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이권의 자연생태탐사기]
청문회 증인들의 비언어 의사소통
경향신문 장이권 | 이화여대 에코과학부 교수 입력 2017.01.09 21:14 댓글 1개
↑ 김기춘 전 대통령비서실장(왼쪽 사진)과 우병우 전 청와대 민정수석(오른쪽)이 각각 6일과 22일 국회에서 열린 ‘최순실 국정농단 진상규명’ 국정조사 특별위원회 청문회에 출석해 의원들의 질의를 듣고 있다. /경향신문 자료사진
[경향신문] 지난 몇 달 동안 우리 모두의 관심은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에 집중됐다. 매일같이 뉴스와 소셜미디어에서 새로운 사실이 밝혀질 때마다 사람들은 흥분하고 분노했다. 그래서 국회에서 청문회가 열리고, 이번 사태의 주체가 되는 인물들이 TV 앞에 나섰을 때 모든 사람들의 시선이 여기에 고정되었다. 몇몇 증인들의 용감한 증언이 나올 때 사람들은 박수를 보냈다. 그러나 이번 사태와 관련된 대부분의 증인들은 ‘모른다’ ‘아니다’ ‘기억에 없다’ 로 일관했다. 법적 구속력이 있는 유의미한 정보를 얻는 데는 실패하였기 때문에 청문회 무용론도 떠올랐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반 사람들은 누가 거짓말을 하고 있고, 누가 진실을 말하는지 직관적으로 알 수 있었다. 그 이유는 우리들이 대화를 할 때 언어뿐만 아니라 손짓, 몸짓, 자세나 얼굴 표정 등을 이용해 상대를 이해하려고 하기 때문이다. 이것을 통틀어 ‘비언어 의사소통’(nonverbal communication)이라 한다. 그리고 이런 비언어 의사소통 덕분에 우리는 유의미한 말이 없었어도 증인에 대해 중요한 정보를 얻을 수 있었다.
우리 인류가 언어를 처음 사용한 시점이 언제인지는 논란거리이다. 그러나 언어를 진화시키기 이전의 원시 인류도 의사소통을 했다. 이들은 주로 동작과 소리, 그림을 이용하여 의사소통을 했는데,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뜻을 전달할 수 있다. 비언어 신호는 오늘날에도 중요하다. 서로 언어가 통하지 않는 나라의 사람들이 만나도 손짓, 몸짓을 이용하여 기본적인 대화가 가능하다.
비언어 표현의 중요성을 가장 먼저 간파한 사람은 찰스 다윈이다. <종의 기원>을 발표한 후 찰스 다윈은 인간의 기원에 대해 엄청난 비판을 감수해야 했다. 이런 비판에 맞서 그는 여러 권의 책을 발표하였는데, 그중 하나가 1872년에 나온 <인간과 동물에서 감정의 표현>이다. 이 책에서 찰스 다윈은 인간과 동물의 감정 표현을 비교하면서 비슷한 상황에서 비슷한 동작이 사용됨을 강조했다. 이런 유사성은 인간과 동물이 공통 조상에서 유래했고, 그의 자연선택에 의한 진화를 뒷받침하는 증거였다.
감정 표현에 대한 찰스 다윈의 놀라운 통찰력은 지난 몇 십 년간의 연구를 통해 대부분 사실로 밝혀졌다. 비언어 신호는 말을 할 수 없는 아기도 사용할 수 있다. 아기와 아기를 돌봐주는 사람은 울음, 웃음, 얼굴 표정을 통해 의사소통이 가능하다. 또 우리가 낯선 사람을 만나면 말을 하기 전에 먼저 비언어 신호를 이용하여 상대방과 의사소통한다. 그래서 처음 말을 걸기도 전에 상대방에 대한 첫인상이 마음속에 그려져 있다. 이런 사실은 인간의 비언어 신호가 영장류와의 공통 조상에서 유래했기 때문이다.
비언어 의사소통은 우리 사회생활 전반에 걸쳐 깊숙이 배어 있다. 사람들은 의사소통을 할 때 언어와 비언어 신호를 동시에 사용한다. 언어에도 말투, 높낮이나 억양과 같이 비언어 표현이 담겨 있다. 말을 하면서 자연스럽게 드러나는 자세, 얼굴 표정, 응시, 손짓 등은 말하는 사람의 지위, 상태, 진실성 또는 성적 매력도를 암시한다. 그래서 사람들은 의사소통할 때 전달하는 의미의 반 이상(60~65%)을 비언어 신호에 의존한다. 물론 말을 하는 사람의 나이나 성별 또는 말을 하는 상황에 따라 이 수치가 크게 바뀔 수는 있지만 비언어 신호가 우리의 의사소통에 아주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는 것은 분명하다.
언어와 비언어 신호는 그 내용이 서로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지만, 이 둘이 서로 상충할 수 있다. 이럴 경우 사람들은 언어보다 비언어 신호를 더 신뢰한다. 우리는 말이 값싸고, 진실을 쉽게 왜곡시킬 수 있다는 것을 직관적으로 알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사람 얼굴의 윗부분은 자신의 의지와 관계없이 스스로 움직이는 근육에 의해 주로 지배를 받지만, 얼굴의 아랫부분은 의지에 따라 움직이는 근육의 지배를 받는다. 그리고 두려움, 노여움, 기쁨, 슬픔, 역겨움 같은 주요 감정 표현은 얼굴 윗부분의 표정을 적어도 하나씩 포함하고 있다. 얼굴 표정 같은 비언어 신호가 얼굴 아랫부분의 움직임에 의존하는 말보다 우리의 감정을 보다 솔직하게 드러낸다는 의미이다.
비언어 신호는 언어에 비해 왜곡시키기 어렵지만 그렇다고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그리고 능숙한 거짓말쟁이는 말과 더불어 비언어 신호도 상대방을 속이기 위해 동원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거짓말을 할 때 쉽게 드러나는 비언어 표현이 있다. 그중 가장 대표적인 비언어 표현은 동공이 팽창하며 처음에는 눈을 껌뻑이지 않다가 나중에 자주 껌뻑이는 것이다. 일명 ‘동공지진’이다. 두 번째는 얼굴에 표정이 없고, 입술이 굳으며, 머리가 꼿꼿하다. 국회 청문회에서 나타난 익숙한 광경이다.
인간은 자신의 명성을 높이기 위해, 자원을 얻거나 지키기 위해, 처벌이나 충돌을 피하기 위해 거짓말을 한다. 그리고 그런 거짓말을 탐지하기 위해 말이나 비언어 신호를 통해 상대방의 마음을 읽으려고 한다. 우리 인간이 지닌 의사소통의 속임수와 독심술은 다른 어떤 동물의 능력보다 탁월하다. 불행하게도 인간의 이런 능력은 우리 의사소통에 속임이 만연해 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장이권 | 이화여대 에코과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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