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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공예·조각

[건축의 과학] 건축계의 스테디셀러 '아치' ( Arch)

잠용(潛蓉) 2017. 3. 13. 13:58

[IF] 로마 콜로세움, 신라 석굴암...

비웠더니 더 단단해졌다
조선일보ㅣ김수지 프랑스 공인건축사ㅣ입력 2017.03.11 03:04 수정 2017.03.11 08:49 댓글 34개


[건축 속 과학] (1) 건축계의 스테디셀러 '아치'

반원의 미학? 과학! 반원 형태로 돌 쌓으면
윗부분에서 누르는 힘 주변 기둥·땅으로 분산돼
문이나 창문으로 활용해
여러사람 드나들기 좋고 건축자재 절약 효과도



하늘에 오르고자 했던 바벨탑의 전설처럼 보다 높고 화려한 건축물을 짓고 싶은 것은 인간의 오랜 꿈이다. 하지만 무턱대고 쌓아 올린다고 건물이 올라가지 않는다. 땅으로 모든 것을 끌어당기는 자연법칙을 극복하며 원하는 모양의 건물을 올리기 위해 인간은 당대 최고의 지식을 건축에 쏟아부었다. 건축물에는 과연 어떤 과학이 숨어 있을까?


투구와 갑옷을 입은 검투사가 위풍당당하게 원형 경기장으로 걸어 들어온다. 맹수에 맞설 무기는 칼과 방패뿐이다. 경기장을 가득 메운 5만여 관중의 함성 속에 치열한 전투가 벌어진다. 얼마나 많은 검투사가 피를 흘리며 이곳에서 목숨을 잃었을까. 이탈리아 로마의 콜로세움 앞에 서면 전 유럽을 호령했던 고대 로마 제국의 영광이 눈앞에 그려지는 듯하다. 콜로세움의 정식 명칭은 '플라비우스 원형 경기장'. 서기 70년 베스파시아누스 황제가 착공해 10년 뒤에 아들인 티투스 황제가 완공했다. 로마 황제들은 시민들에게 볼거리를 제공하면서 인기를 얻고 정치적 입지를 굳혔다. 원형경기장은 그 핵심이었다.


콜로세움은 지름 188m, 둘레 527m의 4층 건물이다. 오늘날 보기에도 웅장한 이 경기장을 로마인들이 세울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아치(arch)' 덕분이다. 쐐기 모양의 돌이나 벽돌을 쌓아올려 둥그런 반원(半圓) 형태를 이루는 것이 바로 아치다. 콜로세움을 빙 둘러 있는 수십개의 문과 장식이 대부분 아치 형태로 구성돼 있다. 로마인들은 메소포타미아 문명 등에서 간혹 나타났던 아치를 본격적으로 발전시켜 다양한 형태로 사용했다.



아치는 단순히 돌을 채워 쌓는 것보다 여러 가지 장점이 있다. 우선 거대한 건축물에 더 큰 문이나 창문을 만들 수 있다. 과거 건축물의 주재료였던 석재(石材)나 나무를 아낄 수 있을뿐더러 수많은 관객이 동시에 콜로세움에 편하게 드나들 수 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중력에 저항할 수 있는 힘을 만들어 준다는 점이다. 아치를 구성하는 쐐기 모양의 돌(홍예석)을 반원 모양으로 쌓으면 아치 윗부분이 누르는 힘은 수직으로 미치지 않고 아치의 곡선을 따라 주변 기둥과 땅으로 분산된다. 또 홍예석은 밑이 비어 있기 때문에 위아래 구조물의 무게에 따라 늘어나거나 줄어드는 인장력도 생기지 않는다. 인장력이 없으면 반원형 모양을 만드는 것만으로 얼마든지 크게 아치의 지름을 늘릴 수도 있다. 건물 중간 중간에 공간이 비더라도 아치를 떠받치는 기둥만 튼튼하게 짓는다면 쉽게 크고 높은 건물을 올릴 수 있는 것이다. 홍예석 사이에 생기는 마찰력 때문에 별도의 접착제를 쓰지 않고도 오랫동안 형태가 유지된다.


로마인들은 다리와 수로에도 아치를 적극적으로 활용했다. 교각을 세우기에 너무 긴 강이나 계곡에도 아치를 적용하면 쉽게 구조물을 만들 수 있었다. 스페인 세고비아, 프랑스 님 등에 남아 있는 로마의 수도교(水道橋)에는 당시 쌓았던 아치가 원형 그대로 보존돼 있다. 로마 유적에서 아치가 두드러지지만 사실 아치는 전 세계 어디에서나 볼 수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석굴암이 대표적인 아치 구조이다. 석굴암은 산과 돌이 누르는 막대한 하중을 쐐기 모양의 돌을 위아래로 번갈아 끼우는 이중(二重) 아치 구조로 극복했다. 석굴암이 역사상 강력한 지진이 자주 발생했던 경주에서도 형태를 유지했던 것도 아치가 내진(耐震) 설계를 한 것과 같은 효과를 내기 때문이다. 이 밖에 프랑스 파리의 개선문이나 노트르담 성당 등 세계 곳곳의 거대한 건축물에서는 어디서나 아치 형태의 문과 구조를 볼 수 있다.


건축계의 노벨상으로 불리는 '프리츠커상' 수상자인 일본 건축가 도요 이토는 도쿄 다마 미술대 도서관을 설계하면서 안팎의 모든 것을 아치로 채운 아름다운 작품을 만들어냈다. 아치야말로 2000년의 시대를 뛰어넘어 사랑받는 건축계의 '스테디셀러'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