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용의 타임머신... 영원한 시간 속에서 자세히보기

미술·공예·조각

[문화재 복원] 국보급 문화재가 친일정권 아래 청와대 뒤에 방치

잠용(潛蓉) 2017. 9. 21. 10:16

경주 남산에 '청와대 석불좌상' 쌍둥이 불상 있다
연합뉴스ㅣ2017.09.21. 06:21 수정 2017.09.21. 08:15 댓글 42개


청와대 석불좌상(오른쪽)과 경주 남산 약수계 석불좌상 그림. 청와대 석불좌상은 중대(오른쪽 아래)가 국립춘천박물관에 있고, 하대는 없는 상태다. 그림의 출처는 '경주 남산의 불적(佛蹟)'이다. [임영애 교수 제공]  


임영애 교수 조사... 불상 중대(中臺)는 국립춘천박물관서 확인

(서울=연합뉴스) 박상현 기자 = 일제강점기 경북 경주에서 서울로 옮겨져 지금은 청와대 관저 뒤쪽에 안치된 통일신라시대 석불좌상과 형태가 매우 유사한 쌍둥이 불상이 경주 남산에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청와대 석불좌상을 조사한 임영애 경주대 교수는 "경주 남산 약수계에 청와대 석불좌상보다 약간 더 크지만, 형태와 양식은 동일한 불상이 있다"고 21일 밝혔다.


남산 약수계 석불좌상은 불상의 머리인 불두(佛頭)가 없고 무너져 있는 상태다. 이 불상은 일제강점기에 이미 조사된 바 있다. 조선총독부가 1941년 펴낸 '경주 남산의 불적(佛蹟)'이라는 책에 그림과 사진이 남아 있다. 임 교수는 두 불상의 공통점이 무엇보다 '삼단사각대좌'라고 강조했다. 삼단사각대좌는 사각형 하대(下臺)·중대(中臺)·상대(上臺)로 구성된 대좌를 말한다. 통일신라시대 불상의 대좌 중에는 팔각형 하대와 중대에 원형 상대를 올린 '삼단팔각대좌'가 많다.


임 교수는 "삼단사각대좌는 고려시대 전기에 유행한 대좌로 알려졌다"며 "청와대 석불좌상과 남산 약수계 석불좌상은 삼단사각대좌가 쓰인 가장 이른 시기의 불상으로 추정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삼단사각대좌, 두툼한 팔과 손을 보면 불상의 제작 시기는 9세기로 생각된다"고 덧붙였다.


청와대 석불좌상의 상대(上臺, 위쪽)와 남산 약수계 석불좌상의 상대. [임영애 교수 제공]


왼쪽 무릎의 긴 물방울 모양 무늬. 왼쪽이 청와대 석불좌상, 오른쪽이 남산 약수계 석불좌상이다. [임영애 교수 제공]


대좌 안에 들어간 문양도 두 불상의 공통점이다. 상대(上臺)의 문양을 비교하면 연꽃무늬가 반복적으로 들어가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고 임 교수는 설명했다. 임 교수는 "왼팔과 왼 무릎에 있는 긴 물방울 모양의 옷 주름도 비슷하고, 오른쪽 옆구리와 팔 사이에 구멍을 뚫었다는 점도 같다"며 "옆구리와 팔 사이에 공간을 만들면 불상이 입체적으로 보이는 장점이 있지만, 팔이 부러질 우려가 있어 작업이 쉽지 않다"고 강조했다.


아울러 임 교수는 조사 과정에서 청와대 석불좌상의 중대(中臺)가 국립춘천박물관에 있다는 사실도 확인했다. 이 중대는 본래 경복궁에 있었으나, 2002년 국립춘천박물관이 개관할 당시 이전됐다. 신영훈 전 한옥문화원장이 1961년에 쓴 기록에도 불상의 중대가 경복궁에 별치(別置)돼 있다는 내용이 있다. 청와대 석불좌상 중대의 사면에는 갑옷을 입고 손에 긴 칼을 쥔 신장상이 새겨져 있다. 신장상은 남산 약수계 석불좌상의 중대에도 똑같이 있다.


