[이창수·이창훈 기자 winterock@segye.com]
朴, 마지막 국무위원 간담회서 끝내 '눈물'
국민일보ㅣ권지혜 기자ㅣ입력 2016.12.09 21:42 수정 2016.12.10 00:23 댓글 3218개
구조조정·AI 확산 등 걱정 상황과 어울리지 않는 소회
박근혜 대통령은 9일 국회 탄핵소추안 가결 직후 국무위원 간담회를 소집했다. 직무 정지 전 마지막 소회를 밝히는 자리였다. 박 대통령은 담담한 표정으로 5분 분량의 모두발언을 읽어내려갔다. 이후 비공개로 진행된 간담회에서 국무위원들과 악수를 나누며 눈물을 흘린 것으로 전해졌다. 박 대통령의 발언은 국정공백 최소화와 민생 안정을 당부하는 데 초점이 맞춰졌다. 그는 “시국이 어수선하고 사회가 혼란스러울수록 힘들어지는 것은 서민과 취약계층의 삶”이라며 “대한민국의 국익과 국민 삶이 결코 방치되는 일이 있어서는 안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또 “민생 안정에는 단 한 곳의 사각지대도 발생하지 않도록 철저하고 각별하게 챙겨봐 달라”고 했다. 박 대통령은 이어 기업 구조조정, 조류인플루엔자 확산, 홀로 사는 어르신, 결식아동, 에너지 빈곤층 문제를 열거했다. 창조경제와 문화융성의 진정성이 의심받고 있다며 안타까움을 드러냈고 대한민국의 미래 발전을 위해 국정과제를 계속 추진해달라고 당부했다. 비공개 회의 말미에 박 대통령은 국무위원들을 거명하면서 인사를 나눴다. 국무위원들은 “잘못 보좌해서 죄송하다”고 했고 박 대통령은 “그동안 고생 많았다. 미안하다”고 말했다고 한다.
일부 국무위원의 눈시울도 붉어졌다는 게 참석자들의 전언이다. 일각에선 박 대통령의 민생 발언이 234표의 압도적 찬성으로 탄핵소추안이 가결돼 직무가 정지된 상황에서 하기엔 어울리지 않았다는 평가도 나왔다. 야당의 한 재선 의원은 “평상시 민생점검회의에서 할 법한 발언이었다”고 말했다. 박 대통령은 이날 TV 중계로 국회 표결 과정을 전부 지켜봤다고 한다. 박 대통령은 자신의 거취와 관련, 즉각 퇴진은 없음을 분명히 했다. 그는 “지금의 혼란이 잘 마무리되기를 바라고 있다”면서도 “앞으로 헌재의 탄핵 심판과 특검 수사에 차분하고 담담한 마음가짐으로 대응해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한편 박 대통령은 헌법 전문 변호사들을 중심으로 탄핵 심판 대리인단을 구성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대한변호사협회 법제이사로 활동한 채명성(사법연수원 36기) 변호사가 우선 합류했다. [권지혜 기자 jhk@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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