국립춘천박물관에 있는 청와대 석불좌상의 중대(中臺). [임영애 교수 제공]  


임 교수는 "청와대 석불좌상의 하대는 아직 찾지 못했다"며 "1939년 작성된 오가와 게이키치(小川敬吉)의 보고서에도 하대의 소재를 파악하려다 실패했다는 기록이 있다"고 말했다. 이어 "남산 약수계 석불좌상을 참고하면 청와대 석불좌상의 하대를 복원할 수 있다"며 "국립춘천박물관 중대까지 합쳐 과거의 형태로 되돌리면 좋을 것"이라고 조언했다.


경주 남산 혹은 이거사에 있었던 것으로 추정되는 청와대 석불좌상은 높이 108㎝, 어깨 너비 54.5㎝, 무릎 너비 86㎝로, 경주 석굴암과 양식이 유사하다. 풍만한 얼굴과 약간 치켜 올라간 듯한 눈이 특징으로 '미남불'로도 불린다. 서울시 유형문화재인 이 불상은 최근 서울시 문화재위원회 심의를 거쳐 국가지정문화재 보물 승격을 기다리고 있는 상태다.


임 교수는 "청와대 석불좌상은 광배와 하대는 떨어져 나갔지만, 얼굴과 손의 일부 훼손을 제외하면 매우 온전하게 보존됐다"며 "보물로 지정할 만한 가치가 충분하다"고 강조했다. 문화재청 관계자는 경주 문화계에서 주장하는 불상 이전에 대해 "아직 정해진 바가 없다"며 "쓰러진 남산 약수계 석불좌상도 쌍둥이 불상이라는 점을 고려해 원형을 복원하는 방안을 찾을 것"이라고 말했다. [psh59@yna.co.kr]


청와대 불상, 보물 승격 추진… 문화재청 "12월에 심의할 듯"
연합뉴스 | 2017/09/15 18:33


청와대 석불좌상. [연합뉴스 자료사진]


(서울=연합뉴스) 박상현 기자 = 일제강점기에 경북 경주에서 서울로 이전된 청와대 석불좌상의 국가지정문화재 보물 승격이 추진된다. 서울시 관계자는 15일 연합뉴스와의 통화에서 "오늘 열린 서울시 문화재위원회에서 통일신라시대 유물인 청와대 석불좌상의 보물 승격 안건이 가결됐다"며 "다음주에 관련 내용을 정리해 문화재청에 보낼 것"이라고 밝혔다. 문화재청은 우선 조사위원회를 꾸려 석불좌상을 보물로 지정할 만한 가치가 있는지 파악할 방침이다. 문화재청 관계자는 "별다른 문제가 없으면 오는 12월에 열리는 문화재위원회 동산분과 회의에서 석불좌상의 보물 지정을 심의하게 될 것"이라며 "보물로 지정되면 보호관리 책임주체가 서울시에서 중앙정부로 변경된다"고 설명했다.
 
다만 이 관계자는 "보물 지정과 이전은 별개의 문제"라고 선을 그은 뒤 "동산문화재인 석불좌상은 국가 소유여서 관리자인 청와대가 이전을 결정하면 옮길 수 있다"고 말했다. 청와대 대통령 관저 뒤쪽 보호각 안에 안치된 석불좌상은 8∼9세기 유물로 추정되며, 경주 석굴암 본존불과 양식이 유사하다. 이 불상은 본래 경주에 있었으나 1913년 경주금융조합 이사였던 오히라(小平)가 데라우치 마사타케(寺內正毅) 조선총독에게 바친 것으로 전한다. 이후 1927년 경복궁에 새로운 총독관저(현 청와대)가 신축되면서 현재의 위치로 이전됐다. 경주 불교계와 문화단체는 지난달 23일 기자회견을 열어 청와대 석불좌상의 경주 이전을 촉구하기도 했다. [psh59@yna.co.kr]


"청와대 석불좌상, 고향 경주로 와야"… 불교계·문화단체 촉구
연합뉴스 | 2017/08/23 16:22


청와대 석불좌상 경주로 모시기 회견 [경주시 제공=연합뉴스]


(경주=연합뉴스) 이승형 기자 = 경주 불교계와 문화단체가 청와대에 있는 통일신라시대 석불좌상을 원래 불상이 있었던 경주로 옮길 것을 촉구했다. 대한불교조계종 불국사 회주 성타 스님과 박임관 경주학연구원장, 김윤근 경주문화원장 등 경주지역 9개 단체 대표는 23일 경주시청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이같이 주장했다. 이들은 "문화재는 원래 있던 자리에 있을 때 가장 빛이 난다"며 "청와대 석불을 고향의 품으로 하루빨리 가져와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 불상은 청와대 대통령 관저 뒤쪽 보호각 안에 안치된 것으로 8∼9세기 유물로 추정한다. 서울시 유형문화재 24호로 '미남석불', 이거사 석조여래좌상이라고도 한다.
 
본래 경주에 있었으나 일제강점기인 1912년 경주금융조합 이사였던 오히라(小平)가 데라우치 마사타케(寺內正毅) 조선총독에게 바쳐 총독 관저로 옮겨졌다. 이후 1927년 경복궁에 새 총독관저가 신축되면서 현재의 위치로 자리를 옮겼다. 청와대 불상을 경주로 옮겨야 한다는 목소리는 경주 단체뿐 아니라 문화재제자리찾기, 지방분권운동대구경북본부 등 다양한 단체에서도 나오고 있다.


앞서 이달 7일 청와대와 국회에 이 불상의 이전에 관한 진정서를 제출했던 '문화재제자리찾기'는 청와대로부터 받은 답변서를 공개했다. 이 답변서에서 대통령 비서실은 "불상 이운(移運) 문제는 종교계와 관련 전문가 등의 다양한 의견 수렴과 종합적 검토가 필요한 사항으로 시간을 두고 바람직한 방향으로 결정될 수 있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haru@yna.co.kr]


시민단체 "청와대에 있는 신라불상, 경주로 돌아가야"
연합뉴스 | 2017/08/07 15:35
 

문화재제자리찾기, 청와대·국회에 진정서 제출
(서울=연합뉴스) 박상현 기자 = 시민단체 문화재제자리찾기는 청와대에 있는 통일신라시대 석불좌상을 원래 불상이 있던 곳인 경북 경주로 옮겨야 한다는 내용의 진정서를 7일 청와대와 국회에 제출했다고 밝혔다. 청와대 대통령 관저 뒤쪽 보호각 안에 안치된 이 불상은 8∼9세기 유물로 추정되며, 경주 석굴암 본존불과 양식이 유사하다. 풍만한 얼굴과 약간 치켜 올라간 듯한 눈이 특징으로 '미남불'로도 불린다. 높이는 약 1m에 이르며, 1974년 서울시 유형문화재 제24호로 지정됐다.


이 불상은 본래 경주에 있었으나 일제강점기인 1913년 경주금융조합 이사였던 오히라(小平)가 데라우치 마사타케(寺內正毅) 조선총독에게 바친 것으로 전한다. 이후 1927년 경복궁에 새로운 총독관저(현 청와대)가 신축되면서 현재의 위치로 이전됐고, 전두환 대통령 시절 보호각이 만들어졌다.


문화재제자리찾기는 진정서에서 "부당하게 조선총독부로 불법 반출된 통일신라 불상이 지금도 청와대 경내에 있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며 "하루빨리 경주로 이전해 줄 것을 간곡히 청원한다"고 밝혔다. 혜문 문화재제자리찾기 대표는 "석불좌상이 경주로 돌아간다면 일제강점기 문화재 약탈 문제를 환기하는 사건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psh59@yna.co.kr]



(사진/ KBS뉴스 캡쳐)




아픈 역사’ 청와대 석조불상… 경주로 이전?
KBS뉴스ㅣ2017.08.19 (21:23) | 수정 2017.08.19 (22:50) 



<앵커멘트> 청와대 경내에 통일신라 시대의 불상이 있다는 사실, 혹시 아시는지요? 일제 강점기에 조선 총독에게 진상품으로 바쳐졌던 아픈 역사를 간직하고 있는 불상인데요, 원래 있던 경주로 돌려보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습니다. 김석 기자가 취재했습니다.
<리포트> 청와대 후원 숲속에 있는 석조 불상. 통일신라시대인 9세기에 만들어진 석조여래좌상입니다. 석굴암 본존상의 축소판으로 불리는 보물급 문화재입니다.
<인터뷰> 박임관(경주학연구원 원장) : "통일신라의 대표적인 불상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빼어난 작품으로 볼 수 있습니다." 원래 이 불상이 있었던 곳은 경북 경주시 외곽의 한 절 터. 1912년 말 경주를 방문한 데라우치 조선 총독이 한 일본인의 집 뜰에서 보고, 각별한 관심을 보이자 집 주인이 불상을 경성의 총독 관저로 보냅니다. 총독 진상품 신세가 된 불상은 서울 남산의 총독 관저에 있다가, 1927년 총독 관저가 지금의 청와대 자리로 이전하면서 함께 옮겨졌습니다.
<인터뷰> 이순우(민족문제연구소 책임연구원) : "총독 관저 옮겨지는 거에 따라서 청와대에 들어갔지 않습니까? 그거는 전형적인 일제잔재의 한 유형이라고 볼 수 있거든요." 기구한 불상의 사연에 시민단체가 광복 72주년을 맞아 불상을 원래 자리로 돌려보내 달라는 진정서를 청와대에 냈습니다.
<인터뷰> 혜문(문화재제자리찾기 대표) : "새로운 시대의 청와대의 모습을 국민에게 보여주는 좋은 계기가 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대통령 집무실을 옮기고 청와대를 개방하겠다는 새 정부의 방침에 맞춰, 불상이 제자리를 찾을 수 있을지 관심이 모아지고 있습니다. KBS 뉴스 김석입니다.


[취재파일] ‘청와대 불상’ 경주 가나? 
KBS뉴스ㅣ2017. 8. 20.



<앵커멘트> 한여름 뙤약볕 아래서 길게 줄을 선 사람들. 대통령이 일하는 곳, 청와대를 보러 온 관람객들입니다.

<인터뷰> 홍영수(경기도 고양시) : "주말에는 6개월 치가 다 예약이 마감돼 있었고,(이것도 방학이라서) 평일 날은 좀 어려웠어요. 간신히 했어요."

1시간 반가량 청와대 곳곳을 둘러보는 관람 코스.

제한된 장소에선 기념사진도 찍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청와대 후원엔 관람객들에게는 공개되지 않는 문화재가 한 점 있습니다.

바로 통일신라시대 불상입니다.

<인터뷰> 신상빈(경기도 용인시) : "못 봤어요. 아예 못 봤어요. 코스에 없나 본데."

<인터뷰> 홍순(인천시 서구) : "저희는 가족들이 놀러 다니면서 이런 불상도 많이 보는데 여기서는 못 본 것 같아요. 확실히."

이 불상은 최근 한 시민단체가 원래 위치로 되돌려 달라는 진성서를 청와대에 내면서 주목을 받고 있습니다.

<인터뷰> 혜문(문화재제자리찾기 대표) : "(불상이 원래 그 자리에 있었던 겁니까?) 아닙니다. 원래 그 자리에 있었던 것이 아닙니다."

통일신라 불상이 왜, 언제부터, 청와대 안에 있게 된 걸까? 청와대 직원들조차 쉽게 접근할 수 없는 보안구역에 있다는 불상. 직접 본 사람이 극히 드물기 때문에 더더욱 궁금증을 자아내고 있는데요. 청와대 불상에 얽힌 길고도 복잡한 사연을 들여다봤습니다. 청와대 후원 숲 속, 보호각 아래 다소곳이 앉아 있는 석조 불상. 통일신라시대인 9세기에 만들어진 석조여래좌상입니다. 불상의 높이는 1.16m. 석굴암 본존상의 축소판으로 불릴 정도로 빼어난 예술성을 보여주는 보물급 문화재로 꼽힙니다.


<인터뷰> 박임관(경주학연구원 원장) : "양어깨가 딱 벌어지고 가슴이 볼륨이 있고 그다음 무르팍이 아주 크게 웅장하게 되어 있어서 통일신라의 대표적인 불상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빼어난 작품으로 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 불상은 관람이 쉽지 않습니다. 대통령 관저에서 가까워 일반인의 접근이 철저하게 금지돼 있기 때문입니다. 이 화면 역시 지난 2008년 이명박 대통령 시절 청와대 출입기자단이 찍은 것으로, 그 뒤로는 단 한 번도 촬영 허가가 난 적이 없습니다.

취재진이 청와대에 불상을 직접 찍을 수 있는지 물었지만 보안 문제 때문에 안 된다는 답변만 돌아왔습니다.

그렇다면 최근에 불상을 직접 본 사람은 없을까? 수소문 끝에 취재진은 문화유산 답사 모임을 운영하고 있는 강대철 씨를 만날 수 있었습니다. 강 씨가 청와대에서 불상을 직접 본 때는 2015년 11월. 아주 우연한 기회에 청와대 불상을 가까이서 관찰하고 사진도 찍는 행운을 얻었습니다. 불상의 옆 모습과 뒷모습을 담은 사진입니다. 1000년이 넘는 세월에도 보존 상태가 좋다는 걸 한눈에 알아볼 수 있습니다.


<인터뷰> 강대철(옛문화답사회 대표) : "딱 보니까 석굴암의 본존불 생각이 딱 나더라고요. 당당한 자세라든가 또는 조각기법, 그다음에 전체적인 느낌 같은 것이 상당히 가치 있는 문화재구나 하는 생각을 했고, 이렇게 좋은 작품이 좀 더 대중들한테 보여졌으면 좋겠는데 외롭게 여기 계신가 하는 생각이 좀 많이 들었죠."

통일신라 불상이 청와대에 있게 된 이유는 뭘까? 불상 앞에 놓인 돌에는 경주 남산 절터에 있던 것을 일제 때 옮겨온 거라고 적혀 있습니다. 불상이 처음 있었던 자리를 직접 찾아가 보기로 했습니다. 신라의 천년 고도, 경주 시내에서 20여 분 거리에 있는 어느 한적한 시골 마을. 논밭을 지나 마을 뒷산 쪽으로 걸어 올라가자, 산 아래 탁 트인 지형이 눈앞에 펼쳐집니다. 신라시대에 '이거사'라는 절이 있었던 곳으로 여겨지는 장소입니다. 1,000년이 훌쩍 넘는 세월에 무너져 내린 석탑만 황량한 절터를 지키고 있습니다. 청와대 불상의 고향을 이곳으로 보는 근거는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1939년에 작성된 조선총독부 문서. 당시 일본인이 남긴 경주 출장 보고서를 보면, 이 불상은 본래 경주군 내동면 '...<이하 생략>




↑ [불교가요] "어디로 가야 하나?" (작사 작곡 오준영/ 노래 김빙/ 출연 정아연